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강설주의 시선]
차도윤이 개인 주치의는 물론 수석 조산사와 신생아 전문의를 저택에 불러
24시간 상주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진통이 시작되었다.
언제 준비한 것인지 마스터 베드룸에 무균분만실이 세팅되어 있었고,
물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준비한 것인지 수중분만이 가능한 큰 욕조가 준비 되어 있었다.
그는 진통이 시작된 시간부터 출산이 끝나기까지 내 곁에 계속 있었다.
수중분만을 할 때도 마치 남편인 것처럼 욕조에 같이 들어가 내 뒤에서 나를 안고
같이 호흡을 하며 출산의 전 과정을 함께 했다.
마침내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를 안은 그는 감격한 듯 보였다.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탯줄을 자르고 내 귀에 속삭였다.
“이 아이의 성운 ‘차’입니다. 이 아이는 내 딸 이예요.
내가 이 아이와 당신. 둘 모두를 지킬거예요.”
밤마다 내 배에 튼살 방지 로션을 발라주며 아빠의 태교책을 읽어주던 그였다.
사교댄스를 가르치면서도 배에 대고 무언가를 말하던 그의 모습도,
지금 생각해 보니 어색해하며 받은 그의 모든 행동들이 정말 아이의 아빠처럼 느껴졌다.
그는 다음 날, 한 장의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당신을 3년만 빌릴게요.”
[차도윤의 시선]
강설주의 배가 하루가 다르게 불러왔다.
튼살 방지 로션을 발라줄 때마다 심하게 태동하는 아이의 활발한 움직임을 느낄 때
나는 신비로움을 느꼈다.
가끔은 아이가 너무 세게 차서 강설주가 아파 하기도 한다.
나의 이기에 의해 살린 강설주의 몸에서 새로 생명을 얻은 작은 생명체..
내가 살렸으니, 내가 이 아이의 아빠가 되어도 괜찮은 거겠지?
최고급 홈 의료 시스템을 마스터 베드룸에 구축했다.
주치의와 수석 조산사, 신생아 전문의까지 전담 의료팀을 고용해
비밀 유지 서약서에 서명하게 하고 어마어마한 금액을 그들에게 지급했다.
예정일 10일 전부터 24시간 집에 상주하게 했다.
그들이 오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강설주가 진통을 시작했다.
길고 긴 싸움이였다. 8시간 동안이나 고통에 몸부림 치는 그녀를 보아야 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녀는 소리 한 번, 큰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는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웠다.
빨대병에 있는 물을 먹이거나 손을 잡아주거나,
배와 허리를 문질러 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것이
참으로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였다.
조산사가 너무 참지만 말라고 해도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이가 처음 듣는 소리가 아파하는 비명이나 신음소리가 되지 않겠다며
음악을 틀어 달라고 했다.
눈물과 땀으로 범벅인 그녀의 작은 체구에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지..
누웠다 앉았다 웅크렸다가, 짐볼 위에서 호흡을 가다듬다를 반복하는 설주..
이제야 준비가 되었단다.
나는 반바지만을 입은 채 재빨리 샤워를 하고, 이미 그녀가 들어간 분만 욕조에,
그녀의 등 뒤를 받치면서 들어갔다.
훨씬 안정적인 자세가 된 그녀의 머리카락이 땀과 눈물에 엉겨 붙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과 목덜미에 붙은 머리카락들을 정리해서 다시 묶어 주었다.
오랜 진통으로 지친 그녀의 호흡이 고르지 못했다.
그녀를 안고 배를 문지르며 천천히 크게 호흡했다.
그녀가 나를 따라 호흡을 하는게 느껴졌지만,
그녀의 눈능 초점을 잃어 가고 있었다. 조산사도 그녀에게 다가왔다.
“산모님, 지금 정신 놓으시면 아기는 산소가 부족해 위험해져요.
거의 다 왔으니 정신 바짝 차리세요.”
조산사가 찬 물에 적신 수건으로 설주의 얼굴을 닦였다.
나도 얼른 그녀에게 물병의 빨대를 입에 넣어 주었다.
몇 달 전 그녀의 심장이 멎은 그 시간이 떠올라 겁이 났다.
설주는 강한 여자니 잘 견디고 무사히 출산 할 것이다.
그녀가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잠시 눈을 감았다.
나는 놀라 그녀를 깨우려 했지만, 조산사가 말렸다. 그녀는 잠시 쉬는 거였다.
주치의가 이제 준비하세요 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눈을 뜨고 호흡을 준비했고, 나는 그녀의 두 손을 꼬옥 잡았다.
그리고 의사가 “힘주세요” 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녀와 같이 힘을 주었다.
드디어 아기가 나왔다.
의사가 탯줄이 달린 채로 아기를 설주에게 건내자
조산사가 설주의 원피스 단추를 풀러 그녀의 맨 가슴에 아이를 올렸다.
막 태어난 아기가 그녀의 가슴을 찾아 입을 오물거렸다.
조산사가 아기가 그녀의 젖을 물기 좋게 자세를 잡아 주었다.
아름다웠다. 그녀의 벗은 몸을 처음 보았으나 그런 것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의사가 가위를 내게 건냈다. 아기의 탯줄을 자르는데 눈물이 고였다.
내 눈이 고장이 난 것 같았다.
“이 아이는 내 딸이예요, ‘차’씨 성을 가지게 될 거예요” 설주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그녀와 함께 위대한 출산의 예정을 함께 하게 된 것이
내 마음의 무언가를 깊게 건드린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그녀를 위대하게 보게 되었고 존경하게 되었다.
다음날, 그녀에게 나는 결혼 계약서를 내밀었다.
“당신을 3년만 빌릴게요.”
[ 리안(설주)의 시점 ] 포식자의 자비 파티장의 화려한 소음이 차단된 테라스.나는, 나를 쫓아온 장현석과 마주 섰다.그는 리안컴퍼니의 추가 투자를 갈구하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7년 전, 나를 밀치며 소리치고 내리치던 그 남자의 손이지금은 내 환심을 사기 위해 떨리고 있다."리안 대표님, 이번 메디-테크 합병 건만 성사되면 J&S는 국내 1위가 됩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나는 와인 잔을 흔들며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지옥의 문턱까지 끌고 왔는데도 그는 여전히 탐욕의 냄새를 풍긴다."장 대표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걸 잃어본 적 있나요? 예를 들면... 아내라든가, 아이라든가."내 질문에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찰나의 침묵.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죽은 사람은 잊어야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그 대답을 듣는 순간, 내 안의 마지막 남은 작은 연민조차 차갑게 식어버렸다.그래, 장현석. 너는 산 사람답게 끝까지 발버둥 쳐봐.그래야 네가 떨어질 낭떠러지가 더 깊고 어두울 테니까.-------------------------------------------------------[ 장현석의 시점] 차가운 여신의 유혹 리안, 이 여자는 위험하다.자꾸만 죽은 설주를 떠올리게 하는 질문을 던지며내 숨통을 조여온다.하지만 그녀가 쥐고 있는 자본은 거부할 수 없는, 독이 든 성배다.메디-테크를 합병하기만 하면차회장도 나를 함부로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당연합니다. 전 앞만 보고 갑니다. 리안 대표님만 제 곁에 있어 준다면요."나는 최대한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그녀의 눈동자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승리에 취한 왕처럼 보였다.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마치 도축장에 들어선 짐승을 보는 것처럼싸늘했다.왜일까, 그녀와 대화를 나눌수록내가 지옥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드는 것은.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었다.눈앞의 황금빛 미래가 너무나도 찬란했기에.
# 차시아의 시점 : 아빠가 지켜주는 비밀 /가까운 미래 #나는 우리 엄마가 가끔 무척 슬픈 눈을 한다는 걸 알아요.그럴 때면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아빠가 가르쳐준 노래를 불러줘요.그러면 엄마는 나를 꽉 안아주며 말하죠."시아야, 넌 내 생명이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이야."나는 아빠랑 엄마가 어떻게 만났는지 잘 몰라요.하지만 아빠는 내가 아주 작았을 때부터 내 곁에 있었다고 했어요.엄마가 아파서 엉엉 울 때 아빠가 나를 지켜줬대요.유치원에서 친구들이 아빠랑 나랑 안 닮았다고 놀린 적이 있어요.나는 속상해서 울었지만, 아빠는 내 코끝을 만지며 웃었어요."시아야, 피는 물보다 진하단다. 하지만 사랑은 그 피보다 더 진한 법이야."나는 아빠의 그 말이 참 좋아요. 아빠는 내 진짜 아빠니까요.----------------------------------------------------------# 서아연의 시점 : 엇갈린 계산 /현재 #리안의 곁을 맴도는 그 꼬마 아이, 차시아.처음 그 아이를 봤을 때 내 심장은 바닥까지 떨어지는 줄 알았다.아이의 눈매, 오묘하게 풍기는 분위기가 죽은 강설주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만약 설주가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아 아이를 낳았다면 딱 저만한 나이였을 것이다.나는 집요하게 리안의 뒤를 쫓았다.스위스 현지 병원 기록과 입국 서류를 이 잡듯 뒤졌다.'강설주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나를 미치게 했다.하지만 결과는 내 예상과 달랐다.차시아의 출생 신고일은 차도윤과 리안이 결혼식을 올린 지 정확히 3개월 뒤였다.생물학적으로도 시기상으로도 도저히 맞지 않는 날짜였다."그럼 그렇지... 내 착각이었어."나는 서류를 찢어버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차도윤 같은 완벽주의자가 남의 자식을 제 호적에 올릴 리 없지.게다가 리안은 성형으로 얼굴마저 완벽히 다르다.닮았다고 느낀 건 내 죄책감이 만든 환상일 뿐이다.나는 비웃으며 차를 돌렸다.내가 쫓던 진실이 사실은
[ 리안(설주)의 시점: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파티 ]“장 대표님, 서 대표님. 이번 자선 파티의 메인 스폰서 자리를 두 분께 드리고 싶네요.”나는 우아하게 티켓 두 장을 내밀었다.상류층 사교계의 모든 이들이 갈망하는 VVIP 티켓이다.장현석의 눈이 탐욕으로 번뜩였고,서아연은 마치 자신이 승리자가 된 양어깨를 으쓱였다. 그들은 모른다.이 티켓이 그들의 화려한 파멸을 생중계할 무대의 입장권이라는 것을.나는 이번 파티의 테마를 ‘진실의 밤’으로 정했다.내가 준비한 티켓 마케팅은 간단하다.가장 높은 곳으로 그들을 초대해, 가장 많은 관객 앞에서그들의 추악한 민낯을 공개하는 것.“리안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 역시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현석이 내 손등에 입을 맞추려 할 때, 나는 자연스럽게 잔을 들어 피했다.짐승의 입술이 닿는 것조차 소름 끼친다.아연이는 벌써 파티에서 입을 드레스를 고르느라 정신이 없다.그래, 마음껏 치장하렴. 네가 입은 그 드레스가 네 인생의 마지막 수의가 될 테니까.[ 서아연의 시점 : 달콤한 덫의 시작 ]드디어 기회가 왔다.리안이 건넨 자선 파티 티켓은내가 상류층의 ‘진짜 여왕’으로 공인받는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다.리안컴퍼니가 우리를 메인 스폰서로 지목했다는 소문이 돌자,그동안 나를 무시하던 회장댁 사모님들의 태도가 달라졌다.“현석 씨, 봤지? 결국 실력이야. 리안 대표도 내 능력을 인정한 거라고.”나는 거울 앞에서 수천만 원짜리 실크 드레스를 몸에 대보며 웃었다.설주가 살아서 이 꼴을 봤어야 하는데.평생 수수한 정장만 입고 법전만 파던 그 고지식한 여자가 가졌던 모든 명예를,이제 내가 더 화려하게 꽃피우고 있다.현석은 벌써 정관계 인사들에게 돌릴 선물을 준비하느라 바쁘다.우리는 이 파티를 통해 제이엔에스의 결함 논란을완전히 잠재우고 재도약할 것이다.리안이라는 거대 자본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세상은 우리 앞에 무릎 꿇을 테니까.파티장으로
[ 서아연의 시선 : 축복받지 못한 동행 ]설주와 나는 언제나 한 몸처럼 붙어 다녔다.고아원의 눅눅한 침대에서도, 대학 캠퍼스의 푸른 잔디 위에서도.사람들은 우리를 ‘진실한 우정’이라 불렀지만, 내게 그 말은 기만이었다.그녀는 숙주였고, 나는 그녀의 빛을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이었다.설주가 1등을 하면 2등인 나는 그 옆에서 '1등의 친구'로 박수를 받아야 했고,설주가 장현석이라는 유망주와 연애를 시작했을 때나는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는 들러리가 되어야 했다.내 안의 독기가 자라난 건 그때부터였다. 왜 항상 그녀가 먼저여야 할까?왜 나는 그녀가 남긴 찌꺼기 같은 찬사만 감지덕지하며 받아먹어야 하는가.“아연아,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나를 보며 환하게 웃던 설주의 얼굴을 기억한다.그 순진한 미소는 내게 모욕이었다.그녀는 자기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조차 몰랐기에 나를 동정할 수 있었다.그래서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기로 했다.장현석을 유혹하고, 그녀의 법률 지식을 내 사업의 방패막이로 쓰고,결국 그녀를 죽음의 낭떠러지로 밀어버린 것.그것은 우정이라는 이름의 껍데기를 벗어 던진 기생충의 정당한 반란이었다.하지만 지금,내 앞에 나타난 리안이라는 여자의 눈빛에서 설주의 그림자가 보인다.죽여버린 숙주가 유령이 되어 돌아온 것일까.-----------------------------------------------------[ 리안(설주)의 시선 : 껍데기만 남은 우정의 실체 ]아연이는 늘 내 손을 잡고 “우린 가족이야”라고 말했다.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양어머니 해자 씨의 사랑을 아연과 나누려 애썼고,내가 얻은 기회들을 아연에게 연결해 주려 고군분투했다.그것이 우정인 줄 알았다.하지만 지옥에서 돌아와 마주한 진실은 달랐다.아연에게 우정은 기생을 위한 통로였다.그녀는 내 헌신을 양분 삼아 독을 키웠고,내가 가장 취약해진 순간 내 심장에 칼을 꽂았다.장현석과 몸을 섞으며 나를 비웃었을 그녀를 생각하면지금
[ 서아연의 시점: 유리성에서 내려다본 진실 ]고급 레스토랑의 프라이빗 룸. 화려한 샹들리에 조명 아래,나는 리안컴퍼니의 대표 리안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대기업 총수의 딸이자 마케팅 회사의 대표인 나였지만,테이블 너머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을 내뿜는 그녀 앞에서는왠지 모르게 숨이 막혔다.“리안 대표님, 이번 내부 감사는 지나치십니다. 제이엔에스의 가치를 믿고 투자하셨다면, 경영진의 방식도 존중해 주셔야죠.”나는 애써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였다.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했고,내 손가락에는 장현석이 건넨 다이아몬드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나는 완벽한 승리자여야 했다.강설주를 밀어내고 이 자리를 찬탈한, 진정한 여왕이어야 했다.하지만 리안은 대답 대신 우아하게 찻잔을 들어 올렸다.찻잔이 받침대에 부딪히며 내는 맑은 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귓가를 찔렀다.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그 눈빛에 서린 기묘한 경멸을 보는 순간, 내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서아연 대표.”리안의 입술이 열렸다.“가짜 왕관을 쓰니 머리가 무겁나 보군요.남의 것을 훔쳐 와 제 머리에 얹었다고 해서 무수리가 왕비가 되진 않습니다.”“뭐라구요? 지금 말이 너무 심하…!”“모르겠습니까? 당신이 쥐고 있는 장현석, 그리고 그 화려한 배경.내가 마음만 먹으면 한순간에 먼지처럼 날려버릴 수 있는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걸.”리안이 테이블 위로 서류 한 장을 쓱 밀어내밀었다.3년 전 결함 의료기기 사건의 원본 데이터,그리고 아연 마케팅이 그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동원했던 비자금 내역서였다.숨이 멎을 것 같았다.“이, 이걸 어디서…”내 손이 가늘게 떨렸다.왕관이라고 믿었던 것이 내 목을 옥죄는 칼날로 변하는 순간이었다.나를 내려다보는 리안의 눈빛은,과거 고아원 마당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뛰어넘을 수 없었던강설주의 그 압도적인 그림자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리안(강설주)의
# 차시아의 시점 : 우리 아빠는 슈퍼맨 우리 아빠는 조금 특별해요.남들은 무서워하는 큰 병원 원장님이라는데,나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말랑말랑한 ‘슈퍼맨’이거든요.아빠는 내가 부르면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요.오늘 유치원에서 ‘아빠 얼굴 그리기’를 했어요.나는 아빠를 그릴 때 하트 모양 콧구멍을 그려줬어요.아빠는 나를 볼 때 항상 코끝을 찡긋하며 웃어주거든요.엄마는 아빠가 밖에서는 엄청 무서운 사람이라고 하지만, 나는 알아요.아빠가 밤마다 엄마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생했어, 설주 씨” 라고 속삭이는 걸요.“아빠! 시아 왔어요!” 병원 복도를 가로질러 달려가자,하얀 가운을 입은 아빠가 무릎을 굽혀 나를 꽉 안아줬어요.아빠한테서는 언제나 기분 좋은 소독약 냄새와 따뜻한 나무 냄새가 나요.“우리 요정님, 오늘은 유치원에서 무슨 모험을 했나?”아빠의 품에 안기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에요.엄마가 복수(?)라는 무서운 숙제를 하느라 바쁠 때도,아빠는 내 곁에서 항상 ‘시아 전용 슈퍼맨’이 되어줘요.나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차도윤의 시점 : 나의 기적, 나의 구원 시아가 달려와 내 품에 안길 때마다,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한때 피 냄새 가득한 수술실만이 내 세상의 전부였는데,이제는 이 작은 아이의 웃음소리가 내 삶의 배경음악이 되었다.설주를 닮아 눈매가 똑 부러지는 시아는 나의 무장해제 버튼이다.병원 경영과 복수의 뒷수습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다가도,“아빠!” 하고 부르는 시아의 목소리 한 번이면 모든 시름이 씻겨 내려간다.“시아야, 엄마한테는 비밀인데… 아빠가 오늘 요정님 주려고 예쁜 리본 샀어.”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생각한다.만약 그날 밤, 내가 설주를 살려내지 않았다면 이 천사 같은 아이를 만날 수 있었을까.시아는 설주와 나에게 내려진 신의 용서이자, 우리가 살아갈 이유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조수석에서 잠든 시아의 얼굴을 보며 나는 다짐한다.이 아이의 세상에는 어둠이 깃들지 않게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