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의 돌발 행동에 김단까지도 하마터면 연못에 빠질 뻔했지만 순간, 김단은 오른발로 돌다리에 설치된 울타리를 지탱하더니 몸을 뒤로 확 당겼다.등이 물에 닿은 임원은 그대로 김단에게 당겨져 돌다리 위로 올라왔고 다리에 힘이 풀린 임원은 김단 앞에 털썩 주저앉더니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김단은 임원의 손을 확 뿌리치고는 역겹다는 표정을 지은 채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오후에 덕빈 마마가 던진 뜨거운 찻물에 데인 상처가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고 참다못한 김단은 울고 있는 임원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내가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길래 이번 생에 네가 이렇게 귀신처럼 나한테 계속 달라붙는 거야! 임원, 내 말 똑똑히 새겨들어. 앞으로 나한테 친한 척하지도 말고 죽고 싶으면 나한테서 멀리 떨어져서 죽어!”한편, 큰 소동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몰려왔고 돌다리 위에서 펼쳐진 광경에 임씨 부인은 놀란 표정으로 재빨리 달려와 물었다.“왜 이러는 것이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원아…”“거기 서세요!”큰소리로 외친 김단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씨 부인을 노려보았고 화들짝 놀란 임씨 부인은 걸음을 멈춘 채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김단은 이내 고개를 돌려 임원을 쳐다보았으며 분노가 점점 치밀었다.“네가 나에게 약을 타서 먹인 일은 내가 아직 제대로 따지지도 않았어. 그런데 감히 네가 또 한번 나를 건드려? 임원! 내가 정말 널 건드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진산군 가문 사람들이 전부 네 편을 들고 너를 옹호하고 있으니까 내가 널 어떻게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김단의 말에 임원은 더욱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언니, 전 정말 고의로 그런 게 아니에요. 언니가 믿든 안 믿든 전 단 한번도 언니를 해하려고 한 적 없어요! 하지만… 하지만 언니가 내 15년 인생을 빼앗아간 건 사실이잖아요?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귀하게 자랐지만 저는요? 전 가난한 마을에서 힘들게 살았어요! 전 언니 앞에만 서면 작아지고 두려워요. 언니가 제 모든
다음 순간, 갑자기 두 손으로 임원의 목덜미를 잡은 김단은 임원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를 확 들어올리더니 연못 안으로 밀어버렸다.“악!”비명소리와 함께 임원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김단에게 밀려 연못에 풍덩 빠졌고 다들 김단이 갑자기 이런 돌발 행동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사람들은 너무 놀라서 미처 반응도 못한 채 임원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고 김단은 서서히 고개를 돌려 소한을 쳐다보았다.소한은 여전히 자리에 가만히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으며 임원을 구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심지어 소한은 연못에 빠진 임원이 아닌 김단을 쳐다보고 있었다.김단은 예외라는 생각에 살짝 놀랐다가 이내 입꼬리를 씩 올리며 차갑게 웃고는 돌아서서 저택 안으로 향했다.그러다가 임씨 부인을 지나칠 때 김단은 낮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얘기했다.“연못 물이 그리 깊지는 않지만 계속 저대로 두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임씨 부인은 그제야 정신을 번쩍 차리고는 사람들에게 임원을 구하라고 명령했고 김단은 문 앞에 서있던 진산군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의자에 앉아 숙희가 건넨 따듯한 차를 한 모금 마시던 김단은 진산군이 방으로 들어오자 냉랭하게 말했다.“시간도 늦었는데 어르신께서도 얼른 돌아가서 쉬십시오. 이곳은 호위병들이 지키고 있는 걸로 충분합니다.”임원 때문에 김단은 현재 임씨 가문 사람만 봐도 기분이 언짢았다.하지만 진산군은 김단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김단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고 밖에서는 기침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임원이 구조된 것이다.임씨 부인은 얼른 임원을 데리고 의원에게 찾아갔고 조금 뒤, 시끌벅적하던 바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한편, 김단을 차를 마시면서 태연하게 앉아있는 진산군을 힐끗 쳐다보았고 이내 의문이 들었다.평소에 임원이 눈물만 보여도 발을 동동 구르던 진산군이 지금은 왜 이렇게 태연하게 앉아있는 걸까?밖에 호위병도 잔뜩 지키고 있고 소한까지
사실 김단은 과거의 일을 떠올리기 꺼려 했다.임원에게 그 시간은 15년 동안 양자로 사랑받은 시간 일뿐이다.하지만 김단에게는 다르다.15년 동안 행복했던 기억은 큰 상처로 남게 되었다.그녀는 이미 상처 투성 인 탓에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기억의 문이 열리고 말았다.순간 과거 행복했던 시절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결국 김단은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코도 시큰거렸다.그녀는 진산군에게 슬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서둘러 고개를 숙인 채 손에 쥔 술잔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하지만 김단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만약 임원이 나타나지 않았고, 제가 여전히 댁의 아씨였더라도, 대감마님께서는 저와 명정 대군을 바꾸시려 하였나이까?”질문의 끝에는 긴 침묵만이 오갔다.그녀는 방금 전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가설을 지어 얻는 대답은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임원은 이미 나타났다.자신은 댁의 아씨가 아니다.당연히 자신의 목숨을 이용해 진산군 관저에 명예를 얻고자 할 것이다.그녀는 잠시 생각하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자신을 향한 비웃음과 씁쓸함이다.진산군은 끝까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심지어 그녀의 시선을 피해 까마득한 하늘만 바라볼 뿐이다.하지만 김단이 고개를 숙여 씁쓸해 하는 모습은 그의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얼마나 지났을까, 소한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그는 하인의 옷으로 갈아 입고 그들의 앞에 섰다.김단은 눈살을 찌푸렸다.위아래로 그를 훑고는 물었다.“이런 모습으로 저와 동행을 하시는 것이 옵니까?”소한은 몸이 다부지다.그 탓에 하인의 옷을 입어도 그의 기백은 결코 숨길 수 없었다.김단도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라면 산적도 당연히 눈치를 챌 것이다.사실 소한도 이상하다고 느끼고 일부로 김단을 찾아간 것이다.이렇게 되면 그는 김단과 같이 동행할 수 없게 된다.하지만 산적들의 기술이 현란하여 기술을 배운 김단이라고 해도 결코 상대가 되지 못한다.소한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내각에 가서
경조부윤이 잠시 멈칫했다.“불주산에 도착하려면 여기서 십 리나 떨어져 있소. 자정에 교대를 하려면 늦을 지도 모르오!”김단이 낮게 대답했다.“지금 가겠소. 서두르면 제시간에 도착 할 수 있나이다.”하지만 궁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이때, 숙희가 김단을 막아섰다.“아씨, 노비도 같이 동행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노비가 힘이 세서 위기의 순간에도 아씨를 지킬 수 있사옵니다.”그녀는 자신의 아씨를 혼자서 보낼 수 없었다.김단은 그녀의 행동에 마음이 따뜻해졌다.곧이어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그 산적들은 악행을 서슴지 않는 자들이야, 여인인 네가 그놈들의 손에 잡힌다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내말 듣고 가만히 관저에 있거라.”“하지만.. 아씨도 여인이 아니옵니까!”흐느끼는 숙희의 목소리는 도끼가 되어 진산군의 마음을 내리쳤다.김단도 여인이다,만약 그들의 손에 잡히게 된다면 무슨 결과를 맞이할지 모른다.이 일에 대해 진산군이 생각을 안 해볼리 없었다.하지만 그에게 있어 명정 대군의 안위가 더 중요했다.이때, 궁에서 사람들이 도착했다.총 다섯명의 내시가 그들 앞에 섰다.모두 몸집이 작았다.그들 중 몇몇은 김단보다 작고 말라 보였다.김단 마저도 그들이 명성 대군을 지킬 수 있을지 의심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소한은 달랐다.그의 표정에서는 그들을 신뢰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소한은 그들을 한번 쓱 훑고는 김단에게 말했다.“산적이 딱 한 사람만 허락하였으니,낭자가 고르시오.”김단은 다섯 명 중 어느 한 명도 믿지 못했다.결국 아무나 짚어 답했다.“이 분으로 하겠습니다.”뽑힌 내시가 서둘러 김단에게 절을 올렸다.“소신 녹자, 최선을 다해 명정 대군의 안위를 지키겠사옵니다.”곧 김단이 아니라 명정 대군만을 지킨다는 말처럼 들렸다.김단은 깊게 심호흡을 한 뒤, 재빠르게 말 위로 올라탔다.그녀의 행동에 진산군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곧 떠나갈 김단의 모습에 참지 못하고 그녀를 불렀다.“단아!”
두려웠던 마음은 순식간에 당혹스러움으로 변했다.산기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녹자는 그녀 뒤에 있었다.인기척 하나 없는 숲속에서 녹자는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이때, 숲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안에서 사람 몇 명이 나왔다.그들은 서둘러 김단을 에워쌌다.총 세 명으로 모두 복면을 쓰고 있다.김단은 그들이 명정 대군을 납치한 산적이라 확신했다.산적들은 김단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그중 한 명이 뒤에 있는 말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나머지 한명은?”김단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그녀는 서둘러 상황을 빠져나갈 궁지를 생각했다.곧이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되물었다.“무슨 말이요?”“야 이년아, 모르는 척하지 마!”다른 산적이 옆에서 화를 냈다.“몸뚱아리는 하난데, 말을 두 마리나 데려왔네.”김단은 숨을 들이켜 두려움을 감추었다.“나머지 하나는 대군의 말이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산적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설마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셋째 형님, 계집 혼자 온 거 보면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오?”그의 말에 한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몇 명을 더 데리고 왔어도 똑같을 거야.”곧이어 다른 산적들을 향해 눈치를 주었다.두 사람이 김단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말에서 끌어내렸다. 그리고 난폭하게 그녀를 데리고 숲 안으로 들어갔다.숲속의 길은 평탄하지 못해 걷기가 어려웠다.게다가 어두웠기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그 탓에 김단은 여러 번 돌에 넘어질 뻔했다.휘청거리며 걸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드디어 산 동굴 앞에 다다랐다.동굴 앞에서는 모닥불이 타고 있다.다른 산적 두 명이 앉아 토끼를 굽고 있는 중이었다.그들은 김단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계집 한 명이야?”그들도 여인이 혼자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셋째 형이라고 하는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저 계집이 얼마나 당돌 한 지 알아?”곧이어 김단을 동굴 안으로 세게 밀었다.김단은 그대로 바닥에
순간 상처가 가득한 팔목이 드러났다.곧이어 산적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김단은 그들에게 높은 신분의 여인으로 보였다.이러한 여인의 몸에 상처투성이라는 사실에 그녀가 가엾어 보였다.명정 대군은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이거 보십시오. 이 계집은 절대로 안 죽습니다. 대장께서 데려가시면 백중백발 좋아하실 겁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저를 풀어주세요!”이때, 칼 한 자루가 김단 앞에 던져졌다.그녀는 잠시 멈칫하고는 셋째 형님이라 하는 사내를 바라보았다.사내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놈을 잡은 건 순전히 우연이었어,그 왕이라고 하는 작자의 태도를 시험하고 싶었을 뿐이지. 네년은 저 자식이랑 돌아가도 전과 다를 바 없는 날을 보낼 거야. 네가 직접 죽이고 우리를 따라와.”명정 대군은 산적이 이러한 선택을 내릴 줄은 몰랐다.그는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뒷걸음을 쳤다.“자, 자네들이 분명 저 년을 주면 놓아준다고 했잖아!”옆에 있던 산적이 코웃음을 쳤다.“지금 산적이랑 거래를 하겠다는 거야? 보아하니, 대군도 멍청하기 짝이 없군.”명정 대군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는 김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칼을 집어 들었다.명정 대군이 깜짝 놀라 다급하게 말했다.“김단, 네가 짐을 죽이면 아니 된다.짐은 네 약혼자이자 유일한 버팀목인 것을 잊었느냐! 날 죽이면 아니 된다!”약혼자?버팀목?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참으로 우습지 아니한가.김단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두 손 꽉 쥔 칼을 들고 코웃음을 쳤다.“자네는 날 죽일 뻔했던 사람이 아닌가. 무슨 낯짝으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나도 여기서 끝이라면 자네도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집어치워!”김단은 자세를 취하고 명정 대군에게 달려들었다.명정 대군은 그녀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이때, 김단이 몸을 돌려 셋째 형님이라 하는 사내에게 달려들었다.그녀는 명정 대군을 죽일 수 없다.더더욱 산적에게 끌려갈 수 없었다.만약 고문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또한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녹자는 주상이 명정 대군을 위해 보낸 사람이 아닌가?명정 대군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는 녹자가 칼을 빼지 못하도록 손을 잡았다.그리고 죽일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입을 열자 피를 토했다.“왜, 네가 왜?”“3년 전, 대군자가께 맞아 죽은 나인 청아를 기억하십니까?”녹자도 명정 대군을 죽일 듯이 노려 보았다.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하인이 대신하여 복수를 하러 왔습니다.”하지만 명정 대군은 그저 혼란스러운 표정이다.그는 나인 청아에 대해 까마득히 잊은 모양이었다.하지만 이러한 그의 표정에 녹자는 마음이 아려왔다.어떻게 그 일을 잊을 수 있는가,그의 가장 중요한 사람을 때려 죽게 한 사람이면서 어떻게 잊을 수 있는가.녹자는 명정 대군의 저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곧이어 칼을 뽑고 다시 깊숙이 찔렀다.마치 분노를 푸는 것처럼 네다섯 차례 다시 칼을 찔렀다.녹자가 다시 한번 더 공격하려 하자 김단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서둘러 녹자를 밀쳐냈다.명정 대군은 힘 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그의 자리 옆으로 피가 흥건했다.김단이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명정 대군의 상처 부위를 막았다.표정에는 황급함이 드러났다.“괜찮습니다, 아무 일 없을 겁니다!”명정 대군이 죽어서는 안된다.적어도 지금은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하지만 김단이 아무리 용을 써봐도 넘치는 피는 멈출 줄 몰랐다.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구하러 오지 않았는 가.이대로 그를 죽게 할 수는 없었다.다급한 김단의 모습이 명정 대군의 눈에 들어왔다.그는 자신의 생사를 걱정하는 사람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이때, 명정 대군이 김단의 손목을 살짝 잡았다.김단의 두 눈은 이미 벌겋게 변했다.그녀는 명정대군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죽으면 안돼, 죽어서는 안돼!”명정 대군이 웃음을 터뜨렸다.“미,미안했소...”말을 끝으로 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김단은 그대로 멈추
숲 속은 여전히 고요했지만 김단은 이제 전혀 무섭지 않았다. 숲 속을 천천히 걷고 있는 그녀의 머릿속은 너무도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김단은 이제 겨우 명정 대군을 휘어잡을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명정 대군에게 함부로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됐는데! 이제 곧 진정한 명정빈이 되어 진산군 관저를 벗어날 수 있었는데, 명정 대군이 죽어버린 것이다.그럼 김단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명정빈의 신분을 잃은 그녀는 어떻게 진산군 관저를 벗어날 수 있을까?가문의 부귀와 영화를 지키기 위해 진산군과 임씨 부인은 또 어떤 계획을 세우고 김단을 어떤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버리려고 할까?우르릉 쾅!이때, 하늘에서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더니 이어 빗줄기가 거세게 떨어지기 시작했다.옷이 흠뻑 젖은 김단은 차가운 공기에 몸이 으스스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은 채 고개를 천천히 들어 어두컴컴한 하늘을 쳐다보더니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욕설을 퍼부었다.“당신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겁니까? 대체 왜! 저를 농락하는 게 재밌습니까? 제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사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어요?”김단은 그저 진산군 관저의 딸로 평범하게 살고 있었는데 하늘은 갑자기 그녀에게 임원이라는 벌을 내려주었고 이제 겨우 어둠을 뚫고 새롭게 시작하려고 했는데 하늘은 또 명정 대군을 데려갔다.그리고 김단은 분명 비와 추위를 제일 싫어하는데 하늘은 하필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에게 폭우를 선물하고 있다.김단은 하늘이 매 순간 자신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것만 같았다.우르릉 쾅!천둥 번개가 번쩍거렸고 마치 김단의 분노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했다.쏟아지는 빗물에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던 김단은 갑자기 미친 듯이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이런다고 제가 포기할 줄 알아요? 어디 한번 더 해보세요! 전 절대 당신에게 굴복하지 않을 겁니다! 전 절대 당신에게 무릎을 꿇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가슴이 찢어질 듯한 김단의 외침이 숲 속에 울려 퍼지던 순간, 그림자 하나가 숲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김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
김단은 아무 말 없이 소한을 부축하며 걸었다. 궐에서 나오는 길은 유난히 길고 고요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으며 말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궐문에 도착했을 때 소한의 마차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말을 타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상태로 다시 말을 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 김단은 곁에 있던 경씨에게 부탁했다.“도령님, 장군님을 먼저 집으로 모셔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소한이 놀란 듯 김단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게 약을 발라주지 않겠다는 것이오?”김단도 당황해하며 되물어 보았다.“소가에는 의원이 없습니까?”소한은 김단의 물음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머니께서 내가 또 다쳤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걱정하겠소? 그러니 그냥 근처에서 치료받을 것이오. 낭자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돌아가시오.”김단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먼저 평양관저로 함께 가서 약을 바르시죠.”소한은 그녀의 제안에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불편하지 않겠소?”김단은 그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괜찮습니다.”그렇게 소한은 김단과 함께 평양관저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김단의 몸종 숙희였다.소한을 발견한 그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러자 김단이 숙희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숙희야, 장군님을 객실로 안내해 주거라. 나는 약을 준비하러 가야겠구나.”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단의 지시를 따랐다.객실에 혼자 남은 소한은 조심스럽게 상의를 벗고 등을 드러냈다. 그의 등에는 형벌로 인한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오늘의 형벌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음을 깨달았다.하지만 그는 김단이 이 상처를 보면 마음 아파할 것이라 생각하며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약을 들고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 속에서 전하는 이해 안 되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조선의 장군인 네가, 수많은 전공을 세운 네가, 원하는 여인 하나 얻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이냐? 어찌 김단 하나 때문에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야? 그 낭자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전하의 말투는 엄중했지만 그 속에는 실망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그러자 소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렇습니다.”전하는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김 의원, 들었소?”그 순간 소한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조용히 서있는 김단이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소한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이 모든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소한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김단,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그녀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전하에게 예를 올렸다.“소녀 김단, 전하를 뵙습니다.”전하는 손짓으로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일어나거라. 오늘 발생한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거라.”김단은 소한을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차분하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제가 직접 목격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민대부를 제외하고는 영의정 댁 장남의 부인에게 감히 손을 댈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전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맹 낭자의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두 명의 궁녀를 보내겠다. 평양관저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거라.”학대의 이유가 무엇이든 맹영지는 필시 중전의 친척이었다. 만약 폭력을 가한 사람이 민대부라고 할지라도 이는 중전의 가문을 모욕하는 행위와 다름없었기에 결코 그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전하는 소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네 죄가 묻힐 수도 있겠구나.”민씨 가문의 잘못이 드러나게 된다면
소한은 곧바로 병사들과 함께 어서재에서 물러났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향 한 자루가 탈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소한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본 전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냉랭하게 물었다.“영의정이 너를 더 때리라고 명하지 않았느냐?”소한은 조용히 전하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대답했다.“전하의 깊은 뜻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니 더 심한 처벌을 요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전하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내 뜻이 무엇이더냐?”소한은 고개를 들어 전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전하께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영의정을 불러 제가 벌을 받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하셨죠. 그리고 동시에 제가 전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영의정이 이 사실을 눈치채기 바라신 것 아니었습니까?”전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붓을 책상에 내던지며 소리쳤다.“이 불경한 자식아! 내 너를 아낀다고 해서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영의정 저택 외에 또 어디에 첩자를 심어두었느냐?”소한은 눈을 내리깔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3품 이상의 모든 관료의 집에 첩자를 두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전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한을 가리켰지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그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참 동안 방안을 서성이었다.잠시 후 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네가 감히! 그렇게 많은 곳에 첩자를 심어두고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이냐? 이렇게 행동하면 내가 소씨 집안을 멸문시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소한은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조용히 말했다.“저도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다섯 해 전, 저희 소가는 거의 멸문 당할 뻔했습니다.”그 해 소하가 지닌 병권은 다른 집안의 탐욕스러운 먹잇감이 되었고 그로 인해 조정의 문
김단은 그제야 잊고 있었던 민태훈을 떠올렸다.그녀는 맹영지를 몸종에게 맡기고 민태훈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에 박힌 은침을 뽑아냈다.침이 빠져나가자마자 민태훈은 마치 고통에서 해방되기라도 한 듯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 가닥의 은침이 이토록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큰 마님은 김단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그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말이다.그때 경씨가 마차를 몰고 도착했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걸어 나오자 경씨는 놀란 얼굴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낭자, 괜찮소?”방금 전 김단이 영의정 저택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소한은 급히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덕분에 한발 늦게 도착한 경씨는 자신이 더 일찍 김단을 챙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말했다.“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소.“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저는 괜찮습니다. 먼저 맹 아가씨를 평양관저로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마차에 오르자 경씨는 바로 마차를 출발 시켰다.김단은 마차에 오르기 전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조용히 서 있는 소한에게로 향했다. 소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김단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한은 그런 김단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 후 소한은 곧장 궁으로 향했다.어서재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앉아 오늘 영의정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에게 보고했다.그의 말을 들은 전하는 노여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한을 꾸짖었다.“네가 감히 허락도 없이 영의정 저택을 침입했단 말이냐? 정말 대담하구나! 내가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느냐?”그러나 소한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벌을 달게 받겠습니다.“전하는 그의 담담한 태도에 더 분노하며 외쳤다.“민가
김단은 민씨 부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보내서는 안 된다라...오늘 이 자리에서 맹영지뿐만 아니라 김단 자신도 민가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김단은 민씨 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릴 줄 몰랐다.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김단의 눈빛이 서서히 날카롭게 변해갔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분노와 실망이 교차했다.큰 마님은 민씨 부인의 표정을 보고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맹영지의 몸에는 증거가 남아있었고 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하지만 지금 김단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분명 궐로 들어가 이 일을 고발할 게 뻔했다.지금 김단을 적으로 돌린다면 그에 따른 후과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큰 마님은 사랑하는 손자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김단을 보내면 민태훈의 입지가 위험해질 것이고 보내지 않는다면 민가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그때, 한 하인이 급히 달려와 외쳤다.“큰 마님! 소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소 장군? 소한을 말하는 것인가?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큰 마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소한이 이렇게 빨리 이곳에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김단도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마님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어 송구합니다.”모두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당당하게 정원으로 걸어 들어오는 소한의 모습이었다.“소한, 주인의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대체 영의정 저택을 무엇으로 보시는 것이오? 이곳은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소한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이런 무례를 범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곧 전하 앞에서 사죄드리지요.”그는 정원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큰 마님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김단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마님,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저를 막으신다면 저는 곧장 궐로 가 이 모든 일을 고할 것입니다.”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안에는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김단의 말이 끝나자 민가의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큰 마님은 눈썹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녀는 김단이 단순한 의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김단은 진산군 댁의 적녀이자 평양원군의 의남매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가의 두 형제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지금 그녀를 적대시하는 것은 곧 여러 권세 있는 가문을 적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큰 마님은 민태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통에 찬 얼굴로 땀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그러나 동시에 마음속에는 김단에 대한 의심도 피어올랐다. 만약 그녀의 말이 과장된 것이라면 민씨 가문은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한참을 고민하던 큰 마님은 굳게 결심한 듯 민씨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가 직접 확인해 보거라. 만약 낭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민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단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조심스럽게 맹영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팔 안쪽에는 선명한 멍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씨 부인은 숨을 들이켰다.“이런 상처가… 정말로…”그녀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김단은 차분하게 말했다.“다리 쪽은 더 심각합니다. 보시겠습니까?”민씨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이 상처, 정말로 태훈이의 짓입니까?”김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그 말에 민씨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태훈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단 말입니다.”김단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공주의 이름이 거론되자 민씨 일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스쳤다. 그러나 큰 마님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낭자가 공주의 명을 받고 우리 영의정 저택에 들어와 병자를 돌보는 것은 알겠소. 허나 공주의 허락 없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무엄한 일이오. 공주라 할지라도 국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함부로 공주의 이름을 빌어 협박하지 마시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단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민가의 큰 마님은 김단이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을 치켜세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단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떠올랐고 눈빛에는 경멸이 스쳤다.“공주님께서도 국법을 지키셔야 하는데 민가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민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그게 무슨 뜻이오? 우리 민씨 일가는 예로부터 법을 준수하며 국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소!”“김 의원께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우리 민가에 누명을 씌우려는 것 아니오?” 김단은 그저 조용히 서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김단의 이런 차분한 태도가 큰 마님의 신경을 건드렸다.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큰 며늘 아씨는 중전마마의 친조카이시며 공주자가의 사촌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의 치료를 맡게 되었지요. 원래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으나 오늘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누군가가 큰 며늘 아씨의 회복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의원으로서 제 환자가 이곳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니 제가 데려가야겠습니다. 만약 제 앞을 가로막으신다면 다음번에는 민대부님의 다리에 은침을 꽂아 버릴 것입니다.”이에 큰 마님은 지팡이를 바닥에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허튼소리 마시오! 낭자의 의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을 왜 우리한테 덮어씌우려는 것이오?”“맞소! 무슨 명의의 제자라더니... 다 헛소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