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이 가버리자, 소씨 대감은 아주 화가 났다.소씨 대감은 제 자리에 앉아서 보이지도 않는 소한의 뒷모습을 가리키면서 화냈다.“망할 놈! 가라 그래! 가거든 다시 돌아오지 말라 그래!”소씨 부인은 바삐 다가가서 소씨 대감의 등을 만지면서 꾸짖었다.“왜 또 홧김에 이런 말 해요? 한이가 집에 오기를 한 달 동안 바래 놓고는, 이제 가면, 또 돌아오길 바라야 하잖아요.”소씨 대감의 마음이 들켜버리자, 그는 눈을 희번덕거렸다.소한은 전에 한 달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을 시켜서 부르면, 그저 군에 일이 있다고 핑계 댔다. 그러나 지금 전쟁할 때도 아닌데, 군에 뭐 그리 바쁠 게 있다고 소한이 밖에서 돌아오지 않는지 모른다.이번에도 소씨 대감의 생신을 핑계로 소한을 불러왔는데, 또 이렇게 불쾌하게 헤어졌다.이 광경을 보고, 소정온이 나서서 위로했다.“그래도 큰 오라버니께 좋은 소식이 있잖아요! 둘째 오라버니는..., 우리가 둘째 오라버니께 조금 더 시간을 줘야 할 것 같아요!”소정온의 말을 듣자, 소씨 부인은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고, 소씨 대감은 그저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세 사람의 분위기는 소한이 떠나고 나서 많이 가라앉았다.소하는 걱정하는 눈빛으로 김단을 바라봤다.그는 소한이 그렇게 화가 나서 가버리면 김단이 어색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김단은 소한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았고, 심지어 그와 눈이 마주칠 때 웃었다.“우리, 돌아가서 침놓을까요?”오늘은 아직 침을 놓지 않았다.김단은 먼저 침을 놓고, 다시 진산군댁의 의원을 찾아가서 다음 단계의 치료 방법을 구하려고 한다. 그녀는 조금 더 노력하면, 소하가 구정 전에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소한이 한 달 동안 집에 돌아오든 말든, 소한이 진산군댁에 이혼장을 얼마나 보냈든 모두 그녀와 상관없다.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것을 보고, 소하는 그제야 눈에 웃음을 띠면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시오.”그는 소한의 성격까지 통제할 수 없다.어렸을 적에는 소
소씨 부인도 조금 불쾌했다.“제가 가서 데려오면 뭐 해요? 한이가 돌아오지도 않는데...”“그럼, 방법을 대서 돌아오게 해야지오!”소씨 대감도 화가 잔뜩 나서 소씨 부인을 째려봤다.“부부 사이에 싸우다가 금방 좋아지는데, 이렇게 계속 따로 살면 언제 화해할 수 있소?”소씨 대감은 이렇게 말하고는 소하와 김단의 뒷모습을 바라봤다.“소하랑 단이 봐 봐, 지금 얼마나 좋소.”소씨 부인도 소하와 김단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김단은 소하를 밀고 가면서도 가끔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소하랑 이야기했다. 소하 역시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김단이랑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소하의 표정은 아주 기쁘다고 할 수 없지만, 아주 편안해 보였다.예전에 그가 혼자서 마당에 갇혀 사람을 만나지 않을 때랑 비교하면 아주 좋아졌다.비록 소하는 이번에도 한 달 동안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김단과 같이 있어서, 둘 사이의 감정은 아마 더 좋아졌을 것이다.소씨 부인은 이렇게 생각하자, 조금 전에 소씨 대감이 한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부부 사이의 원한은 하룻밤을 지나지 말아야 한다.어쨌든 같이 살면 좋아질 것이다.그래서 소씨 부인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제가 내일 원이를 데리고 올게요.”이 일은 이렇게 결정되었다.이튿날, 소씨 부인은 아침 일찍 진산군댁으로 갔다.임원은 소씨 집에서 그녀를 데리러 왔다는 것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대청에 갔지만, 임씨 부인과 소씨 부인만 있었다.그녀는 소한이 그녀를 데리러 온 줄 알았다.임씨 부인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소한이 오지 않고 소씨 부인만 온 것을 보고, 그녀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사돈댁, 제가 장모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벌써 한 달이 지났소. 한이는 원이를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았고, 편지 한 통도 없었소. 오늘 원이를 데리고 간다면서도 얼굴도 보이지 않았소. 이러면, 제가 어찌 마음 놓고 원이를 보내겠소?”임씨 부인은 전에 소한이 임원을 쫓아낼까 봐 걱정해서 임원을 빨리 데리
소씨 부인은 뜻대로 임원을 집에 데려왔고, 소한도 뜻밖에 집으로 돌아왔다.그녀는 임원이 돌아온 줄 알고, 소한이 그와 함께 온 것이라 생각하며 다소 기뻤다.“부부 사이에 터놓고 말하면 되지, 이렇게 오래 화나는 게 어디 있어.”소씨 부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임원을 소한에게 밀었다.“됐다. 내가 원이를 데리고 왔으니, 한이도 더는 화내지 말거라. 너희도 오랫동안 보지 못했으니, 이야기 나누거라, 난 먼저 가겠다.”소씨 부인은 부부 사이에 따로 말할 공간을 마련해 주려고 먼저 갔다.소씨 부인이 임원을 미는 바람에, 임원은 하마터면 소한 품에 안길 뻔했다. 그녀는 소한이 거부하는 것 같아서 억지로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소한 옆에 서 있었다.두 사람 사이는 그녀가 손만 뻗으면 그의 손등에 댈 수 있는 거리여서, 그녀의 마음은 조금 떨렸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럽게 소한을 불렀다.“소한 오라버니...”“연기하지 마시오.”소한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소한은 음험한 눈빛으로 임원을 흘겨봤다.소한의 깊은 눈동자는 임원의 연약한 척하는 외면을 알아차리고 말투도 거침없었다.“요즘 당신이랑 싸울 시간이 없소. 눈치껏 집에서 조용히 있으시오. 그렇지 않으면...”소한은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지만, 흉포한 눈동자는 사람을 놀라게 했다.그는 김단 때문에 돌아왔다.소씨 대감이 아이를 낳으라고 한 말이 그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돌아왔는데, 임원이 돌아올 줄 몰랐다.하지만, 오히려 임원이 있어서, 소씨 부모님이 그에 대해 조금 덜 경계할 수도 있다.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그를 건드릴 수 있는 건 아니다.임원은 소한의 말에 놀라서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감히 그를 보지도 못했다. 그녀의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돌았다. 그녀는 겁에 질린 듯 말했다.“소한 오라버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 이제 더는 말썽 피우지 않을게요.”그녀는 잘못했다고 하지 않고 ‘말썽’이라 말했다.지금까지도 그녀는 잘못을
소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임원을 위아래로 훑었다.소한도 그녀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분명히 다른 목적이 있을 터,허나 아무 상관 없었다.소한이 돌아 온 이유는 김단과 소하의 사이를 방해하기 위함이다.그 변명을 기회로 삼아 갔다 오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은가.곧이어 소한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소하는 김단에게 새총을 가르치고 있었다.김단은 한달 전 보다 많이 능숙해졌다.우동 나무에서 열 걸음 떨어진 곳에서도 나무를 맞출 수 있었다.정확도만 부족할 뿐이다.김단은 계단에 앉았다.소하는 김단의 손을 잡아 자세를 교정해주었다.중심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 소하는 김단의 얼굴에 가까이 댔다.이어서 김단은 그의 지도 아래, 총을 날리자 중심을 정확히 맞추었다.이때, 소한이 들어왔다.김단은 왼쪽 눈을 질끈 감고, 오른쪽 눈으로 돌을 보고 있었다.한편, 소하의 얼굴이 김단의 얼굴과 거의 맞닿기 전이다.붙어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소한은 안색이 어두워졌다.두 주먹을 꽉 쥐었다.옆에 있던 임원이 그 모습을 보고 소한에게 다가갔다.그의 어두워진 얼굴을 보고, 임원은 마음 속으로 몰래 웃음을 지었다.이때, 소하가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방해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소하의 두 눈이 어두워졌다.한편, 김단은 잡고 있던 돌을 날렸다.‘팍’ 이라는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의 중심에 맞고 떨어졌다.김단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소하를 바라보았다.“보셨습니까? 나뭇가지를 맞췄습니다!”소하는 자상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보았다, 참으로 잘했다.”그리고 손을 뻗어 김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모습은 다정하고, 친근하기 그지없었다.마치 두 사람의 사이가 많이 가까워졌다고 알리는 것 같았다.하지만 김단은 움찔했다.방금 전의 소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하지만 들려오는 목소리에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형님, 형수님.”임원이 그들을 불렀다.김단은 그제야 소한과 임원이 마당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소하의 방금
소한은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듯이 시선을 돌렸다.“형님, 다리는 어떠십니까?”사실 소한이 알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다.소하는 이미 알아차린 듯이 짧게 대답했다.“괜찮다.”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임원과 소한이 사리를 분별할 수 있다면 이쯤 물러가야 하는 게 맞다.하지만 소한은 자리를 떠날 마음이 없었다.“오랜 시간 형님과 바둑을 두지 않았습니다. 마침 오늘 시간이 나니, 한 판 두시는 게 어떠하옵니까.”그의 심보가 뻔히 보였다.소하가 거절을 하기도 전에 임원이 말을 이었다.“저도 마침 형수님과 좋게 할 말이 있사옵니다.”‘좋게’ 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김단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임원을 바라보았다.임원은 그녀를 상징하는 ‘다정함’ 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하지만 두 눈은 김단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강압적인 태도에 김단이 눈살을 찌푸렸다.임원의 태도와 기세는 전혀 잘못한 사람의 행실이 아니었다.그러하다면, 자신이 직접 알려 주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잘못했으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말이다.곧이어 미소를 지어 보였다.“좋소.”임원을 따라, 소한도 자리에 남아 소하와 바둑을 둘 수 있었다.방 안, 바둑판에 흑돌과 백돌이 가득했다.소한은 바둑을 두면서도 시선은 밖을 향했다.하지만 소하는 바둑판을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다.“바둑에 집중하게.”소한은 그제야 다시 바둑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소하를 한번 보고는 바둑을 두었다.한편, 방 밖.우동 나무 밑에서 김단은 땅에 가득한 돌을 바라보고 있다.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임원에게 말했다.“제수 씨가 주워주겠소?”임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녀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방 안을 향했다.곧이어 고개를 끄덕였다.“예.”임원은 허리를 숙여 돌을 주웠다.하지만 김단은 옆에 앉아서 차가운 눈을 하고 있다.임원이 땅에 떨어진 모든 돌을 줍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이오?”임원은 손에 들고 있던 돌을 바구니 안에 넣고는 김단을
임원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김단은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소, 지금처럼 꼴 보기 사납지만 적어도 그때의 눈물은 진심이라고 생각하오.”“그때 자네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물었소, 허나 자네의 대답은 만족스럽지 않았소. 자네의 잘못은 유리그릇을 깬 것뿐 만이 아니오, 침묵도 있소. 내가 억울한 상황에 처했을 때, 시종일관 침묵을 하지 않았소? 이 점은 임학이 내가 자네를 물에 밀었다고 오해했을때도 바꾸지 않았소.”“그래도 그때는 자네가 악독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소. 허나, 지금은? 임원, 자네의 손에 몇 명의 목숨이 떠났는 지 아시오? 진정 그들이 자네의 꿈에 찾아온 적이 없소?”조모, 거지, 명희..임원은 자리에 얼어붙었다.눈 밑에는 두려움이 감춰 있다.하지만 고인 눈물은 절대로 흐르지 않았다.그녀는 더 이상 이전의 임원이 아니었다.이전의 임원이라면 눈물을 쏟아냈을 것이다.김단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자리에서 일어나 임원 앞으로 다가갔다.“명희는 가슴 팍에 단검이 꽂혀 죽었소, 바로 이 자리오.”말하면서 임원의 가슴 팍에 손가락을 힘껏 갖다 댔다.“피가 터질 듯이 나와서 막을 수도 없었지. 의복이 순식간에 피로 물들더군, 입에서도 피가 철철 흘렀지.”임원의 눈동자가 세게 흔들렸다.마치 명희가 자신의 앞에서 죽은 것 같았다.김단은 계속 말을 이었다.“시체를 가서 보기는 하였소? 시체를 처리해주기는 하였소? 아니면, 난장지에 버리고 새의 먹이가 되도록 내버려둔 것이오?”그 아이는 네 동생이라고, 김단은 마음속으로 한없이 외쳤다.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오늘의 임원은 두 손 가득 피가 묻어 버리고 말았다. 만약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명백한 위험은 피하기 쉽지만 숨겨진 위험은 막기 어렵다.김단은 임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그저 자신의 사람들이 다칠 것이 두려웠다.쇠돌이가 그 예시가 아닌가.김단이 쇠돌이를 통해 임원을 위협했었다.결국 임원이 그를 죽일 뻔하지
임원이 소리를 한 바탕 질렀다.하지만 방 안의 두 사내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방법이 이제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이전에는 자신이 눈물 한 방울만 흘려도, 진산군 관저의 사람들이 다가와 위로해주기 바빴다.소한도 마찬가지였다.허나 오늘의 소한은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임원은 이미 소한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허나...작은 측은지심도 없는 것인가.김단은 임원의 시선을 따라 방 안을 바라보았다.소한의 준수한 얼굴에는 냉기가 가득했다.김단도 마음 한편이 좋지 않았다.허나, 소한은 항상 이러지 않았는 가.그녀를 지켜줄 때에는 한양 전체를 둘러보며 복수를 해주곤 했다.하지만 더 이상 지켜 주지 않을 때는 모르는 사람처럼 대했다.김단이 고개를 돌려 임원을 바라 보았다.“기억하시오. 이 세상에서 잘난 척 할 자격도 없는 자가 자네라는 것을. 나는 자네와 싸우지 않을 것이오,ㅜ자네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가 싫소. 작은 며늘 아씨의 본분을 지키시고,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자네도 편히 지내지는 못할 것이오.”김단을 말을 끝내고 자리를 떴다.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임원의 몸이 떨기 시작했다.분노였다.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두려움도 섞여있다.임원은 김단이 무섭다.삼년 전에 김단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무서웠다.임원의 모든 것은 김단으로부터 훔쳐 온 것이 아닌가.허나..지금은 두려워 할 때가 아니다.본분을 지키라니,소한이 방금 자신에게 한 경고가 아닌가.어찌 본분을 지킬 수 있을까.하늘 아래 모두가 평등하다면 각자의 본분을 지킬 수 있을 터,김단이 죽으면 자신의 본분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분노로 가득 찬 두 눈은 김단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이때, 그림자 하나가 그녀의 시선에 나타났다.소한이었다.소한이 방 안에서 나와 김단을 쫓아갔다.임원은 더 크게 분노했다.하지만 입가에는 냉기가 느껴졌다.
익숙하지만 낯선 그림자였다.김단의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거리가 가까워질까 봐 김단은 몸을 돌리지 않았다.그저 앞에 있는 책장을 바라보며 물었다.“아내 대신 몇 마디 하려 오셨습니까?”소한은 그녀의 뒤에 서있다.쪽진 머리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그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억누르는 듯한 말투도 답했다.“내가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소.”“모르옵니다.”김단이 차갑게 대답했다.“소 장군의 작은 일도 알고 싶지 않습니다.”“단아..”소한의 목소리가 떨렸다.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생각이 트인 듯 목소리가 한층 가벼워졌다.“괜찮소. 천천히 들려주겠소.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다음에 모두 들려주겠소.”하지만 그의 대답에 김단은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다.다음?“저와 소 장군 사이에 다음은 없습니다.”김단은 그녀가 말한 대로 더 이상 소한을 신경쓰지 않았다.분노를 참고 있던 소한에게 불이 붙은 것 같았다.“누구와 다음이 있고 싶은 것이오?”질투 섞인 질문에 김단은 대답하지 않았다.하지만 소한은 그녀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방향으로 돌리려 했다.김단도 버텨 보았지만 힘이 상대가 되지 않았다.결국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그의 눈가가 붉었다.“누구, 누구와 다음이 있고 싶소?”소한이 다시 물었다.평소의 눈빛과는 다르게 다급함과 애원함이 들어있다.“내 아우와 계속 지낼 생각이오? 낭자,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니오!”김단은 소한의 눈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심지어 그의 눈동자에서 자신의 침착한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마치 이전에 김단이 소한을 찾으러 갔을 때와 같았다.자신이 혼인을 바꾸지 말라고 부탁했을 때, 그의 반응과 같았다.“제가 누구와 함께 하든지, 소 장군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그리고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소 장군의 이러한 행동이 저에게 얼마나 해로운 지 아십니까.”소하의 집에 하인이 없기에 망정이다.만약 그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
김단은 아무 말 없이 소한을 부축하며 걸었다. 궐에서 나오는 길은 유난히 길고 고요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으며 말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궐문에 도착했을 때 소한의 마차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말을 타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상태로 다시 말을 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 김단은 곁에 있던 경씨에게 부탁했다.“도령님, 장군님을 먼저 집으로 모셔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소한이 놀란 듯 김단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게 약을 발라주지 않겠다는 것이오?”김단도 당황해하며 되물어 보았다.“소가에는 의원이 없습니까?”소한은 김단의 물음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머니께서 내가 또 다쳤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걱정하겠소? 그러니 그냥 근처에서 치료받을 것이오. 낭자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돌아가시오.”김단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먼저 평양관저로 함께 가서 약을 바르시죠.”소한은 그녀의 제안에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불편하지 않겠소?”김단은 그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괜찮습니다.”그렇게 소한은 김단과 함께 평양관저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김단의 몸종 숙희였다.소한을 발견한 그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러자 김단이 숙희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숙희야, 장군님을 객실로 안내해 주거라. 나는 약을 준비하러 가야겠구나.”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단의 지시를 따랐다.객실에 혼자 남은 소한은 조심스럽게 상의를 벗고 등을 드러냈다. 그의 등에는 형벌로 인한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오늘의 형벌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음을 깨달았다.하지만 그는 김단이 이 상처를 보면 마음 아파할 것이라 생각하며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약을 들고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 속에서 전하는 이해 안 되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조선의 장군인 네가, 수많은 전공을 세운 네가, 원하는 여인 하나 얻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이냐? 어찌 김단 하나 때문에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야? 그 낭자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전하의 말투는 엄중했지만 그 속에는 실망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그러자 소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렇습니다.”전하는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김 의원, 들었소?”그 순간 소한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조용히 서있는 김단이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소한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이 모든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소한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김단,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그녀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전하에게 예를 올렸다.“소녀 김단, 전하를 뵙습니다.”전하는 손짓으로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일어나거라. 오늘 발생한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거라.”김단은 소한을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차분하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제가 직접 목격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민대부를 제외하고는 영의정 댁 장남의 부인에게 감히 손을 댈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전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맹 낭자의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두 명의 궁녀를 보내겠다. 평양관저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거라.”학대의 이유가 무엇이든 맹영지는 필시 중전의 친척이었다. 만약 폭력을 가한 사람이 민대부라고 할지라도 이는 중전의 가문을 모욕하는 행위와 다름없었기에 결코 그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전하는 소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네 죄가 묻힐 수도 있겠구나.”민씨 가문의 잘못이 드러나게 된다면
소한은 곧바로 병사들과 함께 어서재에서 물러났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향 한 자루가 탈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소한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본 전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냉랭하게 물었다.“영의정이 너를 더 때리라고 명하지 않았느냐?”소한은 조용히 전하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대답했다.“전하의 깊은 뜻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니 더 심한 처벌을 요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전하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내 뜻이 무엇이더냐?”소한은 고개를 들어 전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전하께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영의정을 불러 제가 벌을 받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하셨죠. 그리고 동시에 제가 전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영의정이 이 사실을 눈치채기 바라신 것 아니었습니까?”전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붓을 책상에 내던지며 소리쳤다.“이 불경한 자식아! 내 너를 아낀다고 해서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영의정 저택 외에 또 어디에 첩자를 심어두었느냐?”소한은 눈을 내리깔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3품 이상의 모든 관료의 집에 첩자를 두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전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한을 가리켰지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그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참 동안 방안을 서성이었다.잠시 후 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네가 감히! 그렇게 많은 곳에 첩자를 심어두고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이냐? 이렇게 행동하면 내가 소씨 집안을 멸문시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소한은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조용히 말했다.“저도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다섯 해 전, 저희 소가는 거의 멸문 당할 뻔했습니다.”그 해 소하가 지닌 병권은 다른 집안의 탐욕스러운 먹잇감이 되었고 그로 인해 조정의 문
김단은 그제야 잊고 있었던 민태훈을 떠올렸다.그녀는 맹영지를 몸종에게 맡기고 민태훈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에 박힌 은침을 뽑아냈다.침이 빠져나가자마자 민태훈은 마치 고통에서 해방되기라도 한 듯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 가닥의 은침이 이토록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큰 마님은 김단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그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말이다.그때 경씨가 마차를 몰고 도착했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걸어 나오자 경씨는 놀란 얼굴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낭자, 괜찮소?”방금 전 김단이 영의정 저택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소한은 급히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덕분에 한발 늦게 도착한 경씨는 자신이 더 일찍 김단을 챙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말했다.“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소.“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저는 괜찮습니다. 먼저 맹 아가씨를 평양관저로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마차에 오르자 경씨는 바로 마차를 출발 시켰다.김단은 마차에 오르기 전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조용히 서 있는 소한에게로 향했다. 소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김단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한은 그런 김단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 후 소한은 곧장 궁으로 향했다.어서재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앉아 오늘 영의정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에게 보고했다.그의 말을 들은 전하는 노여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한을 꾸짖었다.“네가 감히 허락도 없이 영의정 저택을 침입했단 말이냐? 정말 대담하구나! 내가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느냐?”그러나 소한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벌을 달게 받겠습니다.“전하는 그의 담담한 태도에 더 분노하며 외쳤다.“민가
김단은 민씨 부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보내서는 안 된다라...오늘 이 자리에서 맹영지뿐만 아니라 김단 자신도 민가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김단은 민씨 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릴 줄 몰랐다.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김단의 눈빛이 서서히 날카롭게 변해갔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분노와 실망이 교차했다.큰 마님은 민씨 부인의 표정을 보고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맹영지의 몸에는 증거가 남아있었고 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하지만 지금 김단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분명 궐로 들어가 이 일을 고발할 게 뻔했다.지금 김단을 적으로 돌린다면 그에 따른 후과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큰 마님은 사랑하는 손자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김단을 보내면 민태훈의 입지가 위험해질 것이고 보내지 않는다면 민가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그때, 한 하인이 급히 달려와 외쳤다.“큰 마님! 소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소 장군? 소한을 말하는 것인가?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큰 마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소한이 이렇게 빨리 이곳에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김단도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마님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어 송구합니다.”모두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당당하게 정원으로 걸어 들어오는 소한의 모습이었다.“소한, 주인의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대체 영의정 저택을 무엇으로 보시는 것이오? 이곳은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소한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이런 무례를 범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곧 전하 앞에서 사죄드리지요.”그는 정원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큰 마님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김단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마님,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저를 막으신다면 저는 곧장 궐로 가 이 모든 일을 고할 것입니다.”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안에는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김단의 말이 끝나자 민가의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큰 마님은 눈썹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녀는 김단이 단순한 의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김단은 진산군 댁의 적녀이자 평양원군의 의남매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가의 두 형제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지금 그녀를 적대시하는 것은 곧 여러 권세 있는 가문을 적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큰 마님은 민태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통에 찬 얼굴로 땀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그러나 동시에 마음속에는 김단에 대한 의심도 피어올랐다. 만약 그녀의 말이 과장된 것이라면 민씨 가문은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한참을 고민하던 큰 마님은 굳게 결심한 듯 민씨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가 직접 확인해 보거라. 만약 낭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민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단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조심스럽게 맹영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팔 안쪽에는 선명한 멍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씨 부인은 숨을 들이켰다.“이런 상처가… 정말로…”그녀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김단은 차분하게 말했다.“다리 쪽은 더 심각합니다. 보시겠습니까?”민씨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이 상처, 정말로 태훈이의 짓입니까?”김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그 말에 민씨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태훈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단 말입니다.”김단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공주의 이름이 거론되자 민씨 일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스쳤다. 그러나 큰 마님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낭자가 공주의 명을 받고 우리 영의정 저택에 들어와 병자를 돌보는 것은 알겠소. 허나 공주의 허락 없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무엄한 일이오. 공주라 할지라도 국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함부로 공주의 이름을 빌어 협박하지 마시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단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민가의 큰 마님은 김단이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을 치켜세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단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떠올랐고 눈빛에는 경멸이 스쳤다.“공주님께서도 국법을 지키셔야 하는데 민가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민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그게 무슨 뜻이오? 우리 민씨 일가는 예로부터 법을 준수하며 국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소!”“김 의원께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우리 민가에 누명을 씌우려는 것 아니오?” 김단은 그저 조용히 서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김단의 이런 차분한 태도가 큰 마님의 신경을 건드렸다.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큰 며늘 아씨는 중전마마의 친조카이시며 공주자가의 사촌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의 치료를 맡게 되었지요. 원래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으나 오늘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누군가가 큰 며늘 아씨의 회복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의원으로서 제 환자가 이곳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니 제가 데려가야겠습니다. 만약 제 앞을 가로막으신다면 다음번에는 민대부님의 다리에 은침을 꽂아 버릴 것입니다.”이에 큰 마님은 지팡이를 바닥에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허튼소리 마시오! 낭자의 의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을 왜 우리한테 덮어씌우려는 것이오?”“맞소! 무슨 명의의 제자라더니... 다 헛소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