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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첫 번째 균열

作者: 데이지
last update 公開日: 2026-03-04 20:34:05

아침 햇살이 부엌 창을 통해 들어왔다. 

냄비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향긋한 계란 냄새가 방 안에 번졌다. 

수연은 조심스럽게 국자를 들고 국을 휘젓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되려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맛을 보았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몸이 스스로 움직였다. 

간을 맞추는 손놀림, 불 조절하는 감각.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자연스러웠다.

거실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우혁은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낯선 풍경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바닷속에서 죽어가던 여자가, 

지금은 앞치마를 두른 채 국을 끓이고 있었다.

“벌써 일어나셨군요.”

“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더 불안해져서요.  뭔가 해보고 싶었어요.”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속 어딘가가 불편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기억을 잃었는데, 이런 일상적인 행동들이 너무 익숙했다. 

그 안에는 뭔가 감춰진 시간이 있었다.

아침 식탁에 둘이 마주 앉았다. 수연이 건넨 국은 의외로 훌륭했다.

우혁은 국자를 들고 잠시 멈췄다.

“기억을 잃었다면서, 요리는 꽤 잘하시네요.”

그녀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정말요? 저도 조금 신기했어요. 그냥 손이 움직였어요. 이게…  제 안에 남아 있는 무언가일까요?”

그는 대답 대신 그녀를 오래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호기심과 경계가 동시에 있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직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녀는 평범하지 않았다.

식사 후, 우혁은 회사 관련 전화 회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반듯한 셔츠 차림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이어갔다. 

수연은 거실 구석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정돈된 말투, 단호한 결단, 때로는 상대방의 의견을 끌어내는 여유.

그녀는 문득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대표님 같네.”

그 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우혁은 헤드셋 너머로 짧게 눈길을 주었다. 

그녀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지만,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자, 그녀는 심심함을 달래려 방을 정리하고 거실을 청소했다. 

바닥을 닦던 도중, 선반 위에 놓인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호기심에 열어보니 작은 의료용 센서와 전자 기기들이 들어 있었다.

“이건 뭐지…?”

손끝이 기기에 닿는 순간, 알 수 없는 익숙함이 스며들었다. 

화면을 켜자 복잡한 수치와 그래프가 나타났다. 

심전도 곡선, 산소 포화도, 호흡률. 그녀의 시선이 흔들렸다. 

머릿속 어딘가가 강하게 당겨졌다.

“이 수치… 정상 범위에서 벗어나 있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뭐 하고 계십니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수연은 화들짝 놀라 상자를 닫았다. 

우혁이 서 있었다.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죄송해요. 그냥 궁금해서…”

“이건 회사에서 개발 중인 겁니다. 함부로 건드리면 곤란합니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즉시 표정을 누그러뜨렸지만,  이미 말은 날카롭게 튀어나온 뒤였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요.  낯설지 않아서… 저도 모르게.”

수연의 목소리는 작게 떨렸다.

우혁은 한숨을 내쉬며 상자를 닫았다.

“…제가 과민했군요. 하지만 앞으로는 조심해 주세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깊게 상처 입었다.

밤이 찾아왔다. 작은 방에 혼자 앉아 있던 

수연은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낮의 일이 떠올라 눈가가 시큰거렸다. 

누군가의 물건을 함부로 만진 건 잘못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손끝이 기억해낸 감각은 분명했다. 

숫자와 그래프, 그리고 그 의미. 

자신은 분명 그런 것들과 함께 살아온 사람이었다.

‘나는 누구지…?’

옆방에서는 여전히 키보드 소리가 이어졌다.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타이핑. 그녀는 문득 그 소리를 들으며 안도했다. 

낮에는 날카로웠던 남자가, 지금은 묵묵히 곁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

불현듯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다시 몰려왔다.

밤은 길었고, 방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수연은 이불 속에서 눈을 감고 있었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낮에 들었던 우혁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그가 화를 내려는 건 아니었음을 알면서도, 마음 어딘가가 작게 베인 듯 아려왔다.

작은 방의 불을 끄고도 한참 동안 뒤척이던 그녀는 결국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거실 쪽에서 아직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문을 살짝 열자, 소파에 앉아 있는 우혁의 뒷모습이 보였다. 

넥타이를 풀어놓은 채,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노트북은 닫혀 있었고, 그의 앞에는 미지근한 커피 잔이 놓여 있었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낮 동안 감추고 있던 피로와 긴장이 그 순간 모두 드러난 듯했다.

수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발소리가 닿자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순간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아직 안 주무셨군요.”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낮의 날카로움은 사라져 있었다.

“죄송해요. 낮에 괜한 일을 해서…”

그녀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예민했습니다.  회사 일로 신경이 곤두서 있던 탓이에요.”

짧은 대화였지만,  그 말 속에는 분명 사과가 담겨 있었다.

수연은 그 앞에 앉았다. 그의 얼굴은 지쳐 있었고, 

손목에는 미약하게 떨림이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시선이 그의 가슴께로 향했다. 

마치 뭔가를 알고 있는 듯, 심장이 보내는 신호를 본능적으로 읽으려 했다.

“괜찮으세요?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그녀의 물음에 그는 짧게 웃었다.

“대표라는 자리가 늘 이런 겁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흔들리면 안 되니까요.”

그의 말은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감춰진 외로움이 묻어 있었다.

“힘든데도… 혼자 감당하시는군요.”

“누군가는 그래야죠. 버티는 게 제 역할이니까.”

순간, 수연의 가슴이 이상하게 죄여왔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고단함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의 앞에 앉아 커피 잔을 치웠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에게 따뜻한 물을 건네주었다.

“뜨거운 건 안 좋을 것 같아서…  대신 따뜻하게 마셔보세요.”

그는 잠시 놀란 듯 그녀를 보았다. 

낯선 여자가, 자신을 위해 이런 사소한 배려를 건넨다는 게 

어색하면서도 묘하게 가슴을 울렸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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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END. 빛이 머무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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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288화. 라벤더의 약속

    햇살이 병원 건물의 유리벽에 부딪혀 반사될 때, 윤지아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오늘은 ‘라벤더 정원’ 개관식이 열리는 날이었다.몇 년의 시간 끝에 완성된 그 공간은 단순한 식물원이나 추모공간이 아니었다.그건 ‘두 사람의 약속’이 물리적인 형태로 세상에 남은, 살아 있는 증거였다.정원 입구에는 아직 봉인된 현판이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그녀의 시야에 환한 보라빛이 스며들 듯 번졌다.바람에 흩날리는 향기가 익숙했다.라벤더. 언제나 그들이 남긴 이야기를 불러오는 향기.기념식 준비를 마친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였고,언론의 카메라가 세워지며 조명이 켜졌다.지아는 여전히 조용히 서 있었다.그녀의 손에는 오래된 펜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차수연이 썼던 펜.잉크는 거의 말라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늘 품고 다녔다.그 펜은 기억의 무게 를 지닌 물건이었다.“윤 원장님, 잠시 후 10분 남았습니다.”보좌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지아는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푸른 하늘 위로 얇은 구름이 떠 있었고, 그 틈으로 부드러운 빛이 쏟아졌다.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교수님, 대표님… 오늘은 당신들의 약속이 완성되는 날이에요.”정원은 병원 한가운데 자리했다.유리 온실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어디서도 볼 수 없는 따뜻한 구조였다.라벤더 화단은 빙 둘러 동그랗게 배치되어 있었고,중앙에는 작은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였다.그 의자는 그들 의 자리였다.의도적으로 이름표는 붙이지 않았다.누구의 자리라 규정하기보단,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상징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식이 시작되자 병원 관계자들과 언론, 환자 가족들,그리고 오랜 동료들이 자리를 채웠다.지아는 단상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았다.“라벤더 정원은, 단순히 한 병원의 상징이 아닙니다.이곳은 누군가를 위해 싸우고, 버티고,그리고 사랑했던 모든 사람의 흔적을 품은 공간입니다.”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하지만 손끝은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지아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287화. 잉크가 새긴 목소리

    가을비가 그친 병원 정원에는 낙엽이 절반쯤 물들어 있었다.윤지아는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며칠째 이어지는 회의와 연구 일정 때문에 몸은 지쳤지만, 머릿속은 이상하게 또렷했다.그녀는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되뇌었다.끝난 이야기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진행 중일 수 있다.라벤더 프로젝트의 자료를 정리하던 중이었다.기록실 한쪽 서랍, ‘Private’이라 손글씨로 적힌 파일박스를 옮기다 무언가 작은 노트 하나가 떨어졌다.가죽 표지, 모서리의 미세한 균열, 그리고 볼펜으로 눌러 쓴 이름.차수연.그녀는 본능적으로 손끝이 떨렸다.표지를 열자, 안쪽에 잔잔하게 번진 잉크 자국이 있었다.‘201X년 3월, 봄비가 처음 내리던 날부터.’그 문장 하나로 이미 마음 한가운데 무언가가 부서지는 듯했다.지아는 조용히 의자에 앉아 페이지를 넘겼다.그 안에는 의료 기록이 아닌, 한 사람의 온전한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오늘은 이상하게 그 사람의 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익숙하게 들리던 구두의 리듬이 사라지고 나니 복도는 너무 길다.그가 떠난 게 아니라, 내 하루에서 사라진 것 같다.”“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그 사람과의 대화뿐 아니라내 안의 목소리 하나가 사라지는 일이구나.”지아는 손끝으로 글자 자국을 천천히 따라갔다.잉크가 눌린 자리에 손톱이 걸렸다.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그 필압에서 느껴지는 건 고통보다도 다짐에 가까웠다.다음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나는 여전히 그가 심장 수술 때 쓰던 펜을 사용한다.그 펜은 잉크가 조금씩 새고 있지만, 그 새는 흔적이 마치 그 사람의 목소리 같다.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내 옆을 스친다.”그녀는 숨을 고르며 다음 장을 넘겼다.종이 한쪽이 반쯤 찢어져 있었고, 거기엔 짧은 문장이 남아 있었다.“나는 아직도 그를 ‘대표님’이라 부를까,아니면, 그가 마지막에 바랐던 대로 우혁 씨라고 불러야 할까.”지아는 속으로 답했다.둘 다 맞아요. 그건 존경과 사랑이 동시에 남아

  •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29화. 그림자의 주인

    밤이 깊었지만 오피스텔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우혁은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긴장된 공기가 방 안에 감돌았다. 그의 눈가엔 피로가 드리워져 있었지만, 손끝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여기… 드디어 연결이 잡혔습니다.”그는 마우스를 움직이며 접속 로그를 확대했다. 수연이 다가와 숨을 죽였다. 화면에는 외부 계정이 남긴 접속 경로가 표시되어 있었다.“병원 본관 서버실, 특정 시각. 그리고 이 접속은 관리자 권한을 가진 계정으로만 가능했습니다. 더구나, 이 계정이 사용된 기기의 고유 번호가 남아

  •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35화. 심장을 겨누는 음모

    밤이 내려앉은 병원 본관 앞에는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거리고, “차수연은 어디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연신 날아들었다. 그 중심에 민도혁이 서 있었다. 완벽하게 맞춘 수트 차림, 눈썹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얼굴. 그는 마치 자신이 정의의 대변자인 듯 미소를 지었다.“차수연 교수는 불과 몇 달 전, 환자를 수술 도중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오늘 봉사 현장에서 잠시 보여준 행동은 그 죄를 덮기 위한 쇼에 불과합니다. 병원은 의료사고를 저지른 자를 두 번 다시 수술실에 세울 수 없습니다.

  •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79화. 기억의 그림자

    늦은 밤, 병원 기록실. 형광등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서류 더미 위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수연은 여전히 오래된 차트를 손끝으로 더듬고 있었다. 페이지마다 스며든 잉크 냄새가 낯설면서도 어쩐지 익숙했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장면들은 분명히 현실의 파편인데, 이름을 붙이려 하면 흩어져 버렸다.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조여왔다. 그녀는 메스를 들고 필사적으로 움직이던 자신의 손을 떠올렸다. 심장이 멎어가는 환자, 절망 속에서도 끝내 맥박을 되살리던 순간. 그때 들려왔던 비명 같은 심전도 소리와 환자의 가슴이 다시 뛰던 울

  •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88화. 폭풍 속의 버팀목

    밤은 깊었지만, 수연은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오피스텔 창문 너머로 흩뿌려진 불빛들이 검은 하늘 위에서 은근한 떨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하루 종일 이어진 기자들의 질문, 민도혁의 날 선 공격,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혁이 남긴 한 마디가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어쩌면… 그때 저를 살린 사람이 교수님일지도 모릅니다.”그 말이 진실일 리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가슴은 심하게 요동쳤다. 기억 속 흐릿한 얼굴이 분명 누군가의 생존을 의미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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