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이경의 추측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청지 일행은 하인들의 안내를 받아 한쪽 뜰로 배정되었다.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라는 것이었다.반면 이경은 집사의 직접 안내를 받아 주원으로 향했다.주원에 들어서자마자, 이경은 청신하고 속세를 벗어난 듯한 분위기를 느꼈다.마치 인간 세상 밖의 신선 세계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곳곳에는 화려한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한겨울인데도 꽃이 피어 있다니, 실로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아가씨, 이 뜰이 마음에 드십니까?"노집사 예 씨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경치도 아름답고, 기온까지 유난히 쾌적한데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요?"주원 안으로 들어갈수록 이상하게도 기온이 점점 따뜻해지는 듯했다.겨울이라기보다는 늦가을에 가까운 느낌이었다.약간의 서늘함만 있을 뿐, 춥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예 집사가 웃으며 말했다."산장 뒷산에는 온천이 하나 있습니다. 주인들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온천수를 산장 안으로 끌어들여 주변에 온기가 돌게 하셨지요. 덕분에 이런 겨울에도 추위를 느끼지 않는 겁니다.""아."이경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듣고 보니 정말 기발하고 대단한 방법이었다.그런데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그럼 여름에는 어떡하죠?"집사의 말대로라면,온천의 열기는 겨울에는 분명 공기를 따뜻하게 해줄 수 있다.하지만 여름이 되면 오히려 더 더워질 텐데 말이다.예 집사는 웃으며 대답했다."주인들께서는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으셨고, 앞으로 얼마나 더 머무르실지도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굳이 여름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지요."사실 그들은 이곳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이경은 그 점이 의아했지만 얼굴에는 드러내지 않았다.이내 예 집사를 따라 정원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고, 아치형 문을 지나 또 다른 뜰로 들어섰다.고개를 든 이경은 순간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이게 다…"이렇게나 많은 미남들이 있다니?혹시 미남 선발 대회라도 열리고 있는 건가?앞쪽 뜰에는 새하얀 옷을 입은 미
달려 나온 이는 바로 모용서였는데, 그의 손에는 편지 한 통이 들려 있었다.그는 재빨리 이경 앞으로 다가와 웃으며 편지를 건넸다."아가씨 물건 맞으시죠?"이경은 눈썹을 찌푸렸다.그가 건넨 편지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하지만 그 위에는 유독 눈에 띄는 글자 하나가 적혀 있었다.'세(漓)'."제 것입니다."이경은 두 손으로 편지를 받아 들며 모용서에게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이내 몸을 돌려 떠나려는 순간,모용서가 무심한 듯 물었다."아가씨께서는 어디에 머무르고 계십니까? 제가 호송해 드릴까요?""괜찮습니다. 제가 어디에 머무는지야, 사실 다들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잖아요."이경은 그에게 인사를 건넨 뒤 몸을 돌려 말에 올라탔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사람들은 공주가 방금 건네받은 편지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알지 못했다.하지만 '세'라는 글자만큼은 모두가 똑똑히 보았다.하나같이 마음이 무겁고 복잡했지만, 결국 하나둘 말에 올라타 이경의 뒤를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한참을 달린 뒤에야 맨 뒤에 있던 청지가 따라붙으며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공주 마마, 모용 산장에서 뒤쫓아오는 사람은 없습니다."이경은 고삐를 당겨 말을 길가의 나무 아래로 천천히 몰았다.이내 말에서 내려 품속에서 편지를 꺼냈다.방금 모용서는 편지를 건네면서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어쩌면 정말로 그 편지가 이경의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그래서 굳이 확인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보아하니 다과를 건넨 사람이든, 편지를 탁자 위에 올려둔 사람이든 모용서와는 관련이 없어 보였다.모용 가문의 다른 사람이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모용 가문의 하인들 사이에 섞여 들어온 것이 분명했다.그녀가 떠올린 건 적성산장의 사람들이었다.곧 편지를 열어 보니 예상대로 적성산장의 초청장이 들어 있었다."마마!"뜻밖의 초청장을 본 청지와 문정수는 크게 동요했다.지금 세자는 여전히 적성산장에 있었기 때문이다.그들은 당장이라도 산장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경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눈앞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사대가문 가주들의 눈동자에 스친 살기를 또렷하게 읽어냈다.밖에는 사대가문의 사람들이 곳곳에 깔려 있었다.그야말로 일촉즉발, 당장이라도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였다.다만 충돌을 원하지 않았던 모용서는 급히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아버지, 저희는 지금 정말 인재가 필요합니다. 차라리 아가씨더러…""비록 어룡성이 지금 재난에 직면해 있긴 하지만, 그 누구도 어룡성을 모욕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모용 가주의 말투에는 조금의 관용도 없었다.이 상황에서 만약 이경이 계속 사양한다면, 정말로 어룡성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 꼴이 된다."사실 오늘 현장에는 많은 무림 고수들이 있었고, 심지어 저보다 무공이 뛰어난 고수들도 있었습니다."이경은 천천히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그녀의 태도는 시종일관 담담했다."하지만 그 고수들이 경기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건, 성주 자리가 비록 권력과 부를 상징하긴 하지만 동시에 위험 또한 상징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그러자 가주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이경은 옅게 웃으며 말했다."보아하니 정말 그런가 보네요.""아가씨께서는 대회에 참가하기 전에, 성주로 선출된 사람은 보름 후 공물을 가지고 황성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셨습니까?""그저 공물만 바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좋은 일이니 황실에서도 상을 내릴 텐데, 왜 다들 피하려고만 하는 거죠?"그녀의 시선이 네 명의 가주에게 향했다.하지만 네 사람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이내 모용서가 난감한 표정으로 조용히 설명했다."이번 공물은 태자 전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태자 전하께서는…"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태자 전하의… 성격이… 좀 괴팍하십니다…""알겠습니다. 그 말은 즉, 태자 전하께서 까다로우셔서 바친 공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은커녕 오히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군요?"성주가 되면 당연히 영광
"아가씨."그 순간, 모용서가 이경에게 다가갔다.이경은 두 손을 모아 인사를 건넸다."실력이 부족하여 더 이상 적성산장 소장주를 상대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성주 자리는 제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울 듯합니다."그녀는 지금 당장 적성산장으로 향해 윤세현을 찾고 싶었기에, 더 이상 성주 선출 같은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윤세현을 찾아냈으니 더 이상 지체할 필요도 없었다.적성산장 뒤에 대체 누가 있는지, 왜 윤세현의 기억이 봉인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뭐가 됐든 그녀는 윤세현을 구하리라 마음먹었다."아가씨께서는 이미 적성 소장주를 이기셨습니다."모용서는 이대로 그녀를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규칙대로라면 오늘 경기에서 승리한 자가 바로 성주의 후계자가 된다.게다가 지금 어룡성은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성주를 선출해야만 했다.이 중요한 일을 어떻게 그저 대충 넘길 수 있겠는가?"도련님, 전 사실…""아가씨, 오늘 선출 대회에서 승리하셨는데 이 일을 내팽개치고 이대로 떠나신다면 그건…"모용서는 얼굴을 굳힌 채 단호한 표정으로 경고했다."그건 곧 저희 사대가문을 적으로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그러자 이경은 눈썹을 찌푸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대회장 주변에는 어느새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대회장을 빈틈없이 에워싸고 있었다.그들은 절정의 고수들은 아니었지만, 모두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이 상황에서 이경 일행이 기어코 뚫고 나가려 한다면, 온전히 살아남아 빠져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이경이 이내 청지를 향해 눈짓을 보내자, 청지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이경은 모용서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도련님께서는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시는 겁니까?""내당으로 들어가 사대가문의 가주들을 만나셔야 합니다."모용서는 냉정하게 대답했다.이경은 다시 자신의 일행을 힐끗 바라본 뒤 손을 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 안내해 주시죠!"그렇게 선출 대회는 무사히 막을 내렸다.곧이어 손님들은 하나둘 자리를 떴다.청지 또한 밖으로
수정본입니다. (문장 수와 호흡을 유지하고, 어색한 번역체·오탈자·조사만 자연스럽게 다듬었습니다.)윤세현의 눈빛은 마치 맑은 호수와도 같이 그저 평온했다.하지만 그 검은 눈동자 속에는 서리가 가득했다.그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지금 몹시 화가 나 있다는 것을.사실 이경은 일부러 그를 화나게 하고, 일부러 그가 공격하게끔 유도한 것이다.그나저나 그의 공격은 분명 그다지 무겁지도 않았는데, 이경은 왜 갑자기 피를 토하게 된 걸까?눈앞의 장면은 꽤나 무서웠지만, 지켜보던 소녀들은 차마 윤세현을 탓할 수가 없었다. 그의 용모는 너무나도 준수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너무나도 잘생긴 남자였기에, 그가 무슨 과한 짓을 하더라도 여자들은 결코 원망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의 성난 모습에, 오히려 다들 그를 품에 안아 보듬어 주고 싶어 했다.하지만 반면 남자들은 여전히 공정을 지키려 하였다.이내 한 사람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진기를 쓰지 않기로 약속했으면서, 비겁하게 내공을 이용해서 사람을 다치게 해? 그건 반칙 아니야?"하지만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우리 성월국은 항상 무력을 숭상해 왔어. 내공을 쓰든 아니든,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이기면 되는 거지."의견이 분분했다.이경은 칠조를 밀쳐내고는 스스로 몸을 일으켜 천천히 윤세현의 앞으로 걸어갔다.그녀의 입가에는 여전히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무심코 손을 들어 닦아낸 그녀의 손등에는 온통 피가 묻어 있었다.게다가 그녀는 몸을 비틀거리며 당장 쓰러져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았지만,그녀의 시선과 자태는 여전히 강인했고 전혀 굴하지 않았다.그녀는 여전히 전투 태세를 취한 채 윤세현을 응시하며 담담하게 말했다."난 아직 지지 않았어, 계속해!"그녀를 바라보는 윤세현의 눈빛은 더욱 깊고 차가워졌다.이 교활한 여자!그는 그녀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보게 되니 왠지 모르게 더 이상 진기를 모을
윤세현의 시선이 다시 이경에게 향했다.방금보다도 더 차가운 눈빛이었다.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이경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했다.그제야 이경은 깨달았다.성월국에서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별다른 차별이 없다는 것을.성월국은 초나라처럼 남녀를 차별하는 나라도 아니었고, 남진처럼 여성을 숭상하는 나라도 아니었다.이곳은 오직 무력만을 숭상하는 나라였다.남자든 여자든 강자라면 존중받았다.이경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아니면 내력으로 겨뤄도 좋아. 비록 지금 내 내력은 절반도 남지 않았지만, 남은 절반만으로도 당신을 이길 수 있다고 믿거든."그녀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자, 덤벼."이미 승부는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단상 아래에서 지켜보던 무연의 눈동자에 저도 모르게 웃음기가 스쳤다.이 계집애 참….반면 청지와 문정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그들의 공력도 결코 약한 편은 아니었다.하지만 방금 윤세현이 휘두른 장풍 한 방에 두 사람은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고작 보름 만에 세자는 몸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공력까지 크게 늘어 있었다.이 기간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그런데 구공주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남은 절반의 공력으로 세자와 겨루겠다니.설령 그녀의 공력이 전혀 소모되지 않은 상태였다 해도, 그들은 그녀가 세자의 상대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칠조와 연지 역시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세자가 공주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했다.그런 상황에서 공주가 이토록 노골적으로 도발하는 건, 자칫 목숨을 내놓는 일과 다름없어 보였다.그 순간 이경이 갑자기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내 제안, 어떻게 생각해? 설마 겁난 거야?"그녀가 불쑥 다가서자 두 사람의 거리는 거의 맞닿을 듯 가까워졌다.순간 윤세현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그는 즉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불쾌한 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