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서현은 그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방금 전 지유나가 전화로 그렇게 떼를 쓰며 오라고 했는데 가지 않았다니 말이다.지유나는 그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 아닌가. 그녀가 예전에 약에 취했을 때도 지유나의 전화 한 통에 그는 바로 달려갔었다.이런 적은 처음이었다.지유나의 성격상 오늘 밤 아마 엄청 화를 낼 것이었다.하승민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무슨 생각 했어?”아까 뒤에 서서 그녀를 보니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무언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문득 몇 년 전 동굴 속 소녀가 떠올랐다. 그녀처럼 조용하고 외로워 보
가녀린 등이 하얀 타일 벽에 닿았고 따뜻한 물줄기가 머리 위로 쏟아지며 그녀를 적셨다. 그녀는 손을 뻗어 남자를 막았다.“뭐 하는 거예요?”따뜻한 물줄기가 그의 고귀하고 잘생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선명한 목젖에서 섹시한 쇄골을 지나 그 아래로...마치 미남의 목욕도를 보는 듯 아찔한 장면이었다.지서현의 온몸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놀란 사슴처럼 눈을 둘 곳을 몰라 당황하며 시선을 피했다.하승민은 그녀를 벽에 밀착시킨 채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왜 이렇게 부끄러워해? 내 몸 어디 안 본 데 있어?”
지서현의 가녀린 몸이 아래로 미끄러지려 했지만 남자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그녀는 뜨거운 키스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하승민은 그녀의 옷 단추를 풀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여기 콘돔 있어?”지서현은 고개를 저었다. 없었다.“비서한테 가져오라고 할게.”그는 전화를 걸려고 했다.하지만 지서현은 재빨리 그를 막았다. 그는 비서에게 콘돔을 가져오라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녀는 나중에 그의 비서를 볼 낯이 없을 것 같았다.“하지 마요...”하승민의 얇은 입술이 그녀의 분홍빛 목덜미에 닿았다. 그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무리 기다려도 하승민은 오지 않았다.그녀는 초조해져서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차갑고 기계적인 여자의 목소리만 들려왔다.“죄송합니다. 고객님께서는 현재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중에 다시 걸어 주세요.”하승민은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쾅!지유나는 휴대폰을 벽에 던져버렸다. 그녀의 예쁜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유나야, 진정해. 심장에 안 좋아.”이윤희는 지유나를 달랬다.지유나는 이윤희를 밀치며 말했다.“내가 어떻게 진정해요? 멍청한 유지안 같으니라고! 임신 작정만 성공하면 우리
지서현은 손을 뻗어 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을 만지려 했다.하지만 곧 그녀의 하얀 손가락은 붙잡혔고 하승민이 졸린 눈을 떴다.그는 그녀의 작은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다 대고 입을 맞춘 후,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일어났어?”잠에서 막 깨어난 그의 목소리는 나른하면서도 매혹적이었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다정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지서현의 작은 얼굴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시간이 늦었어요. 일어나야 해요.”하승민은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끌어안았다.“조금만 더 자자.”그는 더 자고 싶어 했다.하지만 지서현은 몸
하승민은 그녀를 흘끗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두 사람은 병원에 도착해서 VIP 병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유나를 보았다.지유나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얼굴에는 산소호흡기가 씌워져 있었고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오른쪽 손목에는 두꺼운 붕대가 감겨 있었고 붕대에는 아직도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이윤희는 하승민을 보자마자 다가왔다.“하 대표님, 오셨어요?”하지만 그녀는 곧 멈칫했다. 하승민 뒤에 서 있는 지서현을 보았기 때문이다.이윤희의 표정이 굳었다.“하 대표님, 얘는 왜 데려
지유나가 지서현을 내쫓자 지서현은 하승민을 바라보았다.그러자 그는 지유나의 손을 잡은 채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만났다.하승민이 입을 열기도 전에 지서현은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지유나를 흘끗 보고 입술을 올리며 미소 지었다.“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야. 갈게.”지서현은 돌아서서 나갔다.그녀는 바로 떠나지 않고 문밖에 서서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를 들었다.지유나는 슬픈 목소리로 물었다.“승민 오빠, 나한테 솔직히 말해 줘. 서현이랑 잤어?”하승민은 문밖을 바라보다가 지유나
...기숙사로 돌아온 지서현에게 엄수아한테서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화면 가득 엄수아의 환한 웃는 얼굴이 나타났다.“서현아, 어땠어? 어젯밤 너랑 하 대표님이랑...”엄수아는 짓궂게 윙크하며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지서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수아야, 넌 왜 아직 안 와?”“너랑 하 대표님 사이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그렇지. 내가 눈치 없이 굴 순 없잖아.”엄수아는 말을 이었다. “서현아, 이번에 하 대표님이 유지안 문제 해결한 거 정말 멋졌어. 내 생각엔 하 대표님이 널 좋아하는 게 틀림없어. 너희 이제 잠자리도
다른 여학생이 말했다.“진세윤 아빠가 마약상이라던데?”양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어. 진세윤은 마약상 아들이야. 게다가 엄마는 눈이 안 보이고 중학생 여동생도 하나 있는데 집안 형편이 말도 아니래. 그런데 마약상 아버지, 눈먼 어머니, 공부하는 여동생, 망가진 진세윤. 이런 상황이 오히려 내 도전 의식을 자극하더라. 하하.”양지혜와 주변 여학생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진세윤의 가정을 비웃고 있었다.엄수아는 기분이 상했다. 그녀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예쁜 눈으로 양지혜 일행을 쏘아보았다.“그만 좀 웃으시죠?”엄수아의 갑작스
하승민은 답장하라고 명령했다.지서현은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 ‘자기가 누군데 명령하는 거지? 회사 사장인가? 왜 그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지서현은 다시 한번 무시했다.운전석에 앉은 소문익이 웃으며 말했다.“서현아, 하 대표랑 이혼은 했지만 뭔가 깔끔하게 정리된 것 같지는 않네. 하 대표 그 녀석이 아직 너한테 미련이 남은 것 아니야?”지서현이 대답했다.“글쎄요.”소문익이 말을 이었다.“매장에서 내가 네 허리를 감싸 안았을 때 하 대표 눈빛이 내 손을 잘라버릴 듯하던데. 서현아, 네 가짜 남자친구 노릇하는 것도 쉬
지동욱과 강미화는 예비 사위 C 신에게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하지만 지예슬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C 신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지예슬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여보세요, C 신?”하지만 차갑고 기계적인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죄송합니다. 고객님이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없는 번호라고?’지예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기계적인 여자 목소리만 들려왔다.“죄송합니다. 고객님이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지예슬은 곧바로 카톡을 열어
C 신이 여자라고?박경애와 지예슬은 얼어붙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서 물었다.“소문익 씨, 무슨 말씀이세요? C 신이 어떻게 여자예요? 저랑 사귀는 사람인데, 남자라고요!”소문익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저는 C 신과 아는 사이일 뿐만 아니라 친분도 두텁습니다. 제가 여자라고 하면 여자인 겁니다.”지예슬은 충격적인 소식에 그 자리에 굳어버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요, 소문익 씨. 분명 거짓말이죠!”박경애 또한 믿고 싶지 않았다.“소문익 씨, 지금은 서현이 남자친구라고 해서 그런 말도
지유나도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녀는 지서현에게 도발적인 눈빛을 던진 후 탈의실로 들어가 치마를 입어보았다.곧 지유나는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이윤희와 지예슬은 감탄했다.“유나야, 정말 아름답구나!”지유나는 레이스 치마를 입으니 아름다웠지만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허리가 너무 조였던 것이다.방금 탈의실에서도 숨을 꾹 참고 겨우 지퍼를 올렸다.지유나는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며 하승민 앞에서 한 바퀴 돌았다.“승민 오빠, 나 예뻐?”하승민은 지유나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윤희가 칭찬을 쏟아냈다.“우리 유나가
지유나는 하승민에게 지서현이 입고 있는 치마를 사달라고 졸랐다.지서현에게 지기 싫은 승부욕은 그녀를 끊임없이 자극했다. 지서현에게 주목이 쏠리는 게 싫었던 지유나는 그 치마를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했다.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온천에 갔을 때도 지유나는 지서현의 옷을 빼앗으려 했었다.하승민은 지서현을 바라보았다.그때 소문익이 지서현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입을 열었다.“하 대표님, 세상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규칙이죠. 안 그렇습니까?”하승민의 시선은 소문익의 손에 꽂혔다. 아까 소문익이 지서현의 어깨에
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도 마치 따귀를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지서현은 하승민을 바라보았다.“하 대표님, 이제 제 말 믿으시겠죠?”그녀의 맑은 두 눈은 영롱하게 빛났고 소문익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에 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워졌다.‘이 요망한 여자가! 소문익까지 자기 치마폭에 둘러싸다니, 정말 대단한 여자야!’“서현아, 너 쇼핑하러 온 거잖아. 어때? 마음에 드는 원피스 있어?”점원은 곧바로 레이스 원피스를 가져왔다. “이 원피스가 손님께 아주 잘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지서현은 고
소문익이 왔다.지유나 일행은 어제 동연당에서 소문익을 만났었기에 오늘 다시 만나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소문익은 지서현 옆으로 다가왔다.“서현아, 잠깐 전화 받느라 밖에 나갔었는데 무슨 일 있었어? 뭔가 재밌는 걸 놓친 것 같은데.”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끌어올렸다.“아니. 타이밍 딱 맞춰서 잘 왔어. 다들 내 남자친구인 당신을 보고 싶어 했거든..”지서현은 소문익에게 눈짓했다.소문익은 바로 눈치채고 지서현의 가녀린 어깨에 팔을 둘렀다.“이분들은?”지서현은 한 명씩 소개했다.“이분은 지씨 가문 어르신, 이윤희 씨, 지
지예슬은 곧바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붉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서현아, 부러워할 것 없어. C신은 내 남자친구야. 우리 곧 결혼할 거라고.”지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재산이 열 배로 늘었다며? 그럼 그 돈은 어디 있어? 그 C신이라는 사람이 언제 준다고 했어?”박경애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게...”“말 안 했나 보네요.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C신이 열 배든 백 배든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겠죠. 아까도 말했지만 그 C신이라는 사람은 사기꾼이에요. 알아서들 하세요.”지예슬은 곧바로 화를 냈다. 남자친구가 C신이라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