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63화

Author: 무안안
심미연은 차가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누가 뭐라고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네가 내린 결정이지. 하지만 오늘 분명히 말할게. 온지유가 거기서 나올 수 있다면 난 다시 온지유를 그곳에 집어넣을 수 있어. 난 충분히 그런 능력이 있거든.”

그녀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온지유가 사람을 죽이고 무죄로 풀려 난다고?’

‘절대 그럴 일은 없어.’

강지한은 눈을 반쯤 감고 위협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물었다.

“심미연, 무슨 뜻이야?”

심미연은 한 걸음 물러나며 차갑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대로. 딱 그 뜻이야.”

“그게 말이 돼?”

강지한은 분노에 차서 말했다.

온지유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는 면회를 가본 적이 없었고 온지유를 빼낼 일은 더더욱 없었다.

‘이 여자가 또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네.’

심미연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대답했다.

“그래. 말이 안 되겠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녀는 그에게 평생 온지유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온지유가 감옥에서 겪는 모든 고통은 그에게 반드시 돌아갈 응보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심미연은 빠르게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갔다.

강지한은 서둘러 그녀를 따라갔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갔다.

심미연은 고개를 돌려 차갑게 말했다.

“따라오지 마.”

‘이 남자가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나랑 같이 집에 가자.”

방금 심미연에게서 술 냄새가 진하게 났다. 그는 그녀가 혼자 돌아가는 게 걱정되었다.

심미연은 눈을 좁히며 그를 쳐다보았다.

“강지한, 너 미쳤어?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였나? 같이 집에 가자는 건 무슨 소리야?”

‘이 남자는 왜 이렇게 끈질기게 따라붙는 거야.’

‘우리가 집에 같이 돌아갈 사이야?’

“너 술 마셨어. 같이 집에 가자.”

그녀의 집엔 박유진이 있으니 그는 절대 그녀의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 술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64화

    ‘그깟 강지한 곁으로 돌아가서 뭐 하게.’“앞으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누가 들으면 내가 강지한한테 아직 미련이라도 남은 줄 알잖아요.” 헛소문 퍼지게 할 일은 절대 할 수 없다. 임현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앞으로 절대 그런 말 안 할게요.” 이런 말을 하는 건 한 번이면 충분했다. “잠깐 눈 좀 붙일게요. 도착하면 깨워줘요.”“네. 편히 주무세요.”심미연을 몸을 살짝 틀어 더 편한 자세를 찾고는 외투를 여미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심미연이 탄 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져서야 강지한은 시선을 거뒀다. 시선을 거두고 걸음을 떼려는 순간 발끝에 무언가 걸렸다. 강지한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숙여보았다. 얼룩이 묻어 축축하게 젖은 자켓 한 벌이었다. 그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발끝으로 외투를 걷어 차 버렸다. 옷의 헐렁한 밑단이 밖으로 길게 삐져나와 있었다. 그 시각, 어딘가의 어두운 방 안. 남자는 손에 든 와인 잔을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깊고 붉은 와인이 잔 벽을 따라 유리처럼 미끄러지자 희미한 조명이 깔린 공간에선 독한 술 향과 함께 서늘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갑자기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옆에 놓인 핸드폰을 바라봤다. 눈동자에 스친 발신자 정보를 확인한 뒤 무심하게 전화를 받았다. [강 도련님, 우리 쪽 사람들이 강지한 도련님의 차를 따라붙었습니다. 바로 처리할까요?] 남자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는 말없이 손에 든 와인 잔을 들어 남은 와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씁쓸한 액체의 온기가 식도를 지나 심장까지 내려앉자 남자의 눈빛은 더욱 깊고 싸늘해졌다. [필요 없어.] 전화가 끊기고 방 안은 다시 싸늘한 적막에 잠겼다. 남자는 텅 빈 와인 잔 안에 남아 있는 핏빛 잔여물을 잠시 바라보더니 천천히 웃었다. [강지한, 좀 더 살려둘게.] 그의 목소리는 낮고 느릿했다. [네가 가진 모든 걸 하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65화

    박유진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말이 맞아. 만약 육현성이 먼저 너한테 합작하자고 접근하면 그땐 진짜 조심해야 할 거야.” 육현성이 몇 년 동안 어떻게 육영 그룹을 여기까지 키워왔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머리가 나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괜찮아. 난 걱정 안 해.” 육영 그룹과의 계약만 유지하면 천성의 수익이 1년에 수십억 원에 달할 것이다. 설령 육현성이 일부러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 거라는 걸 알면서도 육영 그룹과의 합작을 원했다. “그래. 걱정할 필요 없어. 육현성은 절대 너한테 손 못 댈 거야.” 박유진은 겉으로는 담담하게 심미연을 안심시켰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가시질 않았다. 육현성은 온지유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반드시 심미연을 곤한하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마음 놓고 웃는 그녀에게 다시 상처를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맞아.”심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집 문을 열자마자 작은 그림자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엄마, 왔어요? 보고 싶었어요.” 귀여운 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심태하가 품에 안겼다. 심태하는 애교를 부리며 작은 팔로 박유진의 다리를 먼저 꼭 안았다. 박유진은 허리를 굽혀 심미연을 내려놓았다. 심미연은 아이를 와락 안으며 심태하의 말투를 따라배우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엄마도 우리 태하 너무 보고 싶었어.” 박유진은 이 모습을 보며 저절로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둘 다 똑같은 애기라니까.’가정부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보기만 해도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이 그저 부러웠다. 심미연은 아이와 함께 매트에서 레고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박유진은 해장국을 끓이러 주방으로 향했다. 가정부가 일을 하려 하자 그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직접 해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가정부들은 그저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두 명의 가정부가 일을 하려 들자 박유진은 조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66화

    속눈썹이 길게 떨리고 작은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그 모습이 정말 귀여워 보였다. 여자의 품에 있는 작은 아이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박유진의 눈빛은 깊고 부드러워 심미연과 그녀의 품에 안긴 아이를 무한한 사랑의 바다 속에 부드럽게 감싸는 듯했다. 그러나 이 평온한 순간은 갑작스러운 핸드폰 진동에 의해 깨졌다. 마치 잔잔한 호수 위에 불현듯 밀려온 폭풍처럼 모든 평화를 어지럽히며 다가왔다. 그는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눈속의 사랑을 지우고 심각함으로 바꾸었다. 그럼에도 심미연을 한 번 더 아쉬운 듯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아쉬움과 결단이 가득했다. 그는 천천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의 모든 움직임은 간과할 수 없는 침착함과 힘들 드러냈다. 화면이 켜지고 그 눈부신 파란 빛이 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와 밝은 빛을 번갈아 비췄다. 그는 화면에 대고 말했다. “무슨 일이야?” 그의 목소리는 낮고 힘있었다. 마치 일부러 눌러서 깊은 잠에 빠진 심미연과 아이를 깨우지 않으려는 듯한 조심스러움이 묻어났다. 전화 너머에서 비서의 목소리는 긴급 경고음처럼 급하고 초조했다. “대표님, 큰일입니다. 회사 내부 네트워크가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공격당했어요. 지금 시스템이 거의 마비 상태로 상황이 매우 위급합니다.” 박유진은 미간을 더욱 깊게 찌푸리며 눈빛이 날카롭고 침착하게 변했다. 마치 이 위기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는 짧게 한 마디만 내뱉고 전화를 끊었다. “조사해.” 그가 전화를 끊고 돌아서는 순간 상업계의 엘리트다운 결단력과 냉정함이 다시 돌아왔다.같은 시각 이노하이브 역시 같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건물 전체가 불빛으로 가득 차 있었고 기술 부서의 구석구석마다 긴장감과 바쁨이 감돌고 있었다. 키보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며 마치 급박한 북소리처럼 사람들의 긴장된 신경을 자극했다. 화면에 나타나는 코드들이 파도처럼 흘러가며 기술자들은 눈을 크게 뜨고 이 끝없는 숫자의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67화

    강지한의 차가운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성 비서, 지금 당장 그 사람과 연락해. 빨리 오게 해.” 성무진은 알겠다고 대답하고 바로 그 사람이 제공한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그와 동시에 심미연의 핸드폰도 울리기 시작했다. 심미연은 눈을 떴고 박유진의 부드러운 시선과 마주했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녀는 금방 정신을 가다듬었다. “왜 잠들었는데 깨우지 않았어?” “너무 편안하게 자고 있어서 깨우기 좀 그랬어.” 박유진은 부드럽게 말했다. “먼저 전화 받을게.” 심미연은 눈을 비비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보스, 이노하이브 네트워크가 공격을 받았어요. 그들이 거액의 돈을 주고 보스에게 처리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받아들일 건가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분명히 흥분했다. [얼마나요?] [그들은 가격을 우리가 정하라고 했어요.] [좋아요. 그럼 한 200억으로 하죠.] 심미연이 한 200억이라고 가볍게 말하자 박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심미연이 전화를 끊자 박유진의 웃고 있는 모습에 얼굴이 붉어지며 머리카락을 쓸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 “집에 해커 두 명이나 있는 걸 깜빡했어. 바렐 그룹 네트워크도 지금 마비 상태인데 시간 괜찮으면 좀 처리해줄 수 있어? 답례는 한 200억으로 할게.” 박유진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오빠 회사의 네트워크도 공격당했어?” 심미연은 얼굴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전에는 강지한이 그녀를 불쾌하게 만든 일이 있었기에 일부러 그를 괴롭혔다. ‘그런데 오빠의 회사는 또 어떻게 된 일일까?’“아까 비서가 전화로 회사 네트워크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공격을 받아서 처리하기가 굉장히 까다롭다고 해. 일단 상황 좀 봐줄 수 있을까?” 심미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하 안고 먼저 방에 가 있어. 난 서재로 가서 처리할게.” 박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미연은 일어나서 계단을 올라갔다. 박유진은 심태하를 안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68화

    “오빠가 유치원에서 데리러 갔을 때 선생님이 뭐라고 하신 건 없어?” “응. 아무 말도 안 하셨어. 아이만 데리고 바로 나왔어.” “그럼 이따가 가정부에게 오늘 태하가 이상한 점이 없었는지 물어볼게.” “괜찮아. 내가 내일 아침에 직접 물어볼게.” 심미연은 가정부에게 따로 묻는 게 오히려 부담스러울 주는 것 같았다. “그래. 그럼 내일 아침에 물어봐. 먼저 쉬고 있어. 나는 회사에 가봐야겠어.” 박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얼굴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응. 운전 조심해.” 심미연은 불안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했다. 박유진이 무사히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알았어. 잘 자.” 박유진은 그녀에게 작별을 고하며 아쉬운 듯 손을 풀었다. “일찍 돌아와.” 심미연은 여전히 걱정스러워했지만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박유진은 웃으며 몸을 돌려 성큼성큼 집을 떠났다. 문이 닫히자 심미연은 욕실로 향했다.샤워를 마치고 나와보니 핸드폰 화면이 깜빡이고 있었다. 심미연은 다가가서 전화를 확인했는데 낯선 번호였다. 그녀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이진영입니다. 지금 시간 괜찮으신가요? 잠깐 만나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제 동생의 이혼 소송을 맡아주세요.]이진영은 직접적으로 말했다. 심미연은 잠시 멈칫했다. [동생이 이혼을 하려고 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이제 쉬어야 해서 내일 동생을 제 사무실로 데려오세요. 자세한 사항은 그때 말씀드리죠.] 심미연은 그의 동생이 왜 이혼을 하려는지 묻지 않았다. 어차피 여자가 이혼을 결심하는 이유는 크게 몇 가지였다. 남편의 외도, 가정 폭력, 아니면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부부 관계가 나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저 이진영 동생의 이혼 소송을 맡게 되면 육현성이 천성과의 합작을 계속 제안해 올 때 거절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큰 손실이 될 테니 신중히 고려해야 했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69화

    심미연은 잠시 멈칫했다. “이노하이브의 네트워크가 바이러스에 공격당했어. 네가 한 거야?” 하지만 그녀가 처리할 때 그게 심태하의 솜씨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심태하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저 아니예요. 그런데 그때 그 사람과 잠깐 게임을 했었어요. 그 사람 진짜 대단해요. 하마트면 그 사람한테 질 뻔했어요.” 심미연은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어제 밤 그녀도 상대가 꽤 실력이 있다는 걸 느꼈었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학교 끝나면 그 사람에 대해 조사해 볼게요.” 심태하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이 일은 엄마가 조사할 거야. 너는 얌전히 있어. 알겠지?” 심미연은 그를 안아주며 조용히 말했다. 어린 아이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알겠어요...” ‘나도 할 수 있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리 태하 기분 풀어. 가서 아빠 일어났는지 확인해 봐.” 심미연은 한 가지 걱정이 떠올랐다. ‘이 사람 혹시 이노하이브뿐만 아니라 바렐 그룹까지 노리고 있는 걸까?’ 앞으로는 은성까지도 공격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목적이 뭘까?’ ‘경성의 패권을 쥐고 싶은 걸까?’ 알 수 없었고 그 생각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심미연은 이불을 걷어내고 품에 안고 있던 작은 아이를 안고 일어섰다. “엄마, 오늘 병원으로 여동생을 보러 가도 돼?” 어린 아이는 어제 받은 공주 드레스를 병원에 가져가서 여동생에게 입혀 보고싶다고 했다. “학교 끝나고 가자. 알겠지?” 심미연은 사실 내키지 않았다. 그 아이는 강지한의 딸이다. 만약 심태하를 데리고 가면 강지한과 마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강지한이 심태하를 빼앗으려 한다면 그녀는 그를 만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엄마, 나는 그 여동생이 정말 좋아. 그 애랑 있으면 마치 친남매처럼 느껴져.” 심태하는 자신이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몰랐지만 그게 진심이었다. 몇 번을 함께 지내면서 그와 여동생은 같은 생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70화

    “알았어요.”심태하는 힘차게 대답한 후 신나게 뛰어갔다. 심미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복잡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만약 강지한이 강제로 심태하를 데려가려 한다면 그녀는 아마 심태하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 경성에서 강지한은 세력이 가장 강했다.박유진은 어린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깨어났다. 그의 시선이 문 밖으로 향했고 빛에 가려진 작은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박유진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커튼을 열자 작은 아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우리 태하 빨리 일어났네.” 박유진은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아빠, 좋은 아침!” 심태하는 신나게 그에게 달려갔다. 작은 다리를 힘껏 흔들며 큰 침대에 올라가 박유진의 품에 풍덩 뛰어들었다. “아빠는 큰 게으름뱅이야. 빨리 일어나요.” 박유진은 손을 뻗어 그를 간지럽혔다. “우리 태하야말로 작은 게으름뱅이야.” 심태하는 간지러워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빠가 제일 큰 게으름뱅이에요.” 심미연은 세수하고 나서 나가려다 박유진 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발걸음이 멈췄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두 사람이 떠들썩하게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쩐지 코가 조금 시큰해졌다. 그때 박유진은 심미연을 보고 어린 아이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왔다. 쉿...” 어린 아이는 엄마가 왔다는 말을 듣고는 빠르게 침대에서 뛰어내려 방으로 달려갔다. “저는 먼저 방에 갈게요. 두 분은 얘기하세요.” 심미연과 스치며 지나가던 심태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다. 엄마가 방으로 가서 세수하라고 했는데 아빠랑 놀다가 잊어버린 심태하는 급히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가 화낼 것 같았다. 그가 바람처럼 뛰어가던 모습을 보며 심미연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 녀석이 나를 왜 이렇게 무서워하지?’ 박유진은 침대에 기대어 앉아 상반신을 편안하게 드러낸 채 있었다. 아침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71화

    심미연이 전화를 받자 육현성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당장 계약서를 들고 육영 그룹으로 와서 계약을 체결하죠.] 그의 어조는 강압적이었고 거부할 여지조차 없었다.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어젯밤 이진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육 대표님. 저희 천성에서는 육영 그룹과의 합작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어젯밤, 육현성이 일부러 현지원과 주아연을 데리고 온 것은 자신에게 더 많은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심미연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리우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다. 현지원과 주아연은 리우에서 오랜 시간 일했지만 평범한 성과만 내왔을 뿐. 결국 지금의 리우는 뛰어난 변호사를 찾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런 리우가 과연 우리와 비교나 될까?’육영 그룹과의 합작을 포기하면 1년에 수백억 원의 수익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예전에는 심미연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지금은 모든 게 명확해졌다. 그래서 더 이상 미련도 없었다.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곧 육현성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심미연 씨, 당신은 천성 로펌의 하찮은 변호사일 뿐인데 감히 저를 거절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당장 당신네 사장에게 전화해서 해고시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가서 무릎 꿇고 빌지나 마세요.] 심미연은 그의 말을 듣고 비웃음을 참지 못했다. [지금 당장 전화해 보시죠.] 심미연은 말을 끝내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렸다. ‘천성의 사장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이런 협박을 한다니. 참 우습기 짝이 없네.’육영 그룹 회장실. 육현성은 차가운 표정으로 핸드폰을 책상 위에 내던졌다. ‘이게 말이 돼?’ ‘심미연이 감히 나한테 맞서다니.’ ‘설마 내가 진짜 천성 사장에게 전화를 걸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비서가 서류를 품에 안고 문을 열고 들어오자 육현성의 굳은 표정을 보고 급

Latest chapter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8화

    육현성이 입가를 만지며 말했다.“이진영, 네가 감히 나한테 주먹질을 날려? 내가 집에 가서 이다은 저년을 아주 제대로 혼쭐 내줄 거야. 이번엔 최소 몇 달은 못 일어날걸?”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같이 기고만장했다.“보아하니 육씨 가문이 요즘 꽤 살 만한가 보네. 감히 나 이건명의 딸을 건드려?”이건명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육현성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감히 어디서 제멋대로 굴어!”그는 자신의 앞날을 위해 딸을 육씨 가문에 시집보냈었다. 그래도 육씨 가문은 4대 가문 중 하나인데 비록 육현성이 이다은을 사랑하진 않더라도 최소한의 예우는 할 줄 알았다.그래서 이다은이 이혼하겠다고 했을 땐 괜히 유난 떠는 줄 알았는데 방금 그 모든 생각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이다은이 육씨 가문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이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이건명의 등장에 육현성은 순식간에 기세가 꺾였다. 아무리 육씨 가문이 돈 많고 배경 있는 집이라도 지금의 이건명을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었다.“아버님, 화내지 마세요. 이건 오해예요. 저는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육현성이 다급히 변명하려 들었다.“됐어. 변명은 필요 없어.”이건명이 이다은의 손을 꽉 잡았다.“다은아, 미안해. 아빠가 잘못했어. 너 이혼하고 싶으면 해. 내가 최고로 실력 좋은 변호사를 붙여줄게.”이다은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아빠가... 나를 이렇게 감싸준다고? 늘 냉정하기만 했던 사람이?’그때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들렸다.“정말 감동적인 부녀지간이네요. 좋은 아버지십니다, 정말.”이진영이 자신의 아버지를 조롱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본 순간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그... 그쪽이 왜 여기 있어요?”강혁승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한 모금 빨아 연기를 뿜으며 웃었다.“나요? 부모 찾으러 왔죠.”이미 이진영이 그의 정체를 눈치챘기에 더 숨길 이유도 없었다. 오늘 이 자리에 이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도 하늘의 뜻이라 생각한 강혁승은 오늘 결판을 보려 했다.“너...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7화

    “문자를 보낸 건 그 여자가 아니라 나예요!”강혁승의 음울한 얼굴에 스며든 미소는 왠지 모르게 오싹했다.이건명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 멈췄다. 얼굴에 난 깊은 흉터만 아니었다면 이건명 본인과도 놀랍도록 닮은 얼굴이었다.하지만 그의 아내가 낳은 자식은 이다은, 이진영 남매 둘뿐이었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건명 씨는 여기 왜 왔어요? 어서 나가요!”문소영이 다급하게 외쳤고 목소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왜 이렇게 쫓아내려고 안달이에요? 여기까지 왔는데 문제는 해결하고 가야죠.”강혁승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고 그의 눈빛엔 싸늘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왜 저 사람한테 문제를 해결하라고 해? 저 사람이랑은 아무 관련도 없어!”문소영은 이건명을 붙잡아 두고 싶지 않았다.심미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이 와중에도 이건명을 감싸려 하다니, 그래도 한때는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이었나 보네.’“관련이 없다고요? 저 사람이 내 아버지인데?”강혁승은 조소를 띤 채 반문했다.“내가 저 사람이 수십 년 동안 도와준 일들을 전부 알고 있는데 한 번 읊어볼까요?”문소영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헛소리하지 마!”“입 다물지 못해!”이건명이 서늘한 눈빛으로 강혁승을 노려보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저 자식이 모든 걸 알고 있단 말이야?’심미연은 입술을 깨문 채 이건명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방원호가 넘겨준 자료가 전부 사실이었던 것이다.하지만 이건명이 한 여자를 위해 불법까지 저질렀다는 건 예상 밖이었다. 진심으로 사랑해서였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던 걸까?“심미연, 이리 와!”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심미연이 깜짝 놀라 돌아보니 깊고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의식이 없었는데 분위기는 여전히 무게감이 있었다. 이런 것이 바로 한 회사를 이끄는 대표만의 카리스마와 아우라인가.“멍하니 있지 말고 어서 오라고.”강지한의 말에 심미연은 정신을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6화

    문도현은 심미연의 표정이 굳은 걸 보고 머리를 쉴 새 없이 굴리기 시작했다.‘안 되겠어. 일단 지금 이 상황부터 어떻게든 모면해야 해.’하지만 심미연은 그렇게 쉽게 속을 여자가 아니었다. 그가 아무 말이나 둘러대면 단번에 꿰뚫어 볼 게 뻔했다.‘어쩌지?’그때 마침 심미연의 휴대폰이 울렸다.“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요.”“네, 가서 일 봐요. 난 여기 있을게요!”문도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심미연은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황급히 사무실을 나섰다.문도현은 기지개를 한껏 켠 뒤 슬며시 일어나 그녀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책상 위에 액자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심미연이 다른 사람과 같이 찍은 사진이 한 장 있었다.그런데 그 사진 속에서 심미연의 옆에 박유진이 서 있는 걸 본 순간 문도현은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박유진이랑 심미연이 왜 같이 있어? 말도 안 돼! 절대 이 둘이 이어지게 두면 안 돼!’문도현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홱 돌아서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 마침 임현이 문을 열고 들어오다 그와 정면으로 부딪쳤다.“아야! 아이고, 아파라...”임현이 낮게 신음하며 얼굴을 찡그렸다.하지만 문도현은 그녀를 밀치고 나가버렸다.임현은 어이없다는 듯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아니, 누가 건드리기라도 했나? 왜 저렇게 화가 나 있지?”마침 그때 심미연이 다시 들어왔다.“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어요? 문 대표님은요?”“방금 나가면서 저랑 부딪혔어요. 엄청 화난 얼굴이던데요? 아무 말도 안 하고 나가더라고요.”임현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저 남자, 감정 기복 진짜 심하네.’“잘됐네요. 나 급한 일이 있어서 나가야 해요. 오늘은 임현 씨가 사무실 좀 맡아줘요.”심미연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방을 챙겨 들고 서둘러 나가버렸다.방금 강지한이 의식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에게 직접 물어봐야 했다.그가 어떻게 그녀가 교통사고를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5화

    문도현의 치명적인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떠올랐고 깊고 그윽한 눈빛엔 묘하게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 기운이 스쳤다. 그 눈으로 마음속 깊은 비밀까지 꿰뚫어 볼 것만 같았다.“정말 여기서 얘기할 거예요?”그는 나직하면서도 묘하게 귀를 간질이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사진이라도 찍으면 어쩌려고요?”그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매혹적이었다. 마치 한 음절 한 음절이 심장을 울리는 현처럼 듣는 이의 감정을 툭툭 건드렸다.유흥가를 오래 드나든 남자답게 문도현의 말투나 몸짓 하나에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서려 있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상대방은 쉽게 그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 뒤에 자리 잡은 견고한 집안 배경은 그의 존재에 신비로움과 권위를 덧씌웠다. 한 번만 눈빛을 주고받아도 수많은 여자가 그를 위해 기꺼이 심연으로 빠져들곤 했다.심미연은 가늘고 곧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그래요. 그럼 위에 올라가서 얘기하죠.”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차 문을 잠그고는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그녀의 발걸음엔 흔들림 없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더라도 문도현은 사건을 의뢰하러 온 손님이었다. 심미연은 일과 사적 감정을 분명히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문도현의 시선은 무심결에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라인을 훑고 지나갔다. 그러자 곧 뇌리에 수많은 기억의 파편이 번뜩이듯 스쳐 지나갔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길들지 않은 야수 하나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이제야 그는 자신이 여자에게 설레는 감정을 잃은 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다만 평범한 여자들에게 더 이상 설레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흔한 여자들은 이제 그의 마음을 건드릴 수 없지만 심미연은 예외였다.그 순간 심미연의 차분하고 냉정한 목소리가 그의 흐트러진 정신을 다시 현실로 끌어당겼다.“문 대표님께서 소송을 의뢰하신다네요. 임 변호사님께서 맡아주세요.”“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문 대표님.”임현이 공손하게 몸을 살짝 기울이며 안내했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4화

    심미연은 흩날리던 생각을 차분히 거두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궁금한 듯 물었다.“우리 태하 진짜 똑똑하네.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거야?”아직 겨우 세 살이지만 심태하의 마음은 놀랄 만큼 세심하고 예민했다. 또렷한 눈망울은 마치 세상의 감정 흐름을 꿰뚫어 보는 듯했고 그렇게 꼼꼼히 살피는 모습에 심미연은 종종 놀라곤 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박유진이 심태하를 정성스럽게 길러온 시간이 아이를 이토록 똑똑하고 배려 깊게 자라게 만든 것이다.“아까 아빠랑 통화할 때 엄마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어요. 뭔가 걱정하는 게 있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저한테 말 걸었을 때도 평소처럼 웃고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엄마가 혹시 슬픈 건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심태하의 말은 또렷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단어 하나하나에 엄마를 향한 깊은 애정과 이해가 담겨 있었다.심태하가 보기에 박유진이 집에 있을 땐 심미연은 늘 기분이 좋아 보였고 환하게 웃는 얼굴이 참 예뻤다.“엄마가 안 웃었어?”심미연은 웃음을 터뜨렸다.‘녀석, 정말 못 말려.’겨우 세 살에 이 정도인데 나중에 더 크면 얼마나 영리해질지.“네, 안 웃었어요.”심태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심태하의 목소리는 여전히 앳됐지만 말투는 왠지 어른스러웠다. 꼭 사람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기라도 한 듯했다.심미연의 마음은 그 말 한마디에 확 풀렸다. 그녀는 아들의 코끝을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자, 얼른 아침 먹자.”그녀의 말투엔 아낌없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이 아이는 정말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다.“아빠가 보고 싶으면 아빠한테 전화하면 되죠!”심태하가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윙크했다.‘나도 아빠가 보고 싶은데 엄마가 안 보고 싶을 리가 없지. 맞아, 분명 그럴 거야!’심미연은 그 말에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박유진이 보고 싶지만 그에게 전화하진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3화

    하지만 그 깊은 애정과 놓기 싫은 마음은 오히려 박유진을 현실이라는 갈림길 앞에서 망설이게 만들었다.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심미연만 괴로운 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걸. 그 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자신의 망설임으로 인해 흐려지는 건, 그녀의 세상이 자신 때문에 흔들리는 건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었다.그렇다고 그녀를 놓아버리면 영원히 잃게 될 텐데... 그 아픔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지 박유진 본인조차 알 수 없었다.“아빠, 왜 말이 없으세요? 허락한 거죠?”심태하의 목소리는 천진난만하게 들떴다. 마치 머릿속에 따뜻한 한 가족의 그림이 그려지기라도 한 듯.‘아빠가 돌아오면 엄마랑 나랑 셋이 모여 저녁 먹고 같이 웃고 얘기하고...’심태하의 마음속에서 그려낸 가장 순수한 행복의 모습이었다.그러나 그 순수한 소망 앞에서 박유진의 마음은 송곳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그는 알고 있다. 이번 결정을 가볍게 내려서는 안 된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게 하려면 정말 신중해야 했다.하지만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그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는 지금 사랑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심미연과 아이를 지킬 방법을 찾고 있다.하지만 그런 길이 과연 있을까? 이 선택은 너무나도 어려웠다.“아빠, 나 이렇게 열심히 얘기하고 있는데 왜 아무 말도 안 해요?”심태하는 고개를 갸웃하며 미간을 찌푸렸다.평소 같았으면 박유진은 재밌는 얘기도 해주고 자기 말에 웃어주었을 텐데, 오늘따라 너무 이상했다.‘혹시... 내가 말실수했나?’그때 박유진의 다급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가 심태하의 귀에 들려왔다.“태하야, 곧 비행기가 이륙해서 아빠가 휴대폰을 꺼야 돼. 오늘 밤에 다시 이야기하자. 꼭이야.”박유진은 심미연을 당장이라도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고 말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네! 알겠어요, 아빠! 그럼 오늘 밤에 꼭 통화해요. 약속했으니까 안 하면 안 돼요!”심태하의 목소리에 눈치채기 힘든 외로움이 살짝 섞여 있었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2화

    심미연은 멍해졌고 아까 자신이 박유진에게 연락을 시도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날아온 건 단 한 줄의 차갑고 무미건조한 메시지. 기대했던 목소리는 끝내 들을 수 없었다.그런데 지금 아들 심태하가 전화를 걸자 박유진은 놀랍게도 전화를 받았다.“아빠, 지금 어디예요? 이틀 뒤면 제 생일이에요! 아빠가 놀이공원 같이 가자고 했던 거 잊으시면 안 돼요!”심태하의 말투엔 아이 특유의 해맑은 기쁨이 가득 담겨 있었고 단어 하나하나가 살아서 튀어나오는 듯했다.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박유진의 목소리는 한겨울 얼음도 녹일 만큼 다정했다.“아빠 지금 진성으로 가는 비행기 타러 가는 중이야. 곧 이륙이라 휴대폰 꺼야 해. 진성에 도착하면 바로 전화할게. 약속!”그 말에는 미안함과 애틋함이 가득 실려 있었다.사실 박유진은 심태하가 생일 이야기를 할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다. 어젯밤에 워낙 정신이 없어 그런 중요한 약속마저 깡그리 잊고 있었던 것이다.“아빠가 보내준 선물 잘 받았어요!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심태하는 아직 다 하지 못한 말이 많은 듯 아빠에게 털어놓고 싶은 게 가득한 눈치였다.박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햇살이 쏟아져 내려 유난히 눈부셨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가늘게 떴고 그 강렬한 빛이 속눈썹 아래에 그림자를 드리웠다.그 순간 그의 마음속엔 오로지 한 사람, 심미연의 얼굴만이 떠올랐다. 그녀와 떨어져 있는 모든 시간이 하나같이 그리움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그리움이 너무 커서 박유진은 당장이라도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달려가고 싶을 만큼 벅찼다.“아빠... 지금 너무 힘들죠? 그럼 회사 팔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요. 제가 돈 많이 벌어서 아빠랑 엄마 다 먹여 살릴게요!”심태하의 순수한 눈빛에 진심 어린 다짐이 담겨 있었다. 그에겐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을 지킬 거라는 꿈이 있었다.심미연은 그런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통통한 볼살에 아직 아기 티가 남았지만 심태하의 마음속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1화

    심미연 역시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이지연이 잘못 알아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지연 씨, 다시 한번 제대로 확인해 봐요. 결과가 똑같은지 꼭 잘 봐요.”혹시라도 착오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그럼 제가 다시 확인해 볼게요! 뭐든 나오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보스, 그럼 끊을게요!”이지연은 말 끝나기가 무섭게 전화를 뚝 끊었다.심미연은 휴대폰을 쥔 채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까 이지연이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이건명과 문소영이 예전에 그런 사이였다고?’그런데 왜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걸까? 아무도 깊게 파고들지 않았기에 묻혀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결혼 전에 누굴 만나든 그건 사생활인데 그걸 굳이 숨긴 이유가 뭘까?심미연이 이 모든 게 어딘가 석연치 않다고 느끼고 있을 즈음, 밖에서 누군가 소리쳤다.“엄마! 나 배고파요! 우리 빨리 아침 먹으러 가요!”심미연은 생각을 접고 고개를 들어 활짝 웃는 아들을 바라봤다.“그래, 가자.”심태하가 달려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엄마, 며칠 뒤면 제 생일이잖아요. 생일 파티에 상미도 초대하고 싶은데, 그래도 돼요?”심미연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젯밤의 친자 확인 결과가 떠올랐다. 강상미는 그녀의 딸, 즉 심태하와 쌍둥이였다. 그래서 둘의 생일도 당연히 같았다.심태하의 생일 파티에 강상미가 온다면 그건 곧 둘이 같이 생일을 보내게 되는 셈이다.“엄마, 안 돼요?”심미연이 대답하지 않자 심태하가 다급히 물었다.그녀는 웃으며 아이를 안심시켰다.“그럼, 당연히 초대해야지. 너희 둘이 같이 생일 파티하면 되겠네.”“정말요? 엄마 최고! 사랑해요!”심미연은 아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태하야, 너 엄마가 어제 말한 거 잊은 거 아니지? 상미가 바로 태영이야. 너랑 똑같이 엄마 배에서 나왔고 너희 둘은 쌍둥이야. 그래서 생일도 똑같아.”강상미에 관한 일은 이미 방원호에게 조사를 맡긴 상태였다. 꼭 알아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0화

    심미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한 기색을 담아 물었다.“무슨 일이길래 그래요?”이지연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일부러 속도를 늦추며 차분하게 말했다.“온지유 씨가 도망쳤어요.”“언제요?”심미연의 눈빛이 반짝이며 날카로워졌다. 누가 이 일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스쳤다.“어젯밤에요.”이지연의 목소리는 한껏 가라앉아 있었고 자책감이 가득 배어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방심했어요.”심미연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미안해하지 마요. 이건 지연 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이지연은 입술을 꼭 깨문 채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제가 당장 찾아올까요?”심미연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휴대폰을 천천히 만지며 생각했다.“잠깐만 생각 좀 해볼게요.”어젯밤 강지한이 교통사고를 당한 장면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혹시 온지유의 실종과 강지한이 관련 있는 걸까? 만약 강지한이 온지유를 구한 거라면 도대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은 거지? 끝도 없이 밀려드는 의문들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참, 보스. 어젯밤에 스승님 못 보셨어요?”이지연이 물었다.심미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사실은 봤었다. 그녀는 진운혁이 차를 몰고 떠나는 걸 보고 따라붙었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그럴 리가요? 제가 분명히 확인했는데... 스승님께서 이진영 씨랑 같이 식사하고 계셨어요!”이지연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심미연은 다시 한번 미간을 찌푸렸다.문득 이전에 마주쳤던 진운혁의 모습들이 떠올랐고 그 순간 한 가지 의심이 그녀의 마음속을 훑고 지나갔다.‘그때 내가 본 스승님은... 정말 스승님이 맞았을까? 만약 누군가가 스승님을 사칭하고 있었다면 그 목적은 대체 뭘까?’그때 이지연의 흥분한 목소리가 심미연의 생각을 끊어냈다.“보스! 새로운 정보를 발견했어요!”“무슨 정보예요?”심미연은 본능적으로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귀를 기울이자 이지연의 들뜬 목소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