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싫다는 말에 어리둥절했지만 하승민은 신경 쓰지 않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서류 작업에 집중했다.한밤중이 되어서야 업무를 마친 하승민은 일어나 물을 한 잔 따랐다. 그리고 무심코 지서현을 돌아보니 그녀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하승민이 소파로 돌아가려는데 땅 하는 소리와 함께 지서현의 베개 옆에 놓인 휴대폰 화면이 켜졌다.문자가 온 것이다.하승민은 그녀의 휴대폰을 바라보았고 순간 그의 차가운 눈이 가늘어졌다.켜진 화면 속 그녀의 프로필 사진이 그의 천재 후배 SH의 프로필 사진과 똑같아 보였기 때문이다.하승민은 성큼
하은지는 다가오는 지서현을 발견했다.하승민과 지유나도 지서현을 보았다.“서현아, 너 여기 왜 온 거야?”지유나가 날카롭게 물었다.하은지는 지서현을 혐오스럽게 노려보며 말했다.“지서현, 어젯밤에 정우 오빠한테 꼬리친 거 절대 가만 안 둬. 그리고 당장 여기서 사라져. 우린 C신을 기다리는 중이니 너한테 시간 낭비할 여유 없거든!”하승민은 지서현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등장이 달갑지 않다는 것이 분명했다.그녀는 마치 방해꾼처럼 느껴졌던 것이다.지서현은 화를 내는 대신 웃으며 세 사람을
하승민은 C신 외에는 아무도 만날 생각이 없었다. C신이 오지 않자 그의 눈빛은 차갑게 굳어갔다.지예슬은 시계를 슬쩍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추측하며 말했다.“하 대표님, C신은 무슨 일 때문에 지체된 것 같아요. 뭘 하는 건지 벌써 3년째 은퇴 생활 중이잖아요.”C신의 3년 은퇴는 업계 최대 미스터리로 아무도 C신이 왜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자취를 감췄는지 알지 못했다.문가에 서 있던 지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하 대표, 나 여기 있어. 나는 약속대로 왔고 당신도 직접 만났어. 지유나, 지예슬, 하은지가 내 증인이야.’
말을 마친 지유나는 돌아서서 가버렸다.지서현은 눈살을 찌푸렸다.‘얘는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야?’곧 하은지의 비명이 들렸다.“악! 오빠! 큰일 났어!”‘무슨 일이지?’지서현은 바로 되돌아갔다.하은지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하승민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오빠, 사람들이 새언니를 잡아갔어!”하승민의 얼굴이 굳어졌다.“사람들이 유나를 잡아갔다고?”“할머니가! 할머니 사람들이 새언니를 잡아갔어!”하은지가 말했다.‘뭐?’하승민의 주위 공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한겨울 칼바람보다 더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그
“승민아!”김옥정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문밖의 지서현 또한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하승민이 지유나를 대신하여 매질을 받을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과연 지유나는 하승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하승민은 김옥정을 보며 말했다.“할머니, 이제 그만 하세요. 유나랑 같이 있고 싶은 건 저예요. 유나는 아무 잘못 없다고요. 다 제 잘못이니까 유나는 건드리지 마시고 때리시려면 저를 때리세요!”지유나는 곧바로 하승민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아니에요. 할머니, 승민 오빠 때리지 마세요. 제가 맞을게요!”지유나와 하승민은 한
지유나의 오만방자함은 하승민이 만들어준 것이었다.그가 애지중지 키운 여자였으니까.지서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집사님,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누가 할머니께 사진을 보낸 건가요?”박남수는 사진을 꺼내 보였다. 하승민과 지유나가 술집에서 밀착해서 춤을 추는 사진이었다.“사모님, 오늘 아침 누군가가 이 사진을 어르신께 보내 도련님과 지유나의 관계를 폭로했습니다. 그래서 어르신께서는 불같이 화를 내시며 당장 지유나를 잡아 오라고 하셨어요.”김옥정은 진심으로 지서현을 아끼고 사랑했기에 그녀가 조금이라도 억울한 일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지서현은 하승민을 바라보며 간절하게 자신을 위해 변명했다.“승민 씨, 그 사진 진짜 내가 할머니께 보낸 게 아니에요. 내가 하지 않은 일은 절대 인정할 수 없어요.”지유나는 하승민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오빠, 쟤 좀 봐. 이런 상황에서도 뻔뻔하게 변명하고 있잖아. 반성하는 기색이라고는 없어.”하승민의 눈빛은 차가웠고 어떤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서현아, 당장 사과해.”그는 지서현더러 지유나에게 사과하라고 명령했다.지서현의 하얀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가느다란 등을 곧게
사실 지서현은 저택에서부터 그 사진이 지유나의 짓이라는 걸 알아챘다.그래서 방금 병실에서 지유나가 하승민에게 직접 진실을 털어놓도록 유도했던 것이다.하승민은 전화를 끊고 지서현을 바라보았다.지서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렸다.“하 대표님, 실망하셨겠네요. 그 사진, 제가 보낸 게 아니라 유나가 보낸 거라서요.”하승민은 잘생긴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서현은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하승민의 옆을 지나가는 순간, 그는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의 가는 팔을 잡았다.지서현은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도 마치 따귀를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지서현은 하승민을 바라보았다.“하 대표님, 이제 제 말 믿으시겠죠?”그녀의 맑은 두 눈은 영롱하게 빛났고 소문익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에 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워졌다.‘이 요망한 여자가! 소문익까지 자기 치마폭에 둘러싸다니, 정말 대단한 여자야!’“서현아, 너 쇼핑하러 온 거잖아. 어때? 마음에 드는 원피스 있어?”점원은 곧바로 레이스 원피스를 가져왔다. “이 원피스가 손님께 아주 잘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지서현은 고
소문익이 왔다.지유나 일행은 어제 동연당에서 소문익을 만났었기에 오늘 다시 만나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소문익은 지서현 옆으로 다가왔다.“서현아, 잠깐 전화 받느라 밖에 나갔었는데 무슨 일 있었어? 뭔가 재밌는 걸 놓친 것 같은데.”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끌어올렸다.“아니. 타이밍 딱 맞춰서 잘 왔어. 다들 내 남자친구인 당신을 보고 싶어 했거든..”지서현은 소문익에게 눈짓했다.소문익은 바로 눈치채고 지서현의 가녀린 어깨에 팔을 둘렀다.“이분들은?”지서현은 한 명씩 소개했다.“이분은 지씨 가문 어르신, 이윤희 씨, 지
지예슬은 곧바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붉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서현아, 부러워할 것 없어. C신은 내 남자친구야. 우리 곧 결혼할 거라고.”지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재산이 열 배로 늘었다며? 그럼 그 돈은 어디 있어? 그 C신이라는 사람이 언제 준다고 했어?”박경애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게...”“말 안 했나 보네요.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C신이 열 배든 백 배든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겠죠. 아까도 말했지만 그 C신이라는 사람은 사기꾼이에요. 알아서들 하세요.”지예슬은 곧바로 화를 냈다. 남자친구가 C신이라는 사
하승민의 잘생긴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누가 준 거야?”지서현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남자친구요!”남자친구?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지서현이 전에도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이제 그 남자친구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네 그 돈 많은 남자친구 말이야?”“네. 맞아요.”하승민은 냉소했다.“비싼 차를 몰고 좋은 집에 살게 해주다니 돈 좀 쓰는 모양인데. 해성이 좁은 동네인데, 도대체 네 남자친구가 누군지 감도 안 잡히네.”지서현은 입꼬리를 올렸다.“하 대표님, 내 남자친구가 누군지 모
지서현은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그러나 하승민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지서현, 나한테 할 말 없어?”지서현은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할 말?”하승민은 입술을 깨물었다.“네가 몰고 다니는 고급 차, 살고 있는 고급 아파트, 다 어디서 난 거야? 누구 돈 쓴 거냐고.”지서현은 가녀린 등을 꼿꼿이 펴고 말했다.“하 대표님, 어쨌든 당신 돈은 안 썼으니까 상관없잖아요. 더는 말씀드릴 게 없네요.”지서현은 가려고 했다. 그러나 하승민의 큰 키는 마치 벽처럼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살짝
이윤희와 지예슬은 지유나가 바닥에 엎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 급히 달려가 그녀를 구하려 했다.“당장 유나를 놔줘!”“세 번째 경고입니다. 이제 내보내겠습니다!”결국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는 모두 제성아파트에서 쫓겨났다. 쾅 소리와 함께 제성아파트의 대문이 그들 앞에서 닫혔다.세 사람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이런 수모를 당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지유나는 하승민과 함께 다니면서 항상 환대받았는데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쫓겨나다니, 생전 처음이었다.지예슬도 화가 났다.“다 서현이 때문이야! 유나야, 도대체 어떻게
이윤희가 말했다.“서현아, 하 대표님 미행 안 했다고 하더니, 결국 여기까지 따라왔잖아!”“너 진짜 무섭다. 승민 오빠가 9층에 사는 것까지 알고 있었어? 너 완전 스토커잖아. 정신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지서현은 하승민을 쳐다보며 물었다.“하승민, 9층에 살아요?”하승민은 901호 문패를 가리켰다.“나 여기 살아.”“아.”지서현은 902호 문 앞으로 가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지서현이 902호에 산다고?정말 제성
‘아니, 그럴 리가?’하승민은 스스로가 우스웠다. 어떻게 지서현을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동연당 설립자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을까?‘하 대표님, 저 좀 태워다 주시겠어요?'방금 지서현이 차 밖에서 자신을 태워달라고 했었다. 하승민은 웃음이 나왔다. 자기 차가 있으면서 일부러 저런 말을 하다니, 분명 지유나를 약 올리려는 것이었다.자신을 놀리려는 의도도 있었다.지서현은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었다.그때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가 차에 올라탔다. 지유나는 조수석에, 지예슬과 이윤희는 뒷좌석에 앉았다. 하승민은 액셀을 밟았고 롤스로
지서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때 마침 새로 산 차가 도착했다.“난 여기서 차 기다리고 있었어. 이만 가볼게.”“차를 기다려? 택시?”지유나가 웃었다.“서현아, 병원 앞에서 택시 잡기 힘들 텐데?”지서현은 평소에 택시를 타고 다녔기에 지유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지예슬은 지서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서현아, 넌 정말 한심해. 다른 선배들은 다들 집도 있고 차도 있는데, 넌 아직도 택시 타고 다니잖아. 천재 소녀라는 말이 아깝다.”이윤희는 지예슬의 팔을 잡아당겼다.“예슬아, 그만해. 서현이도 불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