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원해?” 권태혁이 새빨개진 얼굴로 품 안에 안긴 여자를 보며 나른하게 물었다. 병이 도진 온세아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한 지 1년이 지나도록 남편 구형민은 온세아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결국 지독한 방치 속에 온세아가 해리성 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말았다. 발작이 시작되면 욕구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어느 깊은 밤, 언니의 사진에 대고 몰래 입을 맞추는 남편을 목격하고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은 그저 언니의 대역일 뿐이라는 것을. 증세가 점점 심해지자 결국 병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젊고 잘생긴 남자 의사를 만났다. 병이 도져 그 자리에서 하마터면 이성을 잃고 덮칠 뻔했다. 그런데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한 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제 온세아를 진찰했던 의사가 바로 새로 부임한 대표였다. 온세아는 모르는 척 도망치려 했지만 권태혁이 그녀를 비서로 발령해버렸다. ... “대표님, 저 남편이 있어요. 불륜이라도 저지르겠다는 거예요?” 대표실, 권태혁의 다리에 앉아 화를 내며 씩씩거리는 온세아. 권태혁이 그녀의 허리를 잡고 입을 맞췄다. “자기야, 어젯밤에 날 여보라고 불렀던 거 까먹었어?” 결국 온세아는 미련 없이 이혼하고 보란 듯이 재혼했다. 뒤늦게 후회가 밀려온 전 남편이 온세아를 잡고 애원했다. “세아야, 우리 다시 시작하자. 재결합만 해준다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줄게.” 온세아의 말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미안한데 난 남자 구실 못하는 남자한테 관심이 없어.”
더 보기문밖에서 그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온세아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온철환이 온주 그룹을 온세아에게 물려주겠다고 한 게 진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진작에 짐작하고 있었다.다만 진실이 온세아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잔인했다.온철환은 온주 그룹과 지분을 줄 생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철저히 그녀를 이용할 작정이었다.온세아를 이용하여 온주 그룹의 위기를 넘기고 온석원과 온아정을 위해 반대 세력을 숙청한 뒤 두 사람이 훗날 그룹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길을 닦아줄 속셈이었다.그들을 위해 이 모든 궂은일을 끝마치고 나면 온세아라는 체스 말은 가차 없이 버려질 것이다.불행 중 다행인 건 애초에 온세아가 온주 그룹을 상속받겠다는 환상 따위 품어본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 그러니 지금 진실을 직접 들었음에도 마음에 일말의 동요조차 일지 않았다.온세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저녁 퇴근 시간.온세아가 진호 그룹을 나오던 그때 낯익은 누군가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작은 아가씨!”온철환의 비서 문병욱이었다.그가 찾아온 용건을 단번에 알아챈 온세아가 그를 무시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문병욱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작은 아가씨, 회장님께서 본가로 오라고 하십니다.”온세아는 온철환이 왜 갑자기 그녀를 찾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유언장 내용을 받아들이고 당장 회사를 그만둔 다음 온주 그룹으로 들어와 온석원과 온아정이 물려받을 수 있도록 길을 터놓으라고 압박할 게 뻔했다.“죄송하지만 선약이 있어서 못 가요.”온세아가 아무리 거절해도 문병욱이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따라붙었다.“아가씨, 회장님께서 정말 중요한 일로 상의할 게 있으시다고...”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온세아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홱 돌렸다.“아저씨, 더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아빠한테 가서 전하세요. 전 그 유언장 못 받아들이고 온주 그룹에 들어갈 생각도 없다고요.”“아가씨...”문병욱이 다가와 온세아의 팔을 잡고 어떻
온아정이 온세아에게 달려가 뺨을 후려치려 했다.“이게 다 재수 없는 너 때문이야. 너만 아니었으면 아빠 엄마가 싸울 일도 없었다고.”당장이라도 온세아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다.그런데 온아정이 채 다가가기도 전에 온석원이 앞을 가로막았다.“뭐 하는 짓이야?”온석원이 온아정의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오빠, 이거 놔!”온아정이 분노를 터뜨리며 악을 썼다.“오빤 온주 그룹을 쟤한테 줘도 괜찮아?”온주 그룹과 지분은 본래 온아정과 온석원에게 남겨주었어야 마땅한 것들이었다.굴러들어온 온세아가 떡고물을 주워 먹는 것도 모자라 아예 통째로 삼키려 하니 온아정이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는가?온석원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어차피 난 경영 같은 건 쥐뿔도 몰라. 회사를 세아한테 맡기는 게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쟤가 회사를 굴려야 나도 나중에 편하게 놀고먹을 거 아니야.”그녀가 한심하다는 듯 온석원을 흘겨보았다.“못났다, 못났어.”온석원이 피식 웃었다.“그럼 네가 뺏기라도 하게? 세아를 이길 능력이 있어?”온아정을 무시하는 게 아니었다.어려서부터 오냐오냐 자란 탓에 부모 손에 거의 망가진 거나 다름없었다. 학창 시절에는 성적이 늘 바닥을 기었고 사회에 나와서도 업무 능력이 형편없기 짝이 없었다.만약 온주 그룹을 온아정에게 맡긴다면 분명 얼마 못 가 시원하게 말아먹을 게 뻔했다.하지만 온세아는 달랐다.어려서부터 공부도 잘했고 아무도 보듬어주는 이 없이 자란 탓에 지독할 정도로 성실하고 악착같았다.일을 시작한 후로도 묵묵히 제 몫을 다했다.온주 그룹을 온세아에게 맡기면 분명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할 거라고 온석원은 굳게 믿었다.그리고 그는 여유롭게 이사 자리에 앉아 배당금이나 두둑이 챙기면 그만이었다.어차피 온세아가 알아서 돈을 벌어다 줄 텐데 굳이 힘들게 직접 나설 이유가 있겠는가?“오빠, 예전엔 나한테 이러지 않았잖아. 대체 누구 편이야?”온아정이 분통을 터뜨리며 따졌다.예전에 온아정이 온세아와 부딪힐 때마다 그는 무조건 온아정의
어차피 온아정은 기득권자였다. 그러니 당연히 재벌 딸다운 기품을 꾸며내야만 했다.주오성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유언장을 읽어 내려갔다.“온철환 회장님이 보유하신 온주 그룹의 모든 지분은 막내딸 온세아에게 상속합니다. 단 온세아는 반드시 온주 그룹에 입사하여 말단 사원부터 시작해 대표이사직에 오를 때까지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합니다.”쾅.폭탄과 다를 바 없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유언장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온세아조차도.‘내가 잘못 들었나? 아빠가 회사를 나한테 물려주겠다고 하셨어? 꿈이지, 이거?’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온아정이 주오성에게 달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져 물었다.“변호사님이 잘못 읽으신 거죠? 우리 아빠가 어떻게 온주 그룹을 쟤한테 줘요? 말도 안 돼요.”심미란 역시 적잖이 충격을 받은 기색이었다.“그래요, 변호사님. 뭔가 착오가 있는 거 아니에요?”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딸이 유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그런데 온주 그룹의 지분과 경영권을 온세아에게 넘기다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주오성이 난처한 기색을 내비쳤다.“죄송합니다만 전 그저 유언장 내용을 그대로 읽었을 뿐입니다. 의문이 있으시다면 회장님께 직접 여쭤보세요.”이 유언장이 곧 온철환의 뜻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었다.그 말에 심미란과 온아정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온철환을 쳐다봤다.온철환이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주변, 마저 읽도록 해.”심미란과 온아정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꾹 참고 주오성이 유언장 낭독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낭독을 마친 주오성이 들고 있던 유언장 사본을 사람들에게 한 부씩 나누어 주었다.온아정이 재빨리 유언장을 펼쳤다. 하얀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너무나도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온주 그룹과 지분을 온세아에게 남긴다는 문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순간 그녀는 하마터면 이성을 잃고 무너져 내릴
온세아가 온아정의 얄팍한 속내를 모를 리 없었다. 온아정을 덤덤하게 흘겨보며 대꾸했다.“고고한 거로 따지면 언니도 나랑 별반 다를 거 없잖아. 나보다 훨씬 일찍 와서 앉아 있으면서.”“너!”온아정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독기 어린 눈으로 온세아를 노려보았다.그 모습에 심미란이 즉각 불만을 터뜨렸다.“온세아, 언니한테 무슨 말버릇이야?”온철환의 안색도 눈에 띄게 굳어졌다.“갈수록 버릇이 없어지는구나.”이 상황에서 성해연은 온세아의 편을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한술 더 떴다.“얼른 언니한테 사과해.”온세아는 기가 막혔다.‘내가 뭐 어쨌다고 온아정한테 사과하라는 거야? 온아정이 먼저 비아냥거려서 똑같이 한 것뿐인데.’온철환과 심미란, 성해연이 일제히 온아정의 편에 서서 온세아를 윽박질렀다.어이가 없었던 온세아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이 집안에서 온세아의 지위가 상상 이상으로 바닥이었고 반대로 온아정의 지위는 견고했다.그들은 온아정이 온세아를 함부로 짓밟아도 된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한 듯했다.온세아가 반발이라도 할라치면 온 가족이 벌떼처럼 몰려와 짓눌렀다. 평생 온아정의 밑에서 쥐어박히며 살 팔자니 그냥 체념하고 순응하라는 뜻이었다.“사과를 해도 언니가 먼저 해야죠. 저한테 먼저 함부로 말한 건 언니니까요.”그녀가 물러서지 않고 따박따박 따지자 심미란이 화를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감히 네 언니랑 비교하려 들어? 네 언니가 어떤 위치고 네가 어떤 위치인지 아직도 몰라서 그래?”온세아가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제가 아는 건 저나 언니나 똑같이 아빠의 딸이라는 것뿐이에요.”그녀와 온아정은 배다른 자매였다.한쪽이 하찮은 존재라면 다른 한쪽이 고귀해봤자 뭐 얼마나 고귀하겠는가?그저 온철환과 심미란, 성해연이 온세아를 탐탁지 않아 하기에 온아정보다 하찮게 여길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온세아가 정말로 온아정보다 하찮은 사람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심미란이 매서운 눈초리로 온세아를 쏘아보며 막 입을 열려던 찰나 옆에 앉아 있던
온세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날 비서로 승진시켰어? 날 높이 띄워준 뒤에 떨어뜨리려는 속셈은 아니겠지?’“대표님, 저 비서 업무를 해본 적이 없어서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어요...”온세아가 본능적으로 거절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온통 권태혁과 하고 싶다는 생각뿐인데 비서가 되어 매일 그를 마주한다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권태혁이 깊은 눈으로 온세아를 쳐다봤다.“승진하기 싫어?”온세아가 붉은 입술을 깨물었다.“제 생각에는...”권태혁이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이 회사의 대표가 나야, 세아 씨야?”그녀의 표정
하이솔이 서슬 퍼런 눈으로 온세아를 쏘아붙였다.“무슨 사고라도 쳤어?”대표가 부임하자마자 온세아를 부를 거라고는 온세아 본인은 물론 직속 상관인 하이솔을 포함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온세아가 억울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저도 잘 모르겠어요.”그녀의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고 불안함에 심장이 바짝 조여들었다. 피하려 하면 할수록 자꾸만 엮이는 것 같았다.하이솔이 경고를 날렸다.“사고를 쳤으면 세아 씨가 알아서 책임져. 괜히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그는 심미란의 사람이었다. 온세아가 하이솔의 밑에서 일한 지난
온세아는 진료실을 나와 약을 받은 뒤 서둘러 병원을 떠났다.조금 전 진료실에서 남자 의사의 명령에 따라 바지를 벗고 검사를 받았던 장면이 떠오르자 얼굴이 또 저도 모르게 화끈거렸다.소문이라도 퍼진다면 온세아는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앞으로는 여자 의사한테 검사받아야겠어. 다시는 낯선 남자한테 검사받지 않을 거야.’바로 그때 검은색 벤틀리 한 대가 온세아의 앞에 서서히 멈춰 섰다.온세아는 그녀가 부른 택시가 도착한 줄 알고 유리창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잘생긴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신이
“벗고 누우세요.”남자의 낮게 깔린 차가운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그 순간 온세아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런 수치스러운 증세가 언제부터 나타났는지도 몰랐다.병이 도지면 욕구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심지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그 욕구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였다.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온세아가 용기를 내어 이 병원의 산부인과에 진료 예약을 잡았다. 병원의 보안이 철저한 대신 진료비가 일반 병원의 몇 배에 달했다.그런데 분명 40대 산부인과 여자 의사로 예약했는데 진료실에 앉아 있는 건 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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