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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후애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1 14:28:58

진희가 미래의 등 위로 포개어지듯 무너졌다.

거두어낸 그의 마지막 열기가, 그녀의 허리 위로 뜨겁게 흘렀다.

깍지는 풀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거친 숨소리만 방 안을 채웠다. 그의 심장이 그녀의 등을 통해 쿵, 쿵 울렸다. 그녀의 심장도 같은 속도로 뛰고 있었다.

진희가 그녀의 목덜미에 이마를 묻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 자리에 입을 맞췄다.

한참 뒤에야, 깍지가 풀렸다.

진희가 협탁 위의 수건을 집어, 그녀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서두르지 않는 손길이었다. 그리고 미래의 몸을 천천히 돌려, 자신의 품 안으로 쏙 끌어당겼다.

미래의 작은 몸이 그의 품 안에 꼭 맞게 안겼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희는 그녀를 안은 채, 땀에 젖어 흐트러진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의 손끝이 닿을 때마다 미래는 눈을 감고, 그 감촉에 몸을 완전히 맡겼다. 맞닿은 가슴과 가슴 사이로, 아직 가라앉지 않은 두 심장이 서로를 두드렸다.

진희는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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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13. 수요일까지

    "아빠, 방이 두 개나 있어?!"선실 안에서 진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래는 그제야 선미에서 눈을 뗐다. 성웅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미래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들어가 보자."진원은 주방이며 게스트룸이며 문이란 문은 죄다 열어보더니, 마스터룸에서 정말로 소리를 질렀다."엄마! 아빠! 여기 침대 완전 좋아! 욕조도 있어!!"킹사이즈 침대 위로 새하얀 리넨이 정돈돼 있었고, 헤드보드는 자개처럼 은은하게 빛났다. 통유리창 너머로 바다가 그대로 보이는 욕조는 웬만한 호텔 스위트룸 못지않았다."매트리스는 우리 집 거랑 같은 걸로 해달라고 했어. 덕시아나로."성웅이 침대 모서리를 손으로 쓸며 말했다."진짜 좋네요."미래도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시선은 어딘가 겉돌았다. 문득 어젯밤 반포 한강에서 진희가 사 왔던 캔커피 두 개가 떠올랐다. 이 화려한 요트보다 그 소박했던 밤이 더 선명하다는 게, 스스로도 이상했다.갑판에 오르자, 성웅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지금 4시니까, 요리사들 오기 전까지 시간 좀 있어. 수영하기 좋은 데로 나갈까?""나! 나 할래!" 진원이 벌써부터 신이 나서 손을 들었다.엔진 소리와 함께, 요트가 천천히 김녕항을 빠져나갔다. 성웅이 직접 키를 잡았다. 십여 분쯤 달렸을까, 물빛이 유난히 맑은 곳에서 그가 배를 세웠다.닻을 내리자마자, 진원이 구명조끼를 집어 들었다."조끼 제대로 입고." 미래가 웃으며 아들의 조끼 끈을 단단히 조여줬다.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진원이 바다로 뛰어들었다."으아! 시원해!!"성웅도 뒤따라 뛰어들며 미래를 돌아봤다."당신도 들어와.""저는 좀 있다가요."미래는 캐리어에서 수영복을 꺼냈다. 급하게 챙기느라 비키니 한 벌뿐이었다.거울에 잠깐 비친 자신의 몸을, 미래는 낯설게 바라봤다. 애 둘 낳은 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매끄러운 곡선, 군더더기 없이 탄탄한 허리. 오래 관리해온 결과였지만, 오늘따라 그게 새삼스러웠다.미래는 물에 들어가지 않고 선텐 데크에 자리를 잡았다.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12. MIRAE 84

    토요일 진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오후였다.진희는 혼자 맞는 주말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책을 읽거나, 와인을 마시거나,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곤 했다. 그 고요함이 불편한 적은 없었다.그런데 오늘은 달랐다.책을 펼쳐 들어도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젯밤의 감각이 아직도 몸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손끝에, 입술에, 가슴 깊은 곳에.지우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감각이 옅어질까 봐, 진희는 자꾸만 그 밤을 다시 떠올리며 붙들고 있었다.'보고 싶다.'겨우 하루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그리운 게 스스로도 낯설었다.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진희는 운동화를 신고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양재천이었다. 딱히 목적지를 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한 걸음, 한 걸음. 숨이 가빠질 때까지 뛰었다.이 길 어딘가에서, 그 사람의 손을 처음 잡았었다. 그날 밤의 인파와 소음이 오히려 그리울 만큼, 지금 이 길은 조용했다.진희는 속도를 더 올렸다. 몸을 혹사하면 이 그리움도 조금은 무뎌질 줄 알았다.하지만 아무리 뛰어도, 가슴 한복판의 갈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정신을 차려보니 잠실까지 와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뛰지 않을 거리였다.숨이 턱까지 찬 채로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생수 한 병을 집었다. 계산대로 향하다가, 냉장고 한쪽의 레쓰비가 눈에 들어왔다.걸음이 저절로 멈췄다.어젯밤, 반포 한강에서 함께 마셨던 그 캔이었다. '우리 이거 자주 마시네요' 하고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진희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결국 생수만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편의점 앞 파라솔에 앉아 물을 들이켜며, 진희는 휴대폰을 꺼냈다. 오늘 아침 받은 마지막 문자가 그대로 떠 있었다.[네…… 다녀올게요.]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무슨 핑계라도 좋으니, 그저 몇 마디라도 나누고 싶었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움직이려다, 멈췄다.지금쯤 미래는 남편과 함께 있을 시간이었다.진희는 휴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10. 완전 부부 같았어요

    토요일 진료는 4시에 끝났다. 수연은 곧장 짐을 챙겨 여드름·아토피 학회가 열리는 컨벤션홀로 향했다.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어, 준혁이 아니야?""수연 선배!" 준혁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그럼, 나야 잘 지내지. 너는 여전히 학회 열심히 다니네."두 사람은 로비 한쪽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병원 얘기, 요즘 유행하는 시술 얘기가 오가다가, 준혁이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참, 저 저번 주에 춘천에서 진희 잠깐 마주쳤어요. 애인이랑 왔더라고요."수연의 눈이 커졌다."진짜? 언제?""평일 낮이었어요. 저 춘천에서 개업했잖아요. 병원 동네 나이키 매장에서 딱 마주쳤지 뭐예요. 저도 되게 놀랐어요.""헐, 대박." 수연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유 원장이 드디어 여친 있다고 인정했거든! 근데 실물은 나도 아직 못 봤어. 그 사람인가?""아마 맞을 거예요."수연의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궁금증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혹시… 귀엽고 섹시해?"준혁이가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어, 그런 것 같아요. 엄청 예쁘더라고요.""와……." 수연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역시. 우리 유 원장, 한다면 하네."'대체 어디서 그런 사람을 만난 거야.'수연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혼자 신기해했다. 진희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이상형, 귀엽고 섹시한 사람. 그 조건에 딱 맞는 사람을 정말로 만났다는 게 왠지 흐뭇하기까지 했다."근데 누군지는 진짜 안 알려주더라고, 나한테는." 수연이 입을 삐죽였다."근데 되게 잘 어울리더라고요." 준혁이가 웃으며 덧붙였다. "츄리닝 입고 딱 붙어 있는데, 저 처음엔 진짜 결혼한 줄 알았어요. 둘이 너무 잘 어울려서 완전 부부 같았거든요.""진짜? 그 정도야? 우리 유진희랑 잘 어울린다면 진짜 이쁘다는건데?""네, 완전요.""키는 어느정도야? 진짜 귀여운데 섹시한 여자가 어딨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09.어차피 강 건넌 거잖아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 뜬 '제시카'라는 이름에, 미래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미래야"전화를 받자마자 제시카의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나 지금 완전 아쉬워 죽겠어. 너 못 보고 가서. 우리 명동도 못 갔잖아, 흑흑.""어, 너 지금 뉴욕이야?""도쿄에서 바로 뉴욕 왔어. 야, 나 서울 사람 다 됐나 봐. 몸이 완전 서울 시간이야."미래는 픽 웃으며 창밖을 내다봤다.잠시 사이를 두고, 제시카가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참, 너 유진희랑은 어때? 박성웅은 어떻고?"미래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 곧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수아야.""어?""나 할 말이 너무너무 많아."수화기 너머로 짧은 정적이 흘렀다. 평소와 다른 기류를 감지한 듯, 제시카의 목소리가 확 달라졌다."야…… 너 혹시 유진희랑 잤어?"미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작게 읊조렸다."수아야, 그렇게 됐어.""꺄아아아악!!!"귀가 먹먹할 정도의 비명에 미래는 휴대폰을 귀에서 살짝 떼어내야 했다. 한참을 소리 지르던 제시카가 겨우 숨을 고르고 물었다."그래서…… 좋았던 거지?"미래는 대답 대신 나직이 웃었다. 그 웃음은 말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응, 좋았어……. 나 이래도 되는 거야? 안 되는 거지……?"제시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미래는 그 침묵 속에서 친구가 무슨 말을 고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내 제시카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야. 박성웅, 솔직히 결혼하고 몇 년도 안 돼서 변했잖아. 나 그 얘기 듣고 박성웅 진짜 맘에 안 들었어. 자기 맘대로 하고. 네가 박성웅 침대에만 있는 사람은 아니잖아."미래는 왈칵 차오르는 감정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일단, 유진희랑 좋았다면 나도 좋아." 제시카가 부드럽게 덧붙였다. "미래야, 어차피 강 건넌 거잖아.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자."미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고마워, 수아야.""고맙긴." 제시카의 목소리가 다시 장난스럽게 풀렸다. "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08. 제주도

    "나는 반가웠는데, 언니는 날 피하듯이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타더라고. 암튼 그랬어."진희는 커피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애써 감췄다."그래요?" 최대한 무심한 척 대꾸했다. "좀 바쁘셨나 보죠.""그런가." 수연이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진희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척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형수, 저 진료실 들어갑니다."원장실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뛰고 있었다.진료실 문을 닫고 홀로 남자, 진희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어젯밤이 파노라마처럼 밀려왔다. 미래의 잦아드는 숨결, 손끝에 닿았던 매끄러운 온기, 마지막 순간 머뭇거리듯 나눴던 다정한 키스까지.'보고 싶다.'겨우 몇 시간 지났을 뿐인데, 벌써 가슴 한구석이 아릿할 만큼 그리운 게 우스울 지경이었다.진희는 망설임 없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녀를 향한 마음을 감출 이유가 없었다.[잘 잤어요? 오늘도 보고 싶은, 긴 하루가 시작되었네요.]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진희는 짧게 숨을 골랐다. 첫 환자가 들어오기까지 남은 몇 분이, 유난히 달콤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미래는 거실 바닥에 캐리어를 펼쳐놓고 정신없이 짐을 싸고 있었다. 성웅 여벌 옷들과 골프채, 골프웨어, 진원이 숙제인 수학·영어 문제집까지 챙기느라 손길이 분주했다.그때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액정을 확인한 미래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잘 잤어요? 오늘도 보고 싶은, 긴 하루가 시작되었네요.]미래는 짐을 싸던 손을 멈추고 답장을 적었다.[제가 그렇게 보고 싶어요?]답장은 곧바로 도착했다.[그럼요. 항상 그랬어요.][오늘은 뭐 하세요?]미래는 잠시 망설이다 짧게 답장을 보냈다.[저 오늘 제주도에 가게 됐어요.]전송 버튼을 누른 미래는 다시 캐리어로 돌아갔다.한편, 그 문장을 읽은 진희의 손끝이 멈췄다. 그는 짧은 문장을 두 번, 세 번 곱씹듯 읽었다.'제주도.'머리로는 이해했다. 남편과 함께 떠나는 가족 여행이라는 걸. 가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07. 좀 이상했어

    새벽 4시 30분, 35분, 40분… 그리고 5시.알람이 울리자 미래는 서윤을 깨웠다. 서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책상 앞에 앉았고, 미래는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눈을 붙였다.다시 눈을 뜬 건 8시였다.서윤의 방문을 열어 보니, 서윤은 여전히 책상 앞이었다. 자세 하나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이따 정례 이모 오시니까, 그때까지는 엄마랑 둘이 먹어야 해. 나가서 먹을까, 아니면 엄마가 차려줄까?""나가서 먹고 싶은데……." 서윤이 펜을 굴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시간이 없잖아. 오늘도 할 거 많은데.""그럼 엄마가 파니니 사다 줄까?"서윤의 얼굴이 그제야 좀 풀렸다."어, 좋아. 나 풍기 파니니.""알았어."미래는 세수도 하지 못한 채 겉옷만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근처 브런치 가게에서 풍기 파니니와 서윤이 좋아하는 베이글 몇 개, 커피 두 잔을 챙겨 다시 아파트로 향했다.로비로 들어서던 참이었다."어, 언니!"출근하려던 수연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아, 네……." 미래는 짐을 고쳐 들며 어색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어디 다녀오세요?""아, 그냥… 빵 좀 사러요."대화는 그게 다였다. 수연이 뭔가 더 말을 걸려는 듯했지만, 미래는 짧게 목례만 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수연은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봤다.'언니, 어디 아픈가.'평소와 뭔가 달랐다. 정확히 뭐가 다른지는 짚어낼 수 없었지만, 그 느낌만은 분명했다.집에 돌아온 미래는 냉장고에서 키위와 블루베리, 수박을 꺼내 접시에 담고 요거트도 곁들여 식탁에 올렸다."많이 먹어. 파니니만 먹으면 부족하잖아."서윤은 포크로 블루베리 몇 알을 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이번 기말고사 끝나면 한국 고등학교 시험은 이게 진짜 마지막이네."미래는 잠깐 손을 멈췄다."그러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9월이면 벌써 보딩스쿨이야." 서윤이 요거트를 뜨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 시험 진짜 잘 봐야 하는데.""뭘 그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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