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씨 저택.밤이 되자 이윤희는 실크 잠옷을 입고 거실 소파에 앉아 지해준을 기다리고 있었다.젊은 시절 그녀는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절세미인이었다. 첫 남편 지건후는 그녀를 극진히 사랑하여 마치 공주처럼 떠받들었고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도록 보살폈다. 지건후가 세상을 떠난 후 지해준과 재혼했는데 지해준이 지건후에게서 물려받은 사업과 회사를 더욱 확장하며 그녀는 명실상부한 귀부인으로서의 삶을 누리고 있었다. 세월의 흐름에도 빛나는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오늘 이윤희의 기분은 매우 좋아 보였다.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고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그녀는 신례주를 열어 두 잔에 술을 따랐다. 한 잔은 자신에게 다른 한 잔은 지서현에게 말이다.“서현아, 우리 건배하자.”지서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윤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우리 아빠, 어떻게 돌아가셨죠?”예상치 못한 질문에 이윤희의 손이 흠칫 떨리며 잔에 담긴 술이 출렁거렸다.이윤희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시선을 회피하며 말했다.“서현아, 네 아빠는... 그냥 병으로 돌아가셨단다. 네가 의사도 아닌데 자세히
하승민은 손을 뻗어 쓰러지는 그녀를 받아 안았다.그는 잘생긴 눈매를 아래로 내리깔고는 입술을 굳게 다물며 불쾌한 듯 말했다.“당신, 여긴 왜 왔어?”지서현도 그가 집에 있을 줄은 몰랐다. 오늘 그는 몸에 딱 맞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방금 밖에서 돌아온 듯 고급스럽고 질 좋은 원단에는 바깥의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몸에 열이 오른 지서현은 본능적으로 그의 품에 더욱 파고들었다. 그의 성숙하고 차가운 향기로 몸속의 불길을 끄고 싶었던 것이다.지서현은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승민 씨, 도와...”
그녀의 작은 손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그의 잘록한 허리를 더듬기 시작했다.정상적인 남자였던 하승민은 순간 몸이 굳어져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서현아, 지금 어딜 만지는 거야?”지서현의 촉촉한 눈은 이미 흐릿해져 있었고 풋풋하면서도 고혹적인 매력을 발산했다.“만져졌어요. 복근, 여섯 개.”하승민은 할 말을 잃었다.지서현은 그의 품 안에서 고개를 들어 완벽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얼굴도 잘생겼네요.”하승민은 손을 뻗어 지서현을 차가운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는 목울대를 꿀꺽 삼키며 낮고 쉰 목소리로 경고했다.“얌전히
지유나라는 이름을 보자 하승민의 이성이 서서히 돌아왔다.지금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옷은 반쯤 젖어 있고 몸 여기저기에 입술 자국이 남아 있었으며 호흡도 가빴다.조금 전에 그렇게 욕망이 들끓었는데 그 상대가 지서현이었다니!지서현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이 모든 걸 그저 남자로서 아름다운 여자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했다.하승민은 지유나에게는 미안한 감정이 컸다. 미안할수록 더 애틋해졌고 그래서 목소리도 평소보다 한결 부드러워졌다.이내 그는 울리는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전화를 받았다.“지유나.
그러다가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는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설마... 지서현 씨가 걸린 거 아닙니까?”하승민의 사생활은 철저했다. 과거에는 오직 지유나만이 그의 곁에 머물고 있을 정도로.그런데 이제는 지서현이라는 변수가 생겼다.이 정도면 충분히 의심할 만했다.지유나는 순간 분노로 주먹을 꽉 쥐었다.‘역시 승민 오빠 지금 지서현이랑 같이 있네.’하지만 곧바로 지유나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그녀는 옆에 있는 비서를 향해 말했다.“저한테 약 하나만 가져다줘요.”비서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
지서현의 두 귀가 멍해졌다.‘방금... 저 사람이 뭐라고 했지?’‘자기를 위해 다른 남자를 찾아주겠다고? 한 명이든 두 명이든?’그가 선택을 내렸다.망설임 없이, 단 한 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하승민은 지유나를 선택했다.지서현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이 깊숙이 심장을 파고든 듯했다.그리고 그 칼날은 멈추지 않고 잔인하게 휘저었다.심장이 갈기갈기 찢겨 피투성이가 된 것만 같았다.입술이 덜덜 떨렸지만 간신히 목소리를 되찾았다.“하승민 씨, 그래도 저는... 당신의 아내잖아요.”하승민은 이미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깔끔
지유나는 자신과 지서현 사이에서 하승민이 당연히 자신을 선택할 것이라고 확신했다.지서현은 애초에 상대조차 되지 않았으니까.하승민은 차갑게 남자를 흘겨보더니 냉랭한 태도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꺼져.”그러자 남자는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도망치듯 클럽을 빠져나갔다.남자가 도망가자 하승민은 고개를 살짝 숙여 지유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자신의 팔을 천천히 빼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지유나, 이제 이만하면 됐나?”차가운 하승민의 태도에 지유나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나한테 화내는 거야? 내가 이러지 않았으면
이윤희가 말했다.“서현아, 하 대표님 미행 안 했다고 하더니, 결국 여기까지 따라왔잖아!”“너 진짜 무섭다. 승민 오빠가 9층에 사는 것까지 알고 있었어? 너 완전 스토커잖아. 정신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지서현은 하승민을 쳐다보며 물었다.“하승민, 9층에 살아요?”하승민은 901호 문패를 가리켰다.“나 여기 살아.”“아.”지서현은 902호 문 앞으로 가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지서현이 902호에 산다고?정말 제성
‘아니, 그럴 리가?’하승민은 스스로가 우스웠다. 어떻게 지서현을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동연당 설립자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을까?‘하 대표님, 저 좀 태워다 주시겠어요?'방금 지서현이 차 밖에서 자신을 태워달라고 했었다. 하승민은 웃음이 나왔다. 자기 차가 있으면서 일부러 저런 말을 하다니, 분명 지유나를 약 올리려는 것이었다.자신을 놀리려는 의도도 있었다.지서현은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었다.그때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가 차에 올라탔다. 지유나는 조수석에, 지예슬과 이윤희는 뒷좌석에 앉았다. 하승민은 액셀을 밟았고 롤스로
지서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때 마침 새로 산 차가 도착했다.“난 여기서 차 기다리고 있었어. 이만 가볼게.”“차를 기다려? 택시?”지유나가 웃었다.“서현아, 병원 앞에서 택시 잡기 힘들 텐데?”지서현은 평소에 택시를 타고 다녔기에 지유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지예슬은 지서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서현아, 넌 정말 한심해. 다른 선배들은 다들 집도 있고 차도 있는데, 넌 아직도 택시 타고 다니잖아. 천재 소녀라는 말이 아깝다.”이윤희는 지예슬의 팔을 잡아당겼다.“예슬아, 그만해. 서현이도 불쌍
하승민은 고개를 들었다. 지서현이 보였다.지서현이 동연당 병원에 온 것이다.그때 그의 팔에 지유나가 매달렸다.“서현이는 왜 왔을까? 승민 오빠, 나 쟤 보기 싫어. 쟤만 보면 심장이 아파.”하승민은 지서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지유나의 손을 풀었다.“그럼 돌아가자. 내가 차를 가져올게.”말을 마친 하승민은 밖으로 나갔다.그 후로 지유나는 계속 하승민에게 매달렸고 하승민도 그녀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 지서현과도 연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유나는 하승민이 자신에게 차가워졌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이제 하승민에게는
이윤희가 회상했다.“나도 기억나. 동연당이 4월 11일에 외국에서 상장했잖아. ‘411 전설'이라고 불렸지.”지예슬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지유나는 손에 든 약을 보며 말했다.“그러고 보니 동연당 설립자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 승민 오빠는 그 사람 알아?”사실 지유나는 아직도 화가 나 있었지만 하승민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오히려 그의 마음을 붙잡아야 했다. 그녀는 속으로 지서현에게 이 모든 걸 갚아주겠다고 다짐했다.하승민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한 번 만난 적 있어.”하승민은 동연당 설립자와 정말 한 번
“잠깐만!”지서현이 지유나의 욕설을 끊었다.“유나야, 착각하지 마. 어젯밤에 내가 하 대표님을 유혹한 게 아니야. 오히려 필사적으로 저항했어. 하지만 하 대표님이 내가 열 때문에 힘이 없는 틈을 타서 날 겁탈한 거 있지!”‘뭐라고? 하승민이 강제로?’지유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하승민은 주변에 여자가 넘쳐나는 사람이었다.게다가 자신이 몇 번이나 유혹했지만 그는 항상 일이 바쁘다거나 기분이 아니라는 핑계로 거절했었다.그런 그가 지서현이 아픈 틈을 타 겁탈했다고?지유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말도 안 돼. 거짓
“우섭 씨, 왜 그런 눈으로 봐요? 설마 나를 의심하는 거예요? 내가 당신까지 죽이려고 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난 우섭 씨, 형수예요. 이렇게 의심받으니 너무 속상하네요. 우섭 씨는 정말 변했어요. 왜 정해진 시간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왜 요트에서 서현이를 처리하지 않았냐고요.”지유나는 영리하게 감정에 호소하며 선수를 쳤다. 고우섭은 요트에서 지서현에게 해를 가하지 않았기에 표정이 흔들렸다.“형수님,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우섭 씨, 우리는 같은 편이에요. 서현에게 우리 사이를 이간질당하면 안 돼요.”...
지서현과 고우섭은 하승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승민 쪽 사람들이 마을을 포위해서 안전하게 떠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하승민은 뭐 하러 갔는지 올 줄을 몰랐다.“형은 왜 아직도 안 와?”그때, 하승민의 훤칠한 모습이 나타났다.“형, 어디 갔다가 이제 와?”고우섭이 물었다.하승민은 대답 없이 손에 묻은 피를 휴지로 닦았다.지서현은 그의 손에 묻은 핏자국을 보았다.이때 조 비서가 다가와 말했다.“대표님, 이제 돌아가시죠.”하승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행과 함께 요트에 올라 그곳을 떠났다.“승민 오
하승민은 품 안의 여자를 바라보며 가늘게 뜬 눈으로 말했다.“정분을 나눈 여자는 동생 아니야?”너무 뻔뻔했다.지서현이 발길질하자 하승민은 몸을 뒤집어 그녀를 아래에 깔았다.“한 번 더 할까?”지서현은 그의 눈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보았다. 그는 농담하는 게 아니었다. 진심이었다.이 남자의 체력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지서현, 아침에 해본 적은 없잖아.”지서현의 조그맣고 예쁜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미친놈!’그녀는 그를 힘껏 밀어내고 침대에서 내려왔다.하승민은 얇은 입술을 끌어올려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