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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각오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10-29 08:21:45

희연은 내심 놀라고 있었다.

유산. 투자 수익. 언제든 병원을 열 수 있는 여력. 페이 원장이라는 말만 듣고 얕잡아 봤던 이 남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지금까지 한 번도 내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남자의 그릇을 보여 주고 있었다.

희연은 마지막 남은 이유를 손에 꼭 쥐었다.

소송.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시작될 재산 싸움. 전처 자식들과 맞붙을 그 싸움에서, 희연에게는 박성웅이 필요했다. 박성웅의 돈, 박성웅의 인맥, 박성웅이 붙여 줄 변호사들. 미래가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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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를 다시 탐하기 시작했다   227. 더 깊이

    그 웃음 끝에, 미래가 진희의 어깨를 밀어 몸을 뒤집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자리가 바뀌었다. 진희가 시트 위에 눕고, 미래가 그 위에 올라앉았다.진희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래는 그런 진희를 내려다보며, 남은 옷가지를 마저 걷어 냈다. 그리고 능숙하게, 진희를 자신의 안으로 천천히 넣었다."아……."진희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미래는 진희의 가슴을 짚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깊이 가라앉았다가, 느리게 올라오고, 다시 가라앉았다. 미래는 진희의 표정을 내려다보며 그 리듬을 조금씩 바꾸어 갔다. 진희가 어디에서 숨을 멈추는지, 어디에서 눈을 질끈 감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듯."아…… 아…… 미래 씨……."진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너무 좋아……. 아…… 이렇게……."진희의 두 손이 미래의 골반을 붙잡았다. 그리고 미래의 움직임에 맞추어, 더 깊이 끌어당기며 함께 흔들기 시작했다.미래의 가슴이 출렁였다. 미래는 진희를 꽉 조여 안으며 스스로도 느끼고, 진희도 느끼게 했다. 두 사람의 깊은 호흡과 신음이 객실 안에서 뒤엉켰다.

  • 아내를 다시 탐하기 시작했다   226. 이태원

    조수석 문이 닫히자마자, 진희가 몸을 기울였다.두 손이 미래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미래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진희의 입술이 미래의 입술 위로 포개졌다. 짧지만 깊은 입맞춤이었다. 하루 종일 참아 온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긴.입술이 떨어지자 진희가 미래의 이마에 이마를 맞대고 낮게 웃었다."보고 싶었어요."미래는 대답 대신 진희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진희는 아쉬운 듯 한 번 더 미래의 볼을 쓸어 주고는, 핸들을 잡고 천천히 백화점 앞을 빠져나왔다.뒷좌석에 쌓인 쇼핑백들을 백미러로 흘끗 본 진희가 물었다."살 게 많았어요?""……좀요."미래가 창밖을 바라보며 엷게 웃었다. 저녁노을이 빌딩 유리창마다 붉게 번져 있었다.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추자, 미래가 진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진희 씨.""응.""우리…… 호텔에 잠깐 들러서 이야기좀 할까요?"진희의 손가락이 핸들 위에서 아주 잠깐 멈칫했다. 미래의 입에서 먼저 그런 말이 나온 건 처음이었다. 그러나 진희는 당황한 기색을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저 미래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 보이고는, 신호가 바뀌자 핸들을 이태원 쪽으로 꺾었다.이태원 부티크 호텔이었다.로비는 작고 아늑했다. 짙은 원목 벽에 낮게 깔린 앰버빛 조명, 은은하게 흐르는 재즈. 체크인을 하는 동안 미래는 진희의 등 뒤에 조금 비켜서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복도를 걷고, 카드 키가 삐릭 소리를 내며 객실 문이 열릴 때까지,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문이 닫히자, 비로소 세상이 조용해졌다.통창 너머로 남산 타워가 어스름 속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 미래는 핸드백을 내려놓고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진희는 홈바의 작은 냉장고를 열어 탄산수 한 병을 꺼냈다. 칙, 하고 뚜껑을 딴 진희는 그것을 미래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리고 침대 앞 카펫 위에 무릎을 꿇듯 주저앉아, 미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미래는 진희의 시선도 느끼지 못한 듯, 탄산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차가운 기포가 목을 타고

  • 아내를 다시 탐하기 시작했다   225. 같은 향

    계산대 위에 쌓인 옷을 보며 직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미래는 카드를 내밀며 엷게 웃었다."네. 다 해 주세요."마지막은 향수 매장이었다.1층 한쪽, 은은한 조명 아래 크리스털 병들이 보석처럼 늘어서 있었다. 미래는 테스터 스트립을 하나씩 집어 들고 천천히 향을 맡아 보았다.그러다 문득 깨달았다.몇 달 동안 쇼핑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을. 진희를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백화점에 오는 일도, 새로운 무언가를 사는 일도 어느새 잊고 지냈다. 진희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충만해서, 다른 무엇으로 마음을 채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그래서였을까. 진열대 위의 신상품들이 하나같이 낯설었다. 처음 보는 이름, 처음 맡는 향. 그런데 그 낯섦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 좋은 설렘이었다. 하나씩 뚜껑을 열고 향을 맡을 때마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감각이 조금씩 깨어나는 것 같았다.미래는 자신을 위한 향부터 골랐다. 장미와 머스크가 은은하게 겹쳐지는, 부드럽고 깊은 향이었다.그리고 성웅의 것.시더우드와 베티버가 묵직하게 깔리는, 날카롭고 차가운 향을 집어 들었다. 성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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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점 회전문을 밀고 들어서자, 서늘한 공기와 함께 은은한 꽃향기가 미래를 감쌌다.반짝이는 대리석 바닥. 쇼윈도마다 조명을 받아 빛나는 신상품들. 낯익은 풍경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랜만에 고향에라도 돌아온 듯 낯설었다.미래는 망설이지 않고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란제리 매장으로 향했다. 마치 누군가 머릿속에 동선을 입력해 놓기라도 한 것처럼."어서 오세요, 사모님."매장 안은 고요하고 부드러웠다. 아이보리 실크와 샴페인빛 레이스, 깊은 와인색 새틴이 조명 아래 물결처럼 걸려 있었다. 미래는 손끝으로 실크 슬립 하나를 쓸어 보았다. 손바닥 위로 미끄러지는 차가운 감촉.브래지어와 팬티 세트를 몇 벌 고르고, 레이스가 섬세하게 덧대어진 슬립 두 벌, 그리고 발목까지 떨어지는 실크 로브 하나를 골랐다. 피팅룸 거울 앞에 서서 몸에 대 보던 미래는, 문득 손을 멈췄다.해마다 계절이 바뀌면 속옷과 로브, 슬립은 꼭 새것으로 들였었다. 그건 미래에게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작년에는 건너뛰었다. 올해도 지금껏 잊고 있었다.2년 만이었다.미래는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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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동으로 향하는 택시 안.희연은 뒷좌석 창가에 기대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강남의 빌딩 숲이 하나둘 멀어지고, 한강 다리 위로 오후의 햇살이 부서지듯 쏟아지고 있었다.예상대로 된 건 하나도 없는 날이었다.유진희를 단숨에 꺾어 놓을 생각이었다. 미래를 울려서라도 정신 차리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꺾인 건 자신이었고, 결국 딸에게 몰래 만나라는 말까지 내뱉고 나오는 길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쪽이 가벼웠다.제비 같은 놈이 아니었다. 딸의 돈이나 노리고 접근한 뻔뻔한 놈도, 재미 삼아 유부녀를 건드리는 바람둥이도 아니었다. 반듯하고, 품위 있고, 돈도 있고, 무엇보다 내 딸을 진심으로 아끼는 서른 후반의 의사였다. 희연이 밤새 걱정했던 최악의 경우들은, 하나도 맞지 않았다.희연은 오늘 진희가 했던 말들을 하나씩 곱씹었다.'어머님. 미래 씨한테 말씀 들었습니다. 유진희입니다.''저는 아직 30대입니다. 제 실력과 가능성을 봐 주세요.''미래 씨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곁에서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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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연은 미래의 손을 놓지 않았다.몰래 만나라. 그 말을 입 밖에 내놓고 나서야, 희연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실감했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이건 포기가 아니라 계산이었다.유진희도 완강했다. 미래도 완강했다. 둘 다 지금은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서,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떼어 놓으려 할수록 더 들러붙을 게 뻔했다.'시간이야. 시간만 벌면 돼.'불같은 사랑일수록 빨리 식는 법이었다. 2년이면 충분했다. 몰래 만나고, 숨고, 눈치 보는 사랑이 2년을 버틸 리 없었다. 그 안에 둘은 지칠 테고, 언젠가는 헤어질 것이다. 그러면 미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오면 그만이었다.단 하나. 그때까지 박성웅한테만 들키지 않으면 된다."……엄마."미래의 입술 사이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엄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헤어지라는 말 대신, 만나도 된다는 말. 몰래라는 전제가 붙어 있었지만, 그래도 처음이었다. 엄마가 단 한 걸음이라도, 자기 쪽으로 다가와 준 것은."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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