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원은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히 다가가 등을 두드렸다.그녀의 성격상 이렇게까지 분노한 모습을 보일 때면 속으로는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그러나 임정아는 그를 거칠게 밀치며 눈에 끝없는 증오를 담아 쏘아붙였다.“송지원 씨 그날 내가 당신들 따라 올라갔어요. 직접 들었어요. 당신 송인아를 호적에 올리겠다고 했고 송인아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는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요.”송지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때 네가 밖에 있었던 거야?”임정아는 혐오로 가득 찬 눈빛으로 대답했다.“맞아요. 아니었으면 어찌 당신들 가족의 화목한 모습을 그렇게 똑똑히 봤겠어요? 정말 역겨웠어요. 내가 어떻게 그렇게 긴 세월을 그런 남자와 함께 보냈는지 스스로가 끔찍할 정도였어요. 송지원 씨 당신은 더 이상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과 강연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은 이미 내게 ‘더러운 남자’로 찍혔어요.”그녀는 문득 자신이 출연한 연극 속 여배우가 낙태하고 남자 주인공이 후회하는 장면을 떠올렸다.그 기억을 떠올리며 일부러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렇지 당신은 모르겠죠? 나 한 번 아이를 가졌었어요. 하지만 내가 그 아이를 낙태했어요.”송지원은 고개를 번쩍 들며 놀라 물었다.“뭐라고?”임정아는 일부러 냉정한 목소리로 덧붙였다.“반년 전 당신이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 날이었어요. 그날 송인아를 보러 갔던 날 의사한테 임신 사실을 들었어요. 그런데 내가 놀이공원에서 당신과 강연희 모녀가 함께 있는 걸 보고 말이에요.”그녀는 잔인하게 웃으며 한 마디 한 마디를 또렷하게 강조했다.“난 당신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리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송인아를 안고 있던 당신 송인아는 강연희를 엄마라고 부르고 당신은 아빠라 불리는 걸 보게 됐죠.”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그날 놀이공원에서 우연히 그들과 마주친 것만은 사실이었고 임신한 적은 없었다.그저 그가 상처받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휴대전화가 문에 부딪히며 산산조각이 났고 강연희의 목소리는 뚝 끊겼다.임정아는 문을 가리키며 온몸을 떨며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꺼져요.”송지원은 그녀를 침묵 속에서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고 처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깨달았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수아야, 미안해. 네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줄 몰랐어. 내가 이 일들을 처리할게.”임정아는 그의 변명을 듣고 싶지 않았고 붕괴 직전에 이른 듯 낮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꺼져요. 당신 변명 듣고 싶지 않아요. 당신과 송씨 가문은 내 인생에서 사라져 줬으면 좋겠어요.”송지원의 눈에는 고통이 드러났고 그는 다시 말했다.“수아야,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송지원 씨.”임정아가 그를 막았다.“만약 내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부탁이에요. 더 이상 날 괴롭히지 말고 날 놓아줘요.”임정아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너와 강연희는 결백하다고 말하지만 그건 네가 생각하는 결백일 뿐이에요. 당신에게는 그런 감정이 없지만 강연희에게는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봤어요?”송지원은 고개를 저었다.“정말 아니야. 조금도 없어. 수아야 날 믿어줘. 형수에게는 단지 친척으로서의...”임정아는 그에게 미칠 것 같았고 큰 소리로 말했다.“내가 묻는 건 강연희가 당신에게 감정이 있느냐는 거예요. 당신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난 믿지 않아요.”송지원은 그녀의 고통스럽고 붕괴된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지만 그녀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난 그런 걸 몰랐고 생각해 본 적도 없어. 강연희 씨가 내 사촌 형수라는 것만 알았어.”임정아는 그가 전혀 모르는 듯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쓸쓸해졌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다.“송지원 씨, 알아요?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수없이 생각했어요. 내가 당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적이 없는데 당신은 계속해서 저를 밀어냈어요. 우리의 아이 하나
“송지원 씨는 날 단 한 번도 아내로 생각해 본 적 없죠? 좋아요. 나도 이제 당신을 남편으로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세상에 남자는 얼마든지 많아요. 난 당신 없어도 괜찮고 남자 없이도 살 수 있어요.”임정아는 송지원을 거칠게 밀쳤다.“송지원 씨, 난 더 이상 당신이 필요 없어요. 잘 들어요.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 거예요.”그러고는 탁자 위에 있던 손거울을 집어 바닥에 내던졌다.거울은 산산조각 났고 바닥에는 깨진 조각들이 마치 두 사람의 관계처럼 흩어졌다.송지원은 그 조각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허리를 숙여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그 손거울은 임정아가 송씨 가문에 들어온 뒤 그가 처음 유럽 출장에서 그녀에게 선물한 것이었다.수년 동안 그녀는 늘 이 거울을 가지고 다녔는데 이제는 그녀 손으로 산산조각 나 있었다.‘수아의 마음이 정말 이렇게까지 확고해진 건가...?’송지원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무릎을 꿇고 바닥의 거울 조각들을 하나하나 주워 담았다.언제나 고고하게 군림하던 그가 무릎을 꿇고 자신이 깨뜨린 거울 조각을 줍는 모습을 보며 임정아는 비웃었다.“송지원 씨, 뭘 줍는 거예요? 그만 둬요. 깨진 거울일 뿐이에요. 아무리 주워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아요.”송지원은 그녀 말은 들은 체도 않고 작은 조각들을 계속 주워 담았다.“난 이혼에 동의하지 않아. 우린 화해할 거야.”임정아는 쓴웃음을 지었다.“화해요? 깨진 거울을 다시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송지원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할 수 있어. 거울도 붙일 수 있고 마음도 회복할 수 있어. 수아야 내가 말했잖아. 난 널 절대 놓지 않을 거야. 이혼 이야기는 이제 그만해. 소용없어.”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송지원은 전화를 확인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거절하려 했지만 임정아가 먼저 휴대전화를 빼앗아 들었다.화면에는 강연희의 이름이 떠 있었다.임정아는 단숨에 전화를 받고 강연희가 말하기도 전에 차갑게 말했다.“강연희
임정아는 윤정희가 보낸 사람이 음식을 가져온 줄 알고 문을 조금 열어 손을 내밀었다.“주세요.”그 순간 누군가의 강한 손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깜짝 놀란 임정아는 차우민이라고 생각하며 재빨리 손을 빼고 문을 닫으려 했다.그때 낮은 신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수아야...”송지원의 목소리였다.안도의 숨을 내쉰 임정아는 문을 열었고 눈앞의 잘생긴 남자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무슨 일이에요?”송지원은 눌린 손등을 주무르며 얼굴을 찌푸렸다.“네 스태프들이 식당에서 식사하는데 네가 안 보이고 전화도 안 받아서 올라왔어.”임정아는 대꾸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그녀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챈 송지원이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고 고개를 숙였다.“왜 울어?”방금까지 꾹 참던 감정이 무너져 임정아는 그를 밀치며 더욱 격하게 울음을 터뜨렸다.“신경 쓰지 말고 꺼져요.”송지원은 그녀가 직장에서 무슨 일을 당한 줄 알고 다시 여러 번 안아주려 했지만 번번이 거부당했다.결국 그는 임정아를 벽 쪽으로 몰며 물었다.“무슨 일이야? 누가 괴롭혔어?”임정아는 붉어진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온몸을 떨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나를 괴롭혀도 당신보단 나아요. 세상에서 당신보다 더 끔찍한 사람은 없어요. 송지원 씨, 난 당신이 싫어요. 평생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요. 당장 나가요.”그때 송지원은 그녀의 목덜미에 붉게 부어오른 자국과 피가 맺힌 상처를 발견했고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길이 그곳에 멈췄다.“이건... 어떻게 된 거야?”촬영 중 다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상처는 분명 오늘 방금 생긴 것 같았다.게다가 오늘 오전 내내 그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고 그녀는 한순간도 그의 시야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한 시간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어떻게 다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가 조심스레 묻자 임정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이에요. 다 당신 때문이야. 이 나쁜 사람.”“당신, 강연희 모
윤정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쉽지 않아. 이 근처 대형 쇼핑몰이랑 오피스텔은 전부 차우민 씨 소유야.”임정아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윤정희는 곧장 덧붙였다.“차우민 씨는 심술궂고 밖에서 여자를 밝히는 걸로 유명해. 만약 정말 복수라도 하면 상황이 꽤 복잡해질 거야.”잠시 망설이던 윤정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만약 그쪽에서 네가 송지원 씨 부인이라는 걸 알게 되면 아마 겁먹을 텐데. 송지원 씨한테 알리는 게 어때...?”임정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우리는 곧 이혼할 거야. 게다가 송지원 씨 마음은 이미 내게 없으니까 결혼 사실을 공개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수년간 그는 외출할 때 결혼반지조차 끼지 않았고 만약 공개할 의지가 있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했을 것이다.이제 관계가 여기까지 온 마당에 그녀는 이혼 직전 그에게 기대거나 부탁하고 싶지 않았다.“정희 언니,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윤정희는 한참 생각하다가 눈빛이 번쩍였다.“있어. 차우민 씨 평소 행실이 워낙 안 좋아서 원한 산 사람이 많거든. 게다가 차우민 씨 라이벌 쪽이랑 나랑 좀 친해.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임정아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정희 언니, 고마워. 원래 앞으로 2주만 더 일하고 좀 쉬려고 했는데...괜히 민폐 끼쳤네.”윤정희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네 잘못이 아니야. 저런 놈은 빨리 손을 써야 해. 오늘 네가 아니었으면 내일 또 다른 피해자가 나왔을 거야.”임정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우선 CCTV 영상부터 확보하고 만약 그 사람이 다시는 건드리지 않으면 그냥 넘기고... 만약 또 건드리면...”끝까지 말은 잇지 않았지만 윤정희는 그녀의 뜻을 충분히 알아챘다.임정아를 방으로 데려가며 물었다.“몸은 어때? 오전 내내 촬영했는데 배는 괜찮아?”임정아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여전히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오늘 일은 그리 힘들진 않았어. 방금 조금 놀랐을 뿐이야.”그녀는 조심스레 배를 쓰다듬으며 작게 말했다.“내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임정아는 거의 넘어질 뻔하며 당황해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몸을 뒤로 밀어냈다.“차 대표님, 자중하세요.”차우민은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진 채로 임정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뭘 그렇게 튕기는 거예요? 여긴 아무도 없잖아요. 아까 촬영할 땐 그렇게 요염하게 굴더니 이제 와서 청순한 척이에요?”임정아는 메스꺼움을 느끼며 서둘러 버튼을 누르려 했다.그러자 차우민이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어 엘리베이터 문에서 떼어내고는 술 냄새를 뿜으며 말했다.“뭘 그렇게 순진한 척이에요? 원래 널 송지원 씨한테 보내려 했는데 송지원 씨가 널 마음에 안 들어 해서... 이번 기회에 나랑 함께하면 어때요?”임정아는 그를 힘껏 밀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차우민 씨, 더러운 손 치우세요. 그렇지 않으면 경찰 부를 거예요.”차우민은 비웃었다.“지금 밀당하는 거죠? 나랑 같이 있으면 내가 가진 거 다 줄게요. 어때요?”그러면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하자 임정아는 그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꺼져.”차우민은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곧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는 욕설을 퍼부으며 덮쳐왔다.“이 년아, 뭘 그렇게 순진한 척이야? 몰래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랑 잤는데 나한텐 안 돼?”그러면서 임정아의 얼굴을 잡으려 하자 임정아는 놀라고 분노한 나머지 그의 머리를 잡아 엘리베이터 벽에 세게 부딪히게 했고 다른 손으로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재빨리 눌렀다.하지만 그녀는 여자였고 비록 그를 밀쳤지만 힘이 부족해 큰 타격을 입히진 못했다.그 순간 차우민은 완전히 이성을 잃었고 그는 미친 듯이 임정아의 목을 조르며 소리쳤다.“이 년아 감히 날 때려? 오늘 널 반드시 가지겠어. 청순한 척은 이제 그만해.”임정아는 급히 그의 사타구니를 세차게 걷어찼고 차우민은 비명을 지르며 아랫배를 움켜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임정아는 그 틈을 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임정아는 차우민을 향해 분노에 차 달려들어 발길질하고 가방으로 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쳤다.차우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