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마지막에 모든 사람이 이 일을 알게 된다면, 명정대군은 진산군댁과 혼인하기는커녕 가장 권세 있는 영의정댁과 혼인하더라도 평생 다시 한양에 돌아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그때가 되면 명정대군이 한양에 돌아오든 말든지 중요하지 않다.중요한 것은 그의 체면이다. 남자의 존엄성이다!그의 신체가 불완전하다는 것은 절대로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된다.명정대군은 온몸이 떨리고 있었는데, 그 분노는 그의 가슴속에 눌려 감히 조금도 폭발하지 못했다.그러나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당신은 어떻게 알았소?”그의 몸에 결함이 있는 일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김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명정대군은 곧 무엇을 떠올랐다.“세답방에서 어마마마궁으로 간 그 나인인가? 이름이 뭐였지, 유 나인?”그는 어마마마 주변의 사람들만이 그의 일을 알아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김단은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녀는 유 나인을 끌어들일 수 없다.김단은 무표정으로 말했다.“유 나인은 단지 청소하는 나인일 뿐입니다. 대군자가의 이런 사적인 일은 그녀가 알 능력이 없을 것 같습니다.”이 말을 듣자, 명정대군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하찮은 나인까지 그의 일을 모두 알 수 있다면, 그의 일은 이미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지경이 되지 않았겠는가?그러나 유 나인이 아니라면 또 누구였을까?그가 그 당시 다친 비밀을 누가 알 수 있을까?명정대군의 머릿속에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순간 모든 분위기가 가라앉았다.그는 눈썹꼬리를 살짝 치켜세우고 김단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소한인가?”김단은 명정대군이 소한을 상대하는 것이 유 나인을 상대하는 것보다 낫다고 느꼈다.그래서 대답하지 않고 명정대군을 향해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는, 앞에 놓인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이런 행동은 명정대군에게 묵인하는 것으로 비쳤다. 그리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슴은 극도의 분노로 심하게 일렁였다.주위에서 쏟아지는 이상한 눈빛에 그는 화를 참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임원의 말은 김단을 크게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임씨 부인도 깜짝 놀라게 했다.임씨 부인은 김단이 바로 '좋다'고 말할까 봐 걱정했다. 그럼, 나중에 정말 임원을 한양 서쪽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그리하여 김단이 입을 열기도 전에 임씨 부인은 당황하며 말했다.“단이야, 네 여동생이 한 말은 모두 헛소리이다. 절대 마음에 두지 마라. 원이는 단지 명희 그 계집애를 걱정할 뿐이다.”임씨 부인이 이렇게 조급하게 임원을 감싸고 있는 모습과 오늘 직접 자신을 명정대군에게 보내는 모습을 비교해보니, 참으로 우스꽝스러웠다. 김단의 마음속 한기는 점점 짙어졌지만,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희는 지금 내 별당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소. 임 낭자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이 말이 나오자, 임원은 더욱 조급해했다.“상처를 치료하다니오? 무슨 상처 말인지오? 명희가 멀쩡하면 왜 상처를 치료하는 거지오? 언니가 명희를 다치게 한 거 아닌지오?”말하는 사이에 콩알만 한 눈물이 흘러내렸다.김단은 보기 지겨워서, 말했다.“걱정이 되면 나를 따라 보러 가시지요!”말을 마치자, 그들 두 모녀는 더 이상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별당으로 갔다.숙희는 김단의 뒤에 따라오는 임원과 임씨 부인을 보고 놀랐다.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김단이 묻는 것을 들었다.“명희는?”김단의 눈에는 이상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숙희는 곧 알아차리고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명희 낭자는 지금 그녀의 방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소인이 길을 안내하겠습니다.”말을 마치자, 먼저 앞서서 명희가 묵고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임원는 바삐 따라갔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한 계집애가 숙희보다 먼저 자리에 떤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명희의 방 앞에 도착했다.숙희와 김단은 서로를 한 번 보고서야 앞으로 나아가서 문을 두드리려 하는 척했다.그러나, 문을 두드리는 손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는데, 집 안에서 이미 소리가 전해졌다.“명희
말이 끝나자, 임원은 단번에 임씨 부인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안 됩니다! 어머님! 명희를 쫓아내지 마십시오! 그녀는 일부러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김단은 한쪽에 서 이 상황이 매우 웃기게 느껴젔다.“임 낭자의 이 말은 무슨 뜻이오? 설마 내가 명희에게 그렇게 말하라고 가르쳤다는 것이오?”임원은 멍하니 있었다. 얼굴에는 이미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임씨 부인에게 간절히 애원했다.“아닙니다, 전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다만 명희가 아직 어려서 철이 없어서 잘못 말한 것입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나중에 반드시 그녀를 잘 관리하겠습니다! 어머님, 제발, 명희를 쫓아내지 마십시오...”옛날이었으면 임원이 울기만 하면 임씨 부인은 틀림없이 마음이 약해질 것이다.다만 오늘, 명희가 그녀의 마지막 한계를 간드렸는지 임씨 부인의 마음은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시하는 눈빛으로 임원을 자세히 살펴봤다.“단지 시녀일 뿐인데, 원이 네가 왜 이 지경까지 하는 거야?”임씨 부인은 처음으로 시녀 하나를 위해 임원이 너무 많은 것을 했다고 느꼈다.어느 집 주인이 걸핏하면 시녀 하나 때문에 무릎을 꿇고 굽신거리며 애걸복걸하는가?임원은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이 상황을 본 김단은 숙희를 보며 눈짓을 했다.숙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앞으로 나가 명희를 끌고 나가려 했다.“우리 진산군 댁은 너처럼 주인을 몰라보는 천박한 년을 용납할 수 없다!”명희도 갑자기 땅에 무릎을 꿇었다. 한 손은 숙희에게 끌려 있었고, 다른 한 손은 오히려 임원에게 뻗었다.“아씨 살려주세요, 흑흑흑,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아씨 살려주세요!”임원은 명희의 손을 바삐 잡아당겼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숙희가 사람을 데려가는 것을 막았다.그래서 울 힘조차도 없었다.그녀는 흐느끼며 자신의 자태를 조금도 돌보지 않고 매우 보기 흉한 자세로 임씨 부인을 향해 말했다.“어머님, 제발, 명희를 구해주세요! 제가 명희를 잘 타이르겠습니다. 반드시 잘
친여동생?명희가?김단의 눈길은 명희의 몸에 떨어졌고, 임원의 말로 인해 혼란스러웠다.임씨 부인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눈빛에는 충격이 가득하였다.유독 숙희만 이 모든 것을 믿지 않고 크게 소리쳤다.“그럴 리가 없어요! 명희는 우리 아씨와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친자매일 수가 있습니까?”아마 정말 방관자가 더 냉정한 것 같다.숙희가 말하고 나서, 김단은 이제야 명희를 살펴보기 시작했다.그녀의 피부는 하얀데, 명희는 타고난 검은 피부이다.그녀는 큰 눈을 가지고 있지만, 명희는 표준적인 봉안이다.눈만 그런 게 아니다.코, 입, 귀 모양까지도 비슷한 곳이 없었다.임원이 바로 대답했다.“그것은 명희는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명희는 아버지와 거의 똑 닮았고, 언니는...언니는 그녀의 어머니를 닮았습니다.”어머니?김단은 임원을 보고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어머니에 관해서는, 일찍이 임씨 부인을 도와 아이를 낳은 산파를 말하는 것인데, 김단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당시 임씨 부인은 외지에서 놀다가 부주의로 넘어져 조산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부근 마을에서 이미 배가 부른 산파를 급히 찾았다는 말을 들었다.임씨 부인도 그 산파를 본 적이 없없다.왜냐하면 산파가 왔을 때, 그녀는 이미 기절했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그 산파는 온 힘을 다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의 배를 힘껏 눌러서 아이를 받았다고 한다.산파도 그녀를 구하기 위해 태기를 건드려 그날 밤에 출산했다고 한다.이 일을 떠올리자 임씨 부인의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뒤엉켰다. 그 산파는 분명히 그녀의 생명을 구해 주었기에, 당시 임씨 부인은 크게 감격하여 많은 사례금을 남겼다. 그러나 그 산파가 바로 그녀와 친딸을 15년 동안이나 떨어지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다만, 그때 임씨 부인과 산파는 서로 몸을 풀고 있었기에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산파의 남편은 한 번 문발을 사이에 두고 그녀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피부가 거무스름하고
임씨 부인은 일이 매우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임원은 오히려 울부짖기 시작했다.“모두 제 잘못입니다! 제가 부모님을 속였습니다. 어머님께서 벌을 내려주세요!”말을 마치자, 임씨 부인에게 절을 했다.그러나 아마도 임씨 부인이 여전히 혼란스러워서 그런지 평소처럼 임원을 부축하지 않았다.그리하여 임원은 계속 머리를 땅에 닿는 자세로 무릎을 꿇었고 몸은 너무 울어서 덜덜 떨었다.이 상황을 본 명희는 빨리 임원 곁으로 달려가 같이 무릎을 꿇었다.“마님, 아씨는 소인을 보호하기 위해 마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마님께서 탓하려면 소인을 탓하십시오! 절대 아씨에게 화내지 마십시오!”이렇게 말하고는 절하기 시작했다.“모두 소인의 잘못입니다! 마님께서 아씨를 용서해 주십시오!”말 한마디마다 절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다친 이마에서 피가 났다.이 장면을 본 임씨 부인은 자신의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왠지 모르게 그녀는 천천히 김단을 바라보았다.김단은 곧바로 임씨 부인의 뜻을 알아차리고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천천히 말했다.“오늘 임 낭자가 한 말은 확실히 너무 믿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임 낭자와 명희가 모두 다친 와중에 먼저 돌아가서 쉬는 게 낫지 않을까요?”임원도 명희를 위해 사정하는 바람에 이마에 피가 보였다.김단의 말을 듣고서야 임씨 부인은 비로소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침내 앞으로 다가가 임원을 일으켜 세웠다.“일어나거라, 너도 고생이 많다. 난 네가 선량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됐다, 먼저 돌아가서 쉬거라.”임씨 부인의 태도는 예전보다 다소 차가워졌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눈빛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임원도 마음속으로 조금 불안했지만, 이 순간 더 이상 함부로 말해서 임씨 부인을 기분 나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고 명희를 끌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그런데 문앞에 도착하자마자, 김단이 갑자기 불렀다.“잠깐만!”그녀의 목소리는 담담
이튿날 아침.김단은 한바탕 몸치장을 마친 후에서야 앉아서 아침밥을 먹었다.숙희가 김단을 모시러 다가오고는 시종일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그래서 김단은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물었다.“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즐겁느냐?”“아닙니다!”숙희는 한사코 부인했지만, 밖에 서 있는 시녀들을 한번 보고 나서야 목소리를 낮추었다.“명희는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예상했던 대로다.김단은 눈썹 끝을 살짝 치켜세웠다.“네가 못 먹게 했느냐?”“그럴 리가요! 소인은 좋다는 물건은 다 명희에게 보냈습니다!”바로 숙희가 너무 좋은 것을 보냈기 때문에, 명희는 감히 먹지 못한 것이다!김단은 냉소하며 말을 받지 않았다.그러나 숙희는 오히려 얼굴을 가라앉혔다.“아씨는 정말 명희가 아씨의 친여동생이라고 생각하십니까?”어제 둘째 아씨가 말한 것에 대해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쩍었다.김단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상관없어. 이 일은 누군가가 반드시 조사할 것이다.”임씨 부인은 반드시 이 일을 밝혀낼 것이다.그러나 명희가 친여동생이 맞든 틀리든, 그녀는 명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친여동생 신분만 있으면 무사할 줄 알았는가?그렇다면, 이 친여동생이 자기의 별당에서 하룻밤이라도 편안하게 잘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그러나, 김단의 대답을 듣고, 숙희는 오히려 약간 실망했다.“소인은 아씨가 오늘 이렇게 일찍 일어나, 바로 이 일을 조사하러 가려는 줄 알았습니다!”김단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오늘 다른 곳에 갈 예정이야.”김단은 오늘 덕빈마마께서 주신 가게를 검수하러 가려 한다.그곳은 한양에서 가장 유명한 기성복 가게로, 종종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양식과 옷감이 있었다.물론 가격도 엄청났다.김단은 오늘 첫째로 가게의 가게 관리자와 심부름꾼한테 그녀가 새 주인이란 것을 알리는 것이고, 둘째는 이 가게가 1년에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지 보려는 것이다.가끔, 돈이 있는 것도 일종의 저력이다.그런데, 때마침
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왜냐하면 눈앞의 여자는 다름이 아닌, 바로 그해에 그녀를 세답방에 보냈고, 또 세답방의 여러 나인에게 그녀를 꼬박 3년 동안 모욕하도록 명령한 장본인이다!서원 공주!하지만 서원 공주는 전혀 자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김단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그제야 물었다.“넌 지금 내가 사람이 아니라고 욕하는 거냐?”김단은 그녀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한 이상 자신도 그녀를 아는 척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리하여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아씨, 화를 내지 마십시오. 저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다만 저희 장사하는 사람들은 신용이 근본이라는 겁니다.”서원 공주는 여전히 눈썹을 치켜세우며 시큰둥한 눈빛으로 물었다. “넌 누구냐?”김단은 그제야 서원 공주를 향해 걸어갔다. 옷소매에서 어제 덕빈마마께서 주신 땅문서를 꺼내 가게 관리자에게 건네주었다.“저는 어제서야 이 가게를 접수했습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저는 이 가게의 주인입니다.”가게 관리자는 땅문서를 보고, 비록 왜 이 땅문서가 김단의 손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김단이 나선 이상, 그는 더 이상 나서지 않고 그저 연거푸 고개만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 주인이십니다!”“그럼 잘됐네!”서원 공주는 차가운 소리로 웃었다.“그 천잠사 치마를 꺼내거라!”김단이 가게 관리자를 한 번 보더니, 그는 바쁘게 말했다.“그 치마는 반년 전에 다른 사람에게 팔았습니다.”말하는 사이에, 옆에 있는 심부름꾼한테 장부 한 권을 건네주라 했다.김단이 장부를 열어보니, 사는 사람이 소한이었다.그녀는 눈빛이 어두워지자, 바로 장부를 닫았고, 그제야 서원 공주를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아씨, 이 옷은 확실히 이미 팔았습니다. 아씨가 여기서 우리랑 따져도 소용없습니다. 차라리 산 사람을 찾아가서 상의하고 이 치마를 아씨에게 양보하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서원 공주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산 사람이 누구인가?”“소
서원 공주의 눈에는 악의가 가득 배어 있었다.그러나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그녀는 예의 바르게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공주가 사복을 입고 사적으로 일을 치르는데, 소인도 감히 아는 척할 수 없었습니다. 공주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서원 공주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도 섣불리 들추어내지 못했다는 뜻이다.서원 공주는 경멸의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서원 공주는 김단이 자기를 모른 척한 것에 개의치 않았으나, 김단이 자기를 이용하는 것은 용납하지 못했다. 그래서 말투에 약간의 냉기가 섞였다.“난 그래도 네가 세답방에 들어간 지 3년이 되었으면, 어느 정도 규칙을 배웠다고 생각했는데.”지금처럼 그녀를 대할 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사하는 행동마저 자연스럽고 의젓해 보였다.다시 김단을 세답방에 보내 3년 동안 옷을 빨게 하고 싶을 정도였다..김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서원 공주가 자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생각한 대로 김단이 말하지 않자 서원 공주의 분노는 오히려 조금 풀렸다.그녀는 이렇게 큰 기성복 가게를 보고 냉소하며 말했다.“덕빈이 이렇게 통이 클 줄은 몰랐다. 결혼도 하기 전에 이 가게를 너에게 주다니. 그러나, 그래야 하는 것도 맞다. 어쨌든 그녀의 아들이..., 허허.”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원 공주는 피식 웃으며 비웃었다.그러고 나서 김단을 한 번 보더니, 의심 어린 눈빛을 보였다.“맞다, 내 오라버니가 오늘 아침 일찍 말을 타고 한양을 떠났는데, 너는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김단은 멍하니 있다가 서원 공주를 바라더니, 망연했다.명정대군이 한양에서 나갔다고?김단의 이런 모습을 보고, 서원 공주는 자기도 모르게 또 눈썹을 찌푸렸다.“됐다. 네가 뭘 알겠냐.”그녀에게 김단은 마음에 둘 존재가 어니였다.만약 명정대군이 폐인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김단을 왕비로 맞을 일은 없을 것이다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
김단은 아무 말 없이 소한을 부축하며 걸었다. 궐에서 나오는 길은 유난히 길고 고요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으며 말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궐문에 도착했을 때 소한의 마차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말을 타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상태로 다시 말을 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 김단은 곁에 있던 경씨에게 부탁했다.“도령님, 장군님을 먼저 집으로 모셔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소한이 놀란 듯 김단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게 약을 발라주지 않겠다는 것이오?”김단도 당황해하며 되물어 보았다.“소가에는 의원이 없습니까?”소한은 김단의 물음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머니께서 내가 또 다쳤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걱정하겠소? 그러니 그냥 근처에서 치료받을 것이오. 낭자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돌아가시오.”김단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먼저 평양관저로 함께 가서 약을 바르시죠.”소한은 그녀의 제안에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불편하지 않겠소?”김단은 그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괜찮습니다.”그렇게 소한은 김단과 함께 평양관저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김단의 몸종 숙희였다.소한을 발견한 그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러자 김단이 숙희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숙희야, 장군님을 객실로 안내해 주거라. 나는 약을 준비하러 가야겠구나.”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단의 지시를 따랐다.객실에 혼자 남은 소한은 조심스럽게 상의를 벗고 등을 드러냈다. 그의 등에는 형벌로 인한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오늘의 형벌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음을 깨달았다.하지만 그는 김단이 이 상처를 보면 마음 아파할 것이라 생각하며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약을 들고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 속에서 전하는 이해 안 되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조선의 장군인 네가, 수많은 전공을 세운 네가, 원하는 여인 하나 얻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이냐? 어찌 김단 하나 때문에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야? 그 낭자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전하의 말투는 엄중했지만 그 속에는 실망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그러자 소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렇습니다.”전하는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김 의원, 들었소?”그 순간 소한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조용히 서있는 김단이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소한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이 모든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소한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김단,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그녀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전하에게 예를 올렸다.“소녀 김단, 전하를 뵙습니다.”전하는 손짓으로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일어나거라. 오늘 발생한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거라.”김단은 소한을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차분하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제가 직접 목격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민대부를 제외하고는 영의정 댁 장남의 부인에게 감히 손을 댈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전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맹 낭자의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두 명의 궁녀를 보내겠다. 평양관저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거라.”학대의 이유가 무엇이든 맹영지는 필시 중전의 친척이었다. 만약 폭력을 가한 사람이 민대부라고 할지라도 이는 중전의 가문을 모욕하는 행위와 다름없었기에 결코 그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전하는 소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네 죄가 묻힐 수도 있겠구나.”민씨 가문의 잘못이 드러나게 된다면
소한은 곧바로 병사들과 함께 어서재에서 물러났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향 한 자루가 탈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소한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본 전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냉랭하게 물었다.“영의정이 너를 더 때리라고 명하지 않았느냐?”소한은 조용히 전하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대답했다.“전하의 깊은 뜻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니 더 심한 처벌을 요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전하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내 뜻이 무엇이더냐?”소한은 고개를 들어 전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전하께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영의정을 불러 제가 벌을 받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하셨죠. 그리고 동시에 제가 전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영의정이 이 사실을 눈치채기 바라신 것 아니었습니까?”전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붓을 책상에 내던지며 소리쳤다.“이 불경한 자식아! 내 너를 아낀다고 해서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영의정 저택 외에 또 어디에 첩자를 심어두었느냐?”소한은 눈을 내리깔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3품 이상의 모든 관료의 집에 첩자를 두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전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한을 가리켰지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그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참 동안 방안을 서성이었다.잠시 후 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네가 감히! 그렇게 많은 곳에 첩자를 심어두고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이냐? 이렇게 행동하면 내가 소씨 집안을 멸문시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소한은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조용히 말했다.“저도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다섯 해 전, 저희 소가는 거의 멸문 당할 뻔했습니다.”그 해 소하가 지닌 병권은 다른 집안의 탐욕스러운 먹잇감이 되었고 그로 인해 조정의 문
김단은 그제야 잊고 있었던 민태훈을 떠올렸다.그녀는 맹영지를 몸종에게 맡기고 민태훈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에 박힌 은침을 뽑아냈다.침이 빠져나가자마자 민태훈은 마치 고통에서 해방되기라도 한 듯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 가닥의 은침이 이토록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큰 마님은 김단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그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말이다.그때 경씨가 마차를 몰고 도착했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걸어 나오자 경씨는 놀란 얼굴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낭자, 괜찮소?”방금 전 김단이 영의정 저택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소한은 급히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덕분에 한발 늦게 도착한 경씨는 자신이 더 일찍 김단을 챙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말했다.“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소.“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저는 괜찮습니다. 먼저 맹 아가씨를 평양관저로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마차에 오르자 경씨는 바로 마차를 출발 시켰다.김단은 마차에 오르기 전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조용히 서 있는 소한에게로 향했다. 소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김단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한은 그런 김단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 후 소한은 곧장 궁으로 향했다.어서재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앉아 오늘 영의정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에게 보고했다.그의 말을 들은 전하는 노여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한을 꾸짖었다.“네가 감히 허락도 없이 영의정 저택을 침입했단 말이냐? 정말 대담하구나! 내가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느냐?”그러나 소한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벌을 달게 받겠습니다.“전하는 그의 담담한 태도에 더 분노하며 외쳤다.“민가
김단은 민씨 부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보내서는 안 된다라...오늘 이 자리에서 맹영지뿐만 아니라 김단 자신도 민가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김단은 민씨 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릴 줄 몰랐다.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김단의 눈빛이 서서히 날카롭게 변해갔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분노와 실망이 교차했다.큰 마님은 민씨 부인의 표정을 보고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맹영지의 몸에는 증거가 남아있었고 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하지만 지금 김단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분명 궐로 들어가 이 일을 고발할 게 뻔했다.지금 김단을 적으로 돌린다면 그에 따른 후과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큰 마님은 사랑하는 손자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김단을 보내면 민태훈의 입지가 위험해질 것이고 보내지 않는다면 민가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그때, 한 하인이 급히 달려와 외쳤다.“큰 마님! 소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소 장군? 소한을 말하는 것인가?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큰 마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소한이 이렇게 빨리 이곳에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김단도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마님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어 송구합니다.”모두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당당하게 정원으로 걸어 들어오는 소한의 모습이었다.“소한, 주인의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대체 영의정 저택을 무엇으로 보시는 것이오? 이곳은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소한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이런 무례를 범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곧 전하 앞에서 사죄드리지요.”그는 정원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큰 마님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김단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마님,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저를 막으신다면 저는 곧장 궐로 가 이 모든 일을 고할 것입니다.”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안에는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김단의 말이 끝나자 민가의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큰 마님은 눈썹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녀는 김단이 단순한 의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김단은 진산군 댁의 적녀이자 평양원군의 의남매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가의 두 형제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지금 그녀를 적대시하는 것은 곧 여러 권세 있는 가문을 적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큰 마님은 민태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통에 찬 얼굴로 땀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그러나 동시에 마음속에는 김단에 대한 의심도 피어올랐다. 만약 그녀의 말이 과장된 것이라면 민씨 가문은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한참을 고민하던 큰 마님은 굳게 결심한 듯 민씨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가 직접 확인해 보거라. 만약 낭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민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단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조심스럽게 맹영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팔 안쪽에는 선명한 멍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씨 부인은 숨을 들이켰다.“이런 상처가… 정말로…”그녀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김단은 차분하게 말했다.“다리 쪽은 더 심각합니다. 보시겠습니까?”민씨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이 상처, 정말로 태훈이의 짓입니까?”김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그 말에 민씨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태훈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단 말입니다.”김단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공주의 이름이 거론되자 민씨 일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스쳤다. 그러나 큰 마님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낭자가 공주의 명을 받고 우리 영의정 저택에 들어와 병자를 돌보는 것은 알겠소. 허나 공주의 허락 없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무엄한 일이오. 공주라 할지라도 국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함부로 공주의 이름을 빌어 협박하지 마시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단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민가의 큰 마님은 김단이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을 치켜세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단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떠올랐고 눈빛에는 경멸이 스쳤다.“공주님께서도 국법을 지키셔야 하는데 민가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민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그게 무슨 뜻이오? 우리 민씨 일가는 예로부터 법을 준수하며 국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소!”“김 의원께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우리 민가에 누명을 씌우려는 것 아니오?” 김단은 그저 조용히 서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김단의 이런 차분한 태도가 큰 마님의 신경을 건드렸다.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큰 며늘 아씨는 중전마마의 친조카이시며 공주자가의 사촌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의 치료를 맡게 되었지요. 원래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으나 오늘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누군가가 큰 며늘 아씨의 회복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의원으로서 제 환자가 이곳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니 제가 데려가야겠습니다. 만약 제 앞을 가로막으신다면 다음번에는 민대부님의 다리에 은침을 꽂아 버릴 것입니다.”이에 큰 마님은 지팡이를 바닥에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허튼소리 마시오! 낭자의 의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을 왜 우리한테 덮어씌우려는 것이오?”“맞소! 무슨 명의의 제자라더니... 다 헛소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