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구택이 일어난 뒤에야 눈을 떴다. 창밖의 밝은 햇살을 바라보며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기지개를 쭉 켰다.그녀는 침대에서 몸 한 번 움직이고 나서야 내려갔지만 다리에 여전히 힘이 없어 하마터면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고개를 들자 마침 구택이 욕실의 문에 기대어 그녀를 보고 웃는 것을 보았다. 그는 목욕 수건을 둘러싸고 있었고 금방 씻은 얼굴에는 물방울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멋지면서도 사악하게 웃었다.소희는 얼굴이 붉어지며 옆에 있던 쿠션을 그를 향해 던지며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웃지 마요!"마치 화난 어린 표범 같았다.구택은 쿠션을 받고 다가와 그녀를 안고 일어나서 욕실로 걸어갔다."소희 씨 비웃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서요!""......"명우는 이미 사람 시켜서 옷과 아침밥을 아래층에 두게 했다.아침을 먹을 때 구택이 물었다."소희 씨 친구는 언제 나가요?"소희는 죽을 홀짝홀짝 마시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구택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시원이의 집은 바로 아래층에 있어요. 친구보고 아래층에 가서 지내라고 해요."소희는 눈을 들었다. "그래도 돼요?"구택은 유유히 말했다."시원이의 집은 지금 비어 있어요. 아무도 살지 않으니까 그녀는 언제까지 지내도 되고요. 게다가 그녀는 집세와 다른 그 어떤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니까 지금보다 더 편리하지 않을 가요?"소희는 전에 청아가 한 말을 떠올렸다. 그녀 오빠의 여자친구는 전혀 집을 구하지 않고 마치 그녀의 집에서 줄곧 살 것처럼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청아는 조만간 집에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게다가 소희가 다른 집으로 이사 가겠다고 하니 청아는 앞으로 그녀와 함께 집을 구해서 사려 하고 있었다.소희가 물었다."그럼 장시원 씨 쪽은요?""그건 더 상관할 필요가 없어요. 어정은 임 씨 그룹에서 개발한 거예요. 그때 나는 자신에게 맨 위층의 집을 임시 휴식하는 곳으로 남겼어요. 그는 그 말을 듣고 자기도 굳이 그런 집 하나 마련하고 싶다고 해
시원은 히죽히죽 웃었다."목소리 들어보니 어젯밤 꽤 즐겼구나?""저리 꺼져!" 구택은 웃으며 그를 욕하고서야 본론을 꺼냈다."너 어정의 집 비어있지? 내 친구가 거기서 며칠 좀 묵을게."시원은 농담으로 말했다."네가 말한 친구가 설마 소희 씨는 아니겠지? 너는 위층에 살고 그녀는 아래층에 살고, 그리고 가끔 몰래 즐기는 거야? 이야, 역시 젊은 사람들이 놀 줄 안다니깐!""그녀가 아니야!" 구택은 그와 잡담하는 것을 귀찮아했다."어차피 난 너한테 말했어. 이따 회의가 있어서, 먼저 끊을게!"전화를 끊고 구택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대표님 사무실 밖, 서류 한가득을 안고 있는 설아는 다른 한 비서가 눈살을 찌푸리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문밖에서 배회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Kally.”설아는 인사를 했다."대표님 찾으려고요? 근데 왜 안 들어가는 거예요?"Kally는 고개를 돌려 눈살을 찌푸렸다."미국 지부 쪽에서 사인할 서류 때문에요. 지난번에 유 팀장이 이거 때문에 대표님한테 한바탕 꾸지람 받았잖아요. 그는 지금 이 일을 또 나한테 맡겼어요. 나도 들어가서 욕먹을까 봐 두렵거든요. 설아 씨도 알다시피 대표님 요즘 기분이 좋지 않잖아요."설아는 온아하게 웃으며 말했다."나한테 줘요. 마침 나도 대표님께서 사인해야 할 보고서가 있어서요.""그럼 더 좋고요!"Kally는 기뻐해하며 손에 든 서류를 건네주었다."정말 고마워요!"설아는 단아하게 웃으며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요!" 안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Kally는 작은 소리로 "행운을 빌어요" 라고 말하고는 인차 빠져나갔다.설아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대표님, 여기에 사인해야 할 서류가 몇 개 있습니다."구택은 고개를 숙이고 담담하게 대답했다."가져와요!"설아는 서류를 거대한 테이블 위에 나누며 설명했다.구택의 잘생긴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여기 놔둬요. 이따 체크
유민이 말했다."잠깐. 내가 시험 끝나면 서프라이즈 주겠다며? 서프라이즈는?""어?" 소희의 미소가 굳어졌다.그녀는 원래 유민이가 시험을 마친 뒤 자신이 그만둔다는 일을 그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또 그만둘 수 없었다.그래서 그녀가 준비한 서프라이즈도 사라졌다.유민은 그녀의 말투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중얼거렸다."설마 나 속인 건 아니겠지?""당연히 아니지!"소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다행히 전화기 너머의 유민은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너도 나한테 서프라이즈 준다며? 네가 먼저 말해봐."유민은 인정사정없이 그녀의 거짓말을 폭로했다."말 돌리려 하지 말고 빨리 무슨 서프라이즈 준비했는지 말해보라니깐."소희는 머리를 굴리다 문득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미소를 지었다."확실히 큰 서프라이즈가 있지. 내일 알게 될 거야!"그녀는 구택이 그의 부모님과 형님, 형수님이 내일 돌아온다고 한 말을 떠올렸다. 그들은 유민에게 미리 말해주지 않아 그에게 서프라이즈 주려고 했다. 그녀의 서프라이즈도 없어졌으니 그녀도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빌려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이 일이 지나면 그녀는 그가 좋아하는 레고를 사주면 되었다."거짓말 아니지?""응, 아니야!"유민은 잠시 그녀를 믿어주었다."내일 샘 서프라이즈도 도착할 거야!"말이 끝나자 소년은 쿨하게 전화를 끊었다.소희는 끊긴 전화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유민이가 그녀에게 무슨 선물이라도 사서 택배로 보냈단 말인가?그러나 그는 자신이 어디에 사는지 전혀 몰랐다.알았으면 진작에 난리를 부렸을 텐데!도무지 서프라이즈가 뭔지 몰랐으니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게 나았다. 이렇게 생각한 소희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자신의 일을 하러 갔다.그러나 이튿날 오전, 그녀는 유민이 말한 서프라이즈를 받았다. 은행에서 2000만 원 입금됐다고 문자가 왔다.이것은 구택이 그녀에게 준 보너스였다!문자를 보며 소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녀는 구택한테서 돈을 벌며 그의
어색하고, 궁색하고 또 알 수 없는 다른 감정이 있었지만 소희는 담담하게 웃었다."아니에요, 나는 과외비도 받았고 구택 씨의 보너스도 받았으니 유민이를 잘 가르치는 것은 본분이지 감사하다는 필요는 없어요.""괜찮아요, 그냥 만나보는 건데요. 소희 씨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어요." 구택이 말했다.소희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그래요, 마침 나도 유민이 보고 싶네요.""그래요, 그럼 얼른 자요!" 구택은 머리를 숙이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소희는 문이 닫히자 안색이 점차 돌아오며 차차 진정을 되찾고 누워서 잠을 잤다.다음날 토요일, 구택은 회사에 갈 필요가 없었고 소희는 낮에 케이슬에 갈 필요가 없었기에 두 사람이 일어났을 때 시간은 이미 8시가 다 되었다.소희는 베란다에 가서 기지개를 켜다가 초인종 소리를 들었다.소희는 호텔에서 아침을 배달하는 사람인 줄 알고 문을 열자 청아가 보온병을 들고 들어왔다."내가 너 금방 일어날 줄 알았어. 내가 아침에 끓인 죽이야, 뜨거울 때 얼른 마셔!"그녀는 말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옷을 입은 남자를 보았을 때 그녀는 제자리에 멍해졌다.소희는 고개를 돌리자 마침 구택이 안방에서 나오며 청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실로 가는 것을 보았다.청아는 갑자기 몸을 돌렸다."네 남자친구?"어젯밤 그녀가 베란다에 가서 창문을 닫았을 때, 이상한 소리를 들었지만 아래층 사람인 줄 알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소희는 횡설수설했다."아니, 집주인, 우리 둘째 삼촌."청아는 아래층으로 이사 간 다음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왔고 소희는 밤늦게 나갔다가 새벽 늦게 돌아왔기에 두 사람은 거의 만나지 못했고 청아도 구택을 만나지 못했다.오늘 청아는 쉬는 날이라 특별히 죽을 만들어서 소희에게 보냈고 세 사람은 이렇게 마주쳤다.집주인, 둘째 삼촌?청아는 더욱 놀라면서 의문이 가득했지만 물어보기 좀 그래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죽은 뜨거울
차 안에서 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우리 아버지는 비교적 엄숙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성격이 명랑하고 우리 형님과 형수님도 지내기 편한 사람들이니까 긴장할 필요 없어요. 그들이 뭘 물어보면 대답하면 돼요. 만약 소희 씨한테 선물을 준다면 그냥 받으면 되고요."소희는 그의 말투를 들으며 점점 더 커플이 부모님을 만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일부러 담담하게 말했다."나한테 고마움을 표시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럼 내가 왜 긴장해야 하는 거죠?"구택은 가볍게 웃었다."긴장하지 않으면 다행이고요! 유림은 Y국에 가서 여행 간 다음 그들과 함께 돌아왔어요. 두 사람 얘기 나눠도 되고요."소희는 오랫동안 유림을 보지 못해서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곧 임가에 도착했고 구택과 소희는 차에서 내려 나란히 별장 안으로 갔다.하인은 마중을 나오며 공손하게 웃으며 말했다."둘째 도련님, 소희 선생님!""샘 왔어!"거실에서 유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재빨리 달려왔다. 아마 그의 부모님이 돌아왔기 때문일 가, 그는 평소보다 많이 활발했다."둘째 삼촌도 돌아오셨어요!"구택은 소희를 데리고 거실로 가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응, 내가 강성대를 지나가다 마침 네 과외 샘 만나서 같이 왔어."거실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점점 소희를 향해 모이자 유림은 먼저 일어나서 그녀 어머니인 우정숙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엄마, 이 사람이 바로 소희예요."정숙은 일어나서 그녀를 향해 걸어오며 손을 내밀어 부드럽게 웃었다."소희 선생님."소희는 그녀와 악수를 했다."안녕하세요!""빨리 앉으세요!" 정숙은 40대 좌우였고 한눈에 봐도 학자 가문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부드럽고 평온하며 행동거지가 매우 단아하고 점잖았다.이때 정원으로 통하는 유리 문이 열리며 짙은 색의 비단 상의를 입은 노부인이 들어왔다. 60세 넘어 보이지만 피부가 하얗고 매끄러우며 눈빛이 밝았다.
구택은 소희 맞은편의 소파에 앉아 물었다."아버지와 형님은요?"정숙이 대답했다."일이 좀 있다 해서 위층 서재에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아마 곧 내려올 거예요!""네." 구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노부인은 차를 내려놓고 소희를 바라보며 상냥하게 웃었다."소희 선생님은 대학교 3학년 학생이라며? 생긴 것도 예쁘고 또 이렇게 우수하다니, 여기 강성 사람인가?"소희는 대답했다."운성에서 자랐어요.""그래!" 노부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외지에서 공부하는 셈이니까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우리 집에 오거나 구택을 찾으면 돼. 사양하지 말고."정숙은 이어서 말했다."어린 아가씨 놀라게 하지 않는 것이 좋을걸요. 도련님의 그 웃지 않는 무뚝뚝한 얼굴 보면 보통 사람들은 무서워서 그와 말을 하지 못하잖아요."구택은 소희를 한번 보고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난 그녀를 무섭게 한 적 없어요. 아니면 한 번 물어봐요, 내가 그녀를 어떻게 대했는지."소희는 가슴이 찔려 구택의 말이 다른 사람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봐 인차 대답했다."그럼요, 임구택 씨도 나한테 엄청 잘해줬어요."다행히 다른 사람은 오해를 하지 않았다. 노부인은 농담으로 말했다."그가 여자한테 잘해줬으면 벌써 와이프 얻었지."구택은 피식 웃었다."왜 또 화제가 나한테 돌아온 거예요?"정숙은 오히려 무언가가 생각난 듯 물었다."소가네 집안과의 혼약이 이미 끝났다면서요?"구택은 담담하게 말했다."맞아요!"정숙은 웃으며 노부인을 바라보았다."그럼 정말 어머님한테 며느리 찾아줘야겠네요."구택은 눈을 떨구며 차 한 모금 가볍게 마셨다."아직은 안 급해요."노부인이 물었다."우리 전에 L국에 있을 때 은서를 만났다. 너희들 아직 연락하는 거야?"소희는 눈빛을 반짝이더니 전에 한소율이 한 말을 떠올렸다. 구택이 속으로 좋아하는 그 사람은 바로 은서라고 하는 이 사람일까?구택의 말투는 담담했다."없어요.""너랑 은서도 꽤 아까웠지. 소 씨네 집안 때문
소희는 그저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감사합니다!""감사는 무슨, 우리가 감사해야죠!" 정숙은 온화하고 우아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소희를 진심으로 좋아했다.사람들이 얘기를 나눌 때 임가네 어르신은 임가네 장남 인지언과 함께 위층에서 내려왔다. 사람들은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정숙은 그들에게 소희를 소개했고, 소희는 예의 있게 두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어르신은 구택이 말한 것처럼 엄숙하고 항상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한 쌍의 눈은 깊고 날카로워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보아낼 수 없게 했다.지언은 구택과 어느 정도 비슷하게 생겼다. 그는 검은 테두리의 안경을 썼는데 아마 학술연구를 하는 사람이라 듬직하고 점잖아 보였으며 정숙과 마찬가지로 온화하고 예의가 있었고 친근감이 있었다.소희는 성격상 지언은 노부인을 닮았고 구택은 어르신을 닮았다고 느꼈다.지언은 소희에게 웃으며 말했다."원래 나와 내 아내가 차를 보내서 소희 선생님을 마중하러 가려고 했지만, 구택이 마침 강성대를 지나갔다고 해서 그더러 소희 선생님을 데리고 오라고 부탁했네요. 실례했다면 양해 바랄게요."소희는 텔레비전에서 지언을 본 적이 있어서 그가 학술계에서의 지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그녀보다 나이가 꽤 많았으니 그녀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왠지 무안했다."아닙니다, 별말씀을요!"구택은 말을 이으며 미소를 지었다."소희 씨의 말이 맞아요. 앞으로 그녀도 자주 올 거고 우리를 자주 볼 거니까 너무 공손해할 필요 없어요."사람들은 분분히 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소희는 임가네 집안의 가족들의 감정이 매우 좋다는 것을 발견했다. 윗사람들은 온화하고 자상했고 아랫사람들은 상냥하고 예의가 발랐으니 막장 드라마처럼 서로 다투고 싸우는 상황이 없었다.어른들이 이야기할 때 유림은 소희에게 눈짓을 하며 그녀를 끌고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어른들 말은 우리도 끼어들 수 없으니까 나는 소희 데리고 내 방에 갈게요."유민은 즉시 말했
"예쁘지? 난 이 컵을 보자마자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샀어." 유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었다."너무 마음에 들어!" 소희는 손가락으로 위의 꽃무늬를 만지며 맑은 눈빛으로 말했다."고마워!""나한테 고맙다는 무슨!"두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유림이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소희는 무심한 척 물었다."네 둘째 삼촌은 줄곧 연애를 해 본 적 없어?""우리 둘째 삼촌?"유림은 소파에 기대어 잠시 생각해 보았다."나는 그가 전에 은서 언니와 사이가 좋았다는 것만 알고 있어. 그러나 후에 그가 소 씨네 집안 아가씨와 혼약이 생긴 다음 은서 언니는 M국에 갔고. 그리고 나중에 우리 둘째 삼촌도 소가네 아가씨와 결혼한 후 출국했어. 근데 나는 그가 은서 언니 찾아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더라고."소희가 물었다."그들은 네 둘째 삼촌과 소 씨네 집안과의 혼약 때문에 헤어진 거야?"유림은 고개를 저었다."그때 나는 고3이라 한동안 학교에서 숙소 생활해서 그들의 일에 대해서 잘 몰라."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두 사람은 화제를 돌리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유림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확인하더니 갑자기 웃음을 띠며 전화를 받았다."아침에 금방 전화했잖아, 무근 일이야?"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 유림은 조금 수줍어했다."그럼 넌 언제 강성으로 돌아올건데?"소희는 전화한 사람이 주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유림에게 눈짓하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방문을 닫자 소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아래층에는 임가네 사람들이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아 그녀도 끼어들 수가 없었다.다행히 그녀는 여기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2층에 공용 서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지금 거기엔 아무도 없을 거 같아 아예 서재에 가서 책을 좀 보려했다.서재는 동쪽 끝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의 향기가 풍겨왔다.서재는 매우 컸다. 한쪽의 긴 창문은 별장
“역시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될 줄 알았어요.”은서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하자, 손기수가 물었다.[이제 어떻게 하죠?]구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장말숙한테 손자가 있잖아요. 그 애를 데려가요.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지켜여.”이에 손기수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그건 납치 아닌가요?]“이건 우리 엄마 뜻이에요.”은서는 그 말을 강조하듯 단호하게 말했다.“일만 제대로 끝내면, 보수는 두 배로 줄 거예요.”그제야 손기수는 만족스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저한테 맡기세요.]은서는 다시 신신당부했다. “숨겨두기만 해야 해요.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돼요.”이에 손기수는 급히 말했다.[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어요!]은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 말씀만 잘 따르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모든 게 은정을 내쫓는 날까지만 버티면 그만이었다. 장말숙의 아들이 위협되지 않게 만들어야 했고, 지금 중요한 건 은정을 최대한 빨리 강제로 떠나게 만드는 일이었다.두 시간 후.오현빈이 급히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큰일이에요. 장말숙 아주머니 손자가 납치당했어요!”은정의 눈빛이 차갑게 되었다. 그와 유진의 계획은 장말숙의 아들이 철없는 무뢰한이라는 걸 이용해, 서선영 쪽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만들고 그 사이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서선영은 한 수 더 앞질렀다. 직접 손자를 납치해 버린 것이다. 은정은 느긋한 듯 말했지만, 말투엔 서늘한 살기가 묻어났다.“왜 못 막았어?”현빈이 대답했다.[도착했을 땐 이미 데려가고 난 뒤였어요. 아이는 집에 혼자 있었고요.]장말숙은 요즘 일을 그만두고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자기 아들은 놀기 좋아하고 도박을 일삼으며 최근 큰 빚까지 졌고, 며느리는 친정으로 들어가 버렸다.장말숙이 서선영의 돈을 받은 것도 빚을 갚고 며느리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그날 점심을 먹고 잠시 슈퍼에 다녀온 사이, 손자가 납치된 것이다.은정은 알고 있
“아주머니는 분명 그날 일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 사람한테 직접 확인하러 갈 거예요!”임유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뛰쳐나갔다.“유진아!”구은서는 몇 걸음 뒤쫓았지만, 유진은 이미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은서는 굳게 이를 악물며 눈살을 찌푸렸다.서선영이 집에 없다는 걸 알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장말숙 아주머니 잘 지켜봐요. 유진이 그날 일 알아보려고, 지금 그 사람 찾으러 갔으니까.”그러나 서선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걔가 뭘 안다고 찾아?]은서는 차분히 말했다.“유진은 임씨 집안 사람이야. 찾으려면 못 찾을 사람이 없죠.”이에 서선영의 말투도 조금 무거워졌다.[알았어. 내가 금방 사람 붙여서 장말숙 감시하라고 할게.]은서는 이어서 냉랭하게 따져 물었다.“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걔는 어떻게 안 거예요?”유진이 알았다는 건, 임씨 가족들까지도 이미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이에 은서는 불안감에 입술을 꾹 눌렀다.서선영은 얼버무리며 말했다.[아마 도우미 중 누가 말실수했을 거야. 다시 철저히 단속해 둘게. 걱정하지 마. 소문 좀 난다 해도 너한테까지 영향은 안 가. 넌 그냥 조용히 대본 연습이나 해.][이번 영화, 내가 네 외삼촌 꼬드겨서 겨우 투자받은 거 알지? 이번 기회 잘 잡아야 해. 딴 건 신경 쓰지 마. 연기만 잘하면 돼.]은서는 그 말에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번 영화는 유명 감독의 대작이었고, 은서에게는 이미지 회복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서선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 곧 촬영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번 일 절대 망치지 마요.”[알았어!]서선영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유진은 급히 차로 돌아와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곧장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선영 쪽에서 곧 움직일 거예요.”[알고 있어. 이미 준비해 뒀어.]은정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유진은 안심하며 숨을 내쉬었다.이윽고,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고생 많았어.]이에 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
“아파요!”유진은 짧은 비명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팔을 뻗어 구은정의 목에 매달리듯 안으며, 자기 얼굴을 숨기려 했다.이에 은정은 그녀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왜 예전 같지 않아? 예전엔 몰래라도 키스하려고 했으면서, 이젠 실컷 하라고 해도 도망치기 바쁘네.”유진은 은정을 꼭 안으며 눈가가 붉게 물들었지만 속은 터질 듯 행복했다. 이제는 몰래 키스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은정은 유진의 발그레한 귀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전에 난 늘 걱정했어. 네가 그냥 어린 마음에 나한테 끌리는 거라고. 그저 신기하고 새로워서, 가질 수 없으니까 더 마음이 가는 거라고.”“우리가 진짜로 사귀게 되면 금세 질릴 거라고. 나는 사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야. 총 쏘고 싸우는 것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도 몰라. 마음도 더 이상 젊지 않아.”“그래서 넌 언젠가 내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 마음이 식을까 봐 두려웠어.”유진은 목이 메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내가 기억 잃었을 때, 왜 다시 나한테 다가왔어요?”은정은 예전엔 그렇게 차갑게 거절했던 사람인데, 교통사고 한 번 났다고 갑자기 사랑하게 된 걸까? 혹시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그런 생각이 유진을 계속 불안하게 했다. 잠시 침묵하던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아마 너 없는 세상이,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차가웠기 때문일 거야.”그 말에 유진의 가슴은 요동쳤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어둠을 걷어내고 자신의 빛으로 은정의 세상을 덮어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유진은 다시 한번, 은정에게 입을 맞췄는데, 이번엔 더욱 깊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은정은 곧 유진을 세게 안았고, 불같이 뜨거운 열기가 유진을 감쌌다.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난 사람처럼, 은정의 키스는
“그 사람들이 설마...”유진은 커다란 눈을 뜨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구은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유진은 믿기지 않는 듯 놀람과 동시에 깊은 자책의 기색을 띄웠다.“결국 내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자꾸 그런 식으로 네 탓 하지 마.”은정은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너는 둘 사이의 더러운 사정도 몰랐잖아.”유진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서선영은 그래도 이해가 가. 근데 구은서는 왜 그렇게까지 자기 엄마한테 협조한 거예요?”“자기 명예가 달린 문제인데, 게다가 지금은 연예인이잖아요. 설령 피해자라 해도, 그런 얘기 퍼지는 게 좋을 리 없잖아요.”은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대답했다.“십몇 년 전 그 일 땐, 은서는 진짜로 몰랐던 것 같아. 내가 샤워 끝내고 나왔을 땐 자고 있었고, 서선영이 소리 지르고 난리 쳐도 안 일어났거든.”“그땐 그냥 서선영한테 이용당한 거지. 근데 이번엔 서선영이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나도 몰라.”유진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서선영은 정말 너무 악랄했다. 자기 딸까지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면, 못 할 짓이 뭐가 있을까?더구나 서선영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루머가 은정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게 바로 구은태에게도 가장 아픈 약점이라는 것을. 그래서 서선영은 또다시 그 수를 썼다.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그때 전화받은 아주머니, 그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찾을 수는 있어. 하지만 서선영한테서 돈을 받았고, 아마 협박도 받았을 거야.솔직히 말해줄 가능성은 작아.”은정은 냉정하게 말하자, 유진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그래도 찾아봐야죠. 당장 데리고 가서 집에 가서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해요!”은정은 유진의 손목을 붙잡았는데,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웠다.“서두르지 마.”“어떻게 안 서둘러요! 지금 이미 밖에선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고요!”유진이 답답해하며 소리치자,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