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원해?” 권태혁이 새빨개진 얼굴로 품 안에 안긴 여자를 보며 나른하게 물었다. 병이 도진 온세아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한 지 1년이 지나도록 남편 구형민은 온세아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결국 지독한 방치 속에 온세아가 해리성 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말았다. 발작이 시작되면 욕구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어느 깊은 밤, 언니의 사진에 대고 몰래 입을 맞추는 남편을 목격하고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은 그저 언니의 대역일 뿐이라는 것을. 증세가 점점 심해지자 결국 병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젊고 잘생긴 남자 의사를 만났다. 병이 도져 그 자리에서 하마터면 이성을 잃고 덮칠 뻔했다. 그런데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한 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제 온세아를 진찰했던 의사가 바로 새로 부임한 대표였다. 온세아는 모르는 척 도망치려 했지만 권태혁이 그녀를 비서로 발령해버렸다. ... “대표님, 저 남편이 있어요. 불륜이라도 저지르겠다는 거예요?” 대표실, 권태혁의 다리에 앉아 화를 내며 씩씩거리는 온세아. 권태혁이 그녀의 허리를 잡고 입을 맞췄다. “자기야, 어젯밤에 날 여보라고 불렀던 거 까먹었어?” 결국 온세아는 미련 없이 이혼하고 보란 듯이 재혼했다. 뒤늦게 후회가 밀려온 전 남편이 온세아를 잡고 애원했다. “세아야, 우리 다시 시작하자. 재결합만 해준다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줄게.” 온세아의 말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미안한데 난 남자 구실 못하는 남자한테 관심이 없어.”
View More“읍...”온세아는 또다시 권태혁의 뜨거운 키스를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했다.주방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끈적하게 달아올랐다.한참이 지나서야 권태혁이 입술을 떼더니 온세아의 가녀린 손을 덥석 잡고 그의 단단한 가슴 위에 가져다 댔다.“차라리 얼굴 잘생기고 몸 좋고 나처럼 믿음직한 남자를 남편으로 들이는 건 어때?”온세아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무슨 말이지? 설마 지금 자기를 남편으로 선택하라고 암시를 주는 거야?’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본능적으로 손을 빼내려는데 권태혁이 꼼짝할 수 없게 꽉 눌렀다.온세아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권태혁 씨, 이러지 마세요. 전에 분명 잠자리 파트너로만 지내기로 약속했잖아요.”권태혁의 잘생긴 얼굴이 싸늘하게 가라앉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응시했다.“정말 나랑 잠자리 파트너만 할 생각이야?”온세아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녀는 그저 이 관계만 유지하고 싶을 뿐 더 이상 선을 넘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권태혁의 마음속에 난생처음 맛보는 좌절감이 차올랐다. 두 눈에 상처받은 기색이 역력했다.더는 밥 먹을 기분이 없었던 그는 그대로 일어나 주방을 나갔다.온세아의 시야에 그의 쓸쓸하고 고독한 뒷모습만 남았다....온세아는 홀로 식사를 마친 후 권태혁이 배정해준 기사의 차를 타고 별장을 나섰다.그녀가 그렇게나 원했던 약도 기사더러 그녀에게 전해주라고 했다.회사에 출근해서도 권태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퇴근 시간, 온세아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무심코 고개를 들었는데 뜻밖에도 구형민과 마주쳤다.‘우리 회사까지 찾아와서 내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고?’원래도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를 지닌 구형민이었다.형을 대신해 구씨 가문의 후계자가 된 후로는 온몸에서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한 아우라가 풍겨 나왔다.그 바람에 회사 여직원들의 시선이 온통 그들에게 쏠렸고 다들 부러움이 가득 찬 눈빛으로 온세아를 쳐다봤다.온세아가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우린 이미 이혼한 사이라고
홍지영이 의아해했다.“아니,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도 진전이 없어?”그러자 권태혁이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전에도 말했지만 전 그 여자한테 관심 없어요.”그녀가 다급하게 물었다.“그럼 대체 누굴 좋아한다는 거야?”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아무튼 경다혜 씨는 절대 아니에요.”경다혜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게다가 경다혜가 권상진의 체스판 위의 말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홍지영이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럼 네가 좋아하는 그 여자 마음은 잡았어?”권태혁이 아무 대답이 없자 홍지영이 의미심장하게 이어 말했다.“못 잡았으면 다혜를 고려해보는 게 어때?”그의 기분이 침울하게 가라앉았다.“내가 언제 못 잡는다고 했어요?”권태혁이 화장실 쪽을 빤히 응시했다.‘세아 언젠가는 내 여자가 될 거야. 몸도 마음도 전부 다 가질 거라고.’“어디 한번 해봐, 그럼. 내년 설에 데리고 오면 더 이상 결혼 재촉 안 할게.”...온세아가 씻고 나왔을 때 권태혁이 방에 없었다.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권태혁이 주방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에게 다가갔다.“저번에 말한 약 이제 줄 수 있죠?”전에 달라고 여러 번 말했었는데 그때마다 그의 집으로 오면 주겠다고 답했었다.이제 이곳에서 하룻밤도 보냈으니 더는 댈 핑계가 없을 것이다. 권태혁이 깊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아직도 병이 자주 발작해?”“예전보다는 많이 줄었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챙겨두려고요.”권태혁이 한참 동안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아침 먹은 뒤에 줄게.”“고마워요.”온세아는 짧게 답하고는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았다.그렇게 서로 마주 앉아 말없이 식사를 이어갔다.“네 남편은 우리 관계를 알고 있어?”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권태혁이 불쑥 물었다.그 질문에 온세아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 타이밍에 뜬금없이 ‘남편’ 얘기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권태혁의 눈빛이 깊게 가
다음 날 아침.걷히지 않은 커튼 틈 사이로 옅은 빛이 스며들어 침대 위 꼭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에게로 쏟아졌다.권태혁이 천천히 눈을 떴다.품에 안긴 여자를 내려다보는 그의 잘생긴 얼굴에 전에는 볼 수 없던 다정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온세아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을 들어 볼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그러자 온세아의 희고 고운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두 눈을 꼭 감은 채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미간을 찌푸린 걸 보니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었다.권태혁이 길쭉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미간을 어루만졌다.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려는 듯한 손길이었다.그런데 손가락이 닿자마자 온세아가 소리를 내며 뒤척였다.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서서히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권태혁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어젯밤에 권태혁이 온세아를 침대에 눕힌 뒤 그녀가 잠들면 게스트룸에 가서 자겠다고 했었다.그런데 그녀가 잠든 사이 다시 침대로 기어 올라와 밤새 한 이불을 덮고 잔 것이었다.“으악. 대표님이 왜 제 침대에 있어요?”온세아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따져 묻자 권태혁이 웃으며 눈썹을 치켜세웠다.“이거 네 침대 맞아?”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권태혁이 다시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가 몸 아래로 가둬버렸다.밤사이 권태혁의 턱에 거뭇한 수염이 돋아나 있었다. 온세아의 볼에 얼굴을 바짝 밀착하자 따끔거리면서도 찌릿한 감각이 느껴졌다.온세아가 본능적으로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저리 비켜요.”역시나 아침의 남자가 가장 위험했다. 어젯밤 그를 믿고 그의 침대에서 잔 게 너무나 후회되었다.“아침에 이렇게 널 보는 건 또 처음이네.”권태혁이 위에서 온세아를 빤히 내려다봤다. 눈빛이 평소보다 훨씬 끈적하고 깊었다.온세아의 얼굴이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고 심장이 저도 모르게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지금 그의 시선은 그녀를 통째로 삼켜버릴 듯한 침략적인 기운을 띠고 있었다.“저 씻으러 가야 해요.”온세아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온세아의 이름을 대라고 윽박질렀다.당연히 그 사실을 순순히 알려줄 온아정이 아니었다. 진실을 모른 채 허우적거리는 구형민의 가련하고도 한심한 꼴을 끝까지 구경할 작정이었다.짝.구형민의 두 눈에 핏발이 서더니 갑자기 손을 번쩍 들어 온아정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그 따귀에 온아정이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면서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입안에 확 퍼진 피비린내가 구형민이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증명하고 있었다.“지금 날 때렸어?”온아정이 오른쪽 볼을 부여잡은 채 눈앞의 난폭한 남자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생판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을 마주한 기분이었다.살면서 구형민에게 맞을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가 속삭이던 과거의 모든 달콤한 말들이 이 순간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해버렸다.그런데 구형민의 얼굴에 후회하는 기색이 있기는커녕 되레 서늘하게 경고했다.“너도 잘 알 텐데. 지금의 내가 너 하나 죽여 없애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거.”온아정이 본능적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구형민의 이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지금의 그는 정말로 그럴 만한 힘을 쥐고 있었다.온아정이 이를 꽉 깨물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그 여자가 어디 있는지 알아.”구형민은 심장이 멎는 듯했다. 두 눈에 순식간에 환희가 스치고 지나갔다.“어디 있어?”그가 다급하게 물었다.“알려줄 수는 있지만...”온아정이 용기를 내어 구형민과 눈을 마주했다.“조건이 있어.”구형민이 눈을 가늘게 떴다.“무슨 조건?”“온세아랑 이혼하고 나랑 결혼해.”이것이 온아정에게 남은 유일한 기회였다.진하성에게 이혼당한 후 그녀는 다시는 재벌가에 시집갈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여 절망한 나머지 자살 시도까지 했었다.어려서부터 그녀의 꿈은 재벌가 사모님이 되는 것이었다.진하성을 잃었어도 구형민이 남아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구형민이 낡아빠진 손수건 때문에 그녀를 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만약 손수건의 진짜 주인이 온
하이솔이 서슬 퍼런 눈으로 온세아를 쏘아붙였다.“무슨 사고라도 쳤어?”대표가 부임하자마자 온세아를 부를 거라고는 온세아 본인은 물론 직속 상관인 하이솔을 포함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온세아가 억울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저도 잘 모르겠어요.”그녀의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고 불안함에 심장이 바짝 조여들었다. 피하려 하면 할수록 자꾸만 엮이는 것 같았다.하이솔이 경고를 날렸다.“사고를 쳤으면 세아 씨가 알아서 책임져. 괜히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그는 심미란의 사람이었다. 온세아가 하이솔의 밑에서 일한 지난
온세아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몸의 공허함과 마음의 충격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행히 다음 날 아침 출근은 늦지 않았다.온세아가 하품하며 회사에 들어선 그때 오늘따라 회사의 분위기가 왠지 이상했다.“오늘 대표님이 새로 부임하신대...”친구 이채린이 중대한 소식을 전했다.알고 보니 신임 대표가 오는 날이었다. 어쩐지 온세아가 회사에 도착했을 때 여직원들이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더라니, 그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세아야, 왜 아직도 화장 안 고쳐?”온세아가 그 소식을 듣고도 가만히 있자 이채린이 급히
온세아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구형민이 그녀의 두 눈에 스친 실망감을 보고도 차갑게 말했다.“미안한데 내가 여러 번 말했잖아. 결벽증이 있다고.”온세아가 다급하게 말했다.“하지만... 나...”지금 그녀가 앓고 있는 병을 치료하려면 남자의 도움이 절실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냥 날 좀 도와준다고 생각해... 여보, 나 너무 힘들어...”온세아가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애처롭게 바라봤다. 어느새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정말로 원했고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고 지워지지도
온세아는 진료실을 나와 약을 받은 뒤 서둘러 병원을 떠났다.조금 전 진료실에서 남자 의사의 명령에 따라 바지를 벗고 검사를 받았던 장면이 떠오르자 얼굴이 또 저도 모르게 화끈거렸다.소문이라도 퍼진다면 온세아는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앞으로는 여자 의사한테 검사받아야겠어. 다시는 낯선 남자한테 검사받지 않을 거야.’바로 그때 검은색 벤틀리 한 대가 온세아의 앞에 서서히 멈춰 섰다.온세아는 그녀가 부른 택시가 도착한 줄 알고 유리창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잘생긴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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