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의 얼굴에서 한양 서쪽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도 없음을 본 명정대군은 마음속으로 김단이 도대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러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가에 웃음을 지었으나 그 웃음 속에는 경멸이 가득했다.그는 김단이 그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자신의 부모가 직접 그의 앞에 보낸 사냥감이 어찌 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다만 그는 김단이 그를 데리고 간 곳이 연래 차관일 줄은 몰랐다.바로 전에 그들이 약속했지만, 임학에게 서신을 바꿔치기해서 끝내 만나지 못했던 곳이다.차관은 모두 2층으로 되어 있었다. 1층의 대청 중앙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놓여 있었고, 그 위에서는 일 년 내내 가녀가 노래를 부르며, 마술을 부리는 것도 있었다.그러나 오늘날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은 이야기꾼이었다.이야기가 아주 재미있었는지 주위의 다객들은 모두 정신을 집중하여 듣고 있었다.김단과 명정대군은 찻집 심부름꾼의 안내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심부름꾼이 차를 올리자마자, 명정대군의 얼굴색은 변했다.그 이야기꾼이 한 얘기는 다른 사람이 아닌 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설령 이야기 속에 있는 인물의 이름은 그가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라 하더라도, 그는 그 이야기꾼의 입에서 과장되어 보태어 말한 '선천적으로 거세한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즉시 노여움이 가슴에서 솟아오르자, 명정대군은 잔을 떨어뜨리고 탁자를 엎으려 했다.그러나 김단의 목소리가 천천히 들려왔다.“대군자가께서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셈입니다.”명정대군이 어리둥절하더니, 그제야 김단을 다시 바라보았다.그녀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고, 그 두 눈에도 온통 담담한 웃음기가 가득했다.경멸의 웃음기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담담하다!그는 마침내 깨달았다.“이 이야기꾼은 당신이 시킨 것이오?”어쩐지 그녀가 그를 이 차관으로 데리고 온다더니!김단은 부인하지 않고 멀지 않은 곳
만약 마지막에 모든 사람이 이 일을 알게 된다면, 명정대군은 진산군댁과 혼인하기는커녕 가장 권세 있는 영의정댁과 혼인하더라도 평생 다시 한양에 돌아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그때가 되면 명정대군이 한양에 돌아오든 말든지 중요하지 않다.중요한 것은 그의 체면이다. 남자의 존엄성이다!그의 신체가 불완전하다는 것은 절대로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된다.명정대군은 온몸이 떨리고 있었는데, 그 분노는 그의 가슴속에 눌려 감히 조금도 폭발하지 못했다.그러나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당신은 어떻게 알았소?”그의 몸에 결함이 있는 일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김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명정대군은 곧 무엇을 떠올랐다.“세답방에서 어마마마궁으로 간 그 나인인가? 이름이 뭐였지, 유 나인?”그는 어마마마 주변의 사람들만이 그의 일을 알아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김단은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녀는 유 나인을 끌어들일 수 없다.김단은 무표정으로 말했다.“유 나인은 단지 청소하는 나인일 뿐입니다. 대군자가의 이런 사적인 일은 그녀가 알 능력이 없을 것 같습니다.”이 말을 듣자, 명정대군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하찮은 나인까지 그의 일을 모두 알 수 있다면, 그의 일은 이미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지경이 되지 않았겠는가?그러나 유 나인이 아니라면 또 누구였을까?그가 그 당시 다친 비밀을 누가 알 수 있을까?명정대군의 머릿속에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순간 모든 분위기가 가라앉았다.그는 눈썹꼬리를 살짝 치켜세우고 김단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소한인가?”김단은 명정대군이 소한을 상대하는 것이 유 나인을 상대하는 것보다 낫다고 느꼈다.그래서 대답하지 않고 명정대군을 향해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는, 앞에 놓인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이런 행동은 명정대군에게 묵인하는 것으로 비쳤다. 그리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슴은 극도의 분노로 심하게 일렁였다.주위에서 쏟아지는 이상한 눈빛에 그는 화를 참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임원의 말은 김단을 크게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임씨 부인도 깜짝 놀라게 했다.임씨 부인은 김단이 바로 '좋다'고 말할까 봐 걱정했다. 그럼, 나중에 정말 임원을 한양 서쪽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그리하여 김단이 입을 열기도 전에 임씨 부인은 당황하며 말했다.“단이야, 네 여동생이 한 말은 모두 헛소리이다. 절대 마음에 두지 마라. 원이는 단지 명희 그 계집애를 걱정할 뿐이다.”임씨 부인이 이렇게 조급하게 임원을 감싸고 있는 모습과 오늘 직접 자신을 명정대군에게 보내는 모습을 비교해보니, 참으로 우스꽝스러웠다. 김단의 마음속 한기는 점점 짙어졌지만,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희는 지금 내 별당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소. 임 낭자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이 말이 나오자, 임원은 더욱 조급해했다.“상처를 치료하다니오? 무슨 상처 말인지오? 명희가 멀쩡하면 왜 상처를 치료하는 거지오? 언니가 명희를 다치게 한 거 아닌지오?”말하는 사이에 콩알만 한 눈물이 흘러내렸다.김단은 보기 지겨워서, 말했다.“걱정이 되면 나를 따라 보러 가시지요!”말을 마치자, 그들 두 모녀는 더 이상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별당으로 갔다.숙희는 김단의 뒤에 따라오는 임원과 임씨 부인을 보고 놀랐다.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김단이 묻는 것을 들었다.“명희는?”김단의 눈에는 이상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숙희는 곧 알아차리고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명희 낭자는 지금 그녀의 방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소인이 길을 안내하겠습니다.”말을 마치자, 먼저 앞서서 명희가 묵고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임원는 바삐 따라갔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한 계집애가 숙희보다 먼저 자리에 떤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명희의 방 앞에 도착했다.숙희와 김단은 서로를 한 번 보고서야 앞으로 나아가서 문을 두드리려 하는 척했다.그러나, 문을 두드리는 손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는데, 집 안에서 이미 소리가 전해졌다.“명희
말이 끝나자, 임원은 단번에 임씨 부인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안 됩니다! 어머님! 명희를 쫓아내지 마십시오! 그녀는 일부러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김단은 한쪽에 서 이 상황이 매우 웃기게 느껴젔다.“임 낭자의 이 말은 무슨 뜻이오? 설마 내가 명희에게 그렇게 말하라고 가르쳤다는 것이오?”임원은 멍하니 있었다. 얼굴에는 이미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임씨 부인에게 간절히 애원했다.“아닙니다, 전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다만 명희가 아직 어려서 철이 없어서 잘못 말한 것입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나중에 반드시 그녀를 잘 관리하겠습니다! 어머님, 제발, 명희를 쫓아내지 마십시오...”옛날이었으면 임원이 울기만 하면 임씨 부인은 틀림없이 마음이 약해질 것이다.다만 오늘, 명희가 그녀의 마지막 한계를 간드렸는지 임씨 부인의 마음은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시하는 눈빛으로 임원을 자세히 살펴봤다.“단지 시녀일 뿐인데, 원이 네가 왜 이 지경까지 하는 거야?”임씨 부인은 처음으로 시녀 하나를 위해 임원이 너무 많은 것을 했다고 느꼈다.어느 집 주인이 걸핏하면 시녀 하나 때문에 무릎을 꿇고 굽신거리며 애걸복걸하는가?임원은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이 상황을 본 김단은 숙희를 보며 눈짓을 했다.숙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앞으로 나가 명희를 끌고 나가려 했다.“우리 진산군 댁은 너처럼 주인을 몰라보는 천박한 년을 용납할 수 없다!”명희도 갑자기 땅에 무릎을 꿇었다. 한 손은 숙희에게 끌려 있었고, 다른 한 손은 오히려 임원에게 뻗었다.“아씨 살려주세요, 흑흑흑,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아씨 살려주세요!”임원은 명희의 손을 바삐 잡아당겼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숙희가 사람을 데려가는 것을 막았다.그래서 울 힘조차도 없었다.그녀는 흐느끼며 자신의 자태를 조금도 돌보지 않고 매우 보기 흉한 자세로 임씨 부인을 향해 말했다.“어머님, 제발, 명희를 구해주세요! 제가 명희를 잘 타이르겠습니다. 반드시 잘
친여동생?명희가?김단의 눈길은 명희의 몸에 떨어졌고, 임원의 말로 인해 혼란스러웠다.임씨 부인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눈빛에는 충격이 가득하였다.유독 숙희만 이 모든 것을 믿지 않고 크게 소리쳤다.“그럴 리가 없어요! 명희는 우리 아씨와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친자매일 수가 있습니까?”아마 정말 방관자가 더 냉정한 것 같다.숙희가 말하고 나서, 김단은 이제야 명희를 살펴보기 시작했다.그녀의 피부는 하얀데, 명희는 타고난 검은 피부이다.그녀는 큰 눈을 가지고 있지만, 명희는 표준적인 봉안이다.눈만 그런 게 아니다.코, 입, 귀 모양까지도 비슷한 곳이 없었다.임원이 바로 대답했다.“그것은 명희는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명희는 아버지와 거의 똑 닮았고, 언니는...언니는 그녀의 어머니를 닮았습니다.”어머니?김단은 임원을 보고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어머니에 관해서는, 일찍이 임씨 부인을 도와 아이를 낳은 산파를 말하는 것인데, 김단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당시 임씨 부인은 외지에서 놀다가 부주의로 넘어져 조산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부근 마을에서 이미 배가 부른 산파를 급히 찾았다는 말을 들었다.임씨 부인도 그 산파를 본 적이 없없다.왜냐하면 산파가 왔을 때, 그녀는 이미 기절했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그 산파는 온 힘을 다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의 배를 힘껏 눌러서 아이를 받았다고 한다.산파도 그녀를 구하기 위해 태기를 건드려 그날 밤에 출산했다고 한다.이 일을 떠올리자 임씨 부인의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뒤엉켰다. 그 산파는 분명히 그녀의 생명을 구해 주었기에, 당시 임씨 부인은 크게 감격하여 많은 사례금을 남겼다. 그러나 그 산파가 바로 그녀와 친딸을 15년 동안이나 떨어지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다만, 그때 임씨 부인과 산파는 서로 몸을 풀고 있었기에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산파의 남편은 한 번 문발을 사이에 두고 그녀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피부가 거무스름하고
임씨 부인은 일이 매우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임원은 오히려 울부짖기 시작했다.“모두 제 잘못입니다! 제가 부모님을 속였습니다. 어머님께서 벌을 내려주세요!”말을 마치자, 임씨 부인에게 절을 했다.그러나 아마도 임씨 부인이 여전히 혼란스러워서 그런지 평소처럼 임원을 부축하지 않았다.그리하여 임원은 계속 머리를 땅에 닿는 자세로 무릎을 꿇었고 몸은 너무 울어서 덜덜 떨었다.이 상황을 본 명희는 빨리 임원 곁으로 달려가 같이 무릎을 꿇었다.“마님, 아씨는 소인을 보호하기 위해 마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마님께서 탓하려면 소인을 탓하십시오! 절대 아씨에게 화내지 마십시오!”이렇게 말하고는 절하기 시작했다.“모두 소인의 잘못입니다! 마님께서 아씨를 용서해 주십시오!”말 한마디마다 절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다친 이마에서 피가 났다.이 장면을 본 임씨 부인은 자신의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왠지 모르게 그녀는 천천히 김단을 바라보았다.김단은 곧바로 임씨 부인의 뜻을 알아차리고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천천히 말했다.“오늘 임 낭자가 한 말은 확실히 너무 믿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임 낭자와 명희가 모두 다친 와중에 먼저 돌아가서 쉬는 게 낫지 않을까요?”임원도 명희를 위해 사정하는 바람에 이마에 피가 보였다.김단의 말을 듣고서야 임씨 부인은 비로소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침내 앞으로 다가가 임원을 일으켜 세웠다.“일어나거라, 너도 고생이 많다. 난 네가 선량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됐다, 먼저 돌아가서 쉬거라.”임씨 부인의 태도는 예전보다 다소 차가워졌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눈빛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임원도 마음속으로 조금 불안했지만, 이 순간 더 이상 함부로 말해서 임씨 부인을 기분 나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고 명희를 끌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그런데 문앞에 도착하자마자, 김단이 갑자기 불렀다.“잠깐만!”그녀의 목소리는 담담
이튿날 아침.김단은 한바탕 몸치장을 마친 후에서야 앉아서 아침밥을 먹었다.숙희가 김단을 모시러 다가오고는 시종일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그래서 김단은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물었다.“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즐겁느냐?”“아닙니다!”숙희는 한사코 부인했지만, 밖에 서 있는 시녀들을 한번 보고 나서야 목소리를 낮추었다.“명희는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예상했던 대로다.김단은 눈썹 끝을 살짝 치켜세웠다.“네가 못 먹게 했느냐?”“그럴 리가요! 소인은 좋다는 물건은 다 명희에게 보냈습니다!”바로 숙희가 너무 좋은 것을 보냈기 때문에, 명희는 감히 먹지 못한 것이다!김단은 냉소하며 말을 받지 않았다.그러나 숙희는 오히려 얼굴을 가라앉혔다.“아씨는 정말 명희가 아씨의 친여동생이라고 생각하십니까?”어제 둘째 아씨가 말한 것에 대해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쩍었다.김단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상관없어. 이 일은 누군가가 반드시 조사할 것이다.”임씨 부인은 반드시 이 일을 밝혀낼 것이다.그러나 명희가 친여동생이 맞든 틀리든, 그녀는 명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친여동생 신분만 있으면 무사할 줄 알았는가?그렇다면, 이 친여동생이 자기의 별당에서 하룻밤이라도 편안하게 잘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그러나, 김단의 대답을 듣고, 숙희는 오히려 약간 실망했다.“소인은 아씨가 오늘 이렇게 일찍 일어나, 바로 이 일을 조사하러 가려는 줄 알았습니다!”김단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오늘 다른 곳에 갈 예정이야.”김단은 오늘 덕빈마마께서 주신 가게를 검수하러 가려 한다.그곳은 한양에서 가장 유명한 기성복 가게로, 종종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양식과 옷감이 있었다.물론 가격도 엄청났다.김단은 오늘 첫째로 가게의 가게 관리자와 심부름꾼한테 그녀가 새 주인이란 것을 알리는 것이고, 둘째는 이 가게가 1년에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지 보려는 것이다.가끔, 돈이 있는 것도 일종의 저력이다.그런데, 때마침
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왜냐하면 눈앞의 여자는 다름이 아닌, 바로 그해에 그녀를 세답방에 보냈고, 또 세답방의 여러 나인에게 그녀를 꼬박 3년 동안 모욕하도록 명령한 장본인이다!서원 공주!하지만 서원 공주는 전혀 자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김단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그제야 물었다.“넌 지금 내가 사람이 아니라고 욕하는 거냐?”김단은 그녀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한 이상 자신도 그녀를 아는 척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리하여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아씨, 화를 내지 마십시오. 저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다만 저희 장사하는 사람들은 신용이 근본이라는 겁니다.”서원 공주는 여전히 눈썹을 치켜세우며 시큰둥한 눈빛으로 물었다. “넌 누구냐?”김단은 그제야 서원 공주를 향해 걸어갔다. 옷소매에서 어제 덕빈마마께서 주신 땅문서를 꺼내 가게 관리자에게 건네주었다.“저는 어제서야 이 가게를 접수했습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저는 이 가게의 주인입니다.”가게 관리자는 땅문서를 보고, 비록 왜 이 땅문서가 김단의 손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김단이 나선 이상, 그는 더 이상 나서지 않고 그저 연거푸 고개만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 주인이십니다!”“그럼 잘됐네!”서원 공주는 차가운 소리로 웃었다.“그 천잠사 치마를 꺼내거라!”김단이 가게 관리자를 한 번 보더니, 그는 바쁘게 말했다.“그 치마는 반년 전에 다른 사람에게 팔았습니다.”말하는 사이에, 옆에 있는 심부름꾼한테 장부 한 권을 건네주라 했다.김단이 장부를 열어보니, 사는 사람이 소한이었다.그녀는 눈빛이 어두워지자, 바로 장부를 닫았고, 그제야 서원 공주를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아씨, 이 옷은 확실히 이미 팔았습니다. 아씨가 여기서 우리랑 따져도 소용없습니다. 차라리 산 사람을 찾아가서 상의하고 이 치마를 아씨에게 양보하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서원 공주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산 사람이 누구인가?”“소
김단은 맹영지를 소하가 있는 곳으로 보게 하였다.허나 맹영지는 반응이 느리고,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에 소하를 바라보지 않았다.“소하라고 하는 사내입니다. 기억하십니까?”김단은 여전히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허나 소하의 이름을 들어도, 맹영지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이러한 그녀의 모습에 소하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이리 상황이 좋지 않을 줄은 몰랐소.”김단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소하 오라버니께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하여 낭자를 보살 피겠나이다.”곧이어 소하의 시선이 김단을 향했다.찌푸린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인가.사실 그는 맹영지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눈앞의 감회는 그저 오늘날과 이전의 다름에서 온 것이라 말할까,마음에는 김단의 안위만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생각 하지 말라고 말할까.헌데 만일 그녀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면, 할 말이 없지 않은가.소하는 여러 생각에 휘잡혔다.허나 생각했던 말은 내뱉지 않았다.“중전 마마께서 낭자와 맹 낭자를 처소로 들이시는 것은, 분명 다른 생각이 있으실 것이오.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소?”김단이 고개를 저었다.“사실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나이다.어쩌면 맹 씨 집안 때문이 아니겠습니까?”“어찌 되었든 간에, 낭자가 중전의 처소로 들어갔으니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과 같소. 항상 조심해야 하오.”“소하 오라버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제게는 오라버니께서 가르쳐 주신 방도가 있지 않사옵니까.”그녀의 말에 소하가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지었다.“돌을 은침으로 대신하여, 민대부를 반나절 동안 아우성치게 하지 않았소.”“반나절이라니요, 반 시진도 가지 못했나이다!”김단은 소문이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소하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그래도 큰 인물이 되지 않았는 가.”“스승이 잘 가르쳐 준 덕분입니다.”김단은 서로 치켜세우는 상황에 웃음을 터트렸다.“중전 마마께서 기다리
해가 서쪽 하늘에 기울 무렵, 김단이 맹영지를 데리고 궁으로 들어갔다. 경씨가 옆에 서있었다.그의 얼굴에는 염려가 가득했다. 허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전하가 김단에게 맹영지와 함께 궁으로 들라는 명을 내리지 않았는 가.만일 대군께서 한양에 계셨다면 막을 수 있었을 터, 한낱 마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궁궐은 워낙 넓고, 궐 안의 금군 중에는 무예가 뛰어난 자들이 넘쳐 난다.더하여 내각에는 임금을 지키는 호위들이 따로 존재한다.자신이 몰래 궁에 들어가 낭자를 지키려 든다면, 날이 밝기도 전에 역적이라 오해를 받아 온몸이 찢길지도 모른다.김단은 경씨의 표정을 보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경씨 도령, 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제 몸 하나는 제가 잘 챙길 수 있사옵니다.하물며 소하 오라버니는 금군의 총령이니, 만일 무슨 일이 생기게 되어도 도움을 청할 수 있나이다.”경씨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부디 조심하시오.”경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숙희가 붉은 눈가를 한 채로 입을 열었다.“아씨, 노비는 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옵니까?”숙희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그저 김단과 함께 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을 줄 수 없다 하여도 자신이 뒤집어쓸 수 있지 않은가.허나 김단은 만일 하나 일이 생겨도, 숙희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그저 작은 의녀에 불과해.중궁전에 거처하면서 내 몸종까지 데려간다 하면, 중전의 사람을 꺼려 한다면서 입을 놀릴 것이야.”숙희는 어렴풋이 그저 둘러대는 것일 뿐이라 느껴졌다.허나 반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궁 안의 규칙이 수도 없이 많은 탓에,진정 구설수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은 가.혹여 자신이 아씨를 해할 수도 있지 않은가.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숙희는 참을 수 밖에 없었다.뜬 눈으로 김단이 맹영지와 함께 궁궐 문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양쪽으로 큰 성벽이 둘러쌓여 있어,알 수 없는 압박감에 맹영지가 긴장을 했다.그녀의 두 손은 김단의 팔을 꼭
“황공하옵니다, 마마.”향 하나를 다 피우고 나서야, 김단은 중전의 처소를 떠났다.그리고 서아름을 살피기 위해, 복화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서아름은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많이 말라 있었다.안색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허나 자신의 나인 앞에서는 이따금 지친 기색을 보였다.마치 나인에게 곧 죽을 사람처럼 행실 하곤 했다.다행히도 나인은 눈치가 없었다.하루 종일 놀기만 하고, 서아름을 살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그 덕에 서아름도 마음이 편했다.김단을 보자 서아름이 서둘러 그녀를 배웅했다.“의녀께서 오셨나이까! 어서, 안으로 들이시옵소서!”김단은 서아름에 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물을 따라 주었다.“다 의녀의 덕분이옵니다. 근래에 걸음걸이도 훨씬 가벼워졌나이다!”사람의 몸은 아프지 않아야, 건강하다는 것을 인지 할 수 있다.낮에는 정신이 또렷하고, 밤에는 편히 잘 수 있었다.허나, 김단의 안색이 그녀와 반대로 어두웠다.“오늘 날, 전하께서 중전 마마를 옆에 두시고 숙원 마마의 상태에 대해 여쭈셨나이다.소신은 전하께 마마의 몸이 연약하지만,아이는 무탈하다 아뢰었사옵니다.”서아름이 움찔했다.그녀는 덕빈을 오랜 시간 시중을 든 사람이다.어찌 김단의 뜻을 모를 수 있는 가.자신은 살지 못하지만, 아이는 살 수 있다는 뜻이다.서아름은 한참을 움직이지 않다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이만 무탈하면 돼옵니다. 소인은 그저 덕빈께 아이 하나만 남겨두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아이만 무탈하면, 제 미천한 목숨 하나가 중요하겠나이까.”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그녀는 서아름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아이와 그녀의 목숨은 똑같은 것이라고.사람의 목숨에는 신분이 없듯이, 미천한 목숨이라는 것은 없다.더하여 귀식환 제조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제조에 성공만 하면, 서아름을 궁에서 떠나 새로운 삶을 보낼 수 있었다.허나 김단은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귀식환 제조를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실패로 돌아간다
김단은 중전의 뜻을 금방 알아챘다.중전이 서아름을 해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 뱃속의 아이 때문이었다.만일 김단이 아이가 무탈하다 말했다가, 훗날 서아름이 아이와 함께 목숨을 잃게 되면, 임금이 그녀를 의심할 것이 뻔하다.중전은 김단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김단은 시선을 거두었다.고개를 숙인채, 자신의 발만 쳐다보며 말했다.“중전 마마께서 내려주신 귀한 보약 덕에, 숙원 마마의 태아는 무탈 하옵니다. 숙원 마마께서 끝까지 버텨내신다면, 태중의 용태는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옵니다!”김단의 말에도 중전의 살기 서린 눈빛은 여전했다.허나 임금은 만족한 듯, 미소가 짙어졌다.그는 뒤를 돌아 중전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손을 잡고는 다정하게 말했다.“다 중전 덕분이오.”중전은 살기 서린 눈빛은 온데간데 없고,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임금의 칭찬에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주상께서 후궁의 일을 신첩에게 맡기셨으니, 어찌 주상의 근심을 덜어드리지 않겠사옵니까.”“잘하셨소!”곧이어 임금은 몸을 뒤로 옮기더니, 중전의 귓가에 속삭거렸다.중전이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기다리고 있겠나이다.”“하하하, 알겠소.”임금은 그제야 손을 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짐은 아직 정사가 남았소, 자네는 중전 곁에서 말동무를 해주시오.”뒷부분은 김단을 향한 말이었다.김단은 예, 라 대답하며 임금을 배웅했다.임금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중전이 김단을 바라보았다.쌀쌀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의녀는 주상의 총애를 받아 자신의 주관이 뚜렷 해지셨소.”중전의 말투에 김단의 심장이 철렁했다.김단은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부디 중전 마마께서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소신은 마마를 위함이었나이다.”그녀의 말에 중전이 코웃음을 쳤다.그제야 천천히 물어보았다.“말해 보시오.”“부디 마마께서 깊이 헤아려 보시옵소서. 전하께서 후손을 이토록 중히 여기시거늘, 만일 소신이 숙원 마마의 태중이 위태롭다 아뢰
임금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수고가 많았다.”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전이 입을 열었다.“전하, 신첩 또한 의녀가 수고가 많다 생각하옵니다. 영지를 돌보시는 것도 벅차신데, 궁중의 후궁들까지 살펴야 하시니 말이옵니다. 차라리 영지를 신첩의 처소로 옮겨 이곳에서 돌보게 하는것이 어떠하옵니까? 의녀는 본디 평양 대군의 관저에 임시로 거처 중이시고, 그런 곳에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체면상 온당치 않은듯하여 감히 아뢰옵니다.”평양 대군 관저에 김단은 손님에 불과하다.어찌 손님이 손님을 데려갈 수 있단 말인 가.하물며 맹 씨 집안의 자녀가 평양 대군 관저에 머무는 것에 대해 소문이 퍼질지도 모른다.임금도 같은 생각이다.맹영지를 중전의 처소에 머물게 하는 것이, 평양 대군의 관저에 머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중전은 맹영지의 친 고모이며, 처소에서 병을 돌보는 것이 수월하지 않은가.허나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허나 맹 가의 계집은 이 자만 알아본다 하지 않았소? 만일 이곳으로 옮겨,소란을 피우게 된다면 중전의 병세를 더욱 악화 시킬지도 모르오.”임금은 중전을 걱정하고 있었다.다정한 말투에 중전의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의녀도 처소로 옮겨와 머물면 되지 않겠나이까.”맹영지가 알아보는 사람이 김단 뿐 이라면, 김단을 중전의 처소에 머무르게 하면 되지 않는가.그녀의 말에 김단의 얼굴이 굳어졌다.중전의 자신의 제안이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그리하면 의녀도 수고를 덜 하겠지 않나이까.”임금도 중전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곧이어 김단을 향해 물었다.“자네는 어찌 생각하는 가?”김단은 내키지 않았다.궁중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허나 김단은 공주의 사람이다.공주와 중전이 같은 편이니, 중전의 제안을 감히 거스를 수는 없었다.곧이어 절을 하고 말했다.“중전마마의 각별한 보살핌에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그녀의 대답은 다른 자가 듣기에는,중전의 제안에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옆에
김단의 미소를 보아도, 맹 씨 부인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맹 씨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서, 어찌 김단의 속과 겉이 다르다는 것을 모를 수 있겠는 가.비록 미소를 짓는 모습이 온화하기 그지없지만, 자칫하면 그들을 물어 집안을 피바다로 만들 수 있었다.또한 김단의 뒤를 봐주는 자들은, 감히 그들이 거들떠도 보지 못하는 인물들이 아닌가.오늘 김단은 말리려고 하지도 않았다.오히려 맹 씨 집안의 체면을 고려하여, 그녀가 맹영지를 데려가지 않은 것이다.이러한 생각에 맹 씨 부인은 답답함을 느꼈다.허나 김단을 향해 미소를 짓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맹 씨 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김단의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곧이어 숙희가 김단의 곁으로 다가갔다.목소리를 낮추고는 물었다.“맹 아씨의 친 모친이옵니다. 어찌 친 딸을 해하겠나이까, 혹여 아씨께서 너무 깊게 염려를 하신 것이 아니옵니까.”“내가 그 생생한 본보기가 아니더냐.조금만 생각하면 알게 되는 법이지.”김단은 말하면서 맹영지에게 시선을 돌렸다.맹영지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금색의 계화 꽃잎이 떨어지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고개를 숙여 자신의 치마를 바라보았다.만일 맹 씨 부인이 ‘맹영지의 상황이 이리 심각할 줄 몰랐다’ 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김단이 직접 맹영지를 맹 씨 집안의 마차로 올려 보냈을 지도 모른다.자신의 피가 흐르는 친 자식을, 어찌 사, 오 년 동안 상황을 몰랐던 것일까.마치 그녀가 세답방에 버려지고, 삼 년 동안 어떠한 안부도 묻지 않는 그 자들과 같은 모습과 같았다.허나, 정승댁은 세답방이 아니다.맹영지는 노비가 아닌 그저 댁의 맏며느리가 되기 위해 정승댁으로 향한 것이다.어찌 친부모가 되어 아무것도 모를 수 있겠는 가.더하여 중전이 독이 맹 씨 집안의 소행이라 의심을 품고 있는 중이다.오히려 정승댁이 맹 씨 집안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겉으로는 물러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한 수 앞을 보아 맹영지를 이곳에 머무르게 한
맹 부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손을 거두고 두려운 표정으로 맹영지를 바라보았다.“어찌 이럴 수 있으십니까?”무언가 떠오른 것 마냥 김단을 향해 바라보았다.“의녀, 영지가..”김단은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곧이어 맹영지의 곁으로 다가갔다.“다 나았나이다.”그녀의 한 마디에 맹영지는 천천히 진정을 되찾았다.두려운 눈빛이 점차 평온해졌다.맹 씨 부인은 이러한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곧이어 김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낭자께서는 소인만 알아볼 수 있으십니다. 다른 이들이 다가간다 하여도,밀쳐 내실 겁니다. 부인도 똑같이 밀쳐 내실 것이옵니다. 제 몸종도 낭자에게 긁혀 손에 상처를 입었나이다.”김단의 말이 끝나자마자, 숙희가 맹 씨 부인에게 손을 보여 주었다.어제 맹영지에게 긁혀 생긴 상처였다.다행히도 김단의 설득 아래,맹영지는 드디어 숙희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그제야 그녀의 시중을 들게 해 주었다.김단의 말에 맹 씨 부인의 얼굴이 굳어졌다.“오늘 데려 가지 못한다는 뜻이옵니까?”“아니옵니다.”김단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소인은 그저 맹 낭자께서 이곳에 계시는 게 나을 듯 하옵니다. 허나, 낭자께서는 맹 씨 집안의 자식이 아니 옵니까. 부인의 뜻을 따르겠나이다.”데려 가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뜻이다.현재의 맹영지의 상황으로 보아, 억지로 데려 가는 수 밖에 없었다.부모가 되어 어찌 자식에게 좋지 않은 선택을 한단 말인 가.맹 씨 부인은 어찌 할 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대감이 맹영지를 데려오라고 신신당부했었다.허나 이 상황에 평양 대군 관저의 문을 나갈 수 있다 한들,맹영지가 소리치는 모습에 다른 이들이 소문을 퍼트릴 수 있다.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의녀께서는 높은 의술을 가지고 계시라 믿나이다. 혹여 영지를 잠재울 수 있는 수가 있사옵니까?”‘잠’ 이라 했지만, 사실 기절을 시킬 수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그리해야 조용히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김단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인에게 약은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