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최군형은 짐을 가지고 강씨 집안에 들어섰다가 평생 받아보지 못한 “냉대”를 받았다.강소아는 학교에서 할 일이 남았다며 스스로 가라고 최군형에게 집주소를 찍어주었다. 최군형은 그 주소를 따라갔다.그들은 오래된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나무로 된 바닥은 밟으면 끼익하는 소리가 났다. 다행히 아주 좁은 곳은 아니었고, 복층으로 된 집에 두 세대가 살고 있었는데 강소아 가족의 집은 왼쪽이었다. 1층은 거실, 주방과 화장실, 그리고 침실이 있었다. 2층은 커다란 방이었고, 분위기 좋은 베란다도 있었다. 검은색 난간 위로 가시 돋친 장미들이 피어났다.최군형은 정신이 팔려 이곳을 구경하고 있었다.“여긴...”“누나 방이에요.”강호준이 작은 소리로 설명했다. 최군형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부모님이 누나에게 참 잘 대해주네요. 여기가 가장 큰 곳이죠?”강호준이 씩 웃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최군형이 그 뒤를 따랐다. 좁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끼익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 곳에서 산다면 적막할 걱정은 없을 것이었다.최군형이 보일 듯 말 듯 웃었다.그들은 거실로 들어갔다. 강우재는 거실 중앙에 앉아 있었다. 남방에 슬리퍼만 신던 그도 오늘은 정장과 구두를 차려입고는 가장의 권위를 지키고 있었다. 소정애도 파마하고는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강소준이 자리에 앉아 흘러내린 안경을 위로 올렸다. 안경 너머로 곱지 못한 시선이 보였다.최군형은 그들의 모습에 살짝 놀랐다. 하지만 맞은편의 세 사람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최군형은 건장한 체격에 싸움도 잘하는 데다 감옥까지 갔다 왔다. 온 식구가 달려들어도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 게다가 과묵한 성격에 언제나 무표정으로 있으니 더욱 무서운 모습이었다. 그러니 첫날부터 기를 확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큼큼.”소정애가 헛기침하며 강우재에게 눈치를 주었다. 평생을 소시민으로 살아온 강우재는 이런 일을 해본 적 없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그... 너!”최군형은 흠칫했다. 강우재가 팔을 쭉 뻗어
최군형이 차갑게 웃었다. 이 사람들 연기를 못해도 너무 못했다.소정애가 눈을 부릅떴다.“너, 웃긴 뭘 웃어? 이게 웃겨?”최군형은 서늘한 눈길로 멍청한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부부를 바라보았다.소정애는 남편이 우물쭈물하자 차라리 자신이 말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입술을 축이고는 목청을 가다듬고 또박또박 말했다.“우리 집에 왔으면 우리 집 규칙을 지켜야 해. 알겠어?”최군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첫 번째, 넌 거실 바닥에서 자야 해.”“엄마, 누나가 오전에 접이식 침대를 사 왔어요.”강소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접이식 침대는 무슨! 바닥에서 자라면 바닥에서 자!”소정애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최군형이 코웃음을 쳤다. 바닥에서 자는 건 상관 없었지만 강소아가 그에게 침대를 사줬다니, 이 사실은 조금 의외였다. 그는 강소준의 눈길을 따라 벽 한구석을 바라보았다. 깨끗한 이불 홑청이 씌워진 접이식 침대가 보였다.최군형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두 번째, 우리 가족은 밥을 적게 먹어, 알지? 그러니 따로 네 몫은 안 할 거야. 먹고 싶으면 먹고, 먹기 싫으면 나가서 사 먹어.”최군형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우리 집 쌀을 낭비하지 말라는 건가?최군형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소정애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세 번째, 집에서는 집안일을 하고, 가게에서는 가게 일을 도와야 해. 상자들을 옮기고, 상품을 진열하는 일들 말이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너 스스로 할 일을 찾아 해. 그리고 네 번째, 네 옷은 너 절로 씻어, 더러운 옷을 아무 데나 벗어두지 말고, 특히 소파에는 절대 버리지 마. 그리고 2층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들어가지 마. 들어가는 순간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알겠어?”소정애가 이를 악물고 2층을 가리켰다.소정애의 말이 끝나자 방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강우재와 소정애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강소준을 쳐다보았다. 시선이 맞닿은 세 사람이 동시에 최군형에게로 눈길을 돌렸다.이때 최군형이
다른 사람들은 최군형의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한참 뒤 소정애가 입을 열었다.“뭐... 뭐 하려는 건데?”최군형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정애는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몸매를 가진, 지극히 평범한 중년 여성이었다. 자신의 엄마보다 열 살은 많아 보였다.하지만 그녀는 무섭지만 힘껏 날갯짓을 해 새끼를 지키는 어미 참새처럼 최군형에게 대들고 있었다. 소정애의 모성애는 절대 우습게 볼 게 아니었다.강우재가 초조한 표정으로 소정애의 옷깃을 잡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여보, 꼬투리 잡지 마, 못 이겨...”“그런 소리 하지 마!”소정애는 강우재를 흘겨보고는 다시 경계하는 눈빛으로 최군형을 쳐다보았다.최군형은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짐을 구석에 갖다 두고 문가에 앉았다. 세 식구는 한참 뒤에야 긴장이 풀린 모습으로 서로를 힐끔거리고는 조용히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오후 내내 그들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강소아는 계속 도서관에 있었다. 최근 머리 아픈 일이 많았는데, 공부할 때만이 잠시라도 그런 고민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하수영은 그 모습을 보고 부럽기도, 마음 아프기도 했다. 그녀는 바닐라 라테를 두 잔 사 강소아의 앞에 한 잔 놓아주었다.“오후에 커피를 사주다니, 나보고 오늘 밤은 자지 말라는 거야?”“안 마셔도 못 잘 걸! 집에 사람이 한 명 더 들어왔는데, 잠이 올 것 같아?”“난...”“소아야, 꼭 이래야 해? 최군형 그 사람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던데, 그리고...”하수영이 책상에 엎드린 채 강소아를 보고 얘기하다 말을 흐렸다. 강소아는 고개를 숙이고 커피를 마셨다. 두 손으로 커피잔을 감쌌지만 손끝은 여전히 차가웠다.잘 생각해보면, 그녀도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몰랐다. 처음 하면 다들 아프고, 피도 난다는데.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아무 통증이 없었다. 피가 묻어있는 곳도 없었다. 그러니까 어쩌면...어쩌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
날씨가 더우니 밖에서 자도 시원해서 괜찮았지만, 문제는 모기였다.강소아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갔다. 작은 크기의 침대였던지라 최군형의 다리 절반은 허공에 뜬 채였다. 넓지도 않아서, 마치 어른이 아동용 침대에 누운 것 같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강소아는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강소준이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강소아가 물었다.“안 자?”“수호신 안 데려왔어?”강소준이 최군형이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스스로 나간 거야, 엄마 아빠가 나가라고 한 거야?”“스스로 나갔어. 맞다, 누나, 배 안 고파? 밥 줄게!”강소준이 대답하며 주방에 들어가 랍스터 볶음밥을 내왔다.“아직도 따뜻해!”강소아가 어리둥절하게 강소준을 쳐다보았다. 엄마가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엄마였다면 랍스터 요리를 해도 한 마리를 통째로 할 것이었다. 가뜩이나 비싼 랍스터를 살만 발라내 밥을 볶을 리는 없었다.“이건...”“수호신이 누나 몫이라고 남겨둔 거야!”강소준이 신비하게 웃었다.“뭐?”“수호신이 밥 먹기 전에 나갔다 왔거든. 뭘 하려는 지 몰라서 부모님도 안 말리시고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얼마 안 지나 랍스터 네 마리를 사 왔어, 이렇게 큰 랍스터를 무려 네 마리씩이나!”강소준이 흥분한 얼굴로 열심히 랍스터의 크기를 설명했다.강소아는 집안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요즘 물가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건 알았다. 소정애였으면 네 마리는 고사하고 한 마리를 사도 한참을 고민했을 터였다.“누나! 그냥 이렇게 들어와서, 팍! 하고 랍스터 네 마리를 내려놨다니까? 그리고 하는 말이, 두당 한 마리씩이래. 나머지 한 마리는 건드리지 말래!”강소준이 계속해서 흥분한 얼굴로 상황을 재연했다.강소아는 깜짝깜짝 놀라며 강소준의 말을 들었다. 강소준이 멋있다는 듯 헤헤 웃으며 중얼댔다.“와, 진짜 멋있어.”강소아가 문 바깥을 쳐다보았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볶음밥은 아직도 따뜻했다. 그녀는 복잡한 심경으로 식탁에 앉아 볶음밥을 한술 떴다.“뭐야, 왜
“누나, 엄마가 오늘 얼마나 놀란 줄 알아? 십몇 년 동안 이 빗자루를 썼는데, 오늘 이렇게 끊어졌어!”강소준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최군형 씨가 엄마한테 손찌검이라도 했어?”“아니! 엄마가 빗자루를 들고 겁주려고 했는데, 말하다가 욱해서 그만 정말 때려버렸어, 그런데 그만 끊어진 거야. ”강소아가 눈을 크게 떴다. 강소준이 문밖을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누나, 저 사람 아이언맨, 뭐 그런 거 아니야?”강소아는 얼른 강소준을 쫓아버렸다. 그녀는 식탁 위의 볶음밥을 한참 쳐다보다가 문밖의 최군형을 바라보았다.최군형은 옆으로 돌아누운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이불은 그의 배 쪽만 겨우 가리고있었다. 팔다리에 탄탄하게 잡힌 근육은 남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겼다.강소아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순간 피어오른 생각들을 애써 억눌렀다.첫날은 이렇게 무사히 지나갔다. 다음 날 새벽, 강소아가 조용히 계단을 내려왔다.주말이면 가게는 항상 바빴다. 강우재와 소정애는 아침 일찍 나가 상품을 들여오고 오픈 전에 진열대를 정리했다.강소준은 밖에서 영어단어를 외우는 습관이 있었다. 지금도 아마 집 근처의 공원에서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을 것이었다.강소아가 문밖에 나가니 최군형도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빈 침대를 쳐다보았다. 이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강소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인 최군형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금방 운동을 마친 모양이었다. 각진 얼굴이 단단한 인상을 풍겼다. 몸에 달라붙은 티셔츠는 땀에 살짝 젖어 완벽한 역삼각형 몸매를 드러냈다.강소아의 시선은 그의 가슴 앞의 두 점에 고정됐다.“뭘 봐요?”최군형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 강소아가 급히 고개를 돌리며 작게 대답했다.“아니에요. 잠은 잘 잤어요?”“네.”최군형이 수건으로 아무렇게나 얼굴을 닦았다.강소아는 최군형을 쳐다보았다. 그는 언제나 과묵하고 냉정했다.하지만 강소아는 어릴 적부터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자라왔고, 세상은 원
“월세? 우리 결혼하는 거 아니었어요? 남편한테도 월세를 받아요?”최군형이 강소아를 바라보며 눈썹을 까딱했다. 그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어렸다.“아...”강소아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한 듯 얼굴이 빨개져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최군형은 그녀를 더 놀리지 않고 한손으로 접이식 침대를 들어 한구석에 갖다 놓았다.강소아를 지나칠 때, 최군형은 그녀의 달아오른 귀 끝과 얼굴의 솜털을 똑똑히 보았다. 그녀의 상큼한 향기가 코를 파고들었다. 최군형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발을 멈추고 그녀에게 말했다.“침대... 고마워요.”강소아는 고개를 들어 최군형과 눈을 마주쳤다. 그의 깊은 눈빛 속 무언가가 그녀의 마음속을 깊이 파고들었다.강소아가 뭔가 생각난 듯 급히 말했다.“아, 맞다, 얘기할 게 있어서 왔어요! 혼인신고 말인데요...”최군형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안에 들어서 물을 한 모금 크게 마셨다. 강소아가 입술을 깨물고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최군형 씨... 제가 당신을 우리 집에 들인 건 더 이상 구자영과 엮이기 싫어서에요.구자영이 그랬잖아요. 혼인신고를 안 하면 또 올 거라고. 물론 그냥 해본 말일수도 있지만, 구자영 성격이라면 정말 올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정말 혼인신고를 하자고요?”“아뇨!”강소아가 급히 부인했다. 최군형이 옅게 웃었다. 이윽고 강소아가 낮은 소리로 입을열었다.“그러니까, 어떻게 할 지 토론해 보자는 거죠. 며칠만 가게에 있어 줄 수 있어요? 구자영이 또 올까봐...”최군형은 그녀의 뜻을 알아챘다. 집 지켜주는 것처럼 가게도 지켜달라는 거였다.최군형은 작게 웃고는 가방에서 깨끗한 옷을 꺼내 화장실로 들어갔다. 곧이어 물소리가 들렸다. 강소아는 밖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문 앞을 맴돌고 있었다.‘정말 이상해! 몇 마디 더 하면 죽기라도 하는 거야?’최군형은 방금 일을 승낙하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하든 제 맘대로 하는 것 같았다.강소아가 긴 숨을 내뱉었다. 이 일은
소정애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눈을 크게 뜨고 강소아를 쳐다보며 말했다.“이건 어떻게 한 거야? 정말 혼인신고라도 한 거야? 그건 아닌 거지?”“엄마, 무슨 소리예요! 누나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어요!”강소준이 강소아 대신 해명했다.“맞아, 내가 점심에 돌아왔을 때도 공부하고 있었어.”강우재도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최군형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다들 진정하세요. 이건 가짜입니다.”“가짜?”모두 깜짝 놀랐다.“강소아 씨가 말하길, 구자영이 다시 찾아올까 봐 무섭다고 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한 것 같아요. 대책은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그래서 만들었습니다.”최군형이 간결하게 설명했다.강소아는 놀라운 심정으로 증명서를 자세히 보았다. 아무런 흠집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게 진짜와 똑같았다.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최군형이 말하지 않는 이상은 가짜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었다.강우재와 소정애는 의문스러운 눈길로 서로를 쳐다보았다.결국 강소준이 모두가 궁금해하는 문제를 물었다.“수호신 형님, 이건 어떻게 한 거예요?”최군형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이는 유찬혁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변호사인 유찬혁의 인맥은 엄청나게 넓었다. 어떤 분야에서든 꼭 그가 아는 사람이 있었다. 그중에는 문서 위조 전문가, 블랙 해커도 포함돼 있었다.하지만 그 사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최군형은 목청을 가다듬고는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한 겁니다.”“군형 씨가요?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요?”강소아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아... 네. 전에 문서 위조 전문가였습니다.”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강우재가 사레 들린 듯 기침을 해댔다.최군형이 문서 위조를 했었다고?그 모습을 상상한 강소아가 풉 하고 웃었다.이때 소정애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아이고! 그러니까, 문서 위조를 하다 잡혔다는 거야?”“아... 네.”최군형이 흠칫하고는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막노동이라도 하지, 왜 그런 일을 해!”“
최군형이 패싸움 같은 일을 하다 잡혀 감옥살이를 한 줄 알았는데, 문서 위조 때문이었다니. 몸만 쓸 줄 아는 놈인 줄 알았지 이런 기술이 있을 줄은 몰랐다.소정애가 살짝 웃었다. 최군형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안 뒤로 그에게서 후광이 비치는 줄 알았다.“군형아, 그럼 넌 손재주 있는 전과자인 거네! 그거 때문에 감옥살이한 거라면 나도 안심할 수 있어. 패싸움보단 백배 낫잖아. 군형아, 잘못을 저질렀어도 제때 고친다면 괜찮아. 이렇게 진짜 같은 증명서를 만들었다는 건 네 실력이 상당하다는 뜻이잖아! 이 기술을 좋은 쪽에 쓰면 사회에 힘을 보탤 수 있을 거야.”“맞아! 내 생각도 그래! 군형아, 혹시 위조지폐는 만들 줄 알아?”“쿨럭쿨럭...”최군형이 밥을 입에 문 채 어쩔 바를 몰라 했다.강소준은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강소아는 엄마, 아빠에게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눈치를 준 다음 일어나 물 한 잔을 따라 최군형에게 건넸다.최군형은 힘겹게 입안의 음식물을 삼켰다.위조지폐를 만들 줄은 몰랐지만 그릴 줄은 알았다. 그의 외할머니가 그린 반딧불이 그림 한 폭은 400억 원에 낙찰됐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외할머니의 그림 실력을 쏙 빼닮았다.강소아가 증명서를 서랍 안에 집어넣으며 웃는 얼굴로 최군형에게 말했다.“마침 혼인관계증명서가 필요했는데, 너무 잘됐어요. 구자영이 또 올까 봐 오늘 하루 종일 걱정했거든요.”“내가 있는 한 그럴 엄두는 못 낼 거예요.”최군형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강소아가 멍해졌다. 심장이 왜 마구 뛰는지 알 수 없었다.......저녁식사가 끝난 후 그녀는 홀로 집을 나섰다. 여덟 시가 조금 지난 터라 식사 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그녀는 멀지 않은 해변으로 향했다. 여름의 밤바다는 언제 봐도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어두운 해수면을, 희미한 지평선을 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그녀는 사람 적은 곳을 찾아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