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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ผู้เขียน: 오월 여름
눈을 내리깔고 있는 서기현은 속눈썹이 격렬하게 떨렸다. 은백색 긴 머리 아래의 밤색 눈동자에도 처음으로 동요하는 듯한 빛이 스쳤다.

“네가 정말 그런 마음이었다면 진작 계약을 해제했겠지, 왜 지금까지 기다렸겠어. 또 뭐 새로운 술책이라도 생각이 난 거야?”

사실 서기현은 다른 몇몇 수인 남편들과는 좀 달랐다. 다른 수인 남편처럼 한태강에게 잡혀 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온 것이다.

원래 몸 주인과 어릴 적부터 아는 사이였던 것 같지만 계약을 체결한 게 자의에 의한 건지 아닌지는 원래 몸 주인의 기억을 갖고 있는 한여월일지라도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 서기현의 말투를 들어 보니 서기현 역시 계약을 해제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서기현이 훗날 비를 부르고 바람을 일으키는 악당으로 변할 거라는 스토리가 떠오른 한여월은 이내 한마디 했다.

“말했잖아, 내 목적은 너희들이 나와 함께 아빠를 찾으러 가는 거라고.”

잠시 멈칫한 한여월은 숨이 끊어질 듯한 나시원을 흘깃 보며 말을 이었다.

“서기현, 네 정신력으로 나시원의 상처를 치유해 줘. 그러면 지금 바로 너에게 피를 한 방울 떨어뜨려 줄 테니.”

서기현은 사제였기에 정신력을 지니고 있어 다른 수인을 치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한여월은 서기현이 치료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심지어 서기현 본인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랬던 한여월이 먼저 서기현에게 나시원의 상처를 치료하라고 하다니, 게다가 계약 해제를 위해 본인 피까지 한 방울 떨어뜨려 주겠다고 하니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서기현은 비록 한여월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지만 나시원의 부상이 워낙 심각한 데다 한여월이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궁금해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앞으로 나가 나시원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서기현의 손끝에서 희미한 하얀 빛이 번졌다. 그것은 노랑 등급 사제의 정신력이었다.

손을 나시원의 인어 꼬리에 얹자 부드러운 빛을 내뿜는 둥그런 테가 상처를 따라 스며들었다. 그러자 피와 살로 뒤범벅이 되었던 곳이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지혈되더니 이내 딱지가 앉았다.

보랏빛 수정 같은 나시원은 눈동자에 편안함이 스치더니 이내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하던 몸도 점차 풀리는 듯했고 창백했던 얼굴에도 마침내 핏기가 돌았다.

손을 거둔 서기현은 은백색 긴 머리 아래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정신력이 바닥나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고개를 들어 한여월을 바라보았다. 한여월이 어떻게 할지 탐색하는 듯한 눈빛이었지만 한여월이 정말로 약속을 지킬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한여월은 목에 하고 있던 성인 남자 손가락 한 마디 길이만 한 뾰족한 장식품의 목걸이를 벗었다. 무슨 재질인지는 몰랐지만 예전에 한태강이 우연히 발견한 뒤 한여월을 위해 특별히 갈고 닦아 호신용 장식품으로 만들어 준 것이었다.

목걸이를 꽉 쥐고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바로 손끝을 그었다.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온몸에 전해지더니 이내 선홍색 핏방울이 치솟아 올랐다.

그러자 서기현 앞으로 걸어가 손을 들어 손끝에 맺힌 피를 그의 가슴에 있는 전갈 수인 마크 위에 떨어뜨렸다.

짙은 보라색이었던 전갈 수인 마크가 피와 닿는 순간 마치 묽어지기라도 한 듯 색깔이 옅어지더니 가장자리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여전히 선명했지만 조금 전보다 한 층 얕아진 것은 눈에 띄게 알 수 있었다.

쥐 죽은 듯 완전히 조용해진 동굴 안, 눈이 휘둥그레진 서기현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수인 마크를 더듬었다. 손끝이 약간 뜨끈한 피부에 닿은 순간 수인 마크에 남아 있는 온기와 확연히 옅어진 색깔을 발견하자 이 모든 게 환각이 아님을 확신했다.

서기현의 쇄골에 있는 수인 마크를 뚫어지게 응시하던 윤이산은 저도 모르게 눈빛이 흔들리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암컷이 아무런 강요도 없이 자발적으로 피를 떨어뜨려 계약을 해제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수인 마크가 옅어지는 것도 처음 목격했다.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던 지유혁도 완전 충격을 받은 듯 넋이 나간 얼굴로 자기 몸에 있는 수인 마크를 더듬었다.

강진우 역시 믿기 어려운 듯한 감정이 눈빛에 소용돌이치더니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서기현의 수인 마크와 한여월의 손끝에 맺힌 핏방울을 번갈아 보며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무통 속의 나시원도 몸을 일으켜 간신히 앉은 뒤 보랏빛 수정 같은 눈동자로 서기현의 쇄골 위에 옅어진 수인 마크를 깊이 바라봤다. 늘 증오하던 눈빛에 새로운 감정이 처음으로 스쳤다. 그것은 희망을 본 듯한 희미한 빛이었다.

“이제 믿겠어?”

한여월이 피가 나는 손끝을 꽉 잡고 누른 뒤 지혈하는 방법을 쓰자 수컷 수인 남편 다섯은 침묵한 채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의심하는 듯했지만 아까처럼 확신에 차 있지는 않았다.

수인 마크의 변화는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였기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서기현은 한여월의 손끝에서 계속 스며 나오는 핏방울을 바라보더니 무언가 말하려는 듯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벌렸지만 다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심호흡을 하여 북받쳐 오르는 속마음을 억누른 윤이산은 어두운 빛을 내뿜는 붉은색 눈동자에 왠지 모르게 무게감이 더해졌다.

“아까 우리더러 너와 같이 네 아빠 찾으러 가자고 그랬지?”

그러다가 잠시 멈칫한 뒤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우리도 네 아빠가 어디로 갔는지 몰라.”

한여월의 아빠 한태강은 떠돌이 수인으로 목적지 같은 건 원래부터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이번 외출 때 구체적인 목적지를 말하지 않았기에 그들도 알 도리가 없었다.

한여월은 소설 줄거리를 떠올리며 말했다.

“아빠는 독수리 부족으로 갔을 거야. 나가기 전에 나에게 독수리족 수인 남편을 하나 데리고 오겠다고 했거든.”

잠깐 멍하니 있던 서기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독수리 부족은 검은 숲 가장자리에 있어. 지금 여기서 출발해도 최소 칠 일은 걸려.”

“일단 독수리 부족으로 가보자.”

한여월이 단호하게 한마디 하자 모두들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수인 남편 몇몇이 여전히 경계심 가득한 눈빛인 것을 본 한여월은 그들에게 말했다.

“나 피곤해, 좀 쉬고 싶어. 너희도... 각자 알아서 준비해.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자.”

한여월을 깊이 바라본 윤이산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쳐 올랐지만 결국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따라가던 서기현은 한여월의 곁을 지날 때 걸음이 살짝 멈칫했지만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한여월의 손끝 핏자국을 흘낏 본 지유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러고는 비아냥인지 아니면 다른 뜻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밖으로 나간 수인들의 뒤를 따라서 나갔다.

계속 서 있던 강진우는 나무통 속의 나시원을 한 번 바라본 후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동굴 안에는 마침내 한여월과 나시원만 남게 되었다.

나시원은 의아해하는 기색이 뚜렷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몸을 돌려 두꺼운 마른풀이 깔린 침대 쪽으로 걸어간 한여월은 털썩 주저앉은 뒤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시원한 암벽에 등을 기대니 긴장되었던 몸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수인 남편들에게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보여줬으니 당분간은 그나마 조용히 지낼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함을 한여월은 잘 알고 있었다. 원래 몸 주인이 남긴 그 깊은 원한은 한여월이 먼저 계약을 해제하자고 제안한다고 해서 지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인 남편들이 기꺼이 보호하겠다고 한 가장 큰 이유가 계약 해제를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계약 해제에 성공하고 나면 수인 마크의 구속이 사라진 상태라 학대의 원한이 뼛속까지 사무친 수인 남편들은 증오가 치솟아 한여월을 죽이려 할 것이다.

따라서 한태강을 찾는 것은 단지 첫 단계일 뿐이다.

그 전에 반드시 수인 남편들 마음속 생각을 바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최소한 그들이 지금처럼 한여월을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하지는 않게 해야 했다.

서로의 관계가 조금 좋아지고 나면 그들과 평화롭게 계약을 해제한 뒤 마음에 드는 수컷 몇 명을 다시 골라 계약을 맺을 것이다.

수인 세계의 수컷들이 워낙 다 잘생긴 데다 원래 몸 주인에게 빙의가 된 상태니 당연히 여러 명을 고를 심산이었다.

한여월이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동굴 입구에서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지유혁이 넓고 푸른 잎사귀를 손에 들고 들어왔다. 잎사귀 위에는 구워서 윤기가 넘치는 고기 몇 점이 올려져 있었다.

고기의 가장자리가 살짝 까맣게 탔지만 그 덕분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 보이는 것이 더더욱 군침 도는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보아하니 아주 정성스럽게 구운 것 같았다.

지유혁은 한여월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 섰지만 큰 키 때문에 그림자가 한여월 몸에까지 짙게 내려앉았다.

사람을 현혹하는 듯한 웃음을 지은 채 손에 든 푸른 잎사귀를 앞으로 내밀더니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고프지? 먹을래?”

하지만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저 녀석, 나를 독살하려는 건 아니겠지?’

한여월은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듯 눈웃음을 짓고 있는 여우 수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지유혁이 말했다.

“이 고기를 먹은 후에 나한테도 피 한 방울 떨어뜨려 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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