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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라라
강시연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와 결혼한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진수혁이 그녀의 생일을 기억해 냈다.

“필요 없어요.”

강시연은 그를 바라보며 마음속의 감정도 곧 사라졌다.

“그날 중요한 프로젝트 회의가 있다면서요? 회사 일이 더 중요하죠.”

처음 그녀가 진수혁과 결혼했을 때 생일 문제로도 투정을 부리고 다퉜었다.

나중에 그의 냉담함과 무관심은 눈에 띄게 늘어갔고 강시연은 기대에 부풀던 마음이 점점 무뎌져 갔다.

그래서 지금 진수혁이 생일 얘기를 꺼내도 놀라운 것 말고는 마음속에 아무런 파문도 일어나지 않았다.

진수혁은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하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와 달리 지나치게 속 깊게 행동했다.

예전 같으면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눈동자 속에 반짝이는 기쁨을 숨기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지난 몇 년간 그녀를 소홀히 하고 차갑게 대했던 것과 친구, 할아버지의 말이 스쳐 지나가며 진수혁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괜찮아.”

그는 깊은 눈빛으로 가볍게 말했다.

“그날 일 끝나고 시간 충분해. 불꽃놀이 보고 싶다며? 도현이랑 같이 교외로 불꽃놀이 보러 가자.”

진도현은 병원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며 또다시 강시연의 상처를 바라보니 갑자기 죄책감과 불편함이 밀려왔다.

엄마는 이모보다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만 그는 결국 그런 엄마의 자식이었다.

엄마가 화를 내지 않으면 계속 아침을 해주고 바이올린 연습을 함께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아빠 말대로 해요. 나랑 아빠 같이 엄마랑 생일 보낼 수 있어요.”

진도현은 강시연의 옷자락을 잡고 서둘러 말했다.

강시연은 평소 차가운 아들이 드물게도 고집스럽지만 순종적으로 동의하는 모습을 보아도 전혀 기쁨을 느끼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마음속으로 은근한 기대를 품었을 텐데 지금은 너무 잘 알았다.

남편과 아들이 그녀에게 베푸는 온정은 심하은에게 보이는 애정과 비교할 수 없다는걸.

그녀도 그들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하지만 강시연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래요.”

그녀는 진수혁의 시선을 마주하며 천천히 동의했다.

진수혁이 고집을 부리니 이번 생일을 그들의 마지막 작별로 남기면 그만이다.

강시연의 상처는 심각하지 않았지만 다리의 찰과상 때문에 움직이는 데 여전히 불편함이 있었다.

저녁에 세 사람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진도현은 나이가 어리지만 어릴 적부터 자립심이 강해 식사를 마친 후에는 순순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진수혁은 평소와 달리 옆방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강시연은 다소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늘 밤에 여기서 머물 거예요?”

그녀는 아무런 감정 없이 말을 뱉었다. 진수혁이 그녀에게 느끼는 혐오와 냉담함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지난 이틀간 그녀의 거절 때문에 그녀는 진수혁이 머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리 다쳤으니 혼자서는 불편할 거야.”

망설이는 그녀의 표정에 남자는 그녀의 몸에 있는 상처를 슬쩍 쳐다보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가볍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난 몸 불편한 사람 괴롭히지는 않으니까.”

강시연은 진수혁이 왜 갑자기 태도를 바꿨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할 이유를 찾을 수 없어 입가에 차오른 말을 삼키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먼저 씻을게요.”

드물게 두 사람 사이에 평온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다소 어색했던 강시연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절뚝거리며 욕실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은 어딘가 도망치는 듯 보였다.

진수혁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평소 차갑고 무표정하던 얼굴에 약간의 부드러움이 감돌았고 얇은 입술도 살짝 올라갔다.

만약 당시 그 일이 정말 그녀와 무관하다면 아마도 그들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강시연은 그런 진수혁의 마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평소처럼 차가운 태도가 아니어서 당연히 기뻐해야 하는 데도 알 수 없는 감정만 마음속에 가득 찼다.

그녀는 항상 사랑은 독점적이고 배타적이라고 믿었다.

그녀가 수년간 노력해도 진수혁은 여전히 심하은을 사랑하고 있었기에 결국 그들을 위해 물러나련다.

그러니 그가 그녀에게 남긴 이 작은 희망 따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신이 다른데 팔린 데다 바닥이 너무 미끄러웠던 탓에 강시연이 타월로 몸을 감싸던 찰나 발이 미끄러져 차가운 타일 위에 넘어졌다.

통증으로 인해 그녀는 차가운 숨을 헉 들이켰다.

욕실 안의 소란은 곧 진수혁의 주의를 끌었고 문밖에서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래?”

통증으로 인해 강시연의 얼굴이 다소 창백해졌지만 그녀는 꾹 참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그냥 넘어졌을 뿐이에요.”

말이 끝나자마자 욕실 문이 열렸다.

진수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상처를 확인하다가 그녀의 얼굴이 창백한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많이 아파?”

강시연이 고개를 흔들며 말하려는데 진수혁이 몸을 숙여 그녀를 안아 올렸다.

그녀가 본능적으로 저항하자 귀에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꾸짖는 말이 들렸다.

“움직이지 마.”

통증 때문에 힘이 다 빠진 강시연은 어쩔 수 없이 그의 품에 안겨 침대로 돌아갔다.

진수혁은 그녀의 상처를 살펴보고 그저 외상만 입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 미간을 펴며 말했다.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지만 상처 감염을 막기 위해선 약을 발라야겠어.”

거듭된 상처에 강시연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수혁은 약을 가져와 상처에 발라주려다가 시선이 그녀의 다리에 머물렀다.

그녀는 단지 타월 한 장만 두르고 있었다.

피부는 백옥처럼 하얗고 부드러웠는데 특히 길고 곧은 다리는 빛 아래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거기에 맑고 청순한 얼굴까지 어우러져 더욱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진수혁은 잠시 멈칫하며 눈빛이 어두워졌다.

강시연은 그가 움직이지 않자 마치 무언가를 눈치챈 듯이 본능적으로 약을 받아들였다.

“내가 할게요.”

그녀는 진수혁이 그녀와 닿기 싫어한다는 걸 알았다.

진수혁은 그녀가 다른 의도를 품은 채 침대에 올라왔다고 생각해 그녀에게 혐오와 배척의 감정을 품었다.

그러니 그녀를 만지고 싶지 않은 게 당연했다.

“움직이지 마.”

진수혁이 갑자기 말을 꺼내더니 한 손으로 그녀의 종아리를 움켜쥐었다. 말투는 차분했지만 태도는 매우 강압적이었다.

강시연은 놀라 멈칫했다.

남자는 약을 솜에 묻혀 그녀에게 세심하게 발라주었다.

다소 서늘한 약이 닿자 강시연은 입술을 깨물며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 통증을 참아냈다.

진수혁은 세심하게 발라주다가 잠시 후 행동을 멈추고 약을 치우려 했다.

“다리 상처가 심각하니까 이틀 동안 물에 닿지 않도록 해.”

진수혁이 낮은 목소리로 당부하며 살짝 고개를 들자 강시연의 아름다운 눈과 눈썹이 시야에 들어왔다.

방 안의 빛은 눈부시지 않았다.

시선을 내린 그녀의 속눈썹은 풍성했으며 입술은 살짝 열려 촉촉하게 빛났다.

정교한 이목구비에 한 쌍의 벚꽃 같은 눈동자가 유혹적인 빛을 띠고 있었다.

진수혁은 순간 멈칫했다.

강시연이 미인이라는 건 알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가 이토록 화려하게 아름답다는 건 처음 깨달았다.

그의 아내인데 지난 7년 동안 그는 그녀를 차갑게 대하고 싫어했으며 자신에게 다가올 기회 한번 주지 않았다.

어쩌면 둘 사이엔 너무 많은 것들을 놓쳤는지도 모른다.

“시연아...”

진수혁의 목젖이 움찔하며 드물게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그때 호텔에서 너...”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급한 휴대폰 벨소리가 이 순간의 애매함과 평온함을 깨뜨렸다.

강시연이 슬쩍 발신자를 확인하니 심하은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수혁의 인맥은 넓지 않았고 업무가 끝나면 회사 쪽에서 그를 방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친구들도 밤늦게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직 심하은만이 예외였다.

진수혁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결국 전화를 받았다.

잠시 후 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곧바로 말했다.

“알았어. 바로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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