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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Author: 윤서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05 17:40:10

“네.”

긴장한 은성이 무슨 일이냐는 듯 선우를 봤다. 선우는 빙그레 웃을 뿐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도 선희도 찻잔을 향해 손을 뻗었고 아주 잠시 손이 닿았다. 더러운 것이라도 만진것처럼 손을 황급하게 거둬드린 그가 구토를 했다.

“우욱…!”

스치는 접촉에도 그의 몸은 정직하게 반응했다.

선우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은성은 따라가고 싶었지만 선희의 눈치가 보여서 가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이 세상에 불편한 모자 사이는 많았지만 잠깐 손이 닿는 접촉만으로도 이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없었다. 한성그룹의 회장 답게 그녀는 표정을 빠르게 갈무리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요즘 학교에서는 괜찮니?”

“가끔 일이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괜찮아요.”

선희의 접촉에만 저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모든 여자과의 접촉에 그랬다. 은성만이 예외였다. 그래서 학교에서의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선희는 스스로를 안정시키려는 듯 차를 한모금 마시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은성아. 선우랑 같이 유학 가는 거 어떠니?”

은성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희는 고용인들에게 인색하지 않았고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 그러나 유학을 갈 정도로 경자가 돈을 많이 모은 것은 아니었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유학 갈 형편은 아니어서요.”

“돈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 선우랑 같이 가는 건데 당연히 내가 지원해야지. 돈 생각하지 말고 유학 갈 생각 없어?”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빨리 돈을 벌어서 경자를 조금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유학은 그녀에게 다른 나라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녀를 선희가 지그시 응시했다.

“은성이 너는 참 신기해.”

“제가요?”

“어렸을 때부터 나를 봐서 그런가, 자기 생각을 바로 이야기하잖아. 별로 어려워하지도 않고.”

“그런가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선희가 말을 이었다.

“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 자신이 모시는 사람의 힘을 자신의 힘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말이야. 친한 친구가 부자인 경우도 마찬가지지. 그런데 은성이 너는 그게 네 신분이라고 착각하지 않아. 그렇다고 비굴하지도 않지.”

예리한 시선이 은성에게 꽂혔다. 이럴 때면 선희가 그저 어머니의 고용주가 아니라 거대 기업의 회장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얼굴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누군가가 자신을 속속들이 간파해내는 것은 꽤나 불쾌한 경험이었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기회에 유학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봐.”

“네,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만 선우한테 가봐.”

“네.”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서재를 나섰다.

*

서재에서 나와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걸어갔다. 그때 선우가 비틀거리면서 나오는 게 보였다.

“선우야. 괜찮아?”

“왜 이제 왔어.”

그가 기대다시피 은성을끌어안았다. 그 모습이 꼭 투정부리는 아이같았다.

“미안. 회장님 눈치 보여서 그랬어.”

“치이. 나보다 회장님이 더 중요한가 봐.”

“그럴리가 없잖아. 방으로 올라가자.”

“응.”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선우의 방이 있었다. 그러나 방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공간이 넓었다. 별채에 있는 은성의 방에 5배가 넘는 크기였다. 선우를 부축해 소파에 앉히고 그 옆에 앉았다. 은성의 손이 자연스럽게 그의 이마로 향했다.

“열은 안 나?”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거부 반응이 심하게 나타날 때면 열이 나거나 두드러기가 나기도 했다. 체온은 조금도 뜨겁지 않았으나 선우는 은성의 손을 조금이라도 더 잡아두려는 듯 이마를 비볐다.

“열 안 나는데?”

“몸이 좀 간지러운 거 같아.”

은성이 거짓말을 잡아내는 수사관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닌데? 자꾸 거짓말 할래?”

“거짓말 아닌데. 몸이 힘들어서 그렇게 느껴지나 봐.”

넓디 넓은 어깨가 축 늘어졌다. 선우가 일부러 더 그런다는 것을 알지만 은성은 그 모습 마저도 안쓰러워 머리를 쓰다듬었다. 더 쓰다듬어 달라는 듯 선우는 아예 은성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이런 모습을 볼때는 선우가 꼭 동생 같았다. 목이 꺾이게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큰 키를 가졌는데도 말이다.

선우는 눈을 감고 따스한 손길을 말없이 느꼈다. 은성이 함께 있으면 가장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빠, 할머니, 삼촌이 다 살아있던 그때는 무엇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좋은 집에 살지도 좋은 옷을 입지도 못했지만 마음만은 풍족한 시절이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 집에서 살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학 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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