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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기향난
도아영이 자리를 비운 후에야 몇몇이 다시 비웃기 시작했다.

“어디서 성질을 부려? 이따가 대표님이 약혼하지 않겠다고 하면 또 들어가서 주울 거면서.”

“그러게 말이야. 대표님이 사랑하는 여자가 강이나 씨인 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 쟤랑 결혼해서 득이 될 게 뭐가 있어? 하도 남현숙 어르신이 예뻐해서 저 정도지, 안 그러면 쳐다보지도 않을걸?”

...

사람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평가했다.

도아영은 홀딱 젖은 채로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도아영의 새어머니 유정연이 그녀를 보고는 다급하게 따라갔다.

“도아영, 어디 갔었어? 꼴이 왜 이래? 오늘 네 약혼식인 거 몰라? 당장 가서 옷 말리고 와. 그리고 이렇게 보수적인 스타일로 입으면 어떡해? 섹시하게 입어야 남자가 좋아한단 말이야.”

새어머니 유정연이 그녀의 옷깃을 힘껏 잡아당기더니 가슴골이 보여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아영은 유정연을 신경 쓸 새도 없이 연회장을 두리번거렸다. 주변에 하객들로 붐볐고 연회장의 조명이 어두웠으며 사람들이 한 남자에게 아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수호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차가운 얼굴은 마치 얼음 조각처럼 완벽했다. 깊은 두 눈에는 웃음기라곤 전혀 없었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오뚝한 코와 얇은 입술은 완벽한 걸작 같았다.

“남자는 다 본능에 충실한 동물이야. 오늘이 지나면 넌 이 대표님의 약혼녀고 앞으로 네가 할 일은 이 대표님을 기쁘게 해서 하루빨리 아이를 갖는 거야. 그래야 결혼하지. 이씨 일가의 사모님이 되면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어.”

유정연이 점점 흥분하며 말했다. 누가 보면 오늘 이수호와 약혼하는 사람이 그녀인 줄 알겠다.

그녀의 말에 도아영이 싸늘하게 웃었다.

‘엄청난 부귀영화?’

전생에 도아영은 이수호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정도로 3년이나 헌신했다. 그런데 결국 결혼식 날에 납치당했고 3일 동안 갖은 괴롭힘을 당했다.

납치된 첫날 도아영은 이수호에게 제발 구하러 와달라고 애원했었다. 그런데 이수호는 그녀와 결혼할 생각이 아예 없었고 귀국하는 강이나를 마중하려고 웨딩카를 운전하여 신나게 공항으로 달려갔다.

그날 이수호와 강이나는 그녀의 결혼식장에서 결혼반지를 주고받았고 평생을 약속했다.

3년이나 기다린 결혼식이었지만 결국에는 이수호와 강이나의 결혼식이 돼버렸다.

납치된 이튿날 이수호는 도아영이 죽든 말든 관심이 없었고 대외에 그녀가 도망쳤다고 발표했다. 도아영이 납치됐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강이나와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냈다.

3일째 되는 날 이수호는 납치범이 원하는 몸값을 거절했고 강이나와 혼인신고 했다. 도아영과의 관계를 한시라도 빨리 정리하고 싶어 했다.

도아영에게 그 3일은 정말 지옥과도 같았다. 처음에는 그래도 기대했지만 지금은 마음이 다 타서 재가 돼버렸다.

오늘은 도아영과 이수호의 약혼식 날이다. 하지만 스타일은 강이나와 똑같았다.

강주에서 강이나야말로 이수호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고 도아영은 저렴한 대체품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전생에서 이 모습으로 이수호 앞에 나타났을 때 이수호는 대놓고 싫은 티를 팍팍 냈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흉내를 내? 이나는 절대 너처럼 이렇게 다 드러내지 않아.”

강이나는 강씨 일가의 외동딸이고 이수호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죽마고우다.

그런데 나중에 강씨 일가와 이씨 일가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강씨 일가는 더는 이경 그룹을 도와주지 않았다. 게다가 남현숙이 강이나를 탐탁지 않아 하는 바람에 두 사람의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수호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강이나처럼 단아하고 청순한 여자다. 마침 도아영의 생김새가 강이나와 조금 닮았기에 유정연은 그녀에게 강이나의 스타일을 따라 하면서 이수호의 마음을 잡으라고 했다.

도아영은 이수호에게 3개월 동안 매달렸다. 도아영이 이씨 일가의 며느리가 되려고 뻔뻔스럽게 매달렸지만 이수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는 걸 강주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나중에는 남현숙이 도아영을 예뻐해서 어쩔 수 없이 그녀와의 약혼을 선택했다.

하지만 약혼식에서 당한 모욕, 강이나를 위해 그녀를 버린 것, 그리고 3년 동안의 이용은 마치 날카로운 칼처럼 그녀의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전생의 처참했던 결과만 생각하면 도아영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이수호가 강이나를 사랑한다고 하니 그녀가 물러서는 수밖에.

“아줌마, 가서 대표님이랑 얘기 좀 하고 올게요.”

도아영이 전처럼 웃는 얼굴로 말을 고분고분 듣자 유정연도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그녀가 이수호와 얘기하겠다는 소리에 바로 찬성했다.

“그래. 그래야지. 어찌 됐든 나중에 한 가족이 될 텐데.”

유정연의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손을 내려놓고 도아영의 옷을 정리해주었다.

도아영이 이수호에게 걸어갔지만 이수호는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의 옆에 있던 경호원이 눈치 빠르게 그녀를 막아섰다.

“도아영 씨, 대표님 지금 바빠서 아영 씨를 만날 시간이 없습니다.”

도아영이 말했다.

“대표님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요.”

“하객들 맞이해야 해서 바쁘실 겁니다.”

경호원의 인내심이 슬슬 바닥나기 시작했다. 도아영은 경호원의 태도를 눈에 새겨뒀다.

사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지금 그녀는 이수호밖에 모르는 껌딱지라서 이수호도 그런 그녀를 무척이나 싫어할 것이다. 안 그러면 경호원이 절대 이런 태도일 리가 없다.

“오늘 저녁이 지나면 대표님과 난 결혼을 앞둔 부부가 돼요. 결과가 어떨지 생각이나 하고 예비 사모님한테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가요?”

도아영이 이경 그룹 안주인의 행세를 하자 경호원은 더욱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도아영 씨, 약혼식이 아니라 결혼식이라고 해도 저는 지시하신 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대표님께서 바쁘다고 하셨다는 건 진짜 바쁘신 거니까 괜히 힘 빼지 말고 자리로 돌아가세요. 성가시게 굴지 마시고요.”

‘성가시다고? 이수호한테 난 그냥 귀찮은 사람이었구나.’

“내가 꼭 만나야겠다면요?”

“도아영 씨, 굴욕을 자초할 필요가 있나요?”

3개월 동안 도아영이 이수호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걸 경호원들은 전부 지켜봤다.

출근할 때 아침 도시락을 가져다줬지만 이수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버렸다. 점심에 만나러 왔을 땐 아예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온 오후 이수호의 퇴근 시간을 기다렸지만 이수호는 야근할지언정 도아영을 만나지 않았다.

그의 측근이라면 이수호가 도아영을 혐오할 정도로 싫어한다는 걸 다 알고 있었으나 도아영만 아무것도 몰랐다.

이런 여자가 어찌 미래의 이경 그룹 안주인이 된단 말인가?

오늘 이 약혼식도 남현숙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진행한 것이었다. 경호원들은 강이나야말로 이경 그룹 미래의 안주인이라 생각했다.

도아영이 아무 말이 없자 경호원들은 그녀가 당연히 예전처럼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다.

“도아영 씨, 계속 안 가고 버티면 우리도 손을 쓸 수밖에 없어요.”

약혼식에서 손을 쓴다는 건 도아영의 체면을 완전히 짓밟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평소의 도아영이었다면 그냥 돌아섰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대표님 옆에 있는 경호원들은 원래 다 이렇게 버르장머리가 없어요?”

그녀의 말에 경호원이 흠칫 놀랐다.

“내가 아직 이경 그룹 사모님은 아니지만 그래도 도씨 일가의 딸이에요. 아무리 대표님이라도 내 앞에서 이딴 식으로 얘기하지 못한다고요. 근데 경호원 주제에 감히 나한테 손을 대겠다고요? 이씨 일가를 정말 다시 봤어요.”

경호원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도아영이 아직 사모님은 아니지만 도씨 일가의 딸인 건 사실이었다.

“도아영 씨, 전 그 뜻이 아니라...”

경호원의 태도가 눈에 띄게 누그러들었다.

예전에 도아영은 이수호 앞에서 이미지 관리를 하느라 그들에게 심한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만만하던 도아영이 오늘 이렇게 날카로운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씨 일가도 우리 도씨 일가와 사돈을 맺으려는 게 진심이 아닌가 봐요. 그럼 이 결혼도 없던 일로 하죠.”

도아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이수호가 그들의 대화를 어디서부터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걸어오면서 도아영의 텅 빈 손을 훑어보더니 비웃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도아영,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도아영이 수영장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반지를 주울 줄 알았지만 단지 그런 척만 한 것이었다. 분명히 까칠한 재벌 집 아가씨면서 3개월 동안 이수호의 앞에서 순진한 척한 거라 생각했다.

조금 전 그녀의 말을 듣고 이수호는 완전히 깨달았다.

도아영은 이수호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경멸과 혐오가 섞인 이수호의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전생에 그녀는 바보처럼 이수호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었다. 현모양처가 되려고 노력했고 회사 일도 도왔다. 게다가 남현숙도 정성껏 챙기면서 효도했다.

이렇게 하면 이수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에 이수호의 원수에게 납치당했고 이수호는 납치범이 원하는 10억마저 주지 않으려 했다.

이보다 더 가소로운 일이 있을까?

한때 이경 그룹의 사모님이 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는데 결국 감동한 건 그녀 자신이었다.

도아영은 이수호를 보면서 웃었다.

“그래요. 더는 못하겠으니까 이만 파혼해요. 시간 낭비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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