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식당에 자리를 잡은 하랑은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 조금 전까지 보던 가구 사진 대신 메뉴판을 펼쳤다. 뒤따라온 팀원들도 빈 의자에 앉았다. 유나는 하랑 맞은편에 자리를 잡으며 작은 수첩을 무릎 위에 올렸다. “주임님, 하나만 여쭤봐도 돼요?” 하랑이 고개를 들었다. “네!” 유나는 수첩을 펼쳤다가 주변을 보고 다시 덮었다. “아까 수정한 부분이요. 다른 방법도 생각났는데…….” “그럼 오후에 두 가지 다 보여주세요.” “팀장님이 말씀하신 방향이랑 조금 달라도 괜찮을까요?” 하랑은 곁에 앉은 기태를 봤다. 기태가 물잔을 내려놓았다. “이유가 있으면 설명하세요. 비교해보면 됩니다.” 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랑은 메뉴판을 유나 쪽으로 조금 밀었다. “그리고 지금은 밥 먹어요. 생각난 건 메모했죠?” “네.” “그럼 안 도망가요.” 정훈이 숟가락을 놓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을 이하랑 주임님이 하시네요.” “왜요?” “아이디어 생각나면 점심도 잊으시는 분이.” 하랑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기태를 가리켰다. “그래서 팀장님이 밥 먹으라고 하시잖아요.” 로로가 웃으며 물컵을 들었다. “배운 건 바로 써먹네.” “좋은 건 써먹어야죠!” 하랑은 유나의 수첩이 가방에 들어가는 걸 보고 다시 메뉴를 골랐다. 음식이 나오자 식탁이 바빠졌다. 기태는 하랑 쪽으로 튀어나온 뜨거운 냄비 손잡이를 돌려놓고 자기 앞접시에 음식을 덜었다. 하랑은 그 손을 따라보다 얼른 물컵을 옮겼다. “오빠, 이거 걸리겠다.” 기태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은편 다은이 그 모습을 보다가 유나에게 반찬 접시를 건넸다. 잠깐 조용해진 틈에 유나가 다시 하랑을 불렀다. “주임님.” “네?” “주임님은 질문할 때 안 떨리세요?” 하랑은 밥을 삼킨 뒤 눈을 깜빡였다. “왜요?” “제가 너무 당연한 걸 모르는 것 같아서요. 이미 설명해주신 걸 또 물어볼 때도 있고.” 하랑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저도 같은 거 여러 번
집을 계약한 뒤 처음 출근한 아침. 하랑은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로로의 책상 앞으로 갔다. 수첩도 펼쳐 들고 있었다. “팀장님!” “왜?” “저희 집 계약했어요!” 로로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벌써?” “네! 몇 군데 더 보고 둘 다 마음에 드는 데로 골랐어요.” 민지가 의자를 돌렸다. 정훈도 모니터에서 고개를 들었다. “축하해요, 하랑 주임님.” “이제 진짜 이사 준비하시는 겁니까?” 하랑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 이삿날은 조율 중인데 가구도 보러 갔어요.” 로로는 하랑 뒤에서 외투를 정리하는 기태를 봤다. “야, 너는 왜 이렇게 조용해?” “하랑이가 말하고 있잖아.” 하랑이 얼른 옆으로 비켰다. “팀장님도 말씀하세요!” 기태가 두 사람 사이에 선 하랑을 내려다봤다. “뭘요.” “집 계약한 소감이요!” “좋습니다.” 짧은 대답이었다. 정훈이 웃음을 삼켰다. “보고 끝입니까?” “네.” 하랑은 그 짧은 대답에도 만족스럽게 웃었다. 유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임님 작업실도 생기시는 거예요?” 하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을 펼쳤다. 거실과 방의 치수 옆에 작업대, 재료장, 조명 같은 메모가 빼곡했다. “네. 지금 집은 이것저것 같이 놓아서 조금 좁거든요.” “나중에 구경해도 돼요?” “그럼요!” 하랑의 목소리가 커졌다. “다들 놀러 오세요!” 정훈이 바로 손을 들었다. “집들이 초대하신 겁니다.” “네!” “언제요?” 하랑의 입이 잠깐 멈췄다. “식탁부터 놓고요.” 로로가 고개를 숙였다. 민지는 결국 웃었다. 기태는 하랑의 손에서 수첩이 떨어지려 하자 밑을 받쳐줬다. “회사에서도 가구 고를 겁니까?” 하랑이 얼른 수첩을 덮었다. “아니요. 이제 일할 거예요!” 업무가 시작되자 하랑은 약속대로 모니터 앞에 앉았다. 유나가 가져온 수정안을 함께 확인하고, 정훈이 전달한 제작 일정에 검토할 내용을 표시했다. 들떠 있던 얼굴도 도면을 펼치자 금세 진지해졌다.
오피스텔 문이 열리자 메롱이가 현관으로 다가왔다. 하랑은 가구 설명서가 든 가방부터 내려놓고 쪼그려 앉았다. “메롱아, 우리 소파 보고 왔어.” 고양이는 대답 대신 가방 끈을 앞발로 건드렸다. 기태가 끈을 안으로 넣어주자 하랑이 고개를 들었다. “오빠.” “응.” “우리 집에 있는 것도 가져갈 수 있잖아.” “당연하지.” “그럼 뭐 있는지 봐야겠다!” 아직 이삿날도 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랑은 벌써 거실을 둘러보며 손가락을 접었다. 책상. 수납장. 메롱이 용품. 기태가 가방에서 설명서를 꺼내 식탁에 펼쳤다. “오늘 다 정리하려고?” “아니. 조금만!” 하랑은 의욕적으로 서랍을 열었다. 곧 작업 노트와 펜, 작은 상자들이 하나씩 나왔다. 기태는 옆에 앉아 책상 위에 흩어진 종이를 크기대로 모았다. “필요 없는 건?” “없어.” “아직 보지도 않았잖아.” “다 필요해서 넣어둔 건데.” 하랑은 작은 지우개까지 챙겼다. 기태가 손끝만 한 조각을 내려다봤다. “이것도?” “얇은 선 지울 때 좋아.” 기태는 말없이 돌려줬다. 하랑은 의기양양하게 지우개를 필통에 넣었다. 정리하겠다며 꺼낸 물건들이 거의 그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기태가 웃었다. “버릴 건 하나도 없네.” “정리하는 거지 버리기로 한 건 아니잖아.” 그 말에 기태의 손이 잠깐 멈췄다. “맞네.” “그렇지?” 하랑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서랍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 익숙한 봉투가 닿았다. 하랑에게. 겉면에 적힌 글씨를 보는 순간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태가 접어두었던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거 여기 있었어?” 하랑은 얼른 봉투를 가슴에 붙였다. “응.” “안 구겨졌어?” “매번 조심히 봤거든.” 기태의 시선이 봉투 모서리에 닿았다. 처음 건넸을 때보다 조금 부드러워진 끝이 손가락 사이로 보였다. “자주 읽었어?” “응.” “언제.” “자기 전에. 오빠가 먼저 간 날에도.” 하랑은 봉투를 열려다가 멈췄다. “왜 자꾸
가구 매장에 들어선 하랑은 푹신한 소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커다란 소파들 사이에 놓인, 등받이가 낮고 선이 단정한 제품이었다. 하랑은 휴대전화에 저장해둔 거실 사진을 꺼내 번갈아 봤다. “오빠, 이 정도면 식탁 자리도 안 답답하겠다.” 기태가 옆에 적힌 치수를 확인했다. “집에서 다시 재봐야겠어.” “응. 오늘은 구경만!” 씩씩하게 대답한 하랑이 소파에 앉았다. 등을 기대고 발바닥을 바닥에 붙여보더니 옆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오빠도 앉아봐.” 기태는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하랑은 그의 무릎과 등받이를 번갈아 살폈다. “불편한 데 없어?” “응.” “내가 앉으면 괜찮아도 오빠는 다리가 길잖아.” 하랑이 조금 더 안쪽으로 앉아봤다. 기태는 팔걸이에 팔을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이것보다 등받이가 조금 높으면 좋겠네.” 하랑은 곧장 메모했다. 기태가 화면을 슬쩍 봤다. 소파 사진 아래에 그의 의견이 또박또박 적혔다. “다 적어?” “응. 나중에 예쁜 것만 기억하면 안 되잖아.” 다가온 직원이 다른 제품을 안내했다. 두 사람은 조금 더 높은 등받이가 있는 소파로 옮겨 앉았다. 하랑은 기태가 먼저 등을 기대는 걸 기다렸다. “이건?” “편해.” 하랑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후보!” 직원이 색상표를 건네자 이번에는 하랑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작은 천 조각들을 넘기던 손이 밝은 크림색에서 멈췄다. “이거 예쁘다.” 기태는 옆의 회색을 살폈다. 하랑이 두 색을 나란히 놓았다. “오빠는 회색?” “응.” “난 밝은 게 좋은데.” 기태가 크림색 쪽으로 손을 옮기자 하랑이 얼른 붙잡았다. “잠깐. 그냥 내 거 골라주지 마.” 기태의 손이 멈췄다. 하랑은 천 조각을 거실 사진 가까이 가져갔다. 잠깐 생각하더니 전시된 작은 쿠션을 가리켰다. “회색 소파에 저런 밝은 쿠션 놓으면 어때?” “괜찮네.” “우리 둘 다 좋아하는 거 있잖아. 같이 놓으면 되지!” 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랑은 두 색을 함께 사
계약서 위에 두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기태. 이하랑. 하랑은 펜을 쥔 채 그 이름들을 번갈아 봤다. 함께 확인하던 회사 보고서가 아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살 집의 계약서였다. 몇 군데를 더 둘러본 끝에 두 번째로 봤던 집을 골랐다. 거실은 조금 작았지만 작업실과 서재가 따로 있었고, 서로의 공간을 줄이지 않아도 됐다. 식탁을 놓을 자리까지 다시 확인하고, 가구가 들어갈 너비도 꼼꼼하게 적어뒀다. “두 분, 확인하신 내용대로 서명해 주시면 됩니다.” 중개사의 말에 하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펜 끝은 종이에 닿지 못하고 잠깐 떠 있었다. 기태가 옆을 봤다. “왜.” “오빠, 나 손 떨려.” “긴장돼?” 하랑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신나서.” 기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랑은 다시 자기 이름을 내려다봤다. “여기에 내 이름도 있어.” “네 집이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하랑은 숨을 한번 고르고 또박또박 이름을 썼다. 늘 빠르게 그리던 선과 달리, 마지막 글자까지 천천히 눌러 적었다. 기태도 옆에 서명했다. 하랑의 시선이 그 손을 따라갔다. 왼손 약지의 백금 반지가 계약서 모서리에 가볍게 닿았다. “오빠.” “응.” “우리 이름 잘 어울린다.” 기태가 펜을 내려놓고 두 이름을 봤다. “그러네.” 하랑은 이체 내역을 확인하고, 함께 정리한 예산표에 완료 표시를 했다. “됐어.” 기태가 화면을 함께 봤다. “확인했어?” “응. 내가 보태기로 한 것도.” 하랑은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의 숫자가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아깝기보다 자꾸 웃음이 났다. “나 진짜 집 계약했네.” “우리.” “아, 맞다. 우리!” 하랑이 고쳐 말하자 중개사가 웃으며 계약서 봉투를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랑은 두 손으로 봉투를 받았다. 기태가 챙겨주려 하자 얼른 가슴에 붙였다. “내가 들래.” “그래.” “안 구겨지게 잘 들고 있을게.” 밖으로 나오자 하랑이
두 번째 집은 첫 번째 집보다 거실이 작았다. 복도 양쪽으로 방들이 나뉘어 있었다. 중개사의 안내가 끝나자 기태가 안쪽 문을 열었다. “여기 좀 볼게.” 하랑도 따라갔다. 기태가 창문을 열어 바깥 소리를 듣고 다시 닫았다. 벽의 길이를 살피다가 한쪽을 가리켰다. “책장은 여기 두면 되겠다.” “책상은?” “저쪽.” 하랑은 그가 가리킨 곳에 서봤다. 책상과 의자가 놓이고도 뒤로 움직일 공간이 남았다. 하랑이 제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오빠, 나도 들어와도 돼?” “벌써 들어왔잖아.” “아니, 같이 살 때!” 기태가 웃었다. “와.” “책 읽을 때도?” “응.” “질문해도?” “지금도 하잖아.” 하랑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 작은 의자 하나 더 놓자.” “네 자리?” “응. 바닥에 앉으면 엉덩이 아프니까.” 기태가 문 옆 빈 곳을 봤다. “거기면 되겠네.” 하랑은 휴대전화를 꺼내 메모했다. 기태가 이번에는 맞은편 방을 열었다. “여긴 네가 봐.” 창 아래로 햇빛이 들었다. 하랑이 두 손을 벌려 작업대의 너비를 가늠했다. “이쪽에 앉으면 문 열리는 게 보이겠다.” “응.” “오빠 들어오면 바로 알겠네.” 하랑은 벽을 따라 몇 걸음 옮겼다. “재료장은 여기. 잠금장치 있는 걸로.” “메롱이 때문에?” “응. 반지 케이스 또 깔고 앉으면 어떡해.” 기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때 많이 울었지.” “잃어버린 줄 알았잖아!” 하랑은 얼른 왼손을 들어 보였다. “이제 안 잃어버려. 여기 있으니까.” 기태가 그 손을 잡아 내렸다. 엄지가 백금 반지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었다. “알아.”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침실을 둘러봤다. 하랑은 침대가 놓일 벽 앞에 섰다가 반대편을 봤다. 그러고는 기태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오빠.” “응.” “침대는 큰 거 사자.” “얼마나.” “메롱이도 올라오잖아.” 기태는 잠시 하랑을 내려다봤다. “그래도 너 내 쪽으로 붙어 잘 텐데.”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