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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흔들린 심장

Auteur: 데이지
last update Dernière mise à jour: 2026-03-04 20:39:23

늦은 오후, 속초의 하늘은 붉게 물들어갔다. 

창밖에서 파도 소리가 잔잔히 밀려왔고, 오피스텔 안은 고요했다. 

수연은 거실 소파에 앉아 바느질을 배우듯 단추를 꿰매고 있었다. 

인터넷 영상을 보며 따라 하는 서툰 동작이었지만,  집중한 표정만큼은 진지했다.

문득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책상에 앉은 우혁이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말없이 집중하는 모습은 날카롭고 단단했지만, 

손끝의 떨림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수연의 가슴은 묘하게 저려왔다.

‘이 사람은 언제나 혼자 버텨왔구나.’

그녀는 단추를 놓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표님.”

그가 고개를 들었다.

“잠깐 산책할래요?  계속 방 안에만 있으면 답답하잖아요.”

우혁은 잠시 망설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바닷가 산책로에는 붉은 노을이 드리워져 있었다. 

파도는 바위에 부딪히며 부서졌고, 갈매기들이 낮게 울며 날아올랐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지만,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이상해요.”

수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기억은 없는데,  바다를 보면 자꾸 눈물이 나요. 왜일까요?”

그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바다는 많은 걸 담고 있습니다.  두려움도, 위로도.”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녀는 그 말 속에서 자신을 향한 배려를 느꼈다.

잠시 후, 해변가에 있던 아이가 공을 잃어버려 울음을 터뜨렸다. 

공은 파도에 떠밀려 멀리 나가고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허겁지겁 달려왔지만 손쓸 도리가 없었다.

수연은 망설임 없이 바다 쪽으로 달려갔다.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들어가 손을 뻗었다. 

차가운 물결이 무릎을 덮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공을 붙잡아 아이에게 돌려주자,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고마워요!”

아이의 웃음에 수연도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파도가 거세게 밀려와 그녀의 몸이 휘청거렸다.

“수연 씨!”

우혁이 단숨에 달려들어 그녀를 끌어냈다. 

그의 품에 안긴 채 바닷가로 넘어지듯 쓰러졌다.

숨이 고르지 않은 채, 두 사람은 모래 위에 앉아 있었다. 

수연의 얼굴은 물에 젖어 있었고, 

우혁의 팔은 여전히 그녀의 어깨를 꽉 잡고 있었다.

“무슨 생각입니까! 아직 몸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

그의 목소리는 분노와 걱정이 뒤섞여 떨렸다.

“그냥… 아이가 울고 있어서…”

“당신 목숨이 더 중요합니다.”

단호한 말 뒤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숨결이 가까이 닿았고, 

가슴은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우혁은 순간적으로 시선을 피했지만, 

손은 여전히 그녀의 어깨를 놓지 못했다. 

수연의 눈동자에는 놀람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설렘이 어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도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다.

오피스텔 현관 앞에서, 우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시는… 그런 위험한 짓 하지 마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속삭였다.

“대표님이 제 목숨을 지켜줬잖아요.  그래서… 이상하게 믿음이 생겨요.”

그 말에 우혁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단지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만 깊어졌다.

그날 밤, 수연은 작은 방에 누워 있었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바닷가에서 느꼈던 그의 손길, 

가까이 닿았던 숨결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창밖 파도 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렸다.

‘대표님, 심장이 위험한 건… 나일지도 몰라.’

그녀는 두 손으로 가슴을 꼭 움켜쥐었다. 

뛰는 심장이 이제는 두려움보다 설렘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늦은 밤, 속초의 거리는 잔잔했다. 

창가에 앉아 있던 수연은 종이 위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글씨는 삐뚤빼뚤했지만, 그녀는 진지했다.

“뭘 쓰고 있습니까?”

우혁이 부엌에서 컵을 들고 다가왔다.

“그냥… 기억은 없지만, 제 이름을 써보려고요. 혹시 손이 기억할까 싶어서.”

그녀는 종이를 들어 보였다. 

‘차’라는 글자가 어설프게 적혀 있었다.

순간, 우혁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그는 바로 미소를 지었다.

“잘 쓰셨군요. 앞으로 조금씩 더 떠오를 겁니다.”

그는 속으로 맥이 끊기는 듯한 놀라움을 감췄다. 

아직 그녀가 자신이 누구였는지 알지 못하는 게 다행이었다.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함께 장을 보러 나섰다. 

시장 사람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연은 신선한 채소를 고르며 작은 웃음을 지었다.

“이런 게 재밌는 줄 몰랐어요.”

“평범한 일상이요?”

“네. 이런 평범한 게… 이렇게 따뜻하다는 걸.”

그녀의 웃음은 아이처럼 맑았다. 

우혁은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마음속 깊은 곳이 따뜻해지면서도, 

동시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함께 저녁을 준비했다. 

칼을 쥔 수연의 손놀림은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단단했다. 

우혁은 옆에서 조심스레 그녀의 손동작을 지켜봤다.

“위험합니다. 손 다치겠어요.”

그가 다가와 손목을 잡았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괜찮아요. 대표님이 옆에 있잖아요.”

그녀의 속삭임에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한순간, 거실 공기가 뜨겁게 변했다.

저녁 식탁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식사를 마친 뒤, 

수연은 창가에 앉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흩날렸다. 우혁은 그 곁에 앉아 잔잔히 물었다.

“기억이 돌아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나는 확실해요. 

돌아오든, 돌아오지 않든… 지금 이 순간은 소중해요.”

그 말은 짧았지만, 그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같은 시각, 멀리 떨어진 병원.

의사들의 해외 봉사 일정이 속초로 잡혀 있었다.

그 중 한 명, 수연을 늘 질투하며 불편해했던  동료 박지현이 명단에 있었다.

“속초라니… 별일 없겠지?”

그러나 속으로는 알 수 없는 예감이 스쳤다.

바람결이 유리창을 두드렸다. 

곧 이 평화로운 동거의 집에, 

새로운 그림자가 드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속초의 하늘은 화창했지만, 바람결에는 긴장감이 섞여 있었다. 

박지현은 의료 봉사단 버스에서 내리며 바다를 바라봤다. 

짠내가 코끝을 스쳤지만, 마음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흉부외과 천재라 불리던 차수연,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더니…”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병원 안에서 언제나 자신보다 앞서 있던 인물. 

그 이름만으로도 주목받던 존재. 하지만 지금은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지현은 주변을 훑었다. 

이 작은 도시에 그녀가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알 수 없는 예감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 시각, 수연과 우혁은 함께 근처 카페에 앉아 있었다. 

창가 자리에서 커피 향을 즐기며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평온이 깃들어 있었다.

“이런 시간, 정말 오랜만이에요.”

수연이 잔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기억은 없는데도… 마음이 따뜻해져요.”

우혁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이미 단순한 보호자 이상의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말을 삼켰지만, 시선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졌다.

카페 문이 열리며 낯익은 발걸음이 들어왔다. 

박지현이었다.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들어왔지만,  눈길이 우연히 창가로 향했다.

그 순간,  손에 들린 가방을 떨어뜨릴 뻔했다.

‘…차수연?’

멀리서 본 얼굴, 웃음짓는 표정, 어쩌면 착각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서 직감이 울렸다.

“지현 선생님, 자리에 앉죠.”

동료가 불렀지만, 그녀의 시선은 이미 수연에게 고정돼 있었다.

수연은 누군가 자신을 뚫어지게 보는 듯한 기분에 고개를 돌렸다.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낯선 여자의 눈빛이 날카롭게 꽂히자, 

수연은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왜 그러십니까?”

우혁이 눈치채고 물었다.

“아니에요…  그냥, 낯선 사람이 계속 보는 것 같아서.”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렸다.

우혁은 자연스럽게 몸을 기울여 그녀를 가려주었다. 

작은 행동이었지만, 수연의 가슴은 미묘하게 뛰었다. 

그의 존재가 방패처럼 느껴졌다.

한편, 박지현은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곁에 앉은 남자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단정한 정장 차림, 카리스마 있는 분위기, 

무심하게도 그녀를 보호하듯 옆에 선 자리.

‘저 남자는 누구지?  대표님이라고 불렸던 것 같은데…’

질투와 호기심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단순히 수연의 생존 여부가 아니라, 

그녀 곁에 있는 남자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지현은 입술을 앙 다물며 속으로 다짐했다.

‘확실히 알아내겠어. 네가 정말 수연인지.’

카페를 나서며 수연은 불안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그 여자의 눈빛, 이상했어요.  마치… 절 아는 사람처럼.”

우혁은 짧게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곁에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단단했지만,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누군가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지금의 평화는 무너질 수도 있었다.

밤, 오피스텔 창가에 서 있던 수연은 달빛을 바라보며 혼잣말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왜 저 사람은 나를 그렇게 보았을까.”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온 우혁의 목소리가 그녀의 혼란을 덮었다.

“당신은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울림은 크고 깊었다. 

그녀의 가슴이 다시 요동쳤다. 

그러나 창밖 어둠은 이미 또 다른 폭풍을 예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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