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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 사라진 서명

Penulis: POTO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9-04 17:44:42

위조 공급업체 승인서에는 내 서명이 세 번 찍혀 있었다.

계약 검토, 샘플 확인, 최종 납품 승인. 나는 그 업체 이름조차 그제야 처음 읽었는데, 문서만 보면 모든 문을 내가 열어 준 셈이었다.

“서은채 씨 서명이 맞습니까?”

감사실장이 물었다. 회의실 한쪽에는 건우와 명희, 맞은편에는 나리가 앉아 있었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제가 한 서명이 아닙니다.”

나리가 곧바로 한숨을 쉬었다.

“형님, 이제 와서 부인하시면 어떡해요?”

“내가 언제 서명했죠?”

“지난달 실무 자료 가져오셨을 때요. 급하다고 먼저 승인해 주셨잖아요.”

“날짜와 장소는?”

“그걸 일일이 기억해요?”

“계약 책임을 묻는 자리라면 기억해야죠.”

나리는 명희를 흘끗 봤다. 명희가 탁자를 두드렸다.

“네가 나리 보조를 자청했잖니. 사고가 나니 모른 척하는 거야?”

“보조를 자청한 적 없습니다. 요청받아 시장 자료를 정리했을 뿐이에요.”

“똑같은 말이지.”

“전혀 다릅니다.”

건우가 낮게 말했다.

“지금 책임 범위를 가리는 중이야. 감정은 빼.”

“좋아. 그러면 기술적으로 보자.”

나는 승인서를 화면에 띄웠다.

나는 내 서명의 마지막 획은 위로 올라가지만 세 장은 모두 아래로 꺾였다고 짚었다. 전자 인증 시각도 새벽 두 시 십 분이었다. 그 시각의 내 계정 접속 기록을 요구했다.

감사실장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서버 점검으로 원기록 일부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공교롭네요. 결재선은요?”

“백 실장 계정에서 상신됐고, 구매본부가 수리했습니다.”

“그런데 왜 최종 책임은 직함도 없다는 제게 옵니까?”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나는 세 번째 승인서의 속성값을 화면에 띄웠다.

세 번째 문서는 내가 응급실에 있던 시각에 작성됐다. 나는 진료 접수와 봉합 처치 기록을 제출하겠다고 했다.

감사실장이 서류를 넘겨받았다.

“전자 서명은 예약 입력도 가능합니다.”

“예약했다는 원기록을 보여 주세요.”

“그 부분은 확인 중입니다.”

“제가 불리한 기록은 확정이고, 유리한 기록은 늘 확인 중이군요.”

건우가 감사실장을 바라봤다. 잠깐 의심이 스친 듯했지만, 그는 끝내 원기록 제출을 명령하지 않았다.

나리가 눈가를 붉혔다.

“저도 피해자예요. 형님이 괜찮은 업체라고 해서 믿었는데.”

“내가 추천했다는 기록을 내놔요.”

“구두로 하셨잖아요.”

“날짜도 기억 못 하면서 말은 기억하네요.”

건우가 나리 앞에 물을 밀어 줬다. 아주 작은 행동이었지만 편은 분명했다.

건우는 납품 전량이 의심받기 전에 내부에서 먼저 수습해야 한다며 내게 협조를 요구했다.

“그래서?”

법무팀장이 얇은 서류를 내밀었다. 제목은 책임 사실 확인서였다. 공급업체 추천과 서명 사용을 내가 인정하고, 회사는 고의가 없었음을 참작한다는 내용이었다.

“서명해 줘.”

건우가 말했다.

“내가 하지 않은 일을 인정하라고?”

건우는 나를 처벌하려는 게 아니라 조사 기간의 외부 대응을 통일하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나리 씨는 왜 안 쓰지?”

“정식 임원이야. 지금 이름이 나오면 재개장 전체가 무너져.”

“나는 무너져도 되고?”

“내가 지킬게.”

그의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그래서 더 참담했다. 나를 벼랑 끝에 세운 사람이 자신이 지켜 주겠다고 믿고 있었다.

“무엇으로?”

“최악의 경우 내가 개인적으로 책임질 거야.”

“명예도 대신 돌려줄 수 있어?”

건우가 입을 다물었다.

회의실 밖에는 진술을 기다리는 창고 직원 둘이 있었다. 그들의 생계까지 이 서명에 걸려 있었다.

“제가 서명하면 저 직원들은 어떻게 됩니까?”

법무팀장이 답했다.

“관리 부실 여부에 따라 징계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승인한 위조품인데 아래에서 못 막았다고 자르겠다는 거네요.”

명희가 냉소했다.

“회사는 책임질 사람이 있어야 굴러가.”

“맞아요. 그래서 진짜 승인자를 찾자는 겁니다.”

사랑 때문에 참아도, 남의 생계를 대가로 침묵할 수는 없었다.

나는 확인서를 천천히 읽었다. 문장마다 책임을 내 쪽으로 미는 장치가 숨어 있었다. 다만 마지막 페이지에는 자료 열람 범위와 첨부 목록이 적혀 있었다.

“사본을 먼저 주세요.”

법무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내부 보안 문서입니다.”

“서명 당사자에게 사본도 안 준다고요?”

“서명하시면 검토하겠습니다.”

나는 펜을 들었다. 나리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건우는 안도한 듯 어깨를 내렸다.

하지만 나는 서명란이 아니라 문서 오른쪽 위에 접수 시각만 적었다.

“필적 확인용으로도 못 쓰겠네요.”

“은채야.”

“정식 감정과 접속 기록 보전 명령이 오면 다시 부르세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 휴대전화를 집었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자동 스캔 기능으로 전 페이지를 촬영해 둔 상태였다.

복도에서 재하에게 암호화 파일을 보냈다.

‘원본 서버 로그 보전 신청. 공급업체 자금 흐름도 함께.’

곧 답이 왔다.

‘이미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결재 첨부물 하나가 이상합니다.’

그가 보낸 화면에는 복제된 내 서명 아래 숨은 이전 승인자가 복원돼 있었다.

최명희. 위조된 내 이름은 누군가를 가리기 위한 덮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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