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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양보한 적 없는 사람

Author: YuIm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8 08:00:50

백화점 생활용품 매장에서 채이는 얇은 여름 이불 두 장을 번갈아 만졌다. 어머니는 에어컨 바람을 오래 쐬면 춥다며 자꾸 끄곤 했다. 가볍고 세탁하기 쉬운 쪽을 고른 뒤 계산대에 섰다.

“윤채이.”

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세리가 서 있었다. 새로 산 듯한 선글라스가 머리 위에 얹혀 있었다. 손에 든 쇼핑백은 하나였지만, 시선은 채이의 가방과 신발 사이를 빠르게 움직였다.

“세리 언니.”

“여기서 다 보네. 이제 생활 수준이 맞아지니까 만나는 데도 바뀐다?”

채이는 직원에게 포장을 부탁한 뒤 세리를 보았다.

“엄마 이불 사러 왔어.”

“큰엄마 것도 여기서 사? 많이 편해졌나 보네.”

세리의 말투는 웃고 있었지만 채이는 그 웃음에 맞춰 웃지 않았다. 계산을 마치고 쇼핑백을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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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달력에 여름휴가 표시가 하나둘 늘어났다. 채이는 빈자리에 놓인 선풍기 소리를 들으며 지난 캠페인의 체험 기록을 열었다. 재출범안에 기존 실적을 인용하기 전에, 문의 유형별로 고객 경험을 나눠보려던 참이었다.민재가 정산 담당자에게 받은 파일을 공유했다. 유성컴퍼니의 체험완료 명세였다.“종료 보고서랑 건별 목록 같이 왔어요. 총 삼천 건이라는데요.”“고마워요. 설치 기록이랑 먼저 맞춰볼게요.”채이는 파일을 내려받아 읽기 전용 사본을 만들었다. 예전에 표본에서 발견했던 이상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때는 서로 다른 집계 기준 때문일 수도 있어 필요한 자료를 추가 요청해둔 상태였다. 이번에는 종료 명세 전체가 들어왔다.첫 화면은 깨끗했다. 체험완료 삼천 건. 건당 십만 원. 청구액 삼억 원. 굵은 글씨 아래로 마스킹된 고객 번호와 접수 번호, 완료일이 이어졌다.채이는 고객 번호로 정렬하다가 스크롤을 멈췄다. 같은 번호가 네 번 나왔다. 제품을 여러 번 썼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이상이라고 표시하지 않고 설치 번호를 확인했다.설치 번호도 같았다.완료일만 달랐다. 하루 간격으로 두 줄, 다음 주에 두 줄. 채이는 자기 쪽 고객 응대 화면에서 해당 설치 건을 열었다. 방문은 한 번이었다.“민재 씨, 이 접수 번호 기억나요?”그가 의자를 밀고 다가왔다.“어, 이거 취소 사유 분류할 때 봤어요. 설치 공간 때문에.”“그건 다른 번호죠?”“끝 두 자리만 달라요. 같은 고객이 다시 신청해서 묶었거든요.”채이는 두 화면을 나란히 놓았다. 고객이 다시 신청한 건과 이전에 취소한 건이 업체 보고서에서는 각각 체험완료로 남아 있었다. 민재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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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점 생활용품 매장에서 채이는 얇은 여름 이불 두 장을 번갈아 만졌다. 어머니는 에어컨 바람을 오래 쐬면 춥다며 자꾸 끄곤 했다. 가볍고 세탁하기 쉬운 쪽을 고른 뒤 계산대에 섰다.“윤채이.”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세리가 서 있었다. 새로 산 듯한 선글라스가 머리 위에 얹혀 있었다. 손에 든 쇼핑백은 하나였지만, 시선은 채이의 가방과 신발 사이를 빠르게 움직였다.“세리 언니.”“여기서 다 보네. 이제 생활 수준이 맞아지니까 만나는 데도 바뀐다?”채이는 직원에게 포장을 부탁한 뒤 세리를 보았다.“엄마 이불 사러 왔어.”“큰엄마 것도 여기서 사? 많이 편해졌나 보네.”세리의 말투는 웃고 있었지만 채이는 그 웃음에 맞춰 웃지 않았다. 계산을 마치고 쇼핑백을 받자 세리가 옆 카페를 가리켰다.“잠깐 앉아. 할 말 있어.”“어떤 얘긴데?”“친척끼리 잠깐 차도 못 마셔?”채이는 시간을 확인했다. 어머니를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삼십 분 정도 남아 있었다.“십오 분만.”세리는 대답하지 않고 먼저 걸었다. 채이는 그 뒤에서 쇼핑백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예전 같으면 어머니에게 늦는다고 전화부터 했을 것이다. 오늘은 알람을 맞췄다.카페에 앉자 세리가 메뉴판을 밀었다.“네가 사. 잘살잖아.”“내 차는 내가 살게.”그녀는 직원에게 각자 계산을 요청했다. 세리의 눈썹이 올라갔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인지 금방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많이 컸네. 옛날에는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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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표님, 저는 맞선 대타일 뿐입니다   29화. 아침에는 윤 대리

    일곱 시 이십 분, 채이는 자기 객실에서 출장 가방을 들고 나왔다. 거울을 세 번 확인했지만 남들이 알아볼 만큼 달라 보이는 건 없었다.엘리베이터에서 현수를 만났다. 그는 종이컵을 두 개 들고 있었다.“아침 먹었어?”“아직요.”“이거 미숫가루. 조식 먹을 시간 없겠다.”채이가 고맙다며 컵을 받았다. 혹시 표정이 이상한지 눈치를 보았는데, 현수는 휴대폰에 뜬 설치 사진만 들여다보고 있었다.“어제 기사님이 보내주셨는데 이것 좀 봐. 이 집은 연결부가 아예 안 보여.”일 얘기가 나오자 채이의 어깨가 저절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컵을 가방 옆주머니에 끼우고 사진을 확대했다.“사진으로 판단 못 하는 집은 전화 상담으로 넘어가는 경로가 있어야겠어요. 사진 안 올리면 다음 화면으로 못 가는 건 빼고요.”“그러면 전화가 늘 텐데.”“방문 취소가 줄어드는지 같이 봐야죠.”호텔 문을 나설 때 휴대폰이 울렸다. 도진이었다.‘잘 내려갔어?’채이는 현수가 차를 찾는 사이 답장을 보냈다.‘네. 현수 과장님과 이동해요.’보내고 보니 회사 메신저와 다를 게 없었다. 한 줄을 더 쓰려는데 현수가 차 문을 열었다. 채이는 휴대폰을 넣고 탔다.센터의 작은 회의실에는 어제 만난 기사 둘과 상담 담당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채이는 새 안내지를 나눠주었다. 기사 한 명이 고개를 갸웃했다.“예상 비용이라고 하면 또 정확히 얼마냐고 물으실 텐데요.”“정확한 비용을 알 수 없는 경우는 왜 그런지 적었습니다. 추가 확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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