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편의 그룹을 인수했습니다

전남편의 그룹을 인수했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8
By:  노에빌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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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강그룹의 며느리로 살아온 5년. 차서은은 남편을 위해 자신의 꿈도, 미래도 포기했다. 그러나 남편 강태준에게 그녀는 언제나 뒷전이었다. “내 아내가 아니면 당신이 뭘 할 수 있는데요?” 그 말에 서은은 미련 없이 이혼을 선택했다. 그리고 3년 후. 한때 무능한 재벌가 며느리라 불렸던 그녀가 성공한 투자회사 대표가 되어 돌아왔다. 그것도 전남편의 그룹을 인수할 유력한 투자자로. “오랜만이에요, 강 부회장님. 오늘은 인수 조건부터 이야기하죠.” 뒤늦게 그녀의 소중함을 깨닫고 매달리는 전남편. 그리고 그녀의 곁을 지키며 거침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남자, 류태오. “그쪽이 버린 여자, 이제 제가 사랑해도 되겠습니까?” 버림받았던 아내의 통쾌한 역전극. 이번에는 내가 당신의 모든 것을 가져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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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화. 당신 회사, 제가 사겠습니다

“태강그룹을 인수하겠습니다.”

회의실 안이 얼어붙었다. 그룹의 운명을 결정할 채권단 주관 매각 협상 자리. 수십 명의 임원과 법률 대리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회의실 가장 안쪽, 태강그룹 부회장 강태준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차서은?”

3년 전 이혼한 전처가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 군더더기 없는 아이보리색 정장.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낯설 만큼 무심한 눈빛.

그녀는 한때 그의 아내였다. 아침마다 그의 넥타이를 골라 주고, 늦은 밤까지 식지 않도록 저녁을 준비하던 여자. 그런 여자가 지금 태강그룹의 핵심 계열사를 인수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 왜 여기에…….”

“강 부회장님.”

서은이 그의 말을 잘랐다.

“사적인 호칭은 삼가 주시겠어요?”

“뭐?”

“오늘 저는 세온파트너스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습니다.”

서은은 준비해 온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태강그룹 핵심 계열사 세 곳에 대한 인수 제안서입니다. 채권단과 협의한 조건을 기준으로 경영권 지분 확보를 제안드립니다.”

태준의 턱이 굳었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겁니까?”

“장난이라뇨.”

서은이 희미하게 웃었다.

“저는 사업하러 왔는데요.”

“차서은.”

“아, 그리고.”

그녀가 서류 한 장을 넘겼다.

“인수 이후에는 현 경영진의 책임을 검토할 예정입니다. 특히 무리한 해외 투자와 계열사 부실을 초래한 경영진에 대해서는요.”

태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것은 사실상 자신을 겨냥한 말이었다.

“당신이 감히…….”

“감히?”

서은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말 참 오랜만에 듣네요.”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3년 전, 이혼서류를 내밀던 날. 그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내 아내가 아니면 당신이 뭘 할 수 있는데요?’

서은은 미소 지었다.

“그러게요. 저도 제가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어요.”

“…….”

“그런데 강태준 씨.”

그녀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당신은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할 거라고 했죠.”

“…….”

“이제 보니 반대였네요.”

그녀는 계약서를 그의 앞으로 밀었다.

“당신 회사가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게 생겼으니까.”

그때였다. 똑똑소리와 함께, 회의실 문이 열렸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네요.”

낮고 여유로운 남자의 목소리. 고급스러운 남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회의실로 들어섰다. 류태오. 글로벌 투자사 아르덴캐피탈의 대표이자 세온파트너스의 전략적 투자자. 그리고 차서은의 곁에 있는 남자였다.

“류 대표님?”

채권단 관계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오는 가볍게 인사한 뒤 서은의 옆자리에 앉았다.

“차 대표님. 많이 기다렸습니까?”

“아니요. 이제 막 시작했어요.”

“다행이네요.”

태오가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아침도 안 드시고 나왔잖아요. 끝나면 밥부터 먹으러 갑시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대화였다. 태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두 분이 무슨 관계입니까?”

태오가 고개를 돌렸다.

“강 부회장님께서 그걸 왜 궁금해하시죠?”

“내가 묻고 있지 않습니까.”

“아.”

태오가 느긋하게 웃었다.

“전남편이시라 그랬죠?”

회의실 공기가 다시 얼어붙었다. 태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말조심하십시오.”

“죄송합니다. 불편하셨습니까?”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럼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태오는 서은 앞에 놓인 물잔을 그녀 쪽으로 조금 밀어 주었다.

“그런데 강 부회장님. 이제 남의 여자 사생활에 관심 가지실 때가 아닌 것 같은데.”

태오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회사부터 지키셔야죠.”

***

이로부터 3년 전.

차서은은 결혼 5주년 기념일을 혼자 보냈다. 정확히는, 혼자 보낼 생각이 없었다. 오후 여섯 시부터 준비한 음식이 식어 가고 있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소고기 스테이크와 와인. 그리고 며칠 전부터 예약해 둔 작은 케이크. 서은은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오후 9시 47분. 연락은 없었다. 그녀는 익숙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오늘도 늦어요?]

읽지 않음. 10분이 지났다. 30분이 지났다. 그리고 밤 11시 12분. 휴대전화가 울렸다. 남편이었다.

“여보세요?”

— 아직 안 잤습니까?

“네. 기다리고 있었어요.”

— 먼저 자요. 오늘 늦습니다.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요?”

짧은 침묵.

— 무슨 날인데요?

서은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에요.”

— 별일 아니면 끊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그녀는 한참 동안 꺼진 화면을 바라보았다.

결혼 5주년. 남편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날이었다.

서은은 천천히 식탁을 정리했다. 스테이크를 밀폐 용기에 담고, 와인을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케이크를 집어 들었을 때였다. 휴대전화에 알림이 떴다.

[태강그룹 강태준 부회장, 세림그룹 장녀 윤채린과 자선행사 동반 참석]

서은의 손이 멈췄다. 기사에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검은 턱시도를 입은 남편. 그리고 그의 팔짱을 낀 아름다운 여자. 두 사람은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었다. 기사 제목 아래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두 사람은 최근 태강그룹과 세림그룹의 전략적 협력을 주도하며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서은은 사진을 확대했다. 윤채린의 목에는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익숙한 디자인이었다. 지난달, 서은이 남편에게 보여 주었던 목걸이. 결혼기념일 선물로 받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던 바로 그 제품이었다. 당시 태준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건 직접 사면 되잖습니까.'

그런데 지금. 그 목걸이가 다른 여자의 목에 걸려 있었다. 서은은 한참 동안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오래전부터 가슴 한구석에 쌓여 있던 무언가가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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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에빌
노에빌
전처의 브랜드 쓰다가 사이다가 너무 필요해서 쓰는 글ㅎㅎㅎㅎ 고구마 거의 없이 사이다만 있을 예정이에여ㅎ
2026-11-06 10: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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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Chapters
2화. 그의 모든 것을 빼앗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강태준은 평소처럼 오전 일곱 시에 귀가했다.“셔츠 준비해 뒀습니까?”그는 현관에서 구두를 벗으며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차서은 씨.”거실로 들어선 태준은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아내를 발견했다. 서은은 그를 바라보았다.“어제 윤채린 씨랑 있었어요?”태준의 미간이 좁혀졌다.“기사를 봤습니까?”“네.”“사업 때문에 참석한 자리입니다.”“그 목걸이도 사업 때문에 선물한 거예요?”태준이 잠시 멈칫했다.“그걸 어떻게…….”“제가 갖고 싶다고 했던 거잖아요.”“차서은 씨.”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지금 고작 목걸이 하나 때문에 이러는 겁니까?”서은은 웃었다. 고작. 그에게는 언제나 모든 것이 고작이었다. 기념일도. 약속도. 자신의 서운함도.“윤채린 씨한테는 직접 골라 줬어요?”“그룹 홍보팀에서 준비한 겁니다.”“그렇구나.”“그만합시다. 피곤합니다.”태준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로 일일이 따지지 마세요. 당신도 이제 태강그룹 며느리로 산 지 5년이나 됐잖습니까.”“…….”“그 정도는 이해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그 순간.서은은 깨달았다.이 남자는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미안해하지 않을 것이었다.“여보.”“또 뭡니까?”“우리 이혼해요.”태준의 손이 멈췄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뭐라고요?”“이혼하자고요.”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더니 태준이 헛웃음을 터뜨렸다.“지금 협박하는 겁니까?”“아니요.”“목걸이 하나 때문에 이혼하겠다고요?”“목걸이 때문이 아니에요.”“그럼 뭡니까?”서은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당신이랑 더는 살고 싶지 않아요.”태준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차서은 씨.”“…….”“내 아내가 아니면 당신이 뭘 할 수 있는데요?”서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5년 동안 집에서 살림만 하던 사람이 나가서 뭘 하겠다는 겁니까?”“…….”“현실적으로 생각하세요. 지금 누리는 생활, 당신 혼자서는 절대 유지 못 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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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재벌가 며느리의 통장 잔고는 38만 원이었다
차서은이 태강그룹 부회장 사모님에서 백수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사흘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현실에 놓여 있는지 깨닫는 데는 단 하루면 충분했다. “고객님, 결제가 거절되었습니다.” “……네?” “카드가 정지된 것으로 확인되는데요. 다른 카드 있으실까요?” 서은은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계산대 위에는 삼각김밥 하나와 생수 한 병이 놓여 있었다. 합계 2,300원.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수천만 원짜리 가방을 들고 다녔던 여자가, 지금은 삼각김밥 하나를 계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만요.” 서은은 지갑을 열었다. 태강그룹에서 발급받은 가족카드. 그 아래에는 백화점 VIP 카드. 그리고 강태준의 이름으로 발급된 또 다른 카드. 모두 쓸모없었다. 서은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명의로 된 체크카드를 꺼냈다. 삑. 결제가 완료되었다. “감사합니다.” 편의점을 나선 서은은 곧장 은행 애플리케이션을 열었다. 보통예금: 차서은. 384,720원 출금 가능 잔액 서은은 화면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38만 4,720원. 그것이 지금 자신에게 남은 전 재산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당장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돈이었다. 결혼 전 모아 두었던 적금은 5년 전 해지했다. 당시 태준이 추진하던 해외 투자 사업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고, 서은은 자신이 가진 돈을 보탰다. 태준은 그 사실조차 몰랐다. 그저 아내가 자신의 일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결혼 후 별도의 직장을 다니지 않았다. 태강그룹 며느리에게 직장생활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시어머니의 말 때문이었다. '우리 집안 며느리가 남의 회사에서 월급이나 받고 다닐 수는 없잖니.' 그 말을 들었을 때 서은은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남편의 해외 사업 자료를 검토하고, 계약서의 위험 요소를 찾아내고, 투자 대상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했다. 그 모든 일을 대가 없이 해 왔다. 남편의 성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믿었으니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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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그녀의 제안서
다음 날. 서은은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났다. 정확히는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옆방에서는 밤새 누군가 전화 통화를 했고, 복도에서는 새벽까지 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서은은 노트북을 켰다. 오래된 노트북이었다. 결혼 전 컨설팅 회사에서 일할 때 사용하던 것. 화면이 켜지는 데만 몇 분이 걸렸다. 그녀는 채용 사이트에 접속했다. 경영기획. 전략 컨설팅. 기업 분석. 투자 심사. 익숙한 단어들이 화면에 가득했다. 서은은 이력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름, 차서은. 나이, 28세. 학력, 한국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경력. 그녀의 손가락이 멈췄다. 결혼 전 대형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 3년. 그 아래. 5년의 공백. 서은은 한참 동안 빈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개인 사정으로 인한 경력 단절. 그 문장을 적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5년. 그 시간 동안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걸까. 태준의 해외 사업 진출을 위해 밤새 시장을 분석했던 날들. 인수 대상 기업의 재무제표에서 이상한 수치를 발견했던 순간. 남편이 놓친 계약 조항을 찾아내 수정했던 일. 그 모든 것은 경력이 아니었다. 남편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일이었으니까. 서은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지원 버튼을 눌렀다. 그날 그녀는 스물세 곳에 이력서를 보냈다. 일주일 후. 결과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서류 전형 불합격] [이번 채용에서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서은은 화면을 내렸다. 불합격. 불합격. 또 불합격. 그중 한 곳에서 면접 제안이 왔다. 작은 투자 자문 회사였다. 서은은 오랜만에 화장을 했다. 결혼 전 입었던 정장은 허리가 조금 헐렁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녀는 거울을 보며 웃었다. “할 수 있어.” 그날 면접은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서은은 그렇게 생각했다. “차서은 씨, 이력서를 보니 예전에 꽤 좋은 회사에 다니셨네요.” “네.” “그런데 5년이나 공백이 있으시네요?” “결혼 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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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그 회사, 인수하시면 망합니다
회의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차서은은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를 마주했다. 태강그룹 전략투자실 팀장, 박준혁. 그의 앞에는 서은이 밤새 작성한 열두 장짜리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아닙니다.”서은은 짧게 대답했다.“그럼 어떻게 저희 내부 검토안과 비슷한 보고서를 작성하셨습니까?”“공개된 자료를 분석했습니다.”“그 말만 믿으라는 겁니까?”“믿지 않으셔도 됩니다.”준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서은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제가 어떤 자료를 근거로 어떤 계산을 했는지 설명해 드리면 되니까요.”서은은 테이블 위에 놓인 명함을 내려다보았다.“태강그룹에서 한빛정밀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하셨죠?”“그렇습니다.”“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나요?”준혁이 헛웃음을 흘렸다.“그걸 왜 알려 드려야 합니까?”“알려 주실 필요 없습니다.”서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어차피 인수하시면 안 되니까요.”순간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한빛정밀 대표이사 오명석이 고개를 들었다.“……뭐라고요?”“태강그룹에서 한빛정밀을 인수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준혁의 얼굴이 굳었다.“지금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제가 작성한 보고서에는 한빛정밀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할 방법이 담겨 있습니다.”“그건 저희도 검토했습니다.”“그렇겠죠.”서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태강그룹이 한 가지를 놓치고 계신 것 같아서요.”“뭡니까?”서은은 보고서 마지막 장을 펼쳤다.“한빛정밀은 지금 회사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 아닙니다.”그녀가 고개를 들었다.“누군가 그렇게 믿게 만들고 있을 뿐이죠.”“그게 무슨 뜻입니까?”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오명석 대표였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역력했다.서은은 준비해 온 노트북을 열었다. 오래된 기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준혁이 그 모습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비웃음이 스쳤다.“준비는 많이 하신 모양이군요.”서은은 대꾸하지 않았다. 화면이 켜지자 곧장 자료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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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당신이 이런 걸 할 줄 알았습니까?
“하하.” 준혁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차서은 씨.” “네.” “지금 본인이 한빛정밀의 경영 정상화를 맡겠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무슨 자격으로요?” 서은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자격이 필요합니까?” “당연하죠.” 준혁이 팔짱을 꼈다. “관련 경력이 얼마나 되십니까?” “결혼 전 컨설팅 회사에서 3년간 근무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네.” “최근 5년간은요?” “…….” “경력 공백이 있으시죠?” 서은의 손끝이 굳었다. 준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기업 구조조정은 취미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한빛정밀은 지금 수백억 원의 자금이 걸린 상황입니다.” “네.” “그런 회사를 경력 단절 5년인 분에게 맡기라는 겁니까?” 회의실 안에 정적이 흘렀다. 서은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5년. 그 시간은 언제나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면접장에서도. 이력서에서도.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도. 하지만. 이번만큼은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박 팀장님.” 서은이 고개를 들었다.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말씀하시죠.” “태강그룹에서 한빛정밀을 인수하면 얼마에 인수하실 계획입니까?” 준혁의 표정이 굳었다. “그건 기밀입니다.” “그렇겠죠.” 서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추정해 보겠습니다.” 그녀는 노트에 숫자를 적었다. “한빛정밀의 순차입금과 현재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태강그룹은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를 상당히 낮게 평가하고 있을 겁니다.” “…….” “아마 경영권 지분 인수 대금은 100억 원 안팎으로 제시하셨겠죠. 별도의 채무 조정과 신규 자금 투입을 전제로요.” 준혁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었다. 서은은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맞나 보네요.” “…….” “그런데 박 팀장님.” 그녀가 펜을 내려놓았다. “제가 한빛정밀 대표라면 그 가격에는 절대 팔지 않을 겁니다.” “왜죠?” “정상화 가능성이 있는 회사를 유동성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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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어디 한번 해 보죠
그날 밤. 서은은 고시원 방에서 한빛정밀의 추가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다. 대표이사실에서 전달받은 자료는 예상보다 방대했다. 그녀는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파일에서 손이 멈췄다. [단기 차입금 재약정 검토 내역] 서은은 파일을 열었다. 금융기관별 차입금 현황. 만기 연장 협의 내역. 담보 조건 변경 기록. 그녀는 화면을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멈췄다. “……뭐야?” 한 금융기관이 만기 연장을 검토하다 갑자기 거절한 기록이었다. 그런데 거절 사유가 이상했다. 대주주 변경 가능성에 따른 신용 위험 재평가. 서은은 날짜를 확인했다. 그리고 다른 자료를 열었다. 태강그룹의 한빛정밀 인수 검토가 본격화된 시점. 두 날짜가 거의 일치했다. “설마…….” 서은은 곧장 추가 자료를 확인했다. 그런데 더 이상한 사실이 발견되었다. 한빛정밀의 주요 금융기관 중 일부가 태강그룹 계열사와 복잡한 거래 관계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자체가 불법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연이라고 넘기기에는 시점이 묘했다. 서은은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회사가 망해 가는 게 아니라…….” 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누군가 망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 그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서은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차서은 씨. 낮고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누구시죠?” — 오늘 한빛정밀에서 작성하신 보고서, 흥미롭게 봤습니다. 서은의 손이 멈췄다. “……누구신데요?” 남자가 짧게 웃었다. — 그건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용건이 뭔가요?” — 충고 하나 드리려고요. “…….” — 한빛정밀 건에서 손 떼십시오. 서은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뜻이죠?” — 그 회사, 생각보다 복잡한 곳입니다. “…….” — 특히 태강그룹과 관련된 문제라면 더더욱요. 서은은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 “누구시냐고 물었습니다.” 잠시 침묵. 그러더니 남자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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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두 가지 선택지
문이 닫혔다. 복도에는 두 남자만 남았다. 잠시 후, 한 남자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부회장님.” — 어떻게 됐습니까? “계약 해지를 거부하셨습니다.” 짧은 침묵. — 뭐라고요? “그리고…….” 남자는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부회장님께 전하라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내 허락이 필요 없다고 했다고요?” 강태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비서실장 최현우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사모님 인생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태준은 헛웃음을 흘렸다. “참 대단하군요.”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고작 며칠 밖에 나가 있었다고 사람이 이렇게 달라집니까?” 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법무팀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현재로서는 사모님의 자문 계약 자체를 막을 법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합니다.” “혼인 관계인데도요?” “네. 혼인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배우자의 경제활동을 제한할 수는 없으니까요.” 태준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럼 내부 정보 유출 문제는요?” “아직 확인된 정황이 없습니다. 사모님께서 작성하신 보고서도 공개 자료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 “오히려 법무팀에서는 무리하게 문제를 제기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됐습니다.” 태준이 말을 잘랐다. “그만 나가 보세요.” 현우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문을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최 실장.” “네, 부회장님.” “차서은 씨.” “…….” “정말 고시원에 있습니까?” 현우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네.” 태준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어느 정도 수준인데요?” “월세 32만 원짜리 방으로 확인됐습니다.” 태준의 손이 멈췄다. “얼마요?” “32만 원입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차서은 씨가 그런 데서 산다고요?” “네.” “말도 안 되는 소리.” 태준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 사람이 얼마나 까다로운 사람인데.” 현우는 입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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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그것만으로도 큰 진전이죠
오명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은은 말을 이었다. “물론 정상화 가능성을 입증할 자료가 필요합니다. 유럽 공급 계약의 이행 가능성, 실제 매출채권 회수 일정, 공장 가동률까지 전부 검증해야 해요.” “그걸 얼마나 빨리 할 수 있습니까?” “오늘부터 시작하면 사흘 안에 채권단에 제출할 1차 자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사흘?” “네.” “가능하겠어요?” 서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녀는 자신 있게 말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뭡니까?” “재무팀의 모든 관련 자료를 열람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비밀유지계약은 이미 체결했으니 필요한 접근 권한만 주시면 됩니다.” 오명석이 잠시 고민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서은은 미소 지었다. “그리고 대표님.” “네.” “앞으로 태강그룹에서 연락이 오면 협상 창구를 하나로 통일해 주세요.” “왜요?” “괜한 말 한마디가 시장에 퍼지면 그게 회사의 위험이 될 수 있으니까요.” 서은은 차분하게 덧붙였다. “지금부터는 숫자뿐 아니라 정보도 관리해야 합니다.” 오명석은 그녀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차 자문위원.” “네?” “정말 5년 동안 일을 쉬신 게 맞습니까?” 서은은 잠시 멈칫했다. “……네.” “이상하네요.” 오명석이 웃었다. “웬만한 현직 임원보다 상황 판단이 빠르신데.” 서은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와닿았다. 누군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일. 그것이 이렇게 기쁜 일이었나. “감사합니다.” 서은은 작게 웃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날부터 서은은 미친 듯이 일했다. 오전 여덟 시. 한빛정밀 본사 출근. 오전 열 시. 재무팀 자료 검토. 오후 한 시. 금융기관별 채무 조건 분석. 오후 네 시. 주요 거래처 매출채권 회수 일정 확인. 오후 여덟 시. 정상화안 수정. 그리고 밤 열한 시. 고시원으로 돌아와 다시 노트북을 켰다. 하루에 네 시간도 자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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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그녀가 남편을 위해 포기한 것
금요일 오후 두 시 사십칠 분. 서은은 노트북 앞에서 손가락을 두드리고 있었다. 동우모빌리티의 회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오명석도 옆에 앉아 있었다. “아직입니까?” “네.” “혹시 답이 안 오면…….” “그때는 다음 절차를 진행해야죠.” 서은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긴장하고 있었다. 이번 협상이 실패하면 한빛정밀의 자금 계획은 다시 수정해야 했다. 그때였다. 띵. 이메일이 도착했다. 서은의 손이 멈췄다. 발신자. 동우모빌리티 구매본부. 그녀는 메일을 열었다. 그리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제목: 미지급 대금 지급 일정 관련 회신 내부 검토 결과, 미지급 대금 중 42억 원을 우선 지급하고 잔여 금액에 대해서는 별도 지급 일정을 협의하고자 합니다. 단, 지급 일정 확정은 양사 간 합의서 체결을 전제로 합니다.] 서은은 숨을 멈췄다. “회신 왔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서은은 화면을 돌려 보여 주었다. 오명석의 눈이 커졌다. “사십이억……?” “우선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다만 합의서 체결이 필요합니다.” 오명석은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의 어깨가 떨렸다. “살았다.” 서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 자문위원. 우리 회사…….” 그의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정말 살 수 있겠습니까?” 서은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첫 번째 고비는 넘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명석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서은은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누군가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해 주는 것. 자신이 한 일이 실제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 그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잊고 있었다. *** 같은 시각. 태강그룹 부회장실. “한빛정밀에서 동우모빌리티 미수금 일부를 회수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박준혁의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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