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오후 12시 10분.
솔레나 공화국 대통령궁 외곽.
검은 차량이 천천히 멈춰 섰다.
차 안 공기는 무거웠다.
몇 시간 전.
상대국은 새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대통령 혼자 입장.
경호 인원 동행 불가.
수행 비서관 동행 불가.
심지어 한채린도 들어갈 수 없었다.
사실상 강시온 혼자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오민석은 아직도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대통령을 부르면서 혼자 오라니요.”
임태건이 짧게 말했다.
“의도적인 압박입니다.”
“그걸 압니다.”
“그래도 너무합니다.”
시온은 피식 웃었다.
“괜찮습니
오전 10시 28분.국회 청문회장.원본 CCTV가 사라졌다는 보고를 마친 한서준은 통화를 이어 갔다.“삭제 시각은 청문회 시작 5분 전입니다.”수화기 너머의 박은호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한서준의 시선이 청문회장 안으로 향했다.강시온과 한채린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른 채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그때 윤도현이 다시 마이크를 켰다.“대통령님.”강시온이 고개를 들었다.“책임을 지겠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윤도현은 앞에 놓인 서류를 천천히 덮었다.“하지만 책임은 말로 지는 것이 아닙니다.”기자들의 타자 소리마저 잠시 잦아들었다.“조사가 끝날 때까지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직무를 정지하시겠습니까.”“수사기관이 요구한다면 대통령실 내부 자료도 모두 공개하시겠습니까.”“그 과정에서 대통령님의 지지율이 무너져도 같은 선택을 하시겠습니까.”질문이 이어질수록 기자들의 손이 빨라졌다.이번에는 옳고 그름을 묻는 질문이 아니었다.강시온이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한채린은 윤도현의 의도를 곧바로 알아차렸다.권력을 지킬 것인가.사람과 진실을 지킬 것인가.어느 쪽을 선택하든 대가는 남을 것이다.위원장이 강시온을 바라봤다.“대통령님.”“답변하시겠습니까?”강시온은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잠시 뒤.그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필요한 조사라면 받겠습
오히려 모두가 기다리도록 침묵을 길게 끌었다.기자들도.의원들도.카메라도.모두 그의 손끝만 바라보고 있었다.그 침묵 속에서한채린은 처음 보는 표지를 다시 바라봤다.대통령실 공식 문서가 아니었다.하지만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심장이 아주 조금 빨라졌다.강시온 역시 그녀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잠깐 마주쳤다.그러나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저건... 예상 밖이다.'윤도현은 그 짧은 시선까지도 놓치지 않았다.그는 아주 천천히 표지를 열었다."그럼.""이제부터.""국민 여러분께.""새로운 자료를 공개하겠습니다."회의장 안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강시온은 서류보다 먼저 한채린을 바라봤다.그녀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다.하지만 그는 알았다.저 표정일수록 더 버티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잠시.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마주쳤다.말은 없었다.그러나 둘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끝까지 함께 버틴다'순간.한채린의 표정이 처음으로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윤도현은 첫 장을 넘겼다.회의장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조금 전까지는 대통령님의 판단을 들었습니다.”“이제는 사실을 확인하겠습니다.”그가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회의장 대형 화면이 켜졌다.짧은 영상 하나가 재생되기 시작했다.폭발 직전.World Harmony Fest 지하 통로.흔들
오전 10시 21분.국회 청문회장.회의장 안은 조금 전보다 더 조용했다.강시온이 직접 청문회장에 들어온 뒤부터였다.카메라 수십 대가 강시온과 한채린을 번갈아 비추고 있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서 있었지만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아니.바라볼 수 없었다.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서로를 걱정하고 있다는 마음부터 들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한채린은 애써 정면만 바라봤다.하지만 시야 끝에서는 자꾸만 강시온의 왼팔이 보였다.붕대 끝이 조금 풀려 있었다.청문회장까지 급히 들어오는 동안 다시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그 모습을 본 순간.가슴 한쪽이 조용히 내려앉았다.'왜...''왜 그렇게까지 오신 겁니까.'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이었다.윤도현은 두 사람을 차례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대통령님.”“네.”“오늘 국민이 궁금한 건 대통령님의 용기가 아닙니다.”짧은 정적.회의장이 다시 조용해졌다.“대통령실은 위험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까.”“알고 있었다면 왜 막지 못했습니까.”“몰랐다면 왜 몰랐습니까.”윤도현의 시선이 흔들림 없이 강시온에게 향했다.“어느 쪽이든.”“국민은 대통령실의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습니다.”기자들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회의장 공기가 다시 팽팽해졌다.한채린은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윤도현은
순간.시온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화면 속 한채린은 아무 일도 모르는 듯 질문을 받고 있었다.아니.이미 알고도 버티고 있는지도 몰랐다.강시온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오민석이 놀라 물었다.“각하, 어디 가시려고요?”“청문회장으로 갑니다.”임태건이 앞을 막았다.“지금 이동은 위험합니다.”시온은 조용히 말했다.“한 실장님은 지금.”“제 자리에서 모든 걸 감당하고 있습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시온은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그리고 낮게 말했다.“이번에는.”“제가 직접 나서야 합니다.”국회 청문회장.윤도현은 새로 전달받은 자료를 들어 올렸다.“폭발 전 위험 보고를 확인하고도 World Harmony Fest를 강행했습니까?"한채린은 자료를 바라봤다.보고서는 잘려 있었다.‘구역 폐쇄 및 경호 인력 재배치 완료’라는 핵심 문장이 사라져 있었다.상대가 원하는 게 분명해졌다.강시온이 아니라.그를 지키는 자신을 먼저 무너뜨리는 것.“비서실장님은 위험을 알고도 행사를 강행한 겁니까?”실시간 댓글이 빠르게 올라갔다.[뭐야 알고 있었어?][자료가 이상한데?][아니 사람 구한 건 맞잖아.]한채린은 마이크 앞에 손을 올렸다.“해당 자료는 원본이 아닙니다.”
오전 10시 03분.국회 긴급 청문회장.한채린이 자리에 앉자 플래시가 터졌다.찰칵.찰칵.찰칵.마이크 앞 명패 위에 적힌 이름이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졌다.대통령 비서실장 한채린.청문회 위원장이 입을 열었다.“한채린 비서실장.”“네.”“World Harmony Fest 폐막식 폭발 사고 당시, 대통령께서 직접 현장에 진입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첫 질문은 예상대로 강시온이었다.그의 이름이 나오자 한채린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알고 있었습니다.”“그런데도 제지하지 못했습니까?”“제지했지만, 끝내 멈추게 하지는 못했습니다.”“그렇다면 통제 실패 아닙니까?”날카로운 질문이었다.대통령의 현장 진입을 끝내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그 말은 사실이었다.하지만 강시온은 그곳에서 시민들을 대피시키며 혼란을 수습했다.피 묻은 흰 셔츠와 붕대 감은 팔이 떠올랐다.그는 늘 자신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사람이었다.한채린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그날 현장은 이미 혼란 상태였습니다.”“대통령께서는 지휘 체계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무너진 사람들의 공포를 붙잡았습니다.”회의장이 술렁였다.의원이 곧바로 말했다.“감성적인 표현은 필요 없습니다.”“사실만 답하십시오.”한채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l
국가정보원 실장.어제 이름이 올라왔던 사람.그리고 오늘.청문회 직전에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한채린은 자료를 챙겨 들었다.“가겠습니다.”시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저도 같이 가겠습니다.”한채린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이번 만남은 제가 먼저 확인하겠습니다.”“한 실장님.”“각하께서는 청문회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잠시 침묵.시온은 끝내 더 말하지 못했다.한채린은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그리고 조용히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저는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시온은 그녀를 바라봤다.그 말이.오히려 더 걱정됐다.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흔들릴 때 더 깊이 무너질 수 있으니까.한채린이 문을 열고 나갔다.복도 끝으로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시온은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그러니까 더 걱정되는 겁니다.”그때.오민석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그는 화면을 확인하더니 얼굴이 굳어졌다.“각하.”시온이 돌아봤다.“무슨 일입니까?”오민석은 태블릿을 내밀었다.새로운 속보가 떠 있었다.『단독: 청문회 핵심 자료 사전 유출 의혹』『한채린 비서실장, 경호 실패 보고 누락했나』시온의 표정이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