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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마지막 고백

last update Veröffentlichungsdatum: 28.07.2026 11:46:22

밤이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공기는 젖어 있었다.

유리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앞에 놓인 상자. 언니의 물건이 담긴 상자.

하나씩 꺼냈다.

작은 거울, 헤어진 손목시계, 반쯤 쓴 다이어리.

손끝이 천천히 다이어리 표지를 쓰다듬었다.

‘언니.’

짧은 속삭임. 그러나 그 안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창밖, 이우는 차 안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앉아 있었다.

라디오에서 누군가의 오래된 노래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는 마지막 순간, 아버지에게 남길 말이 맴돌았다.

‘나 이제 당신 아들 아닙니다.’

그 말은 몇 번이고 입술 안쪽에서 굴러다니다 결국 삼켜졌다.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유리는 상자를 닫았다.

그때, 현관 초인종 소리. 문을 열자, 이우가 서 있었다.

말없이, 그는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법원에서의 마지막 서류. 판결 일자.

“다 왔네요.”

유리가 말했다.

이우는 짧게 웃었다.

“예.”

방 안,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전등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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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위험한 여자   94. 문턱 앞에서

    이른 아침이었다.안개가 낮게 깔리고, 도시는 부드럽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유리는 센터 창가에 앉아 손에 쥔 메모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소년이 적어 놓고 간 짧은 주소.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유리는 알지 못했다.그러나 이제, 피할 이유도 없었다.이우는 차 안에서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약속된 시간이 가까워지자 그는 짧게 숨을 내쉬고 차 문을 열었다.오늘은 그녀 곁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가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날이었다.오전, 유리는 소년의 집 앞에 도착했다.낡은 아파트, 군데군데 금이 간 벽, 깨어진 화분.초인종을 누르려다 잠시 멈췄다.손끝이 미묘하게 떨렸다.‘괜찮아.’스스로에게 속삭이듯 말한 뒤, 유리는 손가락을 움직였다.문이 열렸다. 소년의 어머니. 지쳐 보이는 얼굴,그러나 눈동자 깊은 곳엔 오래된 슬픔이 숨어 있었다.유리는 낮게 고개를 숙였다.“저는 상담센터에서 왔습니다.”그 순간, 어머니의 눈가가 짧게 흔들렸다.짧은 대화, 낮은 목소리, 간혹 스쳐 가는 한숨.유리는 어머니의 손끝이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 조용히 결심을 쌓았다.이 가족은 한 사람만 무너진 게 아니었다.모두가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오후, 센터로 돌아오는 길.골목 어귀에서 이우가 기다리고 있었다.유리는 짧게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웃음을 지었다.“기다렸어요?”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예.”그 짧은 대답 안에 하루 종일 쌓였던 말들이 조용히 담겨 있었다.함께 걷는 길, 말이 많지 않았다.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서로의 발걸음이 조금씩 맞아가고 있었다.가로등 아래, 유리의 어깨가 살짝 이우 쪽으로 기울었다.이우는 그 움직임을 말없이 받아들였다.작은 카페에 들어섰다.따뜻한 커피, 창밖으로 내리는 가는 비,그리고 창문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유리는 말했다.“가끔은요, 이 모든 게 끝난 뒤가 더 무서울 때가 있어요.”이우는 짧게 숨을 고르고 낮게 말했다.“그때도 곁에 있을 겁니다.”유리는

  • 너무 위험한 여자   93. 끝내 닿지 않아도 따뜻한 거리

    아침이었다. 회색 구름이 얇게 하늘을 덮고,햇살은 조용히 그 틈을 비집고 내려왔다.유리는 상담센터 문을 열었다.차가운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었고, 커튼이 살짝 흔들렸다.손끝으로 창틀을 짚으며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짧은 숨. 그리고 조용한 마음.그날, 소년은 다시 찾아왔다.낡은 가방을 메고, 모자를 눌러쓴 채 작은 발걸음으로 문 안으로 들어왔다.유리는 미소지었다.“어서 와요.”소년은 잠깐 멈칫하다가 조심스레 소파에 앉았다.대화는 길지 않았다.소년은 말이 적었고, 유리는 서두르지 않았다.짧은 질문, 더 짧은 대답, 그리고 긴 침묵.그러나 그 침묵 안에서 조금씩,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소년의 눈동자가 조금 덜 흔들리고, 손끝이 조금 덜 떨리고.유리는 그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저녁 무렵, 이우는 골목길 작은 상점 앞에 서 있었다.창 너머로 유리의 모습이 보였다.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이우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짧게 숨을 내쉬었다.문이 열리고, 유리가 나왔다.“왔네요.”짧은 인사. 그러나 그 안에는 오랜 기다림이 담겨 있었다.“예.”이우의 대답은 늘 간결했지만, 그 한마디 속에는 많은 것들이 스며 있었다.함께 걷는 길, 둘은 가끔 말을 멈추고 가만히 걸었다.가로등 아래, 유리의 손등이 살짝 이우 쪽으로 다가갔다.그 거리는 끝내 닿지 않았지만, 닿지 않은 채로 충분히 따뜻했다.길가 작은 포장마차 앞에서 멈췄다.어묵 국물에서 피어오르는 김,젓가락으로 건져 올린 떡볶이,종이컵에 따른 따뜻한 술.유리는 웃었다.“이런 거, 진짜 오랜만이에요.”이우도 미소지었다.“저도요.”짧은 대화. 그러나 그 안에서 서로의 마음은 조금씩, 더 가까이 스며들고 있었다.밤, 유리의 집 앞.이우는 짧게 머뭇거렸다.유리는 그 모습을 보고 부드럽게 말했다.“괜찮아요. 여기까지 와줘서.”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내일 또 올게요.”유리는 눈을 내리깔았다가, 작게 미소지었다.“예.”그날

  • 너무 위험한 여자   92. 우리라는 이름

    이른 아침이었다. 햇살이 유리창을 천천히 타고 내려와 바닥에 금빛 줄무늬를 만들고 있었다.이우는 작은 이삿짐 트럭 앞에 서 있었다.박스 몇 개, 낡은 가구 두어 점,그리고 서랍 안에서 발견한 오래된 사진 한 장.사진 속 웃고 있는 소년은 지금의 그와 닮은 듯, 닮지 않은 듯했다.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다 문득 숨을 멈췄다.창밖으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노부부,분식집 앞에서 떡볶이를 먹는 학생들,햇살 아래 웃고 떠드는 사람들.그 평범함 속에 자신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조금 낯설었다.그러나 낯설음은 곧 묘한 위안이 되었다.한편, 유리는 상담센터에 있었다.문이 열리고 한 소년이 들어왔다.낮은 눈빛, 불안한 손끝, 작게 웅크린 어깨.유리는 천천히 손짓했다.“앉아요.”소년은 머뭇대다 조용히 소파에 앉았다.그때부터 작은 대화들이 조심스레 오가기 시작했다.짧은 질문, 긴 침묵, 그리고 가끔 미묘한 웃음.저녁 무렵, 이우는 새 집 창가에 서 있었다.커튼을 걷으니 해 질 녘 햇살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작은 창틀 위에 커피잔을 올려놓고, 그는 한참을 밖을 바라봤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오후.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 있다는 걸 그는 처음으로 배우고 있었다.밤, 유리와 이우는 작은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어땠어요, 오늘은.”유리가 먼저 물었다. 이우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생각보다…괜찮았어요.”유리는 미소지었다.“저도요.”두 사람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그러나 그 침묵은 어색함이 아니라, 편안함이었다.카페를 나와 거리를 걷던 중, 이우가 말했다.“우리…”그는 말끝을 잠시 맺었다.유리가 옆에서 고개를 돌렸다.“우리?”이우는 짧게 웃었다.“그냥, 이제 우리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질 것 같아서요.”유리는 눈을 깜박이다가, 조용히 말했다.“그래요. 우리.”그 말이 밤공기 속으로 조용히 흩어졌다.그날 밤, 유리는 창가에 앉아 작은 메모지에 한 문장을 적었다.‘우리라는 이름을 배우는 중.’그 문장

  • 너무 위험한 여자   91. 말없이 기대어 선 공백

    늦은 오후였다. 햇빛은 창가에 가 닿았다가,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유리는 상담센터에 앉아 있었다.오래된 소파, 낡은 책상, 한쪽 벽의 시계.똑딱, 똑딱.초침 소리만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서류 위로 손끝이 미끄러졌다.그동안 놓았던 일들, 쌓여 있던 기록들.하지만 마음은 아직,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이우는 가족 저택 앞에 섰다.집무실 창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누군가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그렇게도 조용히 찾아오는 일이었다.그는 긴 숨을 들이쉬고, 주머니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부고도, 고백도, 사과도 아닌, 단 한 줄.‘이제, 나는 갑니다.’그 말만으로 충분했다.밤이 되었다.유리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커튼이 반쯤 젖혀진 창 너머로 가로등 불빛이 번졌다.밖을 보았다. 익숙한 골목, 낯익은 표지판,그리고 멀리서 걸어오는 그림자 하나.그림자는 천천히 다가왔고, 문 앞에 멈췄다.벨 소리 대신, 낮은 두드림. 유리는 문을 열었다.이우였다.둘은 말없이 소파에 앉았다.테이블 위에 따뜻한 차 한 잔. 유리가 말했다.“모든 게 끝나니까, 이상하죠.”이우는 고개를 기울였다.“네.”짧은 대답. 그러나 그 짧은 말 안에 수많은 의미가 들어 있었다.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가, 유리는 창밖을 가리켰다.“저 골목, 언젠가 당신이 처음 걸어오던 날이 생각나요.”이우는 잠시 미소지었다.“그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죠.”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어쩌면, 그때부터였을지도 몰라요.”늦은 밤, 둘은 나란히 골목을 걸었다.가로등 불빛 아래 두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걸음은 빠르지 않았고, 말도 많지 않았다.그러나 그 사이의 공백은 서로에게 조용히 기대어 있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 유리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이우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내일 또 봅시다.”유리는 짧게 웃었다.“예.”문이 닫히고, 밤공기가 스며들었다.공백의 시간, 그러나 그 안에서 둘은 조금씩 다음 페이지를

  • 너무 위험한 여자   90. 마지막 고백

    밤이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공기는 젖어 있었다.유리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앞에 놓인 상자. 언니의 물건이 담긴 상자.하나씩 꺼냈다.작은 거울, 헤어진 손목시계, 반쯤 쓴 다이어리.손끝이 천천히 다이어리 표지를 쓰다듬었다.‘언니.’짧은 속삭임. 그러나 그 안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창밖, 이우는 차 안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앉아 있었다.라디오에서 누군가의 오래된 노래가 조용히 흘러나왔다.눈을 감았다.머릿속에는 마지막 순간, 아버지에게 남길 말이 맴돌았다.‘나 이제 당신 아들 아닙니다.’그 말은 몇 번이고 입술 안쪽에서 굴러다니다 결국 삼켜졌다.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유리는 상자를 닫았다.그때, 현관 초인종 소리. 문을 열자, 이우가 서 있었다.말없이, 그는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그 안에는 법원에서의 마지막 서류. 판결 일자.“다 왔네요.”유리가 말했다.이우는 짧게 웃었다.“예.”방 안,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전등 불빛 아래, 둘의 그림자가 테이블 위에 겹쳤다.유리는 낮게 말했다.“사실…가끔 무섭더라고요.”이우는 고개를 들었다.“어떤 게요.”유리는 잠시 웃었다.“끝이요.”그 말은 공기 중에서 천천히 녹았다.이우는 잠시 말이 없더니, 손을 뻗어 유리의 손등 위에 조용히 손을 얹었다.“끝나면,”그가 말했다.“내가 곁에 있을 거예요.”늦은 밤, 둘은 함께 짧은 산책을 나섰다.가로등 아래, 서로의 발걸음 소리만이 길 위에 남았다.유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별은 보이지 않았다. 구름에 덮인 하늘.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다.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돌아오는 길, 유리는 문득 멈춰 섰다.이우도 멈췄다.유리는 짧게 숨을 고르고 말했다.“고마워요.”그 말은 오래 준비한 고백이었다.이우는 미소지었다.말없이, 유리의 이마에 손을 가져가 짧게 머물렀다.그 밤, 세상은 잠시 멈춘 듯했다.방 안으로 돌아온 뒤, 유리는 창가에 서서 마지막으로 상자를 껴안았다.

  • 너무 위험한 여자   89. 지워지지 않는 기억

    마침내 두 사람의 거리가 몇 발자국 안으로 좁혀졌다.유리는 멈췄고, 이우도 멈췄다.한참을 눈빛만이 오갔다.그리고 유리가 말했다.“끝까지 같이 가요.”그 한마디에 이우의 입꼬리가 살짝 움직였다.“예.”짧은 대답. 그러나 그 안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저녁이 되자, 도시는 다시 어두워졌다.유리와 이우는 조용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테이블 위, 두 개의 커피잔.말없이 서로의 숨소리만이 오갔다.그러다 유리가 말했다.“난 아직도, 이게 끝나면 무서울 것 같아요.”이우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그때 되면, 같이 무서워하면 돼요.”유리는 눈을 감았다.이상하게도 그 말이, 지금까지 들은 말 중 가장 편안했다.그날 밤, 도시는 또 하나의 장을 넘어가고 있었다.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서로를 향해 조용히 손을 내미는 사람들.그 중심에서 유리와 이우는 잠시, 긴 숨을 고르고 있었다.아침이었다. 그러나 공기는 묘하게 눅눅했다.재판 당일, 법원 앞에는 벌써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기자, 방송차, 호기심 어린 눈빛들.유리는 차 안에서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긴장이 아니었다.그보다는, 오래된 싸움이 마침내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낯선 감각.옆자리, 이우는 아무 말 없었다.서류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가 내렸다.문득 유리가 말했다.“끝나면 뭐하고 싶어요?”이우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짧게 웃었다.“한동안은, 쉬고 싶어요.”그 웃음 속에는 피로와, 그 너머의 약간의 기대가 묻어 있었다.법정 안. 서인국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그의 얼굴은 늘 그랬듯 무표정이었다.그 표정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숨겨왔는지, 유리는 이제 알 수 있었다.그가 고개를 살짝 들어 방청석을 향해 시선을 던졌을 때, 유리는 그 시선과 정확히 마주쳤다.한순간, 공기가 얇게 떨렸다.그러나 유리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재판이 시작됐다.법정 안에는 문서 넘기는 소리,속삭임, 누군가의 얕은 기침 소리.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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