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동생 연호가 입사 직전 거액의 사기를 당해 잠적하자, 연우는 동생의 빚을 갚고 그가 돌아올 자리를 만들기 위해 호텔 쉐프 자리를 포기합니다. 남장을 하고 성운그룹 전략기획팀에 입사한 그녀. 하지만 하필 그녀의 상사인 태준은 매일 점심 메뉴의 염도까지 체크하는 까다로운 미식가입니다. 주인공 한연우가 사고친 동생을 대신해서 역경을 헤쳐나가고 사랑도 쟁취하는 이야기입니다.
View More제1화. 낙하산이 떨어뜨린 칼날
5성급 호텔 레스토랑의 주방은 전쟁터다. 그리고 연우는 그 전장의 가장 날카로운 창이었다.
최연소 수 셰프(Sous Chef)라는 타이틀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매일 새벽 수산시장을 누비고, 하루 16시간씩 불 앞에서 씨름하며, 칼에 베이고 데인 흉터가 훈장처럼 박힌 손으로 일궈낸 결과였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이 거품처럼 사라진 것은, 동생 연호의 다급한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누나, 나... 죽을 것 같아. 사기를 당했어. 회사도... 못 갈 것 같아."
"뭐....뭐야? 연호야...연호야..무슨 말이야..그게?"
"그게...그 사기범을 잡으러 갈거야...억울해서 못살아...흑흑"
연호는 꿈에 그리던 국내 최대 기업 '성운그룹'의 신입사원 연수 등록을 앞두고 거액의 사기를 당해 잠적해 버렸다.
동생이 돌아올 때까지, 아니, 동생이 벌여놓은 사태를 수습할 때까지 연우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호텔 총주방장의 만류를 뒤로하고, 연우는 자신의 모든 열정이 담긴 요리 셰프 자리에 사직서를 던졌다.
그리고 동생 연호의 이름으로 압박붕대를 감고, 머리를 쇼트커트로 치고, 투박한 정장을 입었다.
어릴 때부터 크고 작은 사고를 연오가 치면, 수습은 항상 누나인 연우였다.
1분 먼저 태어났다고 누나라니...
이런 불공평한 상황이 늘 불만이었다.
하지만, 동생 연오가 직장을 잃게 되면 슬퍼하실 부모님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동생의 사고를 수습하기로 했다. 눈물을 머금고....
동생이라는 부모님의 낙하산(?)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랄까....
어쨌든... 사고 수습은 누나인 내가 해줘야 할 것 같았다. 늘 그러듯이.....
"셰프가 아니라, 신입사원 한연호로 살아남는 거다. 딱 동생이 돌아올 때까지만."
성운그룹 전략기획팀. 연우가 배치된 곳은 '지옥의 1팀'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곳의 수장은 강태준 본부장.
성운그룹 전략기획팀의 아침은 숨 막히는 침묵과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로 시작됐다.
연우에게 이 소음은 주방의 도마 소리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한연호 씨, 어제 부탁한 주간 보고서 데이터 정리 다 됐나?"
"네????아...네"
박 대리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연우가 움찔하며 모니터를 쳐다봤다.
화면 속에는 정체 모를 숫자와 영어 가득한 엑셀 시트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양파 100개 까는 게 차라리 쉽지...'
연우는 독수리 타법으로 조심스럽게 자판을 눌렀다.
셰프 시절, 예리한 칼날로 식재료를 0.1mm 단위로 썰어내던 그 섬세한 손가락은 마우스만 잡으면 덜덜 떨렸다.
"아...!"
실수로 시트 전체를 삭제해 버린 연우가 비명을 삼켰다.
그때, 팀 전체에 갑자기 찬바람이 쌩 불었다. 복도 끝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려왔다.
전략기획본부장 강태준의 출근이었다.
직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고개를 숙였고, 연우도 엉거주춤 따라 일어났다.
태준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팀장석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의 예민한 코끝에 낯선 향기가 걸렸다.
진한 커피 향과 종이 냄새 가득한 사무실에서, 단 한 곳.
신입사원 한연호의 자리에서만 아주 미세한 '시나몬과 파슬리' 향이 났다.
연우가 출근 전 버릇처럼 손을 씻고 바른 셰프용 핸드밤 냄새였다.
태준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지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사무실 적응보다 더 힘든 건 '점심 메뉴 정하기'였다.
"신입, 오늘 점심 뭐 먹을까?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 메뉴 빨리 나오는 곳으로 골라봐."
박 대리의 미션에 연우는 근처 식당 리스트를 뒤졌다.
하지만 셰프의 본능이 방해를 시작했다.
'이 집은 냉동육을 쓰네. 여긴 조미료가 너무 과하고... 아, 여긴 위생 등급이 별로인데.'
결국 연우가 고심 끝에 고른 곳은 회사 뒷골목의 허름한 국밥집이었다.
팀원들은 투덜대며 따라갔지만, 음식을 한 입 먹는 순간 조용해졌다.
오늘은 왠일인지 강본부장도 따라 나섰다.
오늘은 점심 약속이 없다면서...
"어? 여기 국물이 왜 이렇게 진해? 원래 이런 맛 아니었는데?"
연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당연하죠. 제가 주방장님께 생강이랑 청주 좀 더 넣으라고 팁을 드렸거든요.'
"...맛이...좋은데?"
"원래 이런 맛이었나??"
"정말로...난 정말 국밥이 좋아질려구 그래."
"안그래요? 본부장님?"
"아...네..그럼요.."
연우는 팀원들의 숟가락 속도와 표정을 살피며 간이 맞는지, 온도는 적당한지 체크하고 있었다.
습관적인 '테이스팅' 눈빛이었다.
그때, 강본부장이라는 남자가 연우의 눈에 들어왔다.
앞에 국밥을 놓고 먹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남자.
그는 국밥을 한 술 뜨더니 인상을 팍 쓰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연우는 그 남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강본부장인줄도 모르고 본능적으로 다가갔다.
"저기, 혹시 간이 안 맞으시나요? 소금보다는 새우젓을 반 스푼만 더 넣으시면 육향이 확 살아날 텐데."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오똑한 콧날에 날카로운 눈매와 오뚝한 콧날.
강태준 본부장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팀원들과 함께 소통을 하기위해 점심을 같이 해결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연우가 눈치없이 국밥을....
그것도 먹어보질 않은 국밥을 선택하질 않는가?
"자네... 전략기획팀 신입 아닌가?"
"어... 아! 본부장님!"
"어떻게 육향을 알지?"
연우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태준은 무심하게 제 앞의 국밥과 연우를 번갈아 보았다.
"새우젓 반 스푼?"
태준은 반신반의하며 새우젓을 넣고 국물을 맛보았다.
순간, 태준의 눈이 커졌다.
텁텁했던 국물 맛이 거짓말처럼 깔끔해졌다.
'오...이런 맛이 국밥인가?'
"한연호라고 했나? 자네, 통계 정리 실력은 형편없던데... 미각은 통계보다 정확하군."
"헤헤. 과찬이십니다. 본부장님"
"난 원래 국밥을 안좋아 했었는데...자네 때문에...생각을 달리해야 겠군."
"국밥은..정말..한국인에게는 소울푸드죠.헤헤"
"소울푸드?"
"네. 한국인 소울푸드..헤헤"
태준의 차가운 칭찬(?)에 연우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것이 연우가 '사무실의 유령'에서 '본부장의 요주의 인물'로 등극하게 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제5화. 숙취의 아침, 조각난 기억의 퍼즐햇살이 커튼 사이로 사정없이 들이닥쳤다. 연우는 깨질 듯한 두통에 신음하며 눈을 떴다. 입안은 모래라도 씹은 듯 서글거렸고, 천장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으으... 내 머리..."머리를 싸매고 몸을 일으키려던 연우는 소스라치게 놀라 제 몸을 확인했다. 다행히 옷은 어제 입었던 남동생의 셔츠 그대로였다. 하지만 넥타이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단추는 두어 개 풀려 있었다."기억해내야 해, 한연우. 어제 고깃집에서... 박 대리가 술을 줬고... 그다음에..."기억의 파편들이 날카로운 유리 조각처럼 하나둘 머릿속을 찌르기 시작했다.첫 번째 조각: 누군가 내 술잔을 뺏어 들고 단숨에 비우던 단단한 손등.두 번째 조각: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나를 지탱해 주던 묵직한 가슴팍과 코끝을 간지럽히던 우디 향.세 번째 조각: 택시 안에서 내가 누군가의 옷소매를 잡고 "가지 마요, 커피... 더 맛있게 타줄게..."라고 웅얼거렸던 목소리. "미쳤어! 미쳤나 봐, 한연우!!"연우는 침대 위에서 발버둥을 쳤다. 그 목소리와 향기의 주인은 확실했다. 강태준 본부장. 대한민국에서 가장 냉철하다는 그 남자 앞에서 주정이라니! 심지어 셰프 본능이 튀어나와 '맛있게 해 준다'는 말까지 내뱉다니!침대 옆 의자를 본 연우의 눈이 더 크게 떠졌다. 어제 자신이 입고 갔던 저렴한 슈트 재킷이 아니라,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광택이 흐르는 태준의 재킷이 정갈하게 걸려 있었다.재킷 안감을 살피던 연우는 기절할 뻔했습니다. [KANG TAE JUN] 금사실로 수놓아진 그의 이름 석 자."이게 왜 여기 있어? 아니, 설마 내가 뺏어 입고 온 거야? 본부장님은 셔츠 바람으로 보내고?"더 큰 문제는 어제의 기억 중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젖은 셔츠 때문에 가슴을 가리며 당황했던 탕비실의 기억, 그리고 술에 취해 넥타이를 풀어헤치려던 자신의 손길...'본부장님이... 내 압박붕대를 본 걸까? 아니야, 봤으면 벌써 인사팀
제4화. 취중진담과 흑기사의 등장전략기획팀의 신입사원 환영회 장소는 회사 근처의 소란스러운 고깃집이었다. 평소라면 셰프의 감각으로 고기의 질이나 굽기 정도를 따졌을 연우였지만, 지금 그럴 여유는 전혀 없었다."자, 우리 본부장님의 '럭키 보이' 한연호! 한 잔 받아야지?""하하..럭키보이.."박 대리가 비꼬는 말투로 소주잔을 가득 채웠다. 박 대리는 연우에게 약간 적대적이었고, 오 대리는 약간 호의적이었다.오 대리가 퍼뜨린 탕비실 소문은 이미 팀 내에서 '본부장님의 숨겨진 친인척설' 혹은 '사촌 동생설'로 변질되어 있었다."연호 씨, 솔직히 말해봐. 본부장님이랑 사촌 형제지? 아니면 회장님 댁이랑 무슨 관계라도 있는 거야?""아니면... 정말 그 소문대로 '특별한' 사이인 거야? 본부장님이 자기 재킷까지 벗어주는 건 성운그룹 창사 이래 처음이라고!""아뇨...아무 관계가 아닙니다...본부장님과 저는.."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연우는 식은땀이 흘렀다. "정말 아닙니다. 그냥... 제가 커피를 운 좋게 잘 타서 예뻐해 주시는 것뿐입니다.""에이, 싱겁긴! 자, 마셔 마셔!"평소 주방에서 일할 때 도수가 높은 요리용 술은 다뤄봤지만, 연우는 의외로 알코올에 약했다. 하지만 거절하면 의심이 더 커질까 봐 연우는 주는 대로 술을 받아 마셨다.소주 세 병이 비워질 때쯤, 연우의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얼굴은 발그레해졌고, 평소의 날카로운 셰프 눈빛은 사라진 채 몽롱한 표정이 되었다."본부장님... 그 인간은요... 진짜 예민한 거예요. 커피 온도 1도만 틀려도 귀신같이 안다니까요...""그 인간? 하하하...그 냉혈한 본부장님을 그 인간으로 표현하는 건 연호씨 밖에 없을 것 같네"취기가 오른 연우가 혀 짧은 소리를 내뱉자, 박 대리가 기회를 포착했다는 듯 다가왔다. "그래? 그럼 그 예민한 본부장이 너한테만 왜 그렇게 잘해주는데? 야, 너 솔직히 말해. 너 남자 아니지? 혹시... 아니, 너 정체가 뭐야?""네..무슨
제3화. 타오르는 질투(?), 매운맛 사무실정수기 물을 받는 척하더니, 박 대리가 연우가 태준을 위해 준비해 둔 특제 '히말라야 핑크 솔트' 통을 가리켰다."이게 그 마법의 가루냐? 아주 본부장님을 홀렸어, 아주.""대리님, 만지지 마세요!""그 얼음장같은 본부방님을 말이지...""그거...마법의 가루가 아니라...그냥 소금인데요???""소금이라고?...난 또...무슨 설탕이라도 넣나 했더만..."연우가 말릴 틈도 없이 박 대리는 비웃으며 소금통을 열어 연우의 커피 잔에 들이부었다.박 대리는 신입 주제에 강본부장에게 총애를 받는 지금의 상황이 아주 싫어졌다.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정말...배가 뒤틀리는 상황인 것이다."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자, 본부장님이 짠 거 좋아하신다며? 이것도 가져다 드려보지 그래?""박 대리님..? 왜..그러시는지...좀?""너...신입이...아주...본부장님이 총애한다고...그러는 건가?""네? 그게 무슨...""본부장님이 말야. 너 신입을 아주 좋게 본 모양이야. 거참. 이 커피에 무슨 비밀이라도 있나?그냥 봐선 그냥 커피인데...도통 알 수가 없네..."순간 연우의 눈앞이 아찔해졌다. 다시 타기엔, 그리고 다시 커피를 내리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때, 탕비실 문이 열리며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자네들.여기서 다들 뭐 하는 거지?"태준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연우를 찾으러 직접 탕비실까지 온 것이다. 박 대리는 당황해 소금통을 뒤로 감추며 허리를 굽혔다."아, 본부장님! 그게 아니라... 한연호 씨가 커피 타는 걸 좀 도와주려고...""네. 맞아요..박 대리님이 저를 도와 주실려고...""헤헤헤. 요즘 신입사원들이 교육이 잘 안돼서...친히 이 선배가 도와주려고 했습니다.""네. 맞아요."태준은 박 대리를 지나쳐 연우 앞에 놓인 소금 범벅이 된 커피 잔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는 차가운 시선으로 박 대리를 응시했다."박 대리, 자네는 전략기획팀 소속인가, 아니면 조
제2화. 탕비실의 연금술사태준은 성운그룹 내에서도 유명한 '카페인 중독자'이자 '커피 빌런'이었다. 그의 비서실에는 수백만 원짜리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었지만, 태준은 늘 만족하지 못했다.원두의 산도, 추출 시간, 심지어 물의 온도까지 따지는 그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연료'이자 '예술'이었기 때문이다.어느 오후, 회의를 앞두고 예민해진 태준이 직접 탕비실로 향했다. 비서가 타온 커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내려 마실 생각이었다.탕비실 문을 열자, 그곳엔 신입사원 연우가 있었다. 연우는 팀원들의 심부름으로 종이컵 여러 개를 늘어놓고 커피를 타고 있었다.그러한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인기척을 느낀 연우가 뒤돌아보았다. "본부장님!""..."태준이 나타나자 연우는 고무장갑을 벗듯 급하게 손을 정리했다. 태준은 무심하게 연우를 지나쳐 머신 앞으로 갔지만, 이내 코끝을 간지럽히는 '완벽한 향기'에 멈춰 섰다.사무실의 흔한 믹스커피 냄새가 아니었다. 고소하면서도 끝맛이 은은하게 달콤한, 갓 볶은 원두에서나 날 법한 깊은 향이었다. 태준의 시선이 연우의 종이컵으로 향했다."그 커피...향이 좋은데...자네가 탄 건가?""아... 네. 대리님들이 잠 깨는 커피 좀 타오라고 하셔서요.""오...그래?"태준은 연우가 들고 있는 컵을 뺏다시피 가져가 한 모금 머금었다. 순간, 태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이건... 믹스커피가 아니군. 베이스는 믹스인데, 산미가 살아있고 뒷맛이 깨끗해. 뭘 넣었지?""그게..."연우는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사실 대단한 기술은 아니었다. 셰프 시절 소스의 밸런스를 잡던 버릇이 나왔을 뿐이었다."그게... 별건 아니고요. 종이컵을 미리 뜨거운 물로 데워서 온도를 맞췄고, 설탕과 프림의 비율을 조금 조절한 다음에...마지막에 시나몬 파우더 아주 조금이랑 소금 한 꼬집을 넣었습니다. 소금이 단맛을 더 끌어올려 주거든요."태준은 컵을 내려다보았다. 믹스커피 한 잔을 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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