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가 임구택의 어깨에 몸을 기대며 웃으며 말했다. “당신 곁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는데?”“뭐든 좋아,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당신이 보고 싶을 때마다 당신을 볼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질리지 않을까?” 소희가 묻자 구택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나를 보면 질리나?”“안 그래!” 소희는 구택을 꽉 안자 구택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같이 갈래?”“난 내 일이 있어.”소희는 고개를 저었다. “난 드라마 촬영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구택이 소희의 옆얼굴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사장 부인으로 회사에 오는 건 어때?”“싫어!” 소희가 즉시 거절하자 구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보아하니, 사장 부인 자리에 나까지 더해져도 당신의 디자인 초안보다 못한 모양이네!”소희는 구택의 무기력한 목소리를 듣고 킥킥 웃었다.“유명해지고 싶어? 소동처럼, 원한다면 어떤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참여시켜 줄 수 있어. 당신의 재능이라면 소동 못지않을 거야.”소희는 구택의 가슴에 편하게 기대며 물었다. “소동의 디자인, 어떻게 생각해요?”“회사에서 Kally가 소동의 팬이야. 심지어 소동을 임씨 그룹의 제품 모델로 추천하려고 했어.”“작품을 나한테 보여줬는데, 괜찮더라고. 물론, 모델 제안은 거절했지만.”소희가 물었다. “정말 괜찮아?”구택은 마치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이 말했다. “그냥 그래, 우리 소희 님만 못하겠지만!”소희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솔직하게 말해도 돼. 나 안 화낼 거니까.”“좋든 나쁘든 나랑 상관없어!”구택은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능에 나가고 싶어? 아니면 자기 이름을 건 작업실을 열고 싶은 거야? 그게 뭐든 다 할 수 있어!”과거에도 구택은 소희가 무엇을 하든 그녀가 행복하기만 하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소희를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고 싶어 했다. 소씨 집안 사람들이 더 이상 소희를 경시하지 못하게, 소동 때문에
[소동의 디자인이 GK 이전에 있었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어떤 사람들은 재능이 바닥나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것을 표절하는 거야,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선배라고 하기엔 정말 창피해. 이전에 받은 상들이 모두 표절한 것인지 제대로 조사해 봐야 해!]……이 사건이 터진 후, 사실 가장 충격받은 사람은 소동이었다. 처음에는 누군가 자신을 표절했다고 비난해도 그게 소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King이 문제가 된 걸까?‘디자인 초안은 소희의 컴퓨터에서 인쇄한 것이었는데, 왜 King의 작품이 되어버린 거지?’‘King이 소희에게 보낸 것일까?’‘소희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도 찾아오지 않은 걸까?’소동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다행히 인터넷 여론은 여전히 소동의 편이었다. 소동은 자신이 표절하지 않았다고 단호히 주장했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스타쉽 매니지먼트 회사는 이 기회를 이용해 홍보 활동을 벌였다. 상당히 많은 댓글 알바와 소동의 팬들이 GK와 King의 소셜 미디어에 몰려가 욕설과 괴롭힘을 일삼으며 GK 책임자와 King에게 해명을 요구했다.King의 소셜 미디어는 진석이 관리하고 있었고, 그는 댓글 기능을 차단한 후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온라인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소희는 대답했다. “제 디자인 초안을 화영에게 보내기 전에 소동이 봤던 것 같아요.”그러자 진석이 깨달았다. “그러니까, ‘여신의 옷장’에서 소동이 선보인 디자인들이 전부 네 것을 베낀 거였어?”“소동도 꽤 똑똑하게 한 것 같아요. 제 중요한 창의적 요소들을 자신의 디자인에 사용해 옷마다 일곱, 여덟 부분이 비슷해요.”진석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언제 알게 된 거야?”진석의 물음에 소희가 말을 했다.“어제요, 알게 된 후에 발표회를 미루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어요.”진석이 한숨을 쉬며 비웃었다. “그러니까 소동이 갑자기 재능이 생긴 줄 알았더니, 결
온라인상에서 King과 소동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King이 소동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터져 나오면서 열기는 더욱 고조되어 제일 핫한 주제가 되었다.King의 팬들이 계속해서 반격하자, 스타쉽 매니지먼트의 책임자도 마음이 조급해져 소동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동 씨, 당신이랑 King 중 누가 누구를 표절한 거예요? 우리한테 진실을 말해야 줘야 해요.”소동은 잠시 망설였다가 이내 대답했다. “ King이 나를 표절한 거예요. ‘여신의 옷장’은 이미 한 달 전에 방영됐는데, 어떻게 내가 그 사람을 표절할 수 있겠어요?”책임자는 주저하며 말했다. “그런데 King이 왜 GK 발표회를 공공연히 개최한 거죠?”소동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본인이 나보다 명성이 높다고 생각해서, 모두가 그 사람이 후배를 표절했다는 걸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겠죠!”책임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요, 이제 이해했어요.”소동이 전화를 끊자, 진연이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소동아?”“괜찮아, 회사에서 전화 왔어. 집에서 이틀 쉬라고 해.” 소동은 달콤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온라인에서 떠드는 일 때문에?” 진연이 분노를 표하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엄마가 믿어. 엄마는 네 편이야!”“감사해요, 엄마!” 소동이 고마움을 표했다.진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일이 소희와 관련이 있어? 소희도 북극 디자인 작업실에 있잖아. 걔네들이 널 노리고 있는 거 아니야?”이에 소동은 눈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언니도 결국 우리 가족인데, 어떻게 남과 함께 저를 해하겠어요?”진연은 비웃으며 말했다. “소희가 뭐가 가족이야, 오로지 임씨 집안을 등에 업고 우리를 공격하기만 하잖아. 소희가 한 짓이 무슨 뜻인데?”소동은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엄마, 말씀드리지 않았던 게 있었어요. 원래 제 매니지먼트가 저를 임씨 그룹의 모델로 협상했거든요?”“근데 나중에 임씨 그룹에서 계약을 취소했어요. 언니가 임
스타쉽 매니지먼트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양한 마케팅 계정과 물밀듯이 몰려오는 댓글 알바들을 동원해 소동을 옹호했다. 또한, 소동의 SNS 게시물 덕분에 모든 비난은 King에게 쏠렸고, ‘여신의 옷장’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들마저 나서서 소동의 게시물을 공유하며 그녀를 지지했다.[제가 보장할 수 있어요. 소동 씨가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디자인은 모두 그녀의 오리지널 작품이에요!][저도 보장합니다. 소동 씨가 열심히 디자인 초안을 그리고 안단희 씨와 디테일을 논의하는 걸 직접 봤어요. 어떻게 표절이겠어요?][분명 소동 씨의 디자인이 먼저였고, 그 유명 브랜드는 나중에 발표했어요. 시간상으로 모든 걸 증명할 수 있죠.][그 유명한 브랜드와 국제 디자이너가 신예 디자이너를 표적으로 삼는 건 정말 보기 안 좋아요!]……이 몇몇 심사위원들도 업계에서 일정한 영향력이 있었기에, SNS 게시물이 공유되면서 King이 표절했다는 의혹이 더욱 커졌다. 그러자 지엠 웹사이트는 비난으로 넘쳐났고, 북극 디자인 작업실은 King의 댓글 기능을 차단했다. 하지만 댓글 알바들은 다른 디자이너들의 SNS로 몰려가 비난을 퍼부었고, 이로 인해 윤미와 임영미도 피해를 보았다.이로 인해 이 사건은 걷잡을 수가 없이 커졌다.평소 연예 뉴스에 별 관심 없던 여정도 아내의 말로 이 사건을 알게 되었고, 고민 끝에 그는 소동에게 전화를 걸기로 결심했다. 필경 King은 소동의 선배이자, 자신만이 King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에, 여정은 소동이 이러한 풍파 때문에 King과 도경수의 눈 밖에 나는 걸 원치 않았다.여러 번의 시도 끝에 소동이 전화를 받았고, 소동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여정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프로그램에서 네 디자인을 봤어. 정말 훌륭하더라고. 스승으로서 네 지금의 성과에 굉장히 흐뭇하다.”소동은 겸손한 척 대답했다. “이게 다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이죠!”여정은 몇 마디 더 칭찬을 하고 나서 말했다. “소동아, 우리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야. 아
소희는 출근하던 도중 임구택의 전화를 받았다. 회의를 막 마친 구택은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 회사가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고 있어?”“어, 그러고 있어.”소희는 대답하자 구택이 부드럽게 물었다.“너랑 King과의 관계는 어때? 내가 도와줄까?” 소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어떻게 도와줄 건데?”구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스타쉽 매니지먼트를 직접 인수해서 소동과의 계약을 해지할 수 있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거지.”소동은 갓 명성을 얻었을 뿐, 그녀를 옹호하는 많은 팬들은 스타쉽이 사들인 댓글 알바들에 불과했다. 그리고 스타쉽이 소동에 대한 지원을 철회한다면, 소동 역시 끈 떨어진 연 신세를 피할수 없었다.소희는 세트장으로 걸어가다가 바닥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차고는 웃으며 말했다. “임구택 사장님이 나를 생각해 주셔서 감사하네요. 하지만 King과 저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요.”“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줘!” 구택은 그렇게 말한 뒤 신신당부했다. “요즘 댓글 알바들이 날뛰고 있고, 일부 네티즌들이 선동되고 있을지도 몰라. 너도 조심해.”“알겠어!”“저녁에 데리러 갈게.”“응.”전화를 끊자마자 소희의 전화가 다시 울렸고 힐끗 쳐다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전화를 받자, 소동의 가식적인 웃음소리가 들렸다. “언니!”소희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소동은 더는 질질 끌지 않고 바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드러냈다. “지금 북극 디자인 작업실은 난리겠네. 처음에 당신들이 날 거기서 쫓아냈을 때, 나는 복수할 거라고 다짐했거든.”“지금쯤 진석은 그때 결정을 후회하고 있을까?”소희는 대답했다.“넌 생각이 참 많구나.”“소희야, 이 일이 여기서 끝날 거라고 생각해? 아니, 이제 시작이야.”“내일 나는 변호사를 통해 북극 디자인 작업실과 지엠에 고소를 할 거야. 내 디자인 초안을 표절했다고요.”“지엠은 워낙 큰 회사라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북극 디자인 작업실은 끝장날
“내일 스타쉽 매니지먼트에서 고소장을 보내올 거예요. 받으면 공식 SNS에 올리고, 그다음에 공지를 내요.”“모레 지엠과 북극 디자인 작업실이 함께 기자회견을 열 거라고.”“소동과 스타쉽 매니지먼트 사람들도 초대할 거고, 그때 King이 직접 그들에게 설명할 거예요.” 소희의 말에 하영이 놀라며 물었다.“직접 나서시겠다는 건가요?”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공개할 수밖에 없어요.”이 지경까지 이르렀고, 하영과 진석이 온라인에서 혼돈을 겪고 있는 가운데, 소희는 더 이상 숨을 수 없었다. 그러자 하영은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King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 모습을 드러내는 건 자살행위 아닌가요?”“소동의 사람들이 이때다 싶어 물고 뜯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우리가 그 어떤 온라인 폭풍에 휘말리더라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그들도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어요.”소희는 담담하게 말했다. “여태까지 막아준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이젠 내가 직접 해결할 차례고요.”하영은 소희의 결심을 알아차리고 고민 끝에 말했다. “그래요, 어차피 공개될 일이었으니, 이 기회를 이용하는 게 좋겠네요.”“그래요.”“그럼 준비하러 가볼게요.” 하영은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기대가 되네요!”하지만 소희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몰랐던 것도 아니고 뭐가 기대된다는 거예요?”하영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기대가 되죠. 소동이 그 높은 곳에서 제대로 추락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거든요.”……저녁에 임구택이 직접 차를 몰고 소희를 데리러 왔고,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내 도움이 필요 없어?”소희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어차피 스타쉽 같은 작은 회사는 사장님 눈에도 별로 안 차잖아요.”구택은 궁금해했다. “북극에 가서 King을 만난 적 있어? 요즘 온라인에서 난리인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혹시 무슨 비밀이 있는 건가?”소희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농담처
이지민 감독은 인터넷 폭력이 소희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심지어 드라마 세트까지 문제를 일으킬 줄은 몰랐다. 이지민 감독은 소희의 안전을 우려하여, 잠시 고민한 끝에, 소희에게 집에서 이틀 동안 쉬라고 하고, 인터넷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 후 다시 오라고 했다.미나도 아찔한 경험에 아직 정신이 없었다. 조금만 까딱했으면 자신과 소희가 심하게 다칠 뻔했다. 소희는 드라마 세트에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고, 어쨌든 내일은 올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동의했다.보디가드가 오늘 일어난 사건을 임구택에게 보고하였다. 구택은 회의 중이었지만, 전화를 받고는 진우행 팀장에게 대신 회의를 이어가라고 하고, 바로 차를 몰고 와서 소희를 직접 데리고 갔다. 구택은 소희가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얼굴이 어두웠다. “진석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해결 못하면 내가 나설게!”소희는 구택을 달래며 말했다. “걱정 마, 내일 북극 디자인 작업실에서 기자회견을 열면 모든 일이 해결될 거야!”“이틀 동안 나랑 같이 있어. 다른 데는 가지 말고.”구택은 조수석의 문을 열고 소희를 차에 태웠다. 안전벨트를 매주고 나서 그녀의 입술에 짧게 입맞춤을 하며 말했다. “나랑 회사에 가자!”소희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소희가 구택을 따라 임씨 그룹빌딩에 들어서자,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앞에서는 직원이 소희에게 몰래 인사를 했다. “언니, 또 왔네요!”소희는 뒤돌아 웃으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놀라 멍하니 있다가 구택에게 인사를 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소희는 곧바로 구택의 손을 뿌리치고, 구택으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이러면 집에 갈 거야!”구택은 소희가 성질을 부리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금 닮았네!”소희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되물었다. “뭐가요?”“사장님의 귀여운 와이프요.”“…….”구택은 평소에 공포 영화 대신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것 같
소희가 고개를 들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소희 씨 취향에 맞게 만든 밀크티예요.”칼리가 내려놓으며, 소희가 디자인 작업을 하려 하자 공손히 말했다. “저 나가볼게요, 무슨 일 있으면 불러주세요.”“그래요!”소희는 아이스 밀크티를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맛이 온몸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소희는 바로 카펫 위에 앉아 밀크티를 마시며 디자인 작업에 몰두했다.소설아가 문을 열고 들어와 임구택의 책상 위에 몇 가지 자료를 놓고, 고개를 돌려 소희를 보았다. 설아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고, 구택이 자신에게 냉담하게 대한 것을 생각하며, 설아의 눈빛은 어둡고 차가워졌다. 구택은 평소에는 괜찮았지만, 소희와 관련된 일에만 냉담하게 이해가 안 가는 설아는 소희에게 다가가 물었다.“왜 사장님이랑 매번 붙어 있어?”소희는 고개도 들지 않고 답했다. “너랑 상관없잖아!”설아는 소희와 구택이 거의 같은 말투로 말하자 화가 나 더욱 질투심을 느꼈다. “소희야, 북극 디자인 작업실이 망할 것 같으니까 임씨 집안에 붙으려는 건 아니지?”“가끔은 네가 정말 보잘것없이 느껴져. 소동은 비록 명예롭진 않아도 적어도 뭘 하려고 노력을 하잖아.”“근데 너는 뭐야? 그냥 임씨 집안에 기생하며 붙어사는 기생충같이.”소희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잠시 내려놓고, 거만한 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학 몇 년 동안 배운 게 혹시 다른 사람을 깔보고, 멋대로 상상해서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는 건가?”“평범한 사람도 자기가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선 함부로 말하지 않는데, 넌 알고 있는 지식이 많아진 게 아니라, 오만함만 많아진 것 같아.”“해외 유학 몇 년 동안 뭘 배운 거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거?”“평범한 사람이라도 모르는 일에 대해선 함부로 말하지 않는데, 넌 오만함만 더해진 것 같아?”“너!” 설아는 이를 악물고 소희를 노려보았지만, 소희는 개의치 않다는 듯 다시 자신의 작업에 집중하며 말했다.“임구택 사장님을 좋아한다면
구은서의 말은 애절했고, 눈물 가득한 얼굴은 누가 보아도 가련했다. 구은태는 자신이 이십 년 넘게 아끼고 사랑해온 딸을 바라보며 격했던 감정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임유진과 구은정은 눈빛을 마주쳤다. 오늘 이 자리에서 반드시 서선영 모녀를 끝장내야 한다는 예감이 동시에 스쳤다. 다시는 숨 쉴 틈을 줘선 안 된다.유진이 입을 열려던 찰나, 휴게실 문이 갑자기 열리고 몇 명의 경찰이 들어왔다. 방 안 상황을 본 경찰들은 잠시 놀란 듯했지만, 곧 차분히 물었다.“서선영 씨는 누구시죠?”서선영은 여전히 바닥에 무릎 꿇고 있던 참이라 얼굴에 눈물이 범벅된 채로 당황스럽게 대답했다.“저예요. 무슨 일이죠?”경찰은 단호하게 말했다.“현재 한 유괴 사건에 연루되셔서, 저희와 함께 경찰서로 가주셔야겠네요.”“유, 유괴 사건이요?”서선영은 얼이 빠진 듯 말을 더듬었고, 은서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경찰이 왜 여길 찾아온 거지?’‘분명히 손기수를 시켜 장말숙 가족에게 절대 신고하지 말라고 위협했고, 따로 사람도 붙여 감시하게 했는데, 분명 신고는 없었어. 그런데 대체 어떻게 경찰이?’유진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때가 왔고,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번만큼은 서선영 모녀에게서 도망칠 구멍조차 허락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이에 구은태도 놀라 물었다.“유괴라니, 무슨 소리죠?”경찰은 구은태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지금 서선영 씨께서 유괴 사건에 관련된 정황이 있어 조사 차 동행을 요청드려요. 협조 부탁드릴게요.”은태는 다시 서선영을 바라보았다.“또 뭘 꾸민 거야, 이 악마 같은 여자가.”은태의 목소리는 얼어붙은 듯 차가웠다. 서선영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 입을 벌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은정이 나섰다.“같이 가죠. 조금 전까진 은서가 우리 가족이라며 감쌌잖아요? 가족이면 함께 있어야죠.”그 말에 구은서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무언가 아주 불길한 일이 다가오고 있었다.원래 오늘 구씨 파티가 끝
서선영은 곧장 구은태에게 달려가 그를 붙잡았다.“여보!”구은태는 휘청였지만 몸을 간신히 지탱했고,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쉰 목소리로 고함쳤다.“꺼져, 이 악독한 년!”서선영은 힘없이 문 쪽으로 내동댕이쳐졌고, 그 순간 문이 열리며 구은서가 들어왔다. 방 안의 참혹한 광경을 본 은서는 당황한 듯 물었다.“무슨 일이에요?”구은태는 핏발 선 눈으로 서선영을 가리키며 외쳤다.“네 엄마한테 물어봐. 대체 뭘 한 건지!”은서는 아버지의 분노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은정을 모함한 일이 들킨 건 아닌가 싶어 애써 표정을 감추고 서선영을 바라보며 물었다.“엄마, 무슨 일이야?”서선영은 그저 얼굴을 감싸 쥐고 울고 있을 뿐이었다.그때, 구은태는 갑자기 은서를 향해 시선을 돌리더니 서선영을 바라보고 물었다.“사실대로 말해. 은서, 이 애가 정말 내 딸이 맞아?”“맞아요!”서선영은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은서는 당신 딸이에요. 그건 정말 확실해요!”“좋아. 지금 제대로 말 안 했다가 내가 친자 검사로 진실을 알게 되면, 그땐 죽여버릴 거야!”구은태는 분노로 이를 갈며 말하자, 서선영은 흐느끼며 소리쳤다.“정말이에요! 제 목숨 걸고 맹세해요. 제가 거짓말이면 천벌을 받아도 좋아요!”그제야 은서는 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건 은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였다.은서는 구은정에게 맞아 쓰러져 있는 최이석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어떤 장면이 뇌리를 스쳐갔고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서선영은 엉금엉금 기어가며 구은태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했다.“여보, 제가 배신하고 잘못한 건 맞아요. 하지만 은서는 정말 당신 딸이에요. 그렇게 똑똑하고 예쁜 아이잖아요.”“당신도 얼마나 예뻐했어요. 은서 봐서, 제발 이번만 용서해 주세요!”그제야 은서는 모든 걸 직감했다. 온몸에서 힘이 빠지며,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그러나 임유진은 이를 꽉 물고 단호하게
최이석도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멍하니 있다가, 순간 정신을 차리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곧장 도망치려는 듯 문을 열었는데, 그 문 너머에는, 구은정의 날렵하고도 위압적인 실루엣이 서 있었다.은정은 말없이 다가오더니 그대로 발을 들어 최이석의 가슴팍을 걷어찼다.“컥!”이석은 뒤로 넘어지며 카펫 위에 엎어졌다. 가슴을 움켜쥐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지만, 그 울음은 진짜인지 연기인지 분간되지 않았다.그때, 숨을 거칠게 내쉬며 구은태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얼굴은 철저히 일그러져 있었고, 그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렸다.그리고, 구은태는 서선영 앞에 멈춰서더니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어 서선영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뺨을 후려치는 소리와 함께 서선영은 그 충격에 그대로 몸이 비틀어졌고, 얼굴을 감싸 안으며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이 더러운 년!”구은태는 서선영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쥐고 또다시 손을 들어 그녀의 반대쪽 뺨을 갈겼다.“제가 잘못했어요. 한순간, 제가 정신이 나갔었어요.”서선영은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구은태의 손을 붙잡고 오열했다. 그녀의 두 볼은 이미 시퍼렇게 부어오르고 있었다.“대체 너희 둘, 언제부터 이런 짓을 벌인 거야!”구은태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그 순간, 최이석이 조롱 섞인 웃음을 흘리며 비틀비틀 일어섰다.“솔직히 말해줄까요? 서선영이 당신 만나기 전부터 벌써 나랑 자고 있었어요. 회사 들어간 이후로는 매주 만나서 몸 섞었고요.”“입 닥쳐!”서선영은 미쳐 날뛰듯 소리쳤지만, 최이석은 그녀를 보지도 않고 구은태만을 노려봤다.“저 여자는 당신을 사랑한 적 없어요. 사랑한 건 당신 지갑뿐이고요. 30년 전, 당신이 술 마시고 덮쳤다고 생각했죠?”“웃기지 마요. 전부 미리 짜놓은 대본이었으니까. 그때 은서가 생겼고, 도망친 척하면서도 사실 계속 강성에 있었어요.”“당신 바로 곁에서, 우릴 속이고 있었던 거죠. 참, 당신 원래 부인 왜 갑자기 병세가 악화됐는 줄 알아요?”“서선영이 일부러 임신한 배를
구은서는 서선영보다 훨씬 더 잔인했기에, 임유진은 점점 불안해졌다.“혹시 그 애까지 다치게 되는 건 아닐까요?”이번 일은 유진이 먼저 제안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은서가 장말숙을 압박하기 위해 그 손자를 납치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그럴 일 없어.”그러나 구은정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아이는 절대 다치지 않을 거야.”유진은 그제야 조금 안심했고, 은정은 이어서 설명했다.“장말숙은 처음부터 독을 품은 호랑이와 손잡은 셈이지. 이건 스스로 자초한 일이야.”“은서가 장말숙의 손자를 납치했다는 건 이미 그 집안을 완전히 조사해 놓았다는 뜻이야.”“내가 강성을 떠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아이를 이용해서 조종하려 했을 거야.”“그런데 네가 먼저 움직여준 덕분에 우린 미리 조치할 수 있었고, 결국 아이도 지켜냈지.”유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봤다.“예전과 완전 딴사람이 된 것 같아요. 위로까지 이렇게 부드럽게 하다니?”은정은 애옹이를 옆으로 밀어내고 유진을 품에 끌어당겼다.“질문 하나 해도 돼? 너는 서인을 좋아해, 아니면 구은정을 좋아해?”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웃었다.“둘 다 같은 사람 아닌가요?”은정은 묵직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넌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했잖아.”유진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중얼거렸다.“사실 처음부터 한 사람이었어. 다른 건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의 차이였을 뿐이죠.”그리고 고개를 들며 은정의 눈을 마주 봤다.“내 말 맞죠?”이에 은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럼, 예전의 내가 널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촉촉히 빛나는 눈으로 미소 지었다.“아니요. 오히려 시언 사장님이 날 사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나는 그게 정말 고맙거든요.”은정의 눈빛이 깊고 짙어졌다. 가슴이 저릿할 만큼 미안함과 애틋함이 가득 차올랐다. 은정은 고개를 숙여, 유진에게 입을 맞췄다.“유진아. 난 늘 널 사랑했어.”은정은 언제나 유진만을 마음에
“역시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될 줄 알았어요.”은서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하자, 손기수가 물었다.[이제 어떻게 하죠?]구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장말숙한테 손자가 있잖아요. 그 애를 데려가요.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지켜여.”이에 손기수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그건 납치 아닌가요?]“이건 우리 엄마 뜻이에요.”은서는 그 말을 강조하듯 단호하게 말했다.“일만 제대로 끝내면, 보수는 두 배로 줄 거예요.”그제야 손기수는 만족스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저한테 맡기세요.]은서는 다시 신신당부했다. “숨겨두기만 해야 해요.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돼요.”이에 손기수는 급히 말했다.[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어요!]은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 말씀만 잘 따르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모든 게 은정을 내쫓는 날까지만 버티면 그만이었다. 장말숙의 아들이 위협되지 않게 만들어야 했고, 지금 중요한 건 은정을 최대한 빨리 강제로 떠나게 만드는 일이었다.두 시간 후.오현빈이 급히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큰일이에요. 장말숙 아주머니 손자가 납치당했어요!”은정의 눈빛이 차갑게 되었다. 그와 유진의 계획은 장말숙의 아들이 철없는 무뢰한이라는 걸 이용해, 서선영 쪽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만들고 그 사이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서선영은 한 수 더 앞질렀다. 직접 손자를 납치해 버린 것이다. 은정은 느긋한 듯 말했지만, 말투엔 서늘한 살기가 묻어났다.“왜 못 막았어?”현빈이 대답했다.[도착했을 땐 이미 데려가고 난 뒤였어요. 아이는 집에 혼자 있었고요.]장말숙은 요즘 일을 그만두고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자기 아들은 놀기 좋아하고 도박을 일삼으며 최근 큰 빚까지 졌고, 며느리는 친정으로 들어가 버렸다.장말숙이 서선영의 돈을 받은 것도 빚을 갚고 며느리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그날 점심을 먹고 잠시 슈퍼에 다녀온 사이, 손자가 납치된 것이다.은정은 알고 있
“아주머니는 분명 그날 일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 사람한테 직접 확인하러 갈 거예요!”임유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뛰쳐나갔다.“유진아!”구은서는 몇 걸음 뒤쫓았지만, 유진은 이미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은서는 굳게 이를 악물며 눈살을 찌푸렸다.서선영이 집에 없다는 걸 알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장말숙 아주머니 잘 지켜봐요. 유진이 그날 일 알아보려고, 지금 그 사람 찾으러 갔으니까.”그러나 서선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걔가 뭘 안다고 찾아?]은서는 차분히 말했다.“유진은 임씨 집안 사람이야. 찾으려면 못 찾을 사람이 없죠.”이에 서선영의 말투도 조금 무거워졌다.[알았어. 내가 금방 사람 붙여서 장말숙 감시하라고 할게.]은서는 이어서 냉랭하게 따져 물었다.“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걔는 어떻게 안 거예요?”유진이 알았다는 건, 임씨 가족들까지도 이미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이에 은서는 불안감에 입술을 꾹 눌렀다.서선영은 얼버무리며 말했다.[아마 도우미 중 누가 말실수했을 거야. 다시 철저히 단속해 둘게. 걱정하지 마. 소문 좀 난다 해도 너한테까지 영향은 안 가. 넌 그냥 조용히 대본 연습이나 해.][이번 영화, 내가 네 외삼촌 꼬드겨서 겨우 투자받은 거 알지? 이번 기회 잘 잡아야 해. 딴 건 신경 쓰지 마. 연기만 잘하면 돼.]은서는 그 말에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번 영화는 유명 감독의 대작이었고, 은서에게는 이미지 회복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서선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 곧 촬영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번 일 절대 망치지 마요.”[알았어!]서선영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유진은 급히 차로 돌아와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곧장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선영 쪽에서 곧 움직일 거예요.”[알고 있어. 이미 준비해 뒀어.]은정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유진은 안심하며 숨을 내쉬었다.이윽고,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고생 많았어.]이에 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
“아파요!”유진은 짧은 비명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팔을 뻗어 구은정의 목에 매달리듯 안으며, 자기 얼굴을 숨기려 했다.이에 은정은 그녀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왜 예전 같지 않아? 예전엔 몰래라도 키스하려고 했으면서, 이젠 실컷 하라고 해도 도망치기 바쁘네.”유진은 은정을 꼭 안으며 눈가가 붉게 물들었지만 속은 터질 듯 행복했다. 이제는 몰래 키스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은정은 유진의 발그레한 귀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전에 난 늘 걱정했어. 네가 그냥 어린 마음에 나한테 끌리는 거라고. 그저 신기하고 새로워서, 가질 수 없으니까 더 마음이 가는 거라고.”“우리가 진짜로 사귀게 되면 금세 질릴 거라고. 나는 사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야. 총 쏘고 싸우는 것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도 몰라. 마음도 더 이상 젊지 않아.”“그래서 넌 언젠가 내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 마음이 식을까 봐 두려웠어.”유진은 목이 메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내가 기억 잃었을 때, 왜 다시 나한테 다가왔어요?”은정은 예전엔 그렇게 차갑게 거절했던 사람인데, 교통사고 한 번 났다고 갑자기 사랑하게 된 걸까? 혹시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그런 생각이 유진을 계속 불안하게 했다. 잠시 침묵하던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아마 너 없는 세상이,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차가웠기 때문일 거야.”그 말에 유진의 가슴은 요동쳤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어둠을 걷어내고 자신의 빛으로 은정의 세상을 덮어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유진은 다시 한번, 은정에게 입을 맞췄는데, 이번엔 더욱 깊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은정은 곧 유진을 세게 안았고, 불같이 뜨거운 열기가 유진을 감쌌다.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난 사람처럼, 은정의 키스는
“그 사람들이 설마...”유진은 커다란 눈을 뜨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구은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유진은 믿기지 않는 듯 놀람과 동시에 깊은 자책의 기색을 띄웠다.“결국 내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자꾸 그런 식으로 네 탓 하지 마.”은정은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너는 둘 사이의 더러운 사정도 몰랐잖아.”유진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서선영은 그래도 이해가 가. 근데 구은서는 왜 그렇게까지 자기 엄마한테 협조한 거예요?”“자기 명예가 달린 문제인데, 게다가 지금은 연예인이잖아요. 설령 피해자라 해도, 그런 얘기 퍼지는 게 좋을 리 없잖아요.”은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대답했다.“십몇 년 전 그 일 땐, 은서는 진짜로 몰랐던 것 같아. 내가 샤워 끝내고 나왔을 땐 자고 있었고, 서선영이 소리 지르고 난리 쳐도 안 일어났거든.”“그땐 그냥 서선영한테 이용당한 거지. 근데 이번엔 서선영이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나도 몰라.”유진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서선영은 정말 너무 악랄했다. 자기 딸까지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면, 못 할 짓이 뭐가 있을까?더구나 서선영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루머가 은정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게 바로 구은태에게도 가장 아픈 약점이라는 것을. 그래서 서선영은 또다시 그 수를 썼다.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그때 전화받은 아주머니, 그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찾을 수는 있어. 하지만 서선영한테서 돈을 받았고, 아마 협박도 받았을 거야.솔직히 말해줄 가능성은 작아.”은정은 냉정하게 말하자, 유진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그래도 찾아봐야죠. 당장 데리고 가서 집에 가서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해요!”은정은 유진의 손목을 붙잡았는데,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웠다.“서두르지 마.”“어떻게 안 서둘러요! 지금 이미 밖에선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고요!”유진이 답답해하며 소리치자,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