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냉장고 문을 열자 대파가 먼저 고개를 내밀었다. 채이는 끈으로 묶인 파를 꺼냈다가 그 아래 똑같은 묶음이 있는 것을 보고 손을 멈췄다. 옆 칸에는 두부가 넷이었다.
“도진 씨. 우리 이번 주에 국밥집 열어요?”
셔츠 소매를 접던 도진이 주방으로 왔다.
“왜?”
“파가 손님 받을 만큼 있어요.”
채이가 장을 봤고, 도진은 그녀가 남긴 목록을 보고 같은 것을 주문했다. 집을 돌봐주는 분도 비어 있던 칸을 채워둔 모양이었다. 세 사람의 성실함이 두부 네 모로 모였다.
“내가 먹으면 되지.”
“지금 두부 한 모를 간식으로 드실 표정은 아닌데요.”
도진의 시선이 식탁 위 크루아상으로 갔다. 채이는 빵 봉지를 그의 반대편으로 밀었다. 그가 피식 웃으며 파를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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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담당자에게서 면담 요청이 왔다. 채이는 은정과 함께 작은 회의실로 갔다. 지현은 먼저 심사 권한 변경 내용을 설명했다. 대표는 이번 후보 심사와 최종 편성 결정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고, 원래 심사 담당이 독립적으로 재심 범위를 정하게 됐다.“그럼 제 이름이 다시 들어간 건가요?”채이가 물었다.“아직 아닙니다. 제외 지시는 철회됐지만 발표 자격에 대한 재심 결과는 따로 나와야 합니다.”지현은 서류를 넘겨 해당 부분을 보여줬다.“대표의 지시로 바로 복귀시키는 방식도 쓰지 않습니다. 윤 대리님이 이의를 유지할지, 자료를 더 제출할지 결정하실 수 있습니다.”채이는 문장을 읽었다. 원래 평가와 개입 경위를 확인한 뒤, 영향을 받은 후보들의 심사 기회를 함께 검토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과는 비어 있었다. 며칠 전에는 그 빈칸을 보는 것만으로 초조했을 텐데, 오늘은 누가 대신 채우지 않았다는 점이 먼저 보였다.“기존에 제출한 평가 자료는 그대로 검토되는 거죠?”“네. 추가 자료가 필요하면 담당 심사자가 직접 요청합니다.”“지원 업무를 했다는 이유로 이의제기를 철회했다고 보지는 않고요?”“그 점도 명시했습니다.”옆에 앉은 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채이는 경위서 사본의 본인 관련 부분을 읽었다. 도진이 직접 적은 문장이 있었다. 당사자의 의사를 알고도 대표 권한으로 후보 제외를 지시했다. 업무 역량의 결함을 확인한 판단은 아니었다.보호라는 말은 이유 설명에만 있었다. 결정을 정당화하는 결론은 아니었다. 채이는 종이를 내려놓았다.“재심 신청하겠습니다. 제출할 자료와 기한 안내해주세요.”인사 담당자가 신청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채이는 습관처럼 옆으로 손을 뻗었다가 빈 이불을 만졌다. 어젯밤의 대화는 자고 일어난다고 다른 내용이 되지 않았다.거실로 나오자 작은 방 문이 닫혀 있었다. 주방에는 컵 하나만 씻어 엎어져 있었다. 도진은 먼저 일어난 모양이었다. 그녀가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꺼낼 때 방문이 열렸다.“잘 잤어?”도진이 물었다. 채이는 뚜껑을 만지다 대답했다.“조금요.”거짓말로 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그는 물을 마신 뒤 컵을 바로 씻었다. 다른 때 같으면 뒤에서 허리를 안거나 오늘 일정을 물었을 시간이었다. 싱크대에서 돌아선 그는 채이가 지나갈 쪽을 비웠다.“회사에서 확인한 내용은 팀장님 거쳐서 전달할게.”“네.”채이는 그 한마디를 듣고 가방을 들었다. 현관에서 부츠 지퍼가 잘 올라가지 않았다. 도진이 한 걸음 움직였다가 멈췄다. 그녀는 앉아서 바지 끝을 정리한 뒤 지퍼를 올렸다.“다녀올게요.”“조심히 가.”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채이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냉정하게 대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평소처럼 다정해질 준비가 안 됐는데도 상대의 표정을 살피는 버릇부터 나오는 게 싫었다.회사에서는 지원 업무 중 당장 필요한 자료 요청이 왔다. 채이는 메일을 끝까지 읽고 은정에게 갔다.“심사 이의 확인 중이어도 팀 공통 자료는 정리하겠습니다. 다만 후보 철회에 동의한 것으로 보이지 않게 답변을 남기고 싶어요.”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보내. 이 일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필요한 자료까지 못 보
도진이 돌아왔을 때 채이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코트는 걸어두었고 가방도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여행 가방을 꺼내거나 연락을 끊을 생각은 없었다. 대신 같은 집에서 어떤 얼굴로 살아야 할지 묻고 싶었다.그는 외투를 벗고 맞은편에 앉았다. 식탁에는 물 두 잔이 있었다. 채이가 하나를 그의 쪽으로 밀었다.“여기서는 대표님 말고 도진 씨한테 물을게요.”“응.”“어젯밤 내가 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 말을 어떻게 들었어요?”도진은 물잔을 만지지 않았다.“네가 원한다는 건 알았어.”“그런데 왜 그랬어요?”“그 일로 네가 다칠까 봐.”채이는 눈을 내렸다가 들었다. 예상했던 대답이라 덜 아픈 것은 아니었다.“어떤 식으로요?”“명훈은 네가 대표의 아내라는 걸 이용할 거야. 발표장에서 업무가 아니라 결혼 이야기를 해야 할 수도 있어. 준비한 성과보다 그 얘기만 남을까 봐….”“그래서 성과를 보여줄 자리부터 없앤 거예요?”그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채이는 잔의 물결을 가만히 봤다. 손이 조금 떨릴 때마다 테두리가 흔들렸다.“나는 후보로 뽑혔어요. 아직 최종은 아니었고, 떨어질 수도 있었어요. 그래도 왜 떨어졌는지 평가받고 싶었어요.”“네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그걸 도진 씨 혼자 아는 게 무슨 소용이에요?”목소리가 예상보다 높아졌다. 채이는 입술을 다물고 숨을 골랐다. 그가 낮게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오늘
변경 요청 경로는 그날 저녁에 도착했다.채이는 팀장이 전달한 회신을 끝까지 읽었다. 실무 심사 결과에 따른 변경이 아니었다. 대표실 요청으로 편성 담당이 역할을 조정했고, 최종 승인자는 서도진이었다.은정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요청 내용 원문도 본인 관련 부분은 받을 수 있대. 원하면 연결할게.”“받겠습니다.”채이는 말을 마친 뒤 한 번 숨을 골랐다. 이름 하나를 확인했을 뿐인데 몸 안의 온도가 달라졌다.은정이 전화를 걸어 담당자를 연결했다. 채이는 자기 이름과 소속을 밝힌 뒤 요청했다.“제가 받은 후보 통지 이후 어떤 평가가 추가됐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수화기 너머로 키보드 소리가 났다.“추가 점수는 없습니다. 대외 역할 조정 요청이 반영됐습니다.”“자진 철회로 처리된 건 아니죠?”“네. 그렇게 기록되지는 않았습니다.”“그러면 제가 동의한 변경도 아니라는 점을 남겨주세요.”옆에서 은정의 펜이 멈췄다. 채이는 수화기를 쥔 손에 힘을 조금 풀었다.“심사 기회를 잃는다고 사전에 안내받은 적도 없습니다.”담당자는 확인해 함께 기록하겠다고 했다. 이미 바뀐 명단을 전화 한 통으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 대신 무엇이 일어났는지 흐리지 않는 일부터 할 수 있었다.회신을 받은 뒤 은정이 종이를 한 장 뽑아줬다. 채이와 관련된 요청 부분이었다. 외부 이슈에 따른 부담을 고려해 후보에서 제외하고 지원 실무로 조정한다. 도진의 승인 표시 아래에는 익숙한 서명이 있었다.“팀장님은 이 내용을 언제 받으셨어요?”“네
발표 편성안에는 네 명의 이름이 있었다. 도진은 맨 아래에 붙은 후보별 역할표를 두 번 읽었다. 윤채이. 고객 경험 개선 및 현지 적용안.오정환은 책상 옆에 서서 최종 심사 일정을 설명했다. 후보들은 합동 리허설을 거친 뒤 각자의 안으로 발표자 심사를 받게 돼 있었다. 지금 명단에서 빠지면 그 일정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다른 지원 역할은 있습니까?”도진이 물었다.“발표 지원 실무가 있습니다. 자료 취합과 질의 대응 보조입니다.”“윤 대리를 그쪽으로 옮기는 건.”정환은 문장 끝을 기다렸다. 도진이 시선을 들자 그가 답했다.“후보자가 원했습니까?”“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그럼 의사 확인이 먼저입니다.”도진은 펜을 손에 쥐었다. 남색 펜케이스는 보고서 바로 옆에 있었다. 어젯밤 채이가 괜찮다고 웃으며 씻으러 들어갔던 모습이 떠올랐다. 괜찮다는 말 아래 얼마나 긴장이 깔려 있었는지도 보았다.“외부 논란이 겹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무대에 세우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윤 대리에게는 후보 심사 기회가 없어지는 조치입니다.”정환의 목소리는 건조했지만 평소보다 느렸다. 도진은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실무 기여는 별도로 남기고, 발표가 끝난 뒤 후속 업무에서 역할을 검토하세요.”“그걸 같은 기회로 볼 수는 없습니다.”“알고 있습니다.”대답은 했지만 그 무게를 끝까지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지금 채이가 사람들 앞에서 혼인 관계를 해명하는 장면만 자꾸 떠올랐다. 몇 주라도 뒤로 옮기면
현지 검토 회신을 기다리는 동안 얇은 재킷은 두툼한 코트로 바뀌었다. 발표 준비를 시작한 지도 한 달이 훌쩍 넘었다. 후보자 공통 질의가 도착한 것은 자료를 한 번 더 줄인 날이었다.채이는 설치 조건 검증 항목을 읽다가 마지막 문장에서 손을 멈췄다. 후보자와 관련된 거래업체가 있는 경우 평가 근거를 별도로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유성컴퍼니라는 이름은 없었다.유나가 의자를 끌고 왔다.“우리 쪽 얘기 같은데.”“자료는 있어. 팀장님이 취합하신대.”“또 네가 만든 걸 네가 만들었다고 설명하는 거야?”채이는 문장을 다시 읽었다. 속이 잠깐 답답해졌지만 화면을 닫지는 않았다.“필요하면 설명해야지. 대신 뭘 확인하려는 건지 먼저 물어보려고.”은정에게 전달하자 곧 답이 왔다. 요청 범위와 제출 목적을 심사 담당에게 확인한 뒤 팀 단위로 회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채이 혼자 집안 이야기를 꺼내서 해명할 일은 아니었다.오후 회의에서 은정은 팀원들의 작성 기록과 기존 평가표를 같은 폴더에 모으도록 했다. 현수가 키보드를 두드리며 말했다.“확인 끝난 초안 도용 건을 또 따지는 건 아니라고 답 받았습니다. 업체와 연결된 실적을 분리해서 보겠답니다.”“그러면 개선 성과는 유성 보고 수치 말고 실제 설치 기록 기준으로 제출할게요.”채이가 말했다.“그건 원래부터 그렇게 했잖아.”유나의 말에 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까 다시 만들 필요도 없어.”그녀는 파일을 열었다. 처음 기록이 틀리지 않은 날에는 같은 화면을 다시 보는 일이 견딜 만했다. 다만 지우고 싶은 질문까지 파일 밖에서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