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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도도캔
병원, 3층 병실.

“승희야, 다행히 그냥 심장 두근거림 증상일 뿐이야. 큰 문제는 없어.”

한진후가 서승희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 주고는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나민경은 텅 빈 유골함을 두 손으로 움켜쥔 채 병실 침대 옆에 멍하니 꼭두각시처럼 서 있었다.

고개를 돌린 한진후는 나민경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목구멍이 시큰거렸다.

입술을 깨물며 나민경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예쁘고 밝았던 나민경의 눈빛은 완전히 빛을 잃어 칙칙하고 어두워 보였다.

“미안해, 민경아. 내가 널 오해했어. 케이크에는 이상이 없었어.”

턱을 나민경의 정수리에 대고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하지만 나민경은 유골함을 꼭 움켜쥔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한진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민경아, 왜 그래? 이 상자 안에는 뭐가 들어 있었던 거야?”

나민경과 시선을 마주치기 위해 허리를 굽힌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핏줄이 가득한 채 충혈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마침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한진후는 그제야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디 아파? 바로 청진기 가져올게.”

급히 자리를 떠나자 병실에는 나민경과 서승희 단둘만 남았다.

문소리가 들리자마자 서승희가 눈을 번쩍 뜨더니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녀는 얼굴에 아픈 기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미소를 지었다.

“나민경, 너 정말 왜 이렇게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거야? 정말 모르겠어? 내가 조금만 손을 쓰면 너는 개처럼 두들겨 맞아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걸?”

천천히 다가와 나민경의 귓가에 대고 비아냥거리며 속삭였다.

“마치 그때 그 무고한 납치 사건처럼.”

득의양양한 서승희의 모습에 나민경이 쉰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 납치 사건도 네 자작극이었어?”

“맞아, 그리고 네 결혼식의 그 사고도 내가 한 거야.”

서승희가 입꼬리를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

“진후는 내 거야. 네가 내 남자를 빼앗으려 했으니 이 정도 벌은 너와 네 동생이 달게 받아야 하지, 안 그래?”

순간 엄청난 충격과 분노에 나민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눈에 핏발이 잔뜩 선 채 손을 들어 서승희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달게 받아야 한다고? 그럼 넌 내 따귀나 달게 받아!”

나민경이 너무 세게 때린 탓에 서승희의 뺨은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

“이년이! 감히 나를 때려? 각오해! 진후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서승희가 비명을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다.

‘한진후’를 언급하자 나민경은 살짝 굳어졌지만 이내 입꼬리를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

“맞아, 한진후는 나를 도와주지 않아. 그러니까 내 원수는 내가 직접 갚을 거야!”

말을 마친 뒤 양손을 번갈아 휘두르며 서승희의 뺨을 두 대 더 때렸다.

“악!”

갑작스러운 고통에 비명을 내지른 서승희는 바로 맞받아치려고 했다. 하지만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을 캐치하자 눈빛이 악독하게 변했다.

“나민경, 네가 믿든 말든 상관없어. 어차피 진후는 언제나 나를 선택할 거니까.”

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또한 일부러 나민경의 팔까지 붙잡아 함께 아래로 떨어지려 했다.

창밖에는 뾰족한 가시가 돋친 관목 숲이 있었다.

서승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외쳤다.

“진후야, 살려줘! 민경이가 나를 죽이려고 해!”

쏜살같이 창가로 달려온 한진후는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두 사람을 보자 깜짝 놀라 눈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전선용이 한진후 뒤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지금은 한 사람밖에 구할 수 없어요! 빨리 선택하세요!”

한진후의 시선은 나민경에게 꽂혀 있었지만 손은 서승희를 향해 뻗었다. 서승희의 팔을 붙잡아 올리고는 단단히 품에 안았다.

저승사자의 손에서 서승희를 빼앗아 온 듯 아주 소중히 꼭 끌어안았다.

“승희야, 다행이야. 괜찮아서 정말 다행이야.”

서승희는 눈물범벅이 된 채 한진후의 품에 웅크렸다. 그러고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나민경을 슬쩍 바라봤다.

“거머리 같은 년.”

서승희가 입술을 움직이며 나민경에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그 순간, 나민경은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심장이 완전히 마비되어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절망적으로 눈을 감고 손을 놓자 몸은 그대로 관목 숲속으로 곤두박질쳤다.

‘한진후, 너는 진짜로 나를 단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구나.’

쿵!

...

나민경은 아주 길고 긴 꿈을 꾸었다.

3년 전 폭우가 쏟아지던 칠흑 같은 밤, 그 악몽 같은 밤으로 돌아갔다.

맨발로 피 웅덩이 속에 서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구급차를 불렀다.

전화가 연결되자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안녕하세요. 말씀하세요.”

나민경은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설명했다.

“방해 대교에서 교통사고가 났어요. 엄마 아빠 모두 의식을 잃은 상태예요. 빨리 와 주세요. 제발, 제발요!”

전화기 너머의 의사는 신속하게 일련의 응급 처치 방법을 알려주며 그녀에게 지시했다.

“보호자분, 조금만 버티세요. 저희 곧 도착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바로 도착했다. 전화를 받은 의사도 함께 따라와 냉정한 태도로 정확하고 신속하게 응급조치를 지휘했다.

이번 꿈속에서 그녀는 마침내 의사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바로 한진후였다.

알고 보니 그해 그녀의 부모님 구조를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엄청난 충격 속에서 나민경의 뇌는 보호 메커니즘에 의해 그날의 기억이 완전히 흐릿해졌다.

그래서 한진후를 다시 만났을 때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며 기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위기의 순간 한진후는 나민경에게 동아줄 같은 존재였다. 교통사고로 부모님과 이별했지만 트라우마에서 나민경을 꺼내준 사람이었다. 온통 흑백이던 그녀의 세상에 화려한 색을 입혀 주었다.

그러나 나민경은 이내 차가운 수술대 위에 옮겨져 있었다.

한진후가 마스크를 착용한 채 메스를 들어 올렸다. 안경 너머의 검은 눈동자에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민경을 산 채로 개복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 돼! 진후야! 나 민경이야, 제발 제발!”

몸부림치면서 비명을 질렀다. 한진후의 이름도 몇 번이고 불렀다.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메스가 살갗을 가를 때 나는 소름 끼치는 소리뿐이었다.

“나민경, 이것은 네가 갚아야 할 빚이야.”

말을 마치자마자 칼날이 내려왔다.

피가 남자의 하얀 옷자락에 튀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손에 살아있는 뜨거운 신장 하나가 쥐어졌다.

그것은 나민경의 왼쪽 신장이었다.

“악!”

비명을 지르며 악몽에서 깨어난 나민경은 낯익은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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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한진후는 그곳에서 풀려났다.나오자마자 앞에 서 있는 키가 크고 막강한 위압감을 풍기는 남자를 바라보며 눈썹을 찌푸렸다.‘이 남자가 바로 민경이를 데려간 사람이었구나.’쉰 목소리로 박시형에게 말했다.“나 이제 풀어줘. 네가 이렇게 잔혹하고 악독한 사람인 줄 민경이가 알면 어쩌려고? 두렵지 않아?”그러나 박시형은 재밌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듯 큰소리로 웃더니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한진후를 바라봤다.“내가 한 일들이 민경이 몰래 한 거라고 생각해? 이 모든 일을 민경이 다 알고 있다면?”얼굴이 창백해진 한진후는 본능적으로 부정했다.“그럴 리가 없어. 민경이가 어떻게 나한테 이런 짓을 하라고 시킬 수 있어?”얼굴이 완전히 굳어진 박시형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그럴 리가 없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네가 민경이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잊었어? 민경이가 나더러 널 죽이라고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봐준 거야!”박시형은 더 이상 한진후와 말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해 걸음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한진후가 큰 소리로 외쳤다.“거기 서! 거기 서라고!”박시형은 걸음을 멈췄지만 몸을 돌리지는 않았다.검은색 롱코트를 입은 박시형의 고귀하면서도 위압적인 자태가 한진후의 초라하고 처참한 모습을 더욱 부각시켰다.한진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민경이에게 전해 줘. 지난 일, 내가 정말 잘못했다고.”박시형이 코웃음을 쳤다.“사과하는 게 소용이 있었다면 나민경이 이 정도로 절망했을까? 타이밍을 놓친 진심은 아무 가치도 없다는 말 들어본 적 없어?”남자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 한진후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이 나타났다.깡충깡충 뛰면서 달려온 나민경은 손을 내밀어 박시형의 팔짱을 꼭 끼고 달콤하면서도 행복하게 웃었다.그 모습을 본 한진후는 마음이 얼음물에 잠긴 듯 온몸 구석구석까지 차가워지는 듯했다. 어쩌면 오늘이 나민경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 눈처럼 흩어진 우리의 봄   제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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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처럼 흩어진 우리의 봄   제11화

    항성.헬리콥터에 새겨진 ‘용성’ 두 글자를 본 한진후는 모든 사람의 만류를 뿌리치고 용성으로 가겠다고 고집했다.여든이 다 된 그의 할아버지 한태수까지 깜짝 놀랐다.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눈을 부릅뜨며 호통을 쳤다.“한진후! 감히 용성에 가기만 해봐!”“할아버지, 민경이 찾으러 가야 합니다. 제 아내가 거기에 있는데 어떻게 아내를 혼자 내버려둘 수 있겠습니까?”한태수가 지팡이로 땅을 힘껏 내리쳤다.“용성이 어떤 곳인지 알기나 해? 나 한태수가 아무리 하늘을 찌를 만한 능력이 있다고 해도 항성을 벗어나면 너를 지킬 수 없다.”“할아버지 손자, 더 이상 할아버지 보호는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민경이를 찾으러 갈 겁니다. 할아버지께서 허락하시든 안 하시든.”거친 숨을 몇 번 내쉬던 한태수는 집사를 불러 서류 몇 부를 가져오라고 했다.“진후야, 우선 이것부터 좀 보고 나서 생각해. 어쩌면 너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구나.”그것을 받아 든 한진후는 서류 봉투에 적힌 ‘CCTV 영상’이라는 글자를 보자 바로 깨달은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할아버지, 이 영상들은 제가 벌써 몇 번이고 다시 봤습니다. 유용한 장면이라고는 저 헬리콥터 하나뿐이에요.”“다시 한번 보아라. 이건 우리 병원의 CCTV 영상이다.”한진후는 눈썹을 찌푸렸지만 할아버지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봉투를 열었다. 안에 있는 디스크를 꺼내 컴퓨터에 넣자 CCTV 영상이 순식간에 재생됐다.그것은 병실 안의 영상이었다.병상에 누워 극도로 허약해 보이던 서승희가 한진후가 떠나자마자 아무 일 없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영상을 본 한진후는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설마... 승희가 그동안 아프다고 했던 것들이 전부 연기였다고?’계속해서 영상을 보던 한진후는 얼굴이 점점 더 굳어져 갔다.병원 측은 의료진과 환자 간의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모든 병실에 고화질 CCTV 카메라를 설치해 두었다. 심지어 목소리도 선명하게 녹음됐다. 다만

  • 눈처럼 흩어진 우리의 봄   제10화

    용성.박시형이 나민경의 손에 난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나민경의 새하얀 열 개의 손가락 끝은 거친 모래알에 모두 닳아 있었다. 저택의 그 장면을 목격한 후, 화가 나 손톱으로 벽돌 위의 돌을 긁다가 생긴 상처였다.열 손가락이 다쳐 살갗이 찢겨 피가 나도 마음이 찢기는 듯한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었지만 뭔가 악몽을 꾸는 듯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그러다가 깜짝 놀라 눈을 뜨더니 박시형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안 돼!”그 모습에 너무 가슴이 아파 미간을 찌푸린 박시형은 다급히 말했다.“무서워하지 마, 겁낼 거 없어. 민경아. 이제 괜찮아.”나민경은 그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들어 주변의 다소 낯선 환경을 둘러보았다.“여기는... 어디야?”“용성이야. 우리 집이니까 안전해. 걱정 마.”박시형이 나민경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여기서는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할 거야. 약속할게, 민경아.”그 말을 들은 나민경은 마침내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입술을 깨물며 다소 의아한 듯 물었다.“오빠, 항성에는 어떻게 오게 된 거야? 어떻게 나를 용성까지 데려온 거야?”박시형은 나민경과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이웃 오빠로 어릴 적부터 나민경에게 매우 잘해주었다. 다만 나민경이 열일곱, 열여덟 살 무렵에 박시형의 집에 변고가 생겨 용성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그 후 나민경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한진후와 새로운 가정을 꾸리면서 박시형과의 연락이 많이 뜸해졌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렇게 만나자 나민경은 기쁨을 금치 못했다.“바보 같은 녀석.”박시형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우리 약속했잖아, 내가 데리러 간다고.”나민경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오빠, 오빠가 바로 용성을 쥐락펴락한다는... 재벌가 도, 도련님이야?”나민경은 너무 놀라 말까지 더듬었다.“그 살날이 얼마 안 남아서...”여기까지 말한 뒤 갑자기 입을 꾹 닫더니 귀밑까지 새빨갛게 물들었다.‘아이고! 내가 지금 무슨 소

  • 눈처럼 흩어진 우리의 봄   제9화

    서승희가 울부짖으며 애원했지만 한진후는 깡그리 무시해 버렸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고 한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왔다.“진후야, 이거 놔! 너무 꽉 잡아서 아프잖아!”정교하게 화장한 서승희의 얼굴도 화장이 조금 번져 있었다. 팔은 한진후가 너무 세게 잡은 탓에 눈에 띄는 붉은 멍이 생겼다.이 광경을 본 한진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에야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서승희, 조금 전 한 말들, 설명해 봐. 대체 어떻게 된 거야?”남자의 냉담한 추궁에 서승희는 즉시 눈시울을 붉히며 나약하고 여린 모습으로 돌아갔다.“무슨 뜻이겠어? 그냥 언니들 앞에서 체면 세우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 것뿐이야!”한진후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그렇다 해도 민경이에 대해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민경이는 내 아내야.”이 말에 서승희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그래, 너희 둘은 그나마 마음을 의지할 배우자라도 있지. 하지만 나는 아니야! 네 큰형이 일찍 죽으면서 죽기 직전까지 너를 잘 부탁한다고 했어. 너희한테 이렇게 미움받을 줄 알았다면 차라리 그때 벽에 머리를 박고 네 큰형과 함께 죽을 걸 그랬어!”입술을 깨물며 오랫동안 침묵하던 한진후는 마침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 승희야.”서승희에게 막 대할 수 없었다. 왜냐면 그녀는 한진후의 큰형이 가장 사랑했던 여자였기 때문이다.한진후의 큰형은 사고 폭발 현장에서 한진후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잃었다.큰형에게 영원히 목숨을 빚지고 있었기에 큰형 대신 서승희를 반드시 잘 돌봐야 했다. 그리고 이 또한 의무라고 생각했다.한진후의 사과를 들은 서승희는 눈에 한 줄기 빛이 스치더니 그제야 흑흑거리며 울음을 멈췄다.한진후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승희야, CCTV 영상은 왜 지운 거야?”서승희가 한숨을 내쉬었다.“네 큰형이 꿈에 나타나서 내가 인간 세상에서 고생하며 항상 병에 시달리는 걸 봤다고 하더라고...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네 집 CCTV 영상을 봤다고 했어.”한숨 돌린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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