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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무안안
심미연은 한동안 강지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날 희생해서 그 여자를 완벽하게 만들겠다고? 절대 안 돼. 그리고 하나 더 말하자면, 강지한, 난 이미 이혼하기로 마음먹었어. 언제 시간이 되는지 말해. 법원에 다녀오는 데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

그녀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떠올랐으나 마음 깊은 곳은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강지한이 온지유를 편애하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일 줄은 몰랐다.

‘온지유가 나를 딛고 올라가게 놔둘 생각이라면, 꿈 깨!’

강지한은 화가 난 듯 단호히 말했다.

“이혼하고 싶으면 먼저 온지유 실검 사건부터 해결해. 그러면 너를 놓아줄게. 하지만 내가 나서게 된다면, 단순히 해명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

그는 망설임 없이 그렇게 말했다.

강지한은 심미연의 이혼 이야기를 그저 관심을 끌려는 또 다른 수작으로 여겼다. 그녀가 진심으로 이혼하려 한다고는 전혀 믿지 않았다. 결혼 전 그녀가 그와 결혼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동원했는지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그녀는 늘 자신을 낮추고 강지한을 정성껏 보살피는 모습을 보여왔었다.

‘남편을 위해 그렇게 헌신하던 여자가 그렇게 쉽게 떠날 리가 없지.’

심미연은 정떨어지는 강지한이 모습에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지한 씨가 원하는 대로 할게. 지한 씨도 방금 했던 말을 꼭 기억해. 하린이 일도 이걸로 끝내.”

어차피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결과는 변하지 않을 테니, 차라리 주도권을 쥐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마련할 수 있었다.

강지한은 그녀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빛을 마주하며 잠시 불안감을 느꼈지만, 곧 자연스러운 태도로 돌아갔다.

‘심미연이 지금은 이렇게 강하게 나오더라도 곧 다시 굽히고 들어오겠지.’

“그럼 네 소식을 기다릴게.”

는 그렇게 말하고 병실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심미연은 그 강렬한 압박감이 사라지자, 온몸에 힘이 풀리며 벽에 손을 짚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강지한이 드디어 이혼에 동의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했지만, 가슴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다. 겨우 마음을 추스른 그녀는 옷매무시를 정리하고 병실을 떠났다.

문틈으로 우연히 병실 안을 보게 된 그녀는 강지한이 병상에 누운 온지유에게 몸을 기울여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따뜻하고 로맨틱한 분위기...

심미연의 눈가가 순간 붉어졌고, 두 손이 떨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9년간 사랑했던 남자. 비록 이혼을 결심했지만, 그에 대한 감정이 그렇게 쉽게 정리될 리 없었다.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며 그녀의 생각이 끊겼다. 화면에 비친 이름은 비서 임현이었다.

“변호사님, 오늘 오전 10시에 이혼 소송이 하나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려요.”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로펌으로 갈게요.”

전화를 끊은 그녀는 아무 미련 없이 병실을 떠났다.

병실 안.

온지유는 방금 검진을 마쳤다. 강지한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그가 방금 심미연과 다툰 것을 눈치챘다.

의사가 나가자마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한 씨, 무슨 일 있어?”

강지한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담담하게 말했다.

“신하린을 혼내고 싶다고 네가 직접 네 얼굴을 때리는 건 잘못된 거야...”

온지유는 순간 굴욕감에 얼굴이 달아올랐고, 표정이 여러 번 변하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여자가 먼저 나한테 창녀라며 욕하고, 심미연의 남편을 뺏으려 한다고 했어. 너무 화가 나서 그만...”

‘심미연! 도대체 지한 씨에게 무슨 말을 한 거야? 왜 갑자기 이 얘길 꺼내는 거지?’

강지한은 그녀의 말을 중단시키며 단호히 말했다.

“이 일은 여기서 끝내.”

온지유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하지만 그녀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 일이 여기서 끝낼 수는 없어. 그냥 넘어가면 내가 괜히 손해 보게 되는 거잖아.’

강지한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실검 사건은 내가 심미연에게 해명하게 할 테니, 더 이상 건드리지 마.”

그는 단지 심미연이 소란을 피우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가 심미연을 사랑하든 아니든, 이혼은 그의 계획에 없었다. 이혼이 잦은 그들의 세계에서 많은 남자들이 첩을 두곤 했지만, 그는 오직 심미연과만 자고 싶었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두 사람은 잠자리 궁합도 완벽했다. 그런 만족감을 주는 상대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온지유는 눈가가 붉어지며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연 씨를 건드린 적 없어!”

‘심미연이 무슨 말을 했기에 날 이렇게 몰아세우는 거야!’

강지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온지유는 그가 자기 말을 믿었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어 불안했다.

...

심미연은 로펌에서 하루 종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오후가 되어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강씨 가문의 강준형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그녀는 일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미연아, 저녁에 집에 와서 밥 먹고 가라. 내가 네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다 준비해 놨다.”

강준형의 힘찬 목소리가 들리자, 심미연의 마음이 따뜻해졌다.

강씨 가문에서 그녀를 진심으로 가족으로 대하고 아껴준 사람은 강준형뿐이었다.

‘내가 강지한과 이혼하면, 앞으로는 이런 기회도 없겠지.’

“할아버지, 오늘은 자료 정리 때문에 야근해야 해요. 내일 재판이 있어서 꼭 준비해야 해서요.”

강지한과 이혼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강준형과도 점차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운전기사를 보낼 테니, 무조건 와!”

강준형은 일부러 화난 척하며 말했다.

“너 혹시 내가 늙어서 싫어진 거냐? 나랑 밥 먹기 싫어서 핑계 대는 거지?”

심미연은 당황하며 서둘러 대답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금방 준비해서 갈게요.”

강준형은 나이가 많아 평소 혼자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도우미가 곁에 있어도 외로움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심미연은 예전처럼 강준형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이혼을 앞두고 있어 마음이 복잡했다. 그럼에도 강준형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좋아! 내가 운전기사 보낼 테니 저녁에 와서 나랑 한잔하자.”

강준형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심미연은 잠시 이마를 문지르며 복잡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에 몰두했다. 운전기사가 올 예정이라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다.

30분쯤 지나자, 강준형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할아버지.”

“미연아, 얼른 내려와. 기사가 기다리고 있다!”

전화를 끊고 심미연은 서둘러 책상을 정리한 뒤 가방을 들고 로펌 건물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 그녀의 눈에 익숙한 강지한의 벤틀리가 들어왔다.

잠시 멈춰 섰다가 오늘 병원에서 강지한과 언쟁을 벌였던 일이 떠올라 그와 같은 차를 타기 싫었다. 거절하려던 순간, 강지한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가 나보고 데리러 오라고 했어. 빨리 타!”

강지한은 원래 심미연에게 큰 관심이 없었고, 이번에도 할아버지의 명령으로 그녀를 데리러 왔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심미연은 입술을 깨물며 감정을 억누르고 차 문을 열어 재빨리 올라탔다.

그녀의 행동은 지나치게 빠르고 조심스러웠다. 혹시라도 로펌 동료들이 그녀가 고급 차를 타는 모습을 보면 뒷말이 나올까 두려웠던 것이었다.

그녀는 그런 말들이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강지한은 그녀의 행동에 눈을 가늘게 뜨며 속으로 불편함을 느꼈다.

‘우리 사이를 들키는 게 그렇게도 싫은 건가?’

차에 타자마자 심미연은 창가 쪽에 최대한 몸을 붙이며 거리를 두었다.

그녀의 행동에 강지한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평소엔 내게 매달리려 하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심미연은 머릿속이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 강지한의 기분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갑자기 차가 급하게 방향을 틀며 급커브를 돌았다.

심미연은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한 채 균형을 잃고 강지한 쪽으로 몸이 쏠렸다.

심미연의 부드러운 몸이 품에 안기자, 그녀의 은은한 향기가 그의 코끝을 스쳤다.

순간적으로 몸이 반응자, 강지한은 얕은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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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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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룰루
남편싸이코페스드라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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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실
와 남편 쓰레기세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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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너랑 내기 같은 거 안 해, 미연이가 너 싫다고 하면 나한테도 다시 찾아오지마, 남자가 여자 마음 하나 못 잡고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강준형은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심미연은 절대 자신을 떠나지 못한다 확신한 강지한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서류들을 챙겨서 강준형의 뒤를 따랐다.문밖에는 진작 내려온 심미연이 서 있었는데 어딘가 어두워 보이는 얼굴에 김종수가 걱정스레 물었다.“사모님, 안색이 안 좋으세요, 혹시 어디 불편하세요?”“아니에요.”강지한이 내뱉은 말들이 모두 상처였는데 안색이 좋을 리가 없었지만 심미연은 애써 고개를 저었다.“앉아 계세요, 물이라도 갖다 드릴게요.”하지만 김종수는 그런 심미연을 외면할 수가 없어 물을 가지러 갔고 마침 내려온 강준형이 앉아있는 심미연을 보며 말했다.“시간도 늦었는데 둘 다 그냥 여기서 자고 가, 매일 청소도 하고 이불도 바꾸니까 다 깨끗해. 얼른 올라가 봐.”둘을 같이 붙여놓아야 아이가 생길 테니 강준형은 어떻게든 둘을 한방에 밀어 넣고 싶어했지만 심미연은 온화한 목소리로 강준형을 보며 말했다.“내일 법정에 나가야 하는데 자료정리를 아직 못 끝내서요. 저는 그만 가볼게요.”예전에는 본가에 돌아오면 며칠은 있으려고 하던 심미연이 오늘은 돌아가기에 급급해하는 모습이 낯설었던 강지한은 입술을 말아 물며 심미연을 보고 있었다.“일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최우선이야, 몸도 챙겨가면서 해. 오늘은 일이 있다니까 있으라고 강요는 안 하마.”강준형은 말을 하면서도 강지한을 보며 얼른 손에 든 서류들을 심미연에게 전해주라고 눈치를 주었다.“할아버님,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할아버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강준형은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저를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이었기에 심미연은 진심으로 그가 만수무강하길 바라고 있었다.“그래, 얼른 가봐.”그렇게 작별인사를 마친 심미연이 뒤 돌아 걸어가는데도 강지한은 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자 강준형은 그를 발로 차며 말했다.“얼른 가서 우산 씌워줘!”강준형

  • 다시, 너를 붙잡다   제12화

    그에 강지한은 미간을 찌푸린 채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래.”“심미연이 내가 무용 콩쿠르에서 대상 탄 거 다 주작이라고 기사 냈어, 스폰서한테 빌붙어서 상 탄 거라고, 배 속의 아이도 그 스폰서 거라잖아! 명예도 뭣도 다 잃었는데 여기서 내가 더 살아서 뭐하겠어, 나 죽을 거야!”온지유는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있었지만 그녀가 하는 말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던 강지한은 어두운 표정으로 되물었다.“기사라니? 알아듣게 좀 말해.”“심미연한테 물어, 걔가 한 짓이니까 제일 잘 알겠지!”“알겠어, 일단 흥분하지 말고 진정 좀 해.”울분이 섞인 목소리에 강지한은 온지유를 달래며 일단 전화를 끊었다.눈이라도 조금 붙이려던 심미연도 그 둘의 통화내용을 들어버린 탓에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 같았다.사실 심미연이 예민해진 것도 다 시도 때도 없이 별 같잖은 일로 강지한에게 전화를 해대는 온지유 때문이었다.그때 예상대로 강지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심미연,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지유 명성에 먹칠하면 너한테 뭐 좋을게 있다고 이래?”강지한의 말을 들어보니 갑자기 터진 기사 때문에 이러는 것 같은데 심미연은 돈을 쓸데가 없어서 온지유 기사를 돈 주고까지 내보낸 사람이 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할아버지가 너 감싸준다고 나까지 널 참아주는 건 아니야.”화가 치밀어오른 탓에 자연스레 막말을 하는 강지한에 심미연은 귀찮은 듯 대답했다.“네 정보팀 시켜서 내가 한 건지 알아보라고 해 그럼.”심미연은 평소엔 그렇게 똑똑하면서 온지유 말이라면 생각도 없이 믿는 강지한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래서 그런 머리가 배 속의 아이에게까지 유전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마찬가지로 강씨 집안의 모든 사람들과 다 잘 지내면서 온지유에게만은 가족의 정도 없이 날을 세우는 심미연이 이해되지 않았던 강지한은 차를 갓길에 세운 채 말했다.“만약 진짜 네가 한 짓이라면 나도 가만 안 있을 거야.”이런 말은 수도 없이 들어왔던 심미연이기에 그녀는 이번에도

  • 다시, 너를 붙잡다   제13화

    남자의 손을 힘겹게 피한 심미연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난 강지한 아내예요, 강지한을 건드리면 당신들도 무사하지 못해요.”차도 없고 택시도 못 부르는 이 외진 곳에서 심미연이 부를 수 있는 건 강지한의 이름뿐이었다.강지한은 경성에서 소문이 자자한 염라대왕으로서 매정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으니 이들도 그 이름을 들으면 무서워서 자신을 보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남자들은 심미연의 턱을 잡아 올리며 사악하게 웃어 보였다.“강지한이 온지유랑 한 쌍인 거 경성 사람들은 다 아는데 어디서 거짓말을 해. 우린 강지한 결혼했다는 소리 들은 적 없거든.”“이렇게 꾸물대는 거 보니까 우리가 안아서 차에 태워주길 기다리는 거야?”심미연은 입술을 깨물며 다시 입을 열었다.“거짓말 아니에요, 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전화해서 확인시켜줄 수도 있어요.”아까 그러고 내려서 전화를 받을 가능성이 희박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별다른 수도 없었기에 심미연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든 걸 하늘에 맡긴 채 전화를 걸어보았다.“그럼 어디 전화해봐, 우린 어차피 급하지도 않으니까.”심미연이 말이 거짓이라고 확신한 남자는 그냥 장단이나 맞춰주려고 조롱 섞인 말들을 내뱉으며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았다.한편 핸드폰을 꺼내든 심미연은 그 위에 가득한 물방울을 보며 천천히 강지한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신호음만 들리고 전화를 받는 이는 없었다.그에 심미연은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손으로 핸드폰을 꽉 잡고 있었는데 남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강지한 아내라며? 남편이 전화도 안 받는데?”“진짜 속을 뻔했네.”“이제 거짓말 그만하고 빨리 타. 빨리 끝내고 집 가야지.”말을 하던 남자가 팔을 잡아 오자 심미연은 놀라서 팔을 빼려 했지만 남자의 힘은 그녀가 당해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오히려 그녀의 옷 소매가 찢겨버렸다.그러면서 드러난 하얀 피부에 빗물이 닿아오자 심미연은 몸을 흠칫 떨었다.“피부가 엄청 하얗네. 만지면 아주 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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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4화

    심미연은 흩날리던 생각을 차분히 거두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궁금한 듯 물었다.“우리 태하 진짜 똑똑하네.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거야?”아직 겨우 세 살이지만 심태하의 마음은 놀랄 만큼 세심하고 예민했다. 또렷한 눈망울은 마치 세상의 감정 흐름을 꿰뚫어 보는 듯했고 그렇게 꼼꼼히 살피는 모습에 심미연은 종종 놀라곤 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박유진이 심태하를 정성스럽게 길러온 시간이 아이를 이토록 똑똑하고 배려 깊게 자라게 만든 것이다.“아까 아빠랑 통화할 때 엄마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어요. 뭔가 걱정하는 게 있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저한테 말 걸었을 때도 평소처럼 웃고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엄마가 혹시 슬픈 건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심태하의 말은 또렷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단어 하나하나에 엄마를 향한 깊은 애정과 이해가 담겨 있었다.심태하가 보기에 박유진이 집에 있을 땐 심미연은 늘 기분이 좋아 보였고 환하게 웃는 얼굴이 참 예뻤다.“엄마가 안 웃었어?”심미연은 웃음을 터뜨렸다.‘녀석, 정말 못 말려.’겨우 세 살에 이 정도인데 나중에 더 크면 얼마나 영리해질지.“네, 안 웃었어요.”심태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심태하의 목소리는 여전히 앳됐지만 말투는 왠지 어른스러웠다. 꼭 사람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기라도 한 듯했다.심미연의 마음은 그 말 한마디에 확 풀렸다. 그녀는 아들의 코끝을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자, 얼른 아침 먹자.”그녀의 말투엔 아낌없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이 아이는 정말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다.“아빠가 보고 싶으면 아빠한테 전화하면 되죠!”심태하가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윙크했다.‘나도 아빠가 보고 싶은데 엄마가 안 보고 싶을 리가 없지. 맞아, 분명 그럴 거야!’심미연은 그 말에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박유진이 보고 싶지만 그에게 전화하진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3화

    하지만 그 깊은 애정과 놓기 싫은 마음은 오히려 박유진을 현실이라는 갈림길 앞에서 망설이게 만들었다.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심미연만 괴로운 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걸. 그 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자신의 망설임으로 인해 흐려지는 건, 그녀의 세상이 자신 때문에 흔들리는 건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었다.그렇다고 그녀를 놓아버리면 영원히 잃게 될 텐데... 그 아픔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지 박유진 본인조차 알 수 없었다.“아빠, 왜 말이 없으세요? 허락한 거죠?”심태하의 목소리는 천진난만하게 들떴다. 마치 머릿속에 따뜻한 한 가족의 그림이 그려지기라도 한 듯.‘아빠가 돌아오면 엄마랑 나랑 셋이 모여 저녁 먹고 같이 웃고 얘기하고...’심태하의 마음속에서 그려낸 가장 순수한 행복의 모습이었다.그러나 그 순수한 소망 앞에서 박유진의 마음은 송곳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그는 알고 있다. 이번 결정을 가볍게 내려서는 안 된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게 하려면 정말 신중해야 했다.하지만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그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는 지금 사랑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심미연과 아이를 지킬 방법을 찾고 있다.하지만 그런 길이 과연 있을까? 이 선택은 너무나도 어려웠다.“아빠, 나 이렇게 열심히 얘기하고 있는데 왜 아무 말도 안 해요?”심태하는 고개를 갸웃하며 미간을 찌푸렸다.평소 같았으면 박유진은 재밌는 얘기도 해주고 자기 말에 웃어주었을 텐데, 오늘따라 너무 이상했다.‘혹시... 내가 말실수했나?’그때 박유진의 다급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가 심태하의 귀에 들려왔다.“태하야, 곧 비행기가 이륙해서 아빠가 휴대폰을 꺼야 돼. 오늘 밤에 다시 이야기하자. 꼭이야.”박유진은 심미연을 당장이라도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고 말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네! 알겠어요, 아빠! 그럼 오늘 밤에 꼭 통화해요. 약속했으니까 안 하면 안 돼요!”심태하의 목소리에 눈치채기 힘든 외로움이 살짝 섞여 있었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2화

    심미연은 멍해졌고 아까 자신이 박유진에게 연락을 시도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날아온 건 단 한 줄의 차갑고 무미건조한 메시지. 기대했던 목소리는 끝내 들을 수 없었다.그런데 지금 아들 심태하가 전화를 걸자 박유진은 놀랍게도 전화를 받았다.“아빠, 지금 어디예요? 이틀 뒤면 제 생일이에요! 아빠가 놀이공원 같이 가자고 했던 거 잊으시면 안 돼요!”심태하의 말투엔 아이 특유의 해맑은 기쁨이 가득 담겨 있었고 단어 하나하나가 살아서 튀어나오는 듯했다.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박유진의 목소리는 한겨울 얼음도 녹일 만큼 다정했다.“아빠 지금 진성으로 가는 비행기 타러 가는 중이야. 곧 이륙이라 휴대폰 꺼야 해. 진성에 도착하면 바로 전화할게. 약속!”그 말에는 미안함과 애틋함이 가득 실려 있었다.사실 박유진은 심태하가 생일 이야기를 할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다. 어젯밤에 워낙 정신이 없어 그런 중요한 약속마저 깡그리 잊고 있었던 것이다.“아빠가 보내준 선물 잘 받았어요!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심태하는 아직 다 하지 못한 말이 많은 듯 아빠에게 털어놓고 싶은 게 가득한 눈치였다.박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햇살이 쏟아져 내려 유난히 눈부셨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가늘게 떴고 그 강렬한 빛이 속눈썹 아래에 그림자를 드리웠다.그 순간 그의 마음속엔 오로지 한 사람, 심미연의 얼굴만이 떠올랐다. 그녀와 떨어져 있는 모든 시간이 하나같이 그리움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그리움이 너무 커서 박유진은 당장이라도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달려가고 싶을 만큼 벅찼다.“아빠... 지금 너무 힘들죠? 그럼 회사 팔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요. 제가 돈 많이 벌어서 아빠랑 엄마 다 먹여 살릴게요!”심태하의 순수한 눈빛에 진심 어린 다짐이 담겨 있었다. 그에겐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을 지킬 거라는 꿈이 있었다.심미연은 그런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통통한 볼살에 아직 아기 티가 남았지만 심태하의 마음속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1화

    심미연 역시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이지연이 잘못 알아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지연 씨, 다시 한번 제대로 확인해 봐요. 결과가 똑같은지 꼭 잘 봐요.”혹시라도 착오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그럼 제가 다시 확인해 볼게요! 뭐든 나오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보스, 그럼 끊을게요!”이지연은 말 끝나기가 무섭게 전화를 뚝 끊었다.심미연은 휴대폰을 쥔 채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까 이지연이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이건명과 문소영이 예전에 그런 사이였다고?’그런데 왜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걸까? 아무도 깊게 파고들지 않았기에 묻혀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결혼 전에 누굴 만나든 그건 사생활인데 그걸 굳이 숨긴 이유가 뭘까?심미연이 이 모든 게 어딘가 석연치 않다고 느끼고 있을 즈음, 밖에서 누군가 소리쳤다.“엄마! 나 배고파요! 우리 빨리 아침 먹으러 가요!”심미연은 생각을 접고 고개를 들어 활짝 웃는 아들을 바라봤다.“그래, 가자.”심태하가 달려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엄마, 며칠 뒤면 제 생일이잖아요. 생일 파티에 상미도 초대하고 싶은데, 그래도 돼요?”심미연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젯밤의 친자 확인 결과가 떠올랐다. 강상미는 그녀의 딸, 즉 심태하와 쌍둥이였다. 그래서 둘의 생일도 당연히 같았다.심태하의 생일 파티에 강상미가 온다면 그건 곧 둘이 같이 생일을 보내게 되는 셈이다.“엄마, 안 돼요?”심미연이 대답하지 않자 심태하가 다급히 물었다.그녀는 웃으며 아이를 안심시켰다.“그럼, 당연히 초대해야지. 너희 둘이 같이 생일 파티하면 되겠네.”“정말요? 엄마 최고! 사랑해요!”심미연은 아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태하야, 너 엄마가 어제 말한 거 잊은 거 아니지? 상미가 바로 태영이야. 너랑 똑같이 엄마 배에서 나왔고 너희 둘은 쌍둥이야. 그래서 생일도 똑같아.”강상미에 관한 일은 이미 방원호에게 조사를 맡긴 상태였다. 꼭 알아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0화

    심미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한 기색을 담아 물었다.“무슨 일이길래 그래요?”이지연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일부러 속도를 늦추며 차분하게 말했다.“온지유 씨가 도망쳤어요.”“언제요?”심미연의 눈빛이 반짝이며 날카로워졌다. 누가 이 일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스쳤다.“어젯밤에요.”이지연의 목소리는 한껏 가라앉아 있었고 자책감이 가득 배어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방심했어요.”심미연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미안해하지 마요. 이건 지연 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이지연은 입술을 꼭 깨문 채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제가 당장 찾아올까요?”심미연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휴대폰을 천천히 만지며 생각했다.“잠깐만 생각 좀 해볼게요.”어젯밤 강지한이 교통사고를 당한 장면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혹시 온지유의 실종과 강지한이 관련 있는 걸까? 만약 강지한이 온지유를 구한 거라면 도대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은 거지? 끝도 없이 밀려드는 의문들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참, 보스. 어젯밤에 스승님 못 보셨어요?”이지연이 물었다.심미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사실은 봤었다. 그녀는 진운혁이 차를 몰고 떠나는 걸 보고 따라붙었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그럴 리가요? 제가 분명히 확인했는데... 스승님께서 이진영 씨랑 같이 식사하고 계셨어요!”이지연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심미연은 다시 한번 미간을 찌푸렸다.문득 이전에 마주쳤던 진운혁의 모습들이 떠올랐고 그 순간 한 가지 의심이 그녀의 마음속을 훑고 지나갔다.‘그때 내가 본 스승님은... 정말 스승님이 맞았을까? 만약 누군가가 스승님을 사칭하고 있었다면 그 목적은 대체 뭘까?’그때 이지연의 흥분한 목소리가 심미연의 생각을 끊어냈다.“보스! 새로운 정보를 발견했어요!”“무슨 정보예요?”심미연은 본능적으로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귀를 기울이자 이지연의 들뜬 목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9화

    백선영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진은숙의 팔을 살짝 끌어당기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이제 가요.”진은숙은 손바닥 위에 놓인 봉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망설이면서 입을 열었다.“이건... 어쩌죠?”백선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 난처한 상황을 심미연에게 넘기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봉투를 조심스럽게 심미연 앞에 내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모님, 마음은 충분히 받았지만... 이 돈은 받을 수가 없어요.”심미연은 미소를 지으며 눈길을 봉투 위로 흘렸다.“오빠가 직접 드린 건데 마음 편히 받으세요. 저한테 돌려주실 필요는 없어요. 자, 얼른 가서 일 보세요. 저 벌써 배가 고파졌는걸요.”그러나 말하다가 알 수 없는 서운함이 스르르 마음 한쪽에 올라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박유진은 예전에 밤하늘을 보며 수없이 약속했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그녀와 아이를 평생 지키겠다고. 그런데 지금 그 약속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금세 꺼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오빠, 나랑 약속한 거 잊은 거야?’“정말 감사합니다, 사모님! 사모님과 사장님 두 분 다 참 요즘 보기 드물게 좋은 분들이세요. 두 분, 좋은 일만 가득하시고 영원히 행복하시길 빌게요!”진은숙은 기쁜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백선영의 팔을 붙잡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오늘 정말 행운이 따랐다 싶었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다니.심미연도 가볍게 한숨을 쉬고 나서 주방으로 들어가 컵에 따뜻한 물을 따라 목을 축였다. 어쩐지 목이 바싹 마른 게, 감정이 몰려서 그런 걸까.막 물을 다 마셨을 무렵 문밖에서 귀엽고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 어디 있어요?”그 소리는 마치 봄날에 막 피어난 꽃처럼 듣는 사람 마음을 몽글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심미연은 표정이 풀렸고 얼른 얼굴을 내밀며 따뜻하게 웃었다.“우리 태하, 엄마 여기 있어!”심태하는 쏜살같이 달려와 그녀 품에 안겼다.“엄마, 아빠가 나 버렸어요!”심미연은 깜짝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8화

    백선영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모깃소리만큼이나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사장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집에 안 계시는 동안 꼭 사모님과 도련님을 잘 챙기라고 당부하셨습니다.”진은숙도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맞아요, 맞아요! 사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바로 캐리어 들고 곧장 나가셨거든요.”심미연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박유진의 말뜻을 곱씹어 보았지만 마치 안개 속을 걷는 듯 선명하게 와닿지 않았다.“그런데요, 사모님...”진은숙이 심미연을 흘끗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눈빛에는 망설임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왜 그러세요?”심미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지만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언제나 그래왔듯 도우미 아주머니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었고 태도가 마치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너그러웠다.진은숙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마음을 굳힌 듯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어젯밤에 제가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러 나왔는데 계단 모퉁이에서 사장님을 마주쳤었어요. 사장님도 물 마시러 나오신 것 같았어요.”곁에 서 있던 백선영도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저도요!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길래 문 열고 나왔더니 사장님이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계셨습니다.”심미연은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어젯밤에 오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진은숙은 마음을 가다듬고 이어서 말했다.“불빛이 비쳐서 얼핏 봤는데 사장님 눈가가 벌겋게 부어 있더라고요. 꼭 방금 울기라도 한 사람처럼요. 아마 제가 눈치챌까 봐 인사만 툭 하고는 곧장 자리를 피하셨어요. 전 그냥 물만 마시고 방으로 돌아갔는데 보니까 사장님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멍하니 서 계셨어요. 제가 방에 들어간 뒤에도 안 들어오시더라고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덧붙였다.“오늘 아침에 사장님께서 나가신 뒤에 서재를 청소하러 들어갔는데 휴지통에 담배꽁초가 가득 쌓여 있었어요. 어젯밤 내내 잠도 못 주무시고 담배만 피우셨던 것 같아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7화

    휴대폰 화면이 켜지고 그 익숙하면서도 가슴을 죄는 번호가 뜨는 순간, 박유진의 심장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움켜잡힌 듯 조여들었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속에서 일렁이며 축축한 솜처럼 뭉쳐져 목덜미를 틀어막았고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말은 더더욱 나올 리 없었다.그 번호는 마치 꿈결 속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유령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그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의 고통과 갈등을 다시 불러냈다.박유진은 손을 떨며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다가 한참을 망설인 끝에 결국 전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공기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과 묘한 압박이 가득했다. 박유진은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고 손끝으로 천천히 휴대폰 키보드를 두드려 문장을 써 내려갔다.[진성에 가서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돌아가면 다시 이야기하자. 그래도 되지?]그 메시지엔 그의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었다. 현실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언젠가 다시 마주하길 바라는 희미한 기대도 모두 그 짧은 문장 안에 섞여 있었다.메시지 전송을 마친 박유진은 망설임 없이 전원을 꺼버렸고 휴대폰을 한쪽으로 툭 던졌다. 마치 그렇게 하면 마음속 어지러운 생각들까지 함께 던져버릴 수 있을 것처럼.주변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텅 빈 공간엔 그의 심장 뛰는 소리만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규칙적이고도 묵직한 박동이 마치 그 존재를 스스로 확인하려는 듯했다.박유진은 눈을 감았다. 피로한 몸은 본능적으로 가장 편한 자세를 찾아갔고 그 짧은 정적 속에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찾고자 했다.비록 밤새 한숨도 못 잤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지만 정신만큼은 유난히 또렷했다.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지탱해 주듯 그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하지만 피하고 싶을수록 심미연의 모습은 그의 머릿속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그녀의 미소는 때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순수하고 따스했으며 때로는 눈빛 하나로도 사람 마음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또 부끄러워하던 그 순간순간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6화

    박유진은 자신의 앞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심미연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는 언제나 그녀의 편이 될 것이란 사실.만약 그녀가 아이를 데려오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그는 가진 것을 다 내어주어서라도 그녀를 돕고 그 아이를 보살필 것이다. 마치 자신의 친딸인 양 지극정성으로.박유진은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은 심미연을 사랑하고 그녀의 아이와 그녀가 지닌 모든 것을 함께 안아줄 준비가 되어 있음을.심미연의 눈가는 어느새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녀의 두 손은 마치 물에 빠진 이가 살고 싶어서 지푸라기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박유진의 옷깃을 꼭 움켜쥐었다. 수많은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그녀가 박유진에게 진 빚은 너무나도 많고 무거웠다. 그 빚을 다 갚기 위해서는 평생이라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랐다.“시간이 늦었으니까 이젠 좀 쉬어. 나도 방으로 돌아갈래.”박유진의 목소리엔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한 떨림이 묻어났다. 그는 본능적으로 심미연을 더욱 꼭 안았다. 마치 그녀를 자신 뼛속 깊이까지 끌어안고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어쩌면 이 다정함이 그들 사이 마지막 남은 따뜻함이 될지도 모른다...박유진의 마음속은 쓸쓸함으로 가득했다. 머릿속 이성은 매서운 바람처럼 그를 휘감으며 이제는 놓아줄 때라며 끊임없이 속삭였다.하지만 감정은 뿌리 깊은 덩굴처럼 박유진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얼마나 바랐던가. 단 한 순간이라도 더 심미연의 곁에 머물 수 있기를. 이 찰나의 시간이 남은 생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만 있다면...심미연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박유진의 얼굴을 어루만졌고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박유진의 마음속 한기를 모두 녹이는 듯했다.심미연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부드럽게 말했다.“이생에 오빠를 만나 알아가고 수많은 인파를 뚫고 함께 걸을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복이었어. 앞으로 어떤 길을 가더라도 우리 손 놓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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