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1 - Chapitre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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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바다가 삼켜버린 이름

밤은 깊었고, 속초의 바다는 검은 유리처럼 번들거렸다. 파도는 고요하지 않았으나, 이상하게도 잔잔했다. 마치 모든 소리를 삼켜버리겠다는 듯, 꾸준히 모래를 때리며 부서지고 있었다.차수연은 바다 앞에 홀로 서 있었다.병원을 나온 지 몇 시간이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얀 가운을 벗어 던질 때까지만 해도,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소리만이 메아리쳤다.삐~심장 모니터가 뱉어낸 냉정한 평탄선.“타임 오브 데스(Time of death)…” 동료의 굳은 목소리.그 순간 수연의 가슴은 산산이 부서졌다.“내가… 죽였어.”목구멍 깊숙이 박혀 있던 고백이 파도에 섞여 사라졌다.차트는 거짓말이었다. 수술 전 환자의 상태와 실제 상태는 달랐다. 협착 부위도, 수치도, 과거 이력도 하나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메스를 쥔 건 그녀였으니까. 천재라 불렸던 의사가, 단 한 번의 실패로 사람을 보냈다.병원에서 쏟아지던 시선들이 떠올랐다. 동정과 경멸, 그리고 은근한 조롱.‘역시 완벽한 사람은 없어.’‘한 번의 실패로 끝이다.’그 속삭임들이 귓가를 찢듯 울렸다.수연은 천천히, 파도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발목이 젖고, 종아리까지 파도가 차올랐다. 물은 차갑고 잔인했다.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 차가움이 위안이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이 고통도, 이 죄책감도, 이 기억도 사라질 것이다.허리, 가슴, 어깨. 파도가 몸을 삼켜갔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바닷물이 입술에 닿았다. 시야가 흐려졌다.“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었다.그 순간..“거기서 뭐 하는 겁니까!”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파도 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그러나 수연의 귀에는 희미하게만 맺혔다. 그녀는 그대로 바다 속으로 몸을 던졌다.찬 물이 온몸을 덮쳤다.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팔은 허공을 긁듯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점점 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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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낯선 집, 낯선 온기

오피스텔 문이 닫히자 적막이 방 안을 채웠다. 바다 소리가 창 너머로 아득히 스며들었고, 천장 조명은 은은하게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수연은 현관에 서서 주위를 천천히 둘러봤다. 낯선 가구, 깔끔하게 정리된 책장, 벽에 걸린 시계.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전혀 기억에 없는 풍경이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익숙하지 않은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세제와 커피, 그리고 희미한 종이 냄새.“편하게 앉으세요.”우혁이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거실로 걸어 들어갔지만, 수연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이곳이 안전한지, 자신이 정말 머물러도 되는지, 확신이 없었다.그의 시선이 그녀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거실로 향했다. “오늘은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씻고 쉬는 게 좋을 것 같네요.”그의 말투는 차분했으나 지나치게 무심하지도 않았다. 그녀를 배려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욕실에서 나온 뒤, 수연은 거실 한쪽에 앉아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고 있었다. 흰 티셔츠와 회색 추리닝 바지를 건네받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어쩐지 아이처럼 순수해 보였다.우혁은 부엌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있었다. “배고프지 않아요? 제대로 식사 못 했을 텐데.”그녀는 망설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금요.”그가 건네준 컵라면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수연은 젓가락을 들어 조심스럽게 면을 집어 올렸다. 첫 입을 삼키자, 뜨거운 국물이 혀를 데우며 내려갔다. 오래 비어 있던 위장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그제야 눈을 감고 작은 숨을 내쉬었다.“맛있어요?”우혁의 질문에 그녀는 놀란 듯 눈을 뜨고는, 수줍게 웃었다. “네… 생각보다요.”짧은 웃음이 흘러나왔지만, 그 웃음은 방 안의 공기를 달라지게 했다.식사를 마친 뒤, 우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회사 업무 메일을 확인하는 듯했지만, 시선은 자주 그녀 쪽으로 흘러갔다. 책상 앞에 앉아 작은 손거울을 바라보던 그녀는 곧 거울을 내려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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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첫 번째 균열

아침 햇살이 부엌 창을 통해 들어왔다. 냄비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향긋한 계란 냄새가 방 안에 번졌다. 수연은 조심스럽게 국자를 들고 국을 휘젓고 있었다.“이 정도면 되려나…”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맛을 보았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몸이 스스로 움직였다. 간을 맞추는 손놀림, 불 조절하는 감각.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자연스러웠다.거실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우혁은 부엌에서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낯선 풍경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바닷속에서 죽어가던 여자가, 지금은 앞치마를 두른 채 국을 끓이고 있었다.“벌써 일어나셨군요.”“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더 불안해져서요. 뭔가 해보고 싶었어요.”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속 어딘가가 불편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기억을 잃었는데, 이런 일상적인 행동들이 너무 익숙했다. 그 안에는 뭔가 감춰진 시간이 있었다.아침 식탁에 둘이 마주 앉았다. 수연이 건넨 국은 의외로 훌륭했다.우혁은 국자를 들고 잠시 멈췄다.“기억을 잃었다면서, 요리는 꽤 잘하시네요.”그녀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정말요? 저도 조금 신기했어요. 그냥 손이 움직였어요. 이게… 제 안에 남아 있는 무언가일까요?”그는 대답 대신 그녀를 오래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호기심과 경계가 동시에 있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직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녀는 평범하지 않았다.식사 후, 우혁은 회사 관련 전화 회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반듯한 셔츠 차림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이어갔다. 수연은 거실 구석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정돈된 말투, 단호한 결단, 때로는 상대방의 의견을 끌어내는 여유.그녀는 문득 속으로 중얼거렸다.“정말… 대표님 같네.”그 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우혁은 헤드셋 너머로 짧게 눈길을 주었다. 그녀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지만,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오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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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나의 심장이 위험해진 순간

잔을 들고 입술에 대자, 온기가 목을 타고 내려갔다. 그 온기와 함께 마음 한구석의 긴장도 조금씩 풀려갔다.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이번 정적은 불편하지 않았다. 조용히 파도 소리가 창 너머에서 들려왔다. 수연은 그 소리를 들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기억은 아무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누군가 힘들어하는 얼굴은 그냥 못 지나치겠어요. 아마 예전에도… 그랬던 것 같아요.”그녀의 말에 우혁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솔직함과 순수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그게 바로, 당신이 가진 힘 아닐까요.”그가 조용히 대답했다.수연은 잠시 눈을 깜박였다. ‘힘’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맺혔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본능만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듯했다.시간이 흘러 새벽에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소파에 마주 앉아 말없이 바다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낯선 동거는 아직 시작에 불과했지만, 작은 균열은 다시 봉합되었다.그녀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머리가 옆으로 기울며 그의 어깨에 닿았다. 깜짝 놀란 그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나 이내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그녀의 숨결이 조용히 옆에서 들려왔다.“이상하군요…”그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다니.”창밖 바다는 여전히 검었지만,동쪽 하늘은 아주 희미하게 빛을 띠기 시작했다.아침 공기가 선선하게 스며드는 날이었다. 오피스텔 창문을 열자 바다의 짠내가 들어왔다. 수연은 커튼을 젖히며 깊게 숨을 들이켰다. 며칠째 같은 공간에 머물다 보니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다.“저… 오늘은 잠깐 밖에 나가도 될까요?”아침 식탁에서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빵을 자르던 우혁의 손이 멈췄다.“몸은 괜찮습니까?”“네. 오래는 아니고… 조금만.”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점심 무렵, 두 사람은 가까운 시장으로 향했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를 걸으면서도 수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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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수치로 드러난 진실

아침 공기가 상쾌했다. 창문을 열자 잔잔한 바람이 흘러들어와 커튼을 흔들었다. 수연은 간단히 아침을 차리고 있었다. 부엌에 서서 채소를 씻는 모습은 아직 어설펐지만, 손놀림은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오늘은 회사에 다녀와야 합니다.”식탁에 앉아 있던 우혁이 차분히 말했다.“혼자 괜찮으시겠습니까?”수연은 잠시 멈췄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어요.”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걱정이 묻어 있었지만, 곧 미소가 번졌다. “혹시 심심하면, 거실 책장에 자료가 있을 겁니다. 읽어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기계 쪽은 건드리지 마세요.”“알겠어요.”그녀는 조용히 대답했지만, 마음속에 작은 호기심이 피어올랐다.오전 내내, 그는 전화와 화상회의로 분주했다. 화면 너머에서 투자자들과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은 철저히 프로였다. 냉철한 분석과 빠른 판단, 그리고 단단한 어조. 수연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했다.잠시 회의가 끝나자, 그는 노트북 화면을 돌려주며 말했다.“혹시 이해는 안 되시겠지만, 이게 우리가 개발 중인 시스템입니다.”화면에는 심전도 그래프와 호흡 수치, 혈중 산소량이 정리된 차트가 떠 있었다. 알 수 없는 전문 용어들이 가득했지만, 수연의 눈은 곧바로 한 지점을 포착했다.“여기… QRS 간격이 불규칙하네요.”그녀가 무심코 내뱉은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정지했다.우혁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 하셨습니까?”“여기 수치요. 파형이 정상 범위를 벗어난 것 같아요. 이건… 부정맥의 가능성이…”말을 잇다 그녀는 스스로 입술을 막았다. 기억이 없다고 말하던 자신이, 너무 자연스럽게 진단을 내린 것이다.우혁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의학 지식이 없는 사람은 저걸 볼 수 없습니다.”“…저도 놀랐어요. 그냥 눈에 들어왔어요.”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렸고, 손끝은 차갑게 식어갔다.짧은 정적 뒤, 그는 노트북을 닫았다. “당신은… 평범한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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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당신이 혼자 아프지 않게

수연은 순간 얼어붙었다.손끝의 감각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가슴 압박의 리듬, 호흡의 조절, 응급 처치의 순서. 그러나 머릿속에는 자신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저도 몰라요. 하지만 몸이 그냥… 움직였어요.”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진심이었다.우혁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눈빛에는 놀라움과 동시에 확신이 담겨 있었다.“당신, 분명히 특별한 사람입니다.”짧은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조심스레 물었다.“대표님… 자주 이런 증상이 있으신가요?”그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심장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들어 잦아지고 있죠.”그 고백은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깊은 고독이 스며 있었다. 사람들에게 내보이지 않았던 약점, 처음으로 드러낸 진실이었다.“왜 진작 말씀하지 않으셨어요?”“대표라는 자리… 누군가의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그의 말은 단단했지만, 수연의 가슴은 먹먹했다. 남의 시선을 견뎌내려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그의 모습이 어쩐지 자신과 겹쳐졌다.그녀는 그의 곁에 앉아 조용히 손수건을 건넸다.“아무리 강해도… 혼자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그 순간,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손수건을 받아든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의 손끝이 아직 자신의 가슴 위에 닿아 있는 듯, 심장이 묘하게 요동쳤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그의 낮은 목소리는 진심 어린 의문이었다.수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눈빛을 피하지도 않았다. 기억은 사라졌지만, 그의 곁에 있어야 한다는 감각만은 분명했다.그날 밤,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바다 소리는 멀리서 귓가에 닿았다. 침묵은 길었지만 불편하지 않았다.우혁은 처음으로 스스로의 약점을 드러냈고, 수연은 본능으로 그를 지켜냈다. 서로의 세계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창밖 하늘은 잔잔했지만, 두 사람의 심장은 같은 리듬으로 불안하게, 그러나 강하게 뛰고 있었다.새벽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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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흔들린 심장

늦은 오후, 속초의 하늘은 붉게 물들어갔다. 창밖에서 파도 소리가 잔잔히 밀려왔고, 오피스텔 안은 고요했다. 수연은 거실 소파에 앉아 바느질을 배우듯 단추를 꿰매고 있었다. 인터넷 영상을 보며 따라 하는 서툰 동작이었지만, 집중한 표정만큼은 진지했다.문득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책상에 앉은 우혁이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말없이 집중하는 모습은 날카롭고 단단했지만, 손끝의 떨림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수연의 가슴은 묘하게 저려왔다.‘이 사람은 언제나 혼자 버텨왔구나.’그녀는 단추를 놓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대표님.”그가 고개를 들었다.“잠깐 산책할래요? 계속 방 안에만 있으면 답답하잖아요.”우혁은 잠시 망설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바닷가 산책로에는 붉은 노을이 드리워져 있었다. 파도는 바위에 부딪히며 부서졌고, 갈매기들이 낮게 울며 날아올랐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지만,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이상해요.”수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기억은 없는데, 바다를 보면 자꾸 눈물이 나요. 왜일까요?”그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바다는 많은 걸 담고 있습니다. 두려움도, 위로도.”짧은 대답이었지만, 그녀는 그 말 속에서 자신을 향한 배려를 느꼈다.잠시 후, 해변가에 있던 아이가 공을 잃어버려 울음을 터뜨렸다. 공은 파도에 떠밀려 멀리 나가고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허겁지겁 달려왔지만 손쓸 도리가 없었다.수연은 망설임 없이 바다 쪽으로 달려갔다.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들어가 손을 뻗었다. 차가운 물결이 무릎을 덮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공을 붙잡아 아이에게 돌려주자,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었다.“고마워요!”아이의 웃음에 수연도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파도가 거세게 밀려와 그녀의 몸이 휘청거렸다.“수연 씨!”우혁이 단숨에 달려들어 그녀를 끌어냈다. 그의 품에 안긴 채 바닷가로 넘어지듯 쓰러졌다.숨이 고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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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균열의 그림자

아침 햇살이 유리창 너머로 스며들었다. 수연은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향긋한 향이 퍼졌지만, 마음은 어제 카페에서 느낀 낯선 시선 때문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대표님.”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어제… 저를 보던 그 여자,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맞을까요?”서류를 정리하던 우혁이 고개를 들었다.“아는 얼굴 같았습니까?”“아니요. 전혀요. 하지만… 눈빛이, 뭔가 알고 있는 사람처럼.”짧은 정적이 흘렀다. 우혁은 곧 담담히 말했다.“괜한 불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제가 곁에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그의 목소리는 단단했지만, 그녀의 가슴 속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그 시각, 박지현은 숙소 창가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에 쥔 커피는 식어 있었고, 시선은 어제의 장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틀림없어. 그 얼굴, 그 눈빛… 차수연이야.”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죽은 줄 알았던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그리고… 저 남자는 뭐야?”지현의 입술이 얇게 굳어졌다. 수연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편했는데, 그녀 곁에서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남자의 존재는 또 다른 질투를 불러일으켰다.“좋아. 네가 정말 수연이라면…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확인해야겠지.”며칠 뒤, 봉사단 의료진이 현지 보건소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우혁은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지현과 마주쳤다. 그녀는 일부러 먼저 다가와 미소를 지었다.“안녕하세요. 혹시 강우혁 대표님 맞으시죠? 기사에서 본 적 있습니다.”우혁은 순간 낯설어했지만 곧 예의 바른 미소로 답했다.“네, 맞습니다. 여기까지 소문이 났군요.”“저는 서울 ○○병원 흉부외과 의사 박지현이라고 합니다. 이번 봉사단에 합류했어요.”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지현은 일부러 손을 내밀었다. 우혁은 잠시 망설였지만 악수를 받았다. 그녀의 눈빛은 매끄럽게 웃고 있었지만, 속 깊은 곳에 감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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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가려진 칼날

아침 공기가 차가웠다. 창문을 연 수연은 손끝으로 유리창에 맺힌 물기를 닦았다. 바다는 여전히 잔잔했지만, 마음 한편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어젯밤 우혁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기억이 돌아와도 변하지 않는 게 있습니다. 당신이 제 곁에 있다는 사실.”그 한마디가 심장을 두드리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설레는 동시에, 알 수 없는 두려움도 함께 밀려왔다. ‘정말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따로 있는 걸까? 그곳에 내가 지켜야 할 것이 있었을까?’오전, 시장에 잠시 들른 수연은 향신료가 놓인 가판대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바구니에 담긴 향에서 이상하게 낯익은 감각이 피어올랐다. 눈앞이 아득해지며, 수술실 불빛 아래 긴장했던 장면이 스쳐갔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혹시… 차 아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눈앞에 서 있는 건 박지현이었다. 어제의 차가운 눈빛 대신, 오늘은 친절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저요? 저는…” 수연은 말끝을 흐리며 눈동자를 흔들었다.“아, 죄송해요. 제가 실례했네요. 낯이 너무 익어서 그만. 저는 서울에서 내려온 의사예요. 봉사 활동 때문에 이곳에 잠시 머물고 있거든요.”지현의 말투는 상냥했지만, 시선은 예리하게 움직였다. 수연의 손끝, 망설임, 그리고 순간적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기억을 잃으셨다면서요.”순간, 수연의 어깨가 굳었다.“그걸… 어떻게 아세요?”“어제 대표님 댁 앞에서 인사드릴 때 들었어요. 혹시 불편했다면 죄송해요. 단지… 의사로서 관심이 생겨서요.”지현의 말에 수연은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음 깊숙이 알 수 없는 차가움이 스며들었다.그때, 시장 반대편에서 우혁이 다가왔다.그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표정을 굳혔다.“무슨 일이죠?”지현은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대표님, 괜한 오해는 마세요. 저는 단지 얘기를 나누고 있었을 뿐이에요. 이분이… 참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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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당신을 믿어도 될까요?

식사를 마치고 난 후, 두 사람은 창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수연은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대표님, 저는… 요즘 조금 무서워요. 누군가 절 계속 보고 있는 것 같아서.”우혁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당신이 어떤 과거를 가졌든, 지금은 제 곁에 있습니다. 그 사실만 기억하세요. 나머지는 제가 다 막겠습니다.”그의 말에 수연은 눈을 떨구었다. 하지만 곧 용기를 내어 조용히 속삭였다.“…믿어도 될까요?”우혁은 대답 대신, 그녀의 손등 위에 천천히 손을 포개었다. 말보다 더 깊이 전해지는 온기에 수연의 눈가가 젖어들었다.그날 밤, 두 사람은 같은 거실에 앉아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방 안은 따뜻했다.그러나 창밖 어둠 속에서, 다른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박지현의 눈빛은 이미 차갑게 빛나며 그들의 평온을 노리고 있었다.봄바람이 스치는 아침, 시장 어귀에서 수연은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익숙지 않은 손길로 채소를 고르다, 누군가 부드럽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또 뵙네요. 반가워요.”고개를 들자, 어제의 여인. 박지현이었다. 오늘은 환자용 흰 가운 대신 차분한 셔츠 차림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수연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다.“아… 안녕하세요.”지현은 태연히 웃으며 말했다.“어제 말씀 못 드렸는데, 제가 서울에서 온 의사라 했잖아요. 흉부외과예요. 혹시 불편하시지 않다면, 제가 종종 상태를 확인해드려도 될까요?”순간, 수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흉부외과. 그 단어는 어딘가에서 익숙하게 맴돌았고, 숨이 막히는 듯한 두통이 스쳐갔다.“저… 저는 괜찮습니다.”수연이 급히 말을 잘랐지만, 지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불안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봤다.그때, 멀리서 우혁이 다가왔다. 그는 수연 곁에서 낯선 여자의 존재를 확인하자, 표정을 단단히 굳혔다.“또 뵙네요, 박 선생.”지현은 조금도 기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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