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삼 년 전, 신지완은 김경란과의 혼서를 직접 찢어 버리고 기루에 몸을 팔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가난을 싫어해 부귀를 택하고, 제 약혼자를 버렸다고 수군댔다. 하지만 신지완만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녀는 기꺼이 제 명성을 버리고 기루에서 가장 유명한 여인이 되었다. 삼 년 후, 김경란은 장원급제했다. 두 사람은 청우루에서 열린 장원 연회에서 다시 마주했다. 그녀를 바라보던 김경란은 사람들 앞에서 차갑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모르는 사람이오.”
Ver mais이튿날 아침, 신지완이 눈을 떴을 때 곁에 있던 사내는 이미 떠난 뒤였다.침상은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마치 지난밤의 모든 일이 한바탕 꿈에 불과했던 것처럼, 그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신지완은 한동안 빈자리를 바라보다 천천히 시선을 거두었다. 가슴 한구석이 알 수 없이 허전했다.그때였다.쾅!문이 거칠게 걷어차이며 열렸다.“신지완! 당장 나오너라!”시녀들이 놀라 물러섰다. 신지완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본 뒤 천천히 일어섰다.“고 아가씨께서 어쩐 일이십니까?”고명주는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녀는 방 안을 샅샅이 훑더니 곧장 침상으로 다가가 이불을 걷어 던졌다.“분명 여기 있었을 텐데!”베개를 뒤집고 요까지 들춰 보았지만, 다른 사람이 머물렀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침상이 지나치게 말끔한 탓에 오히려 그녀의 의심은 깊어졌다.“좋아. 흔적이 없다면 직접 확인하면 될 것 아니야!”고명주는 곁에 서 있던 노마님을 돌아보았다.“당장 신지완의 몸을 살펴봐요!”노마님이 난처한 기색으로 망설이자, 고명주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치솟았다.“못 들었어요? 어젯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어요!”그녀가 손을 내젓자 하인들이 곧장 신지완에게 달려들었다.“무슨 짓입니까!”신지완이 물러서기도 전에 양팔이 붙들렸다.하인들은 그녀의 저항을 무시한 채 옷자락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옷깃이 흐트러지고 희고 고운 살결이 드러났다.수치심에 얼굴이 굳었지만, 신지완은 이를 악물었다. 기녀라는 이유만으로 이토록 함부로 짓밟혀야 한다는 사실이 뼈아팠다.고명주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밤을 함께 보낸 흔적이라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의심을 뒷받침할 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이럴 리가 없어…….”고명주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신지완은 하인들의 손을 뿌리치고 흐트러진 옷깃을 여몄다. 모욕을 당한 사람은 자신인데, 정작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추궁당
“상처부터 치료해야겠소.”김경란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신지완을 자신의 거처로 데려갔다.방에 들어서자 하인이 급히 약상자를 가져왔다.신지완은 김경란의 옷소매를 조심스럽게 걷었다.피가 밴 천 아래로 붉은 상처가 드러났다.“조금만 참으십시오.”그녀가 상처를 씻고 약을 바르자 김경란의 미간이 좁혀졌다.“아프십니까?”김경란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가에 씁쓸한 웃음을 걸었다.“그대가 그때 혼서를 찢었을 때만큼은 아니오.”신지완의 손이 멈췄다.김경란은 아무렇지 않은 듯 시선을 돌렸다. 마치 방금 내뱉은 말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이.“씻을 물을 준비하라.”하인이 물러난 뒤, 방 안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몸에 묻은 피를 씻어 내기 위해 병풍 양쪽에 각각 물을 준비했다.김경란은 먼저 안쪽으로 들어갔고, 신지완은 반대편에 자리를 잡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얇은 병풍 하나만 놓여 있었다.병풍 너머로 물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병풍 위에 어렴풋이 드리웠다.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웠지만, 끝내 서로에게 닿을 수는 없었다.마치 지금의 두 사람처럼.분명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이미 너무 멀리 떨어져 버린 두 사람.한때는 서로를 끌어안고 온기를 나누던 사이였지만, 이제는 얇은 병풍 하나조차 넘어설 수 없었다.신지완은 젖은 소매를 걷으며 눈을 감았다.삼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밤이 있었다.그때는 비를 맞고 돌아온 김경란이 감기에 걸렸었다.그녀는 밤새 그의 곁을 지켰고, 그는 잠결에도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지완아.”병풍 너머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신지완의 가슴이 내려앉았다.그는 삼 년 동안 한 번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예?”잠시 침묵이 흘렀다.“아무것도 아니오.”그녀는 젖은 손을 움켜쥐었다.하마터면 대답할 뻔했다.예전처럼, 그가 자신을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겠다고.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먼저 씻기를 마친 신지완은 조용히 병풍 밖으로 나왔다.“장원랑, 소녀는
마차가 움직이자 김경란은 약병을 가리켰다.“발랐소?”신지완은 고개를 끄덕였다.“예.”“거짓말하지 마시오.”그는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약병이 그대로 닫혀 있군.”신지완은 할 말을 잃었다.김경란이 한숨을 쉬며 약병을 열었다.“손을 내미시오.”“제가 하겠습니다.”“그럼 진작 했어야지.”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상처 위에 약을 발랐다.좁은 마차 안, 바퀴가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두 사람의 몸이 가볍게 흔들렸다.맞닿은 무릎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고, 옷자락 사이로 전해지는 체온에 신지완은 괜히 손끝을 움츠렸다.김경란은 여전히 그녀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상처에 약을 발랐다.약을 바르려 몸을 조금 숙일 때마다 그의 어깨가 그녀의 어깨에 스쳤다.가까이서 맡아지는 옅은 술 향과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운에 신지완의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예전에도 그는 늘 이렇게 했다.그녀가 손을 다치면 먼저 약을 찾아 주고, 아프다고 하면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아 주었다.가난했던 시절에도 그는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그녀에게 주었다.하지만 지금의 김경란은 예전과 달랐다.신지완은 무심코 곁에 앉은 그를 훔쳐보았다.소년 티를 벗은 어깨는 예전보다 훨씬 넓고 단단해져 있었다.좁은 마차 안에서는 그 존재감마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시선이 마주칠까 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두 뺨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이러면 안 됐다.삼 년 전, 그를 떠난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지금 와서 그의 다정함에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됐다.“왜 그렇게까지 했소?”김경란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렸다.“고명주가 그토록 괴롭히는데도 참은 이유가 무엇이오?”신지완은 고개를 숙였다.“제 일입니다.”담담한 말투였지만, 목소리 끝에는 자신도 미처 감추지 못한 미세한 떨림이 묻어 있었다.“정말 그것뿐이오?”그녀는 입술을 달싹였다.사실은 말하고 싶었다.그 옥패가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고.하지만 그 말을 꺼내는 순간, 김경란까
김경란은 더는 고명주의 말을 듣지 않고 서탁으로 걸어갔다.“그럼 지난번에 배운 글을 한번 써 보시오.”그는 붓과 종이를 가리키며 고명주에게 눈짓했다.고명주는 불만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마지못해 붓을 들었다.한참을 망설인 끝에 종이 위에 글을 써 내려갔지만, 문장은 배운 내용과 전혀 맞지 않았다.글자마저 삐뚤빼뚤 뒤틀려 있어 연습은커녕 붓을 제대로 잡아 본 적도 없는 듯했다.김경란의 시선이 종이 위에 차갑게 내려앉았다.“붓을 제대로 잡으시오.”그가 뒤에서 손을 잡아 자세를 고쳐 주자 고명주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그녀는 신지완을 흘끗 바라보았다.“신 아가씨, 보셨지요? 김 랑께서는 제 글씨까지 직접 가르쳐 주신답니다.”신지완은 아무 말 없이 거문고를 정리했다.그녀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고명주는 더욱 신이 났다.“김 랑, 그럼 이 글자도 써 볼까요?”김경란은 붓을 내려놓았다.“그 전에 한 가지 해 봅시다.”“무엇이요?”김경란은 종이에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를 내려다보더니,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그러나 목소리만큼은 지극히 진지했다.“글씨가 엉망인 건 하체에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오. 뿌리가 땅에 단단히 박혀야 붓끝도 흔들리지 않는 법이지.”그는 고명주를 바라보며 태연하게 덧붙였다.“그러니 이제부터는 마보 자세로 하체부터 단련하시오. 두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무릎을 굽힌 채 버티시오. 그 자세로 글을 쓰는 거요.”고명주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김경란을 바라보았다.“김 랑…… 설마 정말 이 자세로 서서 글을 쓰라는 말씀이세요?”김경란은 마당 한쪽을 가리켰다.“그 자세로 글씨를 쓰시오. 두 시진 동안.”“하지만 김 랑…….”“글씨를 잘 쓰고 싶다 하지 않았소?”그의 말투는 담담했다.“기초부터 익혀야지.”고명주는 거절하지 못했다.결국 그녀는 마당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붓을 들었다.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 허리가 아프고 손목이 떨리기 시작했다.“김 랑, 이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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