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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기향난
도아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밖에 있던 이수호의 비서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이수호는 하늘이 무너지기 전에는 절대 얼굴색 한 번 변할 사람이 아니었다. 조금 전 도아영이 파혼 얘기를 꺼냈을 때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지금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도아영은 강이나가 손목을 그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수호가 어두운 얼굴로 자리를 비우려 하자 도아영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대표님, 우리 얘기 아직 안 끝났는데요.”

“비켜.”

이수호의 말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위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눈앞의 도아영은 그에게 있어서 단지 이경 그룹과 할머니를 상대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기에 그녀에게 감정이라곤 전혀 없었다.

도아영과 약혼할 수는 있어도 만약 오늘 강이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도아영은 전혀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조급해하는 걸 보니 강이나 씨한테 가려나 봐요?”

이수호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그럼 내가 어디 갈 것 같아? 이나 너 때문에 손목까지 그었어. 경고하는데 이경 그룹 사모님 자리를 너한테 줄 수는 있지만 딱 그것뿐이야. 다른 건 바라지도 마.”

이수호의 말투에 도아영은 가소롭기만 했다.

그녀는 강이나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무슨 짓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수호는 강이나와 함께 그녀에게 큰 상처를 주었고 심지어 그들 사랑의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도아영이 언성을 높였다.

“대표님, 오늘은 대표님과 나의 약혼식 날이에요. 만약 강이나 씨한테 간다면 우리 약혼은 없던 일로 할 겁니다.”

도아영의 목소리가 그리 높진 않았지만 주변의 하객들이 다 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카메라 플래시가 두 사람을 향해 계속 반짝였다.

이수호가 실눈을 뜨고 말했다.

“파혼으로 날 협박하려고? 도아영, 네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아?”

그러고는 도아영의 옆을 스쳐 자리를 떠났다. 도아영에게 이씨 일가와 파혼할 용기가 절대 없다고 확신했다.

도아영은 이수호가 자리를 비우자 거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는 태도로 무대 위로 올라가서 하객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이경 그룹 대표님이 강이나 씨 때문에 파혼하겠다고 했어요. 전 두 사람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수호 씨와 아무런 관계도 아닙니다.”

다른 재벌 사모님과 웃으며 얘기를 나누던 유정연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들고 있던 샴페인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뭐? 파혼? 도아영이 미쳤나?!’

그 시각 차 안.

“대표님, 방금 도아영 씨가 파혼하겠다고 했는데 만약 진심이라면 어르신 쪽은...”

‘파혼?’

이수호가 코웃음을 쳤다.

도씨 일가는 도아영을 이씨 일가에 시집보내지 못해 안달 나 했고 도아영은 이수호의 마음을 잡으려고 강이나의 흉내까지 냈다. 이제 겨우 바라던 바를 이룰 수 있는데 도아영이 파혼한다는 건 말도 안 되었고 도씨 일가에서도 도아영이 이런 황당한 일을 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아영이 내 앞에서 수작 좀 그만 부리게 도씨 일가 사모님더러 한마디 하라고 해. 이씨 일가 사모님 자리 도아영 말고도 원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남현숙이 손주며느리를 급하게 원하지 않았더라면 이수호도 이렇게 빨리 약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표님, 그럼... 진짜 파혼할 겁니까?”

이수호가 차갑게 말했다.

“도씨 일가가 아직은 나한테 필요해서 약혼은 해야 해.”

“그럼 아까는...”

“약혼은 하겠지만 도씨 일가더러 자기 주제를 알라고 그런 거야.”

“그럼 사람 보내서 도아영 씨한테 설명이라도 할까요?”

“필요 없어.”

도아영 얘기에 이수호의 두 눈에 하찮음과 혐오가 스쳤다.

“아무튼 하루도 못 버티고 쪼르르 달려와서 잘못했다고 사과할 거야. 이런 수작은 안 봐도 뻔해.”

3개월 동안 도아영은 줄곧 이수호의 비위를 맞췄고 그의 모든 취미를 알아봤을 뿐만 아니라 매일 스케줄까지 다 꿰뚫고 있었다. 게다가 걸핏하면 할머니를 찾아가서 예쁨을 받으려고 애를 썼다. 정말 역겹기 그지없었다.

만약 할머니가 도아영을 탐탁지 않아 하고 또 도씨 일가가 이용 가치가 없었더라면 절대 이런 여자와 약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도아영이 약혼식에서 밀당하려 한다면 그녀 뜻대로 되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해 질 무렵 도씨 저택 마당 안.

도아영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유정연의 차도 바로 뒤에 멈춰 섰다. 유정연이 차에서 내리더니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도아영, 너 미쳤어? 감히 그 자리에서 파혼하겠다고 해? 제정신이야?”

도아영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몸에 한 액세서리를 뺐다.

장희자는 도아영이 예상보다 일찍 돌아온 걸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가씨? 오늘 대표님과 약혼식 하는 날 아니에요? 왜 이렇게 빨리 들어왔어요?”

도아영은 대꾸하지 않고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목에 한 진주 목걸이를 뺀 다음 드레스를 벗었다. 그러고는 옷장 안에 걸려있는 강이나 스타일의 옷들을 전부 박스에 담았다.

“아가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장희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아영의 시선이 드레스룸의 진열장에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향수로 향했다. 전부 강이나가 좋아했던 향수였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도아영은 향수를 전부 바닥에 내던졌다. 그녀의 행동에 장희자는 다시 한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주머니, 비켜요.”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장희자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도아영이 박스를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도씨 저택 뒷마당에 도착한 그녀는 박스 안의 물건을 커다란 철통 안에 쏟아버렸다.

휘발유와 라이터를 철통 안에 던지자 불길이 순식간에 활활 타올랐다. 눈앞의 불길을 쳐다보는 도아영의 두 눈이 싸늘하기만 했다.

하늘은 도아영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 이번에는 강이나의 대체품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주민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서야, 너희 신문사에서 기사 하나 써줄 수 있어? 한 시간 내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굴만한 그런 뉴스. 비용은 내가 낼게.”

“뭐라고? 오늘 저녁에 이수호랑 약혼하는 거 아니었어? 아무리 기뻐도 전 국민한테 알릴 필요는 없지 않아?”

“나 후회했어.”

“후회라니? 전 국민한테 두 사람이 약혼했다는 거 진작 알리지 못해서?”

“나 파혼할 거야.”

“파혼? 장난치지 마. 다른 사람이 파혼 얘기를 꺼내도 넌 절대 꺼낼 수 없어. 네가 3개월 동안 비위를 맞추면서 따라다닌 이수호라고.”

도아영이 아무 말이 없자 주민서도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너... 진심이야?”

이튿날 도원 그룹 딸이 파혼했다는 기사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인터넷에 두 사람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강주에 도씨 일가의 딸 도아영이 이경 그룹 대표인 이수호에게 일편단심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약혼식 날에 도아영이 갑자기 파혼하겠다고 한 바람에 두 집안의 약혼식이 웃음거리가 돼버렸다. 이는 이씨 일가의 체면을 완전히 짓밟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도원 그룹 딸 도아영 씨의 말에 따르면 이경 그룹 대표 이수호 씨는 성 기능 장애가 있다고 한다. 앞으로 부부 생활의 갈등이나 의견 대립을 피하고자 파혼하기로 했으니 이경 그룹에 미안한 마음은 있지만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클럽 룸 안, 심정우가 휴대전화를 들고 웃었다.

“이수호, 이거 정말이야? 너 성 기능 장애가 있었어? 내가 왜 몰랐지? 얼른 벗어봐, 좀 보게.”

심정우가 손으로 만지려 하자 이수호가 그의 손을 탁 치면서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어느 신문사야?”

“어디냐고? 당연히 주씨 일가네 신문사지. 이번에 주씨 일가에서 기사를 얼마나 많이 쏟아냈는지 몰라. 메인에 걸어놓은 신문마저 10만 부를 인쇄했대. 지금 이경 그룹 대표가 그쪽 방면이 안 된다는 거 모르는 사람이 없어. 열기가 식지도 않고 계속 실검 1위를 차지하고 있어. 한번 볼래?”

심정우는 약을 올리려는 듯 휴대전화를 이수호에게 보여주었다. 이수호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컵을 꽉 움켜쥐었고 두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도아영의 짓이야?”

“당연하지. 도아영 씨랑 주민서 씨 어릴 적부터 절친이야. 혹시 아영 씨한테 잘못한 거라도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너밖에 모르는 아영 씨가 왜 네티즌들이 널 욕하게 이런 기사를 올렸겠어?”

그때 비서 안지원이 밖에서 들어오더니 참다못해 말했다.

“대표님...”

이수호가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알아봤어? 도아영 지금 어디 있어?”

“옆 방에...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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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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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채원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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