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카드를 사용하겠다는 거예요? 임씨 집안이 뭐라고 하든 그냥 따라야 해요. 선유의 안전이 가장 중요해요.” 한유선이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직접 가서 선유를 구할 거니까.“됐어, 여기까지 와서 혼란만 더 키울 필요 없어.” 이진혁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바로 임구택을 만나러 갈 거야!”“빨리 가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나한테 전화하고요. 오늘 나는 반드시 선유를 만나고 말 거니까!” 한유선은 더욱 초조해하며 화를 냈다.“알았어!”이진혁은 전화를 끊고 몇분 정도 지나자 구택에게 전화하러 갔던 사람이 로비로 돌아왔는데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진혁 사장님, 임구택의 개인 비서가 전화를 받았는데, 지금의 중이라고 하면서, 사장님더러 기다리라고 하네요!”이진혁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홧김에 찻상을 차버렸다. 찻상이 대리석이라는 걸 잊고 있었던 그는, 몸의 반쪽이 마비되는 듯한 충격을 받고, 발목이 심하게 아팠다. 그리고 비서의 말에 이진혁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해 질 녘, 이진혁의 차가 돌핀 호텔의 최상층 프라이빗 주거 구역으로 달렸다. 9미터 높이의 천장, 차가운 색조의 장식, 거대한 예술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압도적인 느낌을 줬다.이진혁이 잠시 기다린 뒤, 임구택이 여유롭게 도착했다. 이진혁은 여섯 명을 데리고 왔고, 그들은 이진혁의 뒤로 일렬로 서 있었다. 하지만 구택의 뒤에는 오직 명우만이 따랐다.구택이 단 한 명만을 데리고 온 것을 보고, 이진혁은 오히려 조금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신이 여섯 명을 데리고 온 것이 마치 겁이 나서 그런 것처럼. 그랬기에 이진혁은 손을 흔들어 뒤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물러나라고 했다. 그리고 고급 담배를 하나 집어 들고,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임구택 사장님, 참 대단하시네!”구택은 어두운색 정장을 입고 있었고, 잘생긴 얼굴은 무심한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구택의 말투는 평소와 같은 냉소를 담고 있었다. “어
“손을 부러뜨리고 경찰서로 보내.”임구택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조금의 감정 변화도 없었다.“네!” 이에 이진혁의 얼굴색이 변했고, 아까 단호했던 말투와는 달리 굉장히 부드럽게 얘기했다. “사장님, 제가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됐습니다!”구택은 단칼에 거절했다.“어제저녁부터 지금까지, 이선유 씨가 가족을 너무 보고 싶어해서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어요.”“이진혁 사장님, 잘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저희가 이선유 씨를 잘 살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이진혁은 이 말을 듣고 마침내 화가 났다. “임구택, 당신은 지금 선유한테 폭력을 행사하는 거야!”“폭력이 아니라 돌보는 겁니다.” 구택은 천천히 말했다. “본인 스스로 먹기를 거부했을 뿐, 제 사람들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이선유 씨를 강제로 먹일 수는 없잖아요?”하지만 이진혁은 구택의 말을 믿지 않았다. “임구택 사장님, 강성이 아무리 본인의 구역이라고 해도, 너무 거만하게 굴지 마세요!”이진혁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구택은 비웃으며 말했다. “이진혁 사장님이 이 정도로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면, 저를 과소평가하신 겁니다.”웃는 얼굴로 섬뜩한 말을 하는 구택에 이진혁의 얼굴색이 변했다. “당신! 도대체 우리 선유한테 무슨 짓을 할 생각이야?”“우리가 이선유 씨에게 보이는 태도는 이진혁 사장님이 이 문제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해결하려는 지에 달려 있습니다!” 구택이 일어서며 차분히 말했다. “이진혁 사장님,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저는 급할 거 하나도 없으니 조용히 사장님의 선택을 기다리겠습니다.말을 마친 후, 구택은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는데 구택의 모습에서 오만함과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화가 잔뜩 난 이진혁은 습관적으로 또 눈에 보이는 물건을 차고 싶었지만, 발을 뻗자 금실나무 탁자 모서리에 부딪혔다. 아까 다쳤던 곳이 또 다치자 이진혁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강성에 온 이후, 모든 것이 이진혁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이때 서빙하
비서도 이해하지 못했다.“모르겠습니다.”“그 소희가 누군지 제대로 조사했어?”“조사했습니다. 그 게시물에는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대체로 사실과 비슷합니다. 소희는 소씨 가문에서 버려진 딸이고, 나중에 디자이너가 되었어요.”이진혁은 이제야 진짜로 골치가 아파졌다. 명우의 전화를 받고 밤새도록 강성으로 달려왔고, 도착하자마자 바로 이 사건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원래 이 사건이 쉽게 해결될 줄 알았다. 소희가 젊고 예쁜 걸 보고, 임구택이 분노를 참지 못해 선유를 잡아 소희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했다고 추측했다.이씨 집안 사람들은 경성에서 일을 할 때 항상 거만했고, 이진혁은 강성에 와서 구택에게 이끌려 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강성에 오자마자 소희를 찾아내 소희의 집을 찾아가 구택과 협상할 조건으로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사람은 잡지 못했고, 자기 사람들은 오히려 다쳤다.자기 구역이 아니라 일을 진행하기가 정말 불편했다. 그리고 이제서야 이진혁은 이 사건이 조금 까다로울 수도 있다는 것을 제대로 느꼈다....강성의 주택에서노명성은 집에 간단히 물건을 몇 개 가져오러 갔다가 돌아왔을 때, 김영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 봤다. 얼굴이 해볓에 타서 빨갛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오랫동안 기다린 것 같았다.“노명성 사장님!” 김영이 차에서 내리는 명성을 보자마자 바로 다가갔다.“저를 기다리신 겁니까?” 명성이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리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물었다.“네!” 김영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성연희 씨 계시는가요? 제가 몇 마디 말씀드릴 게 있어요.”이에 명성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직 집에 안 왔어요, 들어오세요.”두 사람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명성의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 명성은 재킷을 벗고 조용히 말했다. “무슨 일이죠? 말해봐요.”김영이 조급하게 말했다. “노명성 사장님, 제발 선유를 좀 구해주세요. 선유의 핸드폰이 꺼져 있고, 카카오톡 답장도 없어요.”“선유를 찾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 뒤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이 그렇게 정확하게 성연희를 추적할 수 있었던 건 김영이 인적 위치 추적기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소희가 김영을 의심한 적이 있었는데, 본인은 소희가 용병으로 오래 일해서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소희는 정말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아니지, 그래도 말이 안 돼.” 연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가 이선유를 좋아한다면 왜 노명성과 잘되게 도와줘? 넌 삼각관계를 원하는 거야?”연희의 말에 명성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고,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에 김영은 얼굴이 빨개져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누나, 미안해, 정말 선유를 많이 좋아해서, 선유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어”그제야 연희는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한 표정으로 양손을 만지며 말했다. “대단한 사랑이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눈물겨운 사랑이야! 덕분에 내 시야가 더 넓어진 듯한 기분이다.”연희의 비꼬는 말에 김영은 더욱 부끄러워졌다. “누나, 정말 미안해요, 제발 선유를 놓아줘요!”김영과 선유는 경성에서 만났고, 선유를 좋아해서 강성까지 따라왔다. 선유가 명성을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선유와 선유의 사촌 김단이 가게에서 식사를 하다가 연희를 만났고, 선유는 그때 이 황당한 생각을 했다.선유는 김영에게 연희를 유혹하라고 했다. 유혹에 성공하지 못하면 적어도 김영과 연희가 친밀하게 있는 사진을 찍어서 명성과 연희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했다. 김영은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선유의 애원을 견딜 수 없었고 마음이 약해져서 부탁을 들어주었다.김단과의 관계를 빌미로 연희를 알게 되었고, 그 후로 계속 친구 관계로 연희에게 접근했다. 연희와 접촉하면서 김영은 정말로 연희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연희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김영이 더 이상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선유가 울면, 김영은 또다시 선유를 도와주기로 마
노명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선유가 여기에 왔을 때 난 없었고, 목걸이가 마음에 들었나 봐, 그냥 가져갔어. 그리고 나중에 카카오톡으로 알려줬어.”“걔가 여기까지 당신을 찾아왔어?” 성연희의 눈에는 약간의 날카로움이 스치자 명성은 애써 설명했다,“학교 축제 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떤 노래를 부를지 도움을 청했던 거야.”이에 연희는 피식 웃더니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너희가 이런 식으로 계속 발전하다가는 내가 없을 때 침대까지 가게 되는 거 아니야?”명성은 연희의 조롱에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지만 무덤덤하게 말했다. “연희야, 나는 선유를 좋아하지 않고 너를 배신하지도 않을 거야. 넌 잘 알고 있잖아.”“당신은 선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걔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나?” 연희가 묻자 명성은 잠시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 “알고 있었어.”“그렇다면 당신은 선유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여지를 줬던 거네?”“내 목걸이를 가지고 가게 하고, 노래를 고르도록 도와주고, 당신의 프라이빗 룸을 사용하게 하고, 젊은 애와의 미묘한 관계가 재미있었나?”연희의 질책에 명성은 표정이 가라앉았다. “연희야, 너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잖아. 이씨 집안에서 선유를 챙겨달라고 했으니까 나는 이미 충분히 조심했어.”“이게 조심하는 거야? 조심하지 않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연희는 실망한 듯 명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됐어, 너랑 싸우고 싶지 않아. 선유를 구하고 싶으면 구하러 가. 굳이 나 신경 쓰느라 눈치 안 봐도 돼.”“하지만 내가 한 말 기억해. 선유가 소희를 건드리면 나는 반드시 걔랑 끝장을 볼거니까.”연희는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고 명성은 바로 따라가 손을 뻗어 연희의 팔을 잡으려 했다. “연희야!”하지만 연희는 빠르게 피하며 몇 걸음 물러섰고, 명성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날 싫어하게 만들지 마.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도 있고, 이별을 선택할
장시원이 진지하게 말했다. “나 이거 널 걱정하는 게 아니야!”임구택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입을 열었다.“우청아랑 헤어졌으면서 왜 그 사람 걱정해?”구택의 뼈를 때리는 말에 시원이 멈칫하다가 대답했다. “내가 걱정하는 건 요요야.”구택은 못 믿겠다는 듯 말했다. “요요가 청아의 딸이니까 걱정하는 거겠지?”계속 도발하는 구택에 시원이 조금 화를 내며 말했다. “임구택, 계속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우리 사이가 굉장히 껄끄러워질 수 있어.”이에 구택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음, 내가 보기엔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 네가 나한테 부탁하는 것처럼 느껴진단 말이야!”“장난 그만하고 진지하게 말해봐. 내가 듣기로 이진혁이 강성 곳곳에서 사람을 동원해 너를 대항하려고 한다는데, 여기가 강성임을 잊은 것 같더라.”구택이 어두운 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이번에는 그 사람도 교훈을 얻게 될 거야.”시원이 구택의 태도를 보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하고, 그럼 끊는다.”“어 끊어.”구택이 전화를 끊고 바로 명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아침, 준비된 ‘서프라이즈'를 이진혁 와이프에게 보내.”명우는 무덤덤하게 지시를 받아들였다. “네.”...다음날 임씨 저택에서아침 일찍, 하인이 위층으로 올라가서 공손하게 보고했다. “어르신, 손님이 오셨습니다.”임시호는 손에 든 신문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손님?”“네, 경성에서 오셨답니다.”임시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재로 안내해.”“네, 알겠습니다.”하인은 응답하고 물러났고 임시호는 신문 절반을 읽은 후 서재로 향했다.서재에 가 보니, 이진혁은 이미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차도 반 잔 마셨지만, 참을성이 없는 표정은 드러내지 않고, 드물게 인내심을 보였다. 그리고 임시호가 들어오자 바로 일어나며 인사했다. “아저씨!”이에 임시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진혁?”“맞아요, 저희는 한 번만 만났었는데, 아저씨께서
이진혁은 사건의 경과를 대략 설명하면서 특히 강조했다. “이 디자이너 King은 자신이 약간의 명성을 가지고 있다며, 선유를 무시했어요. 선유도 화를 잘 내는 편이라, 사람을 시켜 글을 하나 올렸죠.”“그 King이 어떻게 했는지 구택 씨한테 가서 나서주길 바랐고, 구택 씨는 충동적으로 제 딸을 데려가서 공개적으로 사과하라고 했어요.”“아저씨, 우리 두 집안은 세대를 이어 온 친구 사이고, 몇 년 동안 사업에서도 많은 협력을 해왔어요.”“그리고 새 프로젝트가 곧 시작될 예정인데, 이 프로젝트를 위해 양쪽 모두 많은 준비를 했고요.”“지금 구택 씨가 King 때문에 화를 내면서 협력까지 중단했는데, 이는 양쪽 모두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이에요!”이진혁은 임씨 집안이 디자이너 하나를 중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구택과 King의 관계를 갈라놓으려 했다. 그리고 임시호가 구택이 여자 때문에 집안의 사업을 뒤로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하게 만들려고 했다.하지만 임시호는 이진혁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 “구택이가 충동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야.”뜻밖의 말에 이진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저씨, 그게 무슨 뜻이죠?”임시호가 이진혁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강성에서 누구든 건드려도 되지만, 소희만은 안 돼.”“심지어 구택 본인을 건드려도 내가 설득할 수 있지만, 소희를 건드리면 구택의 요구대로 해야 해. 다른 얘기는 소용없어.”“혹시 그 소희라는 사람이 구택 씨에게 어떤 사람인가요?”파악이 안 되는 상황에 이진혁이 묻자 임시호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구택의 와이프야.”충격적인 소희의 신분에 이진혁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구택 씨가 언제 결혼했나요? 처음 듣는 얘기라 전혀 몰랐네요.”“두 사람은 혼인신고 했지만 아직 결혼식은 하지 않았어. 결혼식을 할 때 이씨 집안에 청첩장을 보낼 거야.”“꼭 갈게요!”하지만 임시호의 얼굴이 조금 더 심각해졌다. “소희는 평소에 사람을 건드리
이진혁은 자신이 여자에게 사준 집과 차에 대한 자료와 함께, 그 여자가 자신을 위해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뒤져보았다. 그러더니 이진혁의 얼굴색이 크게 변했다. “이걸 언제 알아낸 거야?”“이진혁, 이 개자식아, 평소에 네가 밖에서 얼마나 많은 여자를 건드리든 나는 못 본 척, 모르는척하고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뒀어.”“근데 네가 감히 나를 속이고, 사생아까지 만들었다고?” 한유선이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그래서 선유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거였네. 거의 이틀이나 지났는데도 선유를 구하지 못한 건, 당신이 일부러 구하지 않았던 거였어!”“임씨 집안 사람들이 선유를 죽이길 바라면서, 네가 바깥에서 만든 그 개자식이 이씨 집안의 모든 재산을 이어받게 하려는 거였어!”“이진혁, 내가 너한테 경고하는데, 선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너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이 몇 년 동안 네가 내 손에 쥔 비리가 얼마나 되는지 너도 잘 알고 있어. 네가 나와 선유를 배신한다면, 나는 너와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울 거야!”“유선아, 내 말 좀 들어봐. 이런 상황에서 이 자료들을 갑자기 찾아낸 게 이상하지 않아?” 이진혁이 서둘러 설명했다.“이상하다고 해서 뭐 어쩔 건데?”한유선이 테이블 위의 사진을 집어 이진혁의 얼굴에 내던졌다. “이게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이진혁의 얼굴에는 사진에 의해 긁힌 상처가 나타났고, 되레 화를 내며 말했다. “미쳤어?”“당신이 감히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한유선이 달려들어 이진혁을 때리고 할퀴었다. “이진혁,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유선아, 좀 진정해!”그들이 싸우는 동안, 이진혁의 비서가 핸드폰을 들고 달려왔다. “사장님, 긴급한 전화가 왔습니다.”“누구야?” 이진혁이 잠시 한유선을 밀어내고 물었다.“진씨 집안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사장님. 그쪽 사장님께서 전화하셔서 소희를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어요.”“진씨 집안 소희를
“역시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될 줄 알았어요.”은서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하자, 손기수가 물었다.[이제 어떻게 하죠?]구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장말숙한테 손자가 있잖아요. 그 애를 데려가요.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지켜여.”이에 손기수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그건 납치 아닌가요?]“이건 우리 엄마 뜻이에요.”은서는 그 말을 강조하듯 단호하게 말했다.“일만 제대로 끝내면, 보수는 두 배로 줄 거예요.”그제야 손기수는 만족스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저한테 맡기세요.]은서는 다시 신신당부했다. “숨겨두기만 해야 해요.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돼요.”이에 손기수는 급히 말했다.[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어요!]은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 말씀만 잘 따르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모든 게 은정을 내쫓는 날까지만 버티면 그만이었다. 장말숙의 아들이 위협되지 않게 만들어야 했고, 지금 중요한 건 은정을 최대한 빨리 강제로 떠나게 만드는 일이었다.두 시간 후.오현빈이 급히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큰일이에요. 장말숙 아주머니 손자가 납치당했어요!”은정의 눈빛이 차갑게 되었다. 그와 유진의 계획은 장말숙의 아들이 철없는 무뢰한이라는 걸 이용해, 서선영 쪽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만들고 그 사이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서선영은 한 수 더 앞질렀다. 직접 손자를 납치해 버린 것이다. 은정은 느긋한 듯 말했지만, 말투엔 서늘한 살기가 묻어났다.“왜 못 막았어?”현빈이 대답했다.[도착했을 땐 이미 데려가고 난 뒤였어요. 아이는 집에 혼자 있었고요.]장말숙은 요즘 일을 그만두고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자기 아들은 놀기 좋아하고 도박을 일삼으며 최근 큰 빚까지 졌고, 며느리는 친정으로 들어가 버렸다.장말숙이 서선영의 돈을 받은 것도 빚을 갚고 며느리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그날 점심을 먹고 잠시 슈퍼에 다녀온 사이, 손자가 납치된 것이다.은정은 알고 있
“아주머니는 분명 그날 일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 사람한테 직접 확인하러 갈 거예요!”임유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뛰쳐나갔다.“유진아!”구은서는 몇 걸음 뒤쫓았지만, 유진은 이미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은서는 굳게 이를 악물며 눈살을 찌푸렸다.서선영이 집에 없다는 걸 알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장말숙 아주머니 잘 지켜봐요. 유진이 그날 일 알아보려고, 지금 그 사람 찾으러 갔으니까.”그러나 서선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걔가 뭘 안다고 찾아?]은서는 차분히 말했다.“유진은 임씨 집안 사람이야. 찾으려면 못 찾을 사람이 없죠.”이에 서선영의 말투도 조금 무거워졌다.[알았어. 내가 금방 사람 붙여서 장말숙 감시하라고 할게.]은서는 이어서 냉랭하게 따져 물었다.“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걔는 어떻게 안 거예요?”유진이 알았다는 건, 임씨 가족들까지도 이미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이에 은서는 불안감에 입술을 꾹 눌렀다.서선영은 얼버무리며 말했다.[아마 도우미 중 누가 말실수했을 거야. 다시 철저히 단속해 둘게. 걱정하지 마. 소문 좀 난다 해도 너한테까지 영향은 안 가. 넌 그냥 조용히 대본 연습이나 해.][이번 영화, 내가 네 외삼촌 꼬드겨서 겨우 투자받은 거 알지? 이번 기회 잘 잡아야 해. 딴 건 신경 쓰지 마. 연기만 잘하면 돼.]은서는 그 말에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번 영화는 유명 감독의 대작이었고, 은서에게는 이미지 회복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서선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 곧 촬영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번 일 절대 망치지 마요.”[알았어!]서선영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유진은 급히 차로 돌아와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곧장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선영 쪽에서 곧 움직일 거예요.”[알고 있어. 이미 준비해 뒀어.]은정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유진은 안심하며 숨을 내쉬었다.이윽고,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고생 많았어.]이에 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
“아파요!”유진은 짧은 비명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팔을 뻗어 구은정의 목에 매달리듯 안으며, 자기 얼굴을 숨기려 했다.이에 은정은 그녀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왜 예전 같지 않아? 예전엔 몰래라도 키스하려고 했으면서, 이젠 실컷 하라고 해도 도망치기 바쁘네.”유진은 은정을 꼭 안으며 눈가가 붉게 물들었지만 속은 터질 듯 행복했다. 이제는 몰래 키스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은정은 유진의 발그레한 귀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전에 난 늘 걱정했어. 네가 그냥 어린 마음에 나한테 끌리는 거라고. 그저 신기하고 새로워서, 가질 수 없으니까 더 마음이 가는 거라고.”“우리가 진짜로 사귀게 되면 금세 질릴 거라고. 나는 사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야. 총 쏘고 싸우는 것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도 몰라. 마음도 더 이상 젊지 않아.”“그래서 넌 언젠가 내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 마음이 식을까 봐 두려웠어.”유진은 목이 메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내가 기억 잃었을 때, 왜 다시 나한테 다가왔어요?”은정은 예전엔 그렇게 차갑게 거절했던 사람인데, 교통사고 한 번 났다고 갑자기 사랑하게 된 걸까? 혹시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그런 생각이 유진을 계속 불안하게 했다. 잠시 침묵하던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아마 너 없는 세상이,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차가웠기 때문일 거야.”그 말에 유진의 가슴은 요동쳤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어둠을 걷어내고 자신의 빛으로 은정의 세상을 덮어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유진은 다시 한번, 은정에게 입을 맞췄는데, 이번엔 더욱 깊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은정은 곧 유진을 세게 안았고, 불같이 뜨거운 열기가 유진을 감쌌다.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난 사람처럼, 은정의 키스는
“그 사람들이 설마...”유진은 커다란 눈을 뜨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구은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유진은 믿기지 않는 듯 놀람과 동시에 깊은 자책의 기색을 띄웠다.“결국 내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자꾸 그런 식으로 네 탓 하지 마.”은정은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너는 둘 사이의 더러운 사정도 몰랐잖아.”유진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서선영은 그래도 이해가 가. 근데 구은서는 왜 그렇게까지 자기 엄마한테 협조한 거예요?”“자기 명예가 달린 문제인데, 게다가 지금은 연예인이잖아요. 설령 피해자라 해도, 그런 얘기 퍼지는 게 좋을 리 없잖아요.”은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대답했다.“십몇 년 전 그 일 땐, 은서는 진짜로 몰랐던 것 같아. 내가 샤워 끝내고 나왔을 땐 자고 있었고, 서선영이 소리 지르고 난리 쳐도 안 일어났거든.”“그땐 그냥 서선영한테 이용당한 거지. 근데 이번엔 서선영이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나도 몰라.”유진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서선영은 정말 너무 악랄했다. 자기 딸까지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면, 못 할 짓이 뭐가 있을까?더구나 서선영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루머가 은정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게 바로 구은태에게도 가장 아픈 약점이라는 것을. 그래서 서선영은 또다시 그 수를 썼다.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그때 전화받은 아주머니, 그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찾을 수는 있어. 하지만 서선영한테서 돈을 받았고, 아마 협박도 받았을 거야.솔직히 말해줄 가능성은 작아.”은정은 냉정하게 말하자, 유진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그래도 찾아봐야죠. 당장 데리고 가서 집에 가서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해요!”은정은 유진의 손목을 붙잡았는데,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웠다.“서두르지 마.”“어떻게 안 서둘러요! 지금 이미 밖에선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고요!”유진이 답답해하며 소리치자,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