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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균열(1)

Author: 유소휘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5 13:34:54

“흠흠~ 안녕하세요! 좋은 오후네요~”

콧노래와 함께 웃음기 가득한 유건의 목소리가 복도를 타고 울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여직원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수많은 소문을 안고 대건그룹에 들어온 지도 어느덧 2주. 그 2주 동안 유건은 이틀에 한 번은 꼭 전략기획실을 찾았다.

그의 목적은 딱 하나였다. 전략기획본부장 강태건을 만나겠다는 것. 하지만 귀신같이 유건이 찾아올 때면 꼭 태건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미팅이 있거나 외근이 있거나, 혹은 중요한 손님을 맞이하고 있거나.

그렇게 매번 빈손으로 돌아갔음에도, 유건은 포기할 줄을 몰랐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역시나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오는 유건에 여직원은 사회생활용 미소를 장착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본부장님 만나러 오셨을까요?”

“네! 오늘은 안에 있을까요?”

유건이 굳게 닫힌 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오늘은 제발 열리길 바라는 그의 기대와 다르게 여직원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안 계십니다.”

“에엥? 아니, 이 사람은 맨날 일 안 하고 어딜 그렇게 다녀요?”

여직원의 말에 유건이 잔뜩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는 너야말로 일은 안 하고 왜 이렇게 돌아다니냐고 묻고 싶었지만, 여직원은 애써 미소만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보통 저한테는 어디 간다고 말씀을 잘 안 해주셔서요.”

“맨날 장 비서님한테만 얘기하죠? 에휴, 장 비서님도 피곤하겠다.”

유건의 말에 여직원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는 동감이었다.

“아아, 오늘은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뭐 다른 말도 없었어요? 진짜 하나도?”

유건의 물음에 여직원이 고개를 저었지만, 그의 눈빛은 끈질겼다. 무슨 대답이라도 꼭 듣고 가겠다는 확고한 고집이 담긴 눈이 그녀를 계속 바라봤다.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다.

결국 먼저 백기를 든 것은 여직원이었다. 계속 이렇게 상대하고 있어봤자 더 힘든 건 본인 쪽이었다.

“장 비서님이면 몰라도, 저랑은 그렇게 얘기를 많이 안 하세요. 그냥 뭐, 요즘 여자들은 핸드폰 뭐 쓰냐고, 이런 것만 물어보셨어요.”

“핸드폰?”

유건이 떨궜던 고개를 들었다. 예상치 못한 단어를 들은 순간, 그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본부장님이 정확히 뭐라고 물어보신 거예요?”

유건이 여직원 쪽으로 상체를 들이밀며 물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친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냥, 그게 전부예요. 요즘 여자들은 어떤 기종 많이 쓰냐고……. 그래서 제 주변에선 이번 신형 모델 많이 쓰는 거 같다고 대답했는데 알겠다고 하고 가셨어요. 그게 끝이에요.”

“흠…….”

대답을 들은 유건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더니 천천히 몸을 뒤로 물렸다.

그는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지만 한참을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갑자기 싱긋 미소를 지은 그가 다시 여직원을 바라봤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좋은 하루 보내요!”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그는 갑작스러운 인사를 남기고 다시 사라졌다.

여직원은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사람인 건 알겠지만, 알면 알수록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한편 전략기획실을 빠져나온 유건은 얼굴엔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 핸드폰을 꺼냈다.

익숙하게 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걸자, 얼마 가지 않아 통화가 연결됐다.

“난데요. 오늘 강태건 본부장 동선 좀 빠르게 파악해서 알려줘요.”

빠르게 본론만 넘기고 통화를 끝낸 그가 핸드폰을 다시 넣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올라가는 입꼬리만큼 돌아가는 그의 발걸음이 사뭇 가벼워졌다. 적어도 오늘은 허탕이 아니라는 예감이 들었다.

* * *

한편, 매장 안에서 태건은 조용히 전시된 핸드폰들을 쭉 바라봤다.

모든 직원이 숨을 죽인 채 그의 행동을 주시하고, 그의 손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모두가 움찔거렸다.

지훈은 이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태건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던 그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마치 신호탄과도 같았다. 마침내 울리는 총성에 움찔거리던 발들이 드디어 뛰어갈 차례였다.

그러나 발보다 빠른 건 손과 목소리였다.

“네, 본부장님!”

움찔거리는 무리 속에서 냉큼 한 직원이 손을 번쩍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연스럽게 태건의 시선이 그를 향하자, 그의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은 저마다 아쉬움과 원망의 눈으로 그를 쏘아봤다.

하지만 승자는 이미 정해진 것. 먼저 목소리를 낸 그는 모두의 눈총을 뒤로 하고 재빠르게 웃으며 태건에게 달려갔다.

“필요하신 거 있으실까요?”

“이게 이번에 나온 신형 모델이죠?”

“네, 맞습니다! 본부장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매장에 울려 퍼졌다.

그의 대답에 태건은 다시 시선을 돌려 핸드폰을 바라봤다. 한 번 들어도 보고 이리저리 살피며 한참 보던 그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내려놨다.

“이거랑 같은 걸로 하나 주시죠. 화이트 컬러로.”

“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태건의 말에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몸을 돌렸다.

자신을 향한 시기 질투의 시선들을 보며 승자의 미소를 한 번 날려준 뒤, 그는 한시라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빠르게 창고로 이동했다.

아쉽게 타이밍을 놓친 직원들은 다음을 노리기 위해 다시 태건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다른 제품들도 확인하는 그의 고개가 다시 돌아가길, 신호탄이 다시 한번 떨어지길 기다리는 눈들이 모두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그를 바라봤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으리.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그를 주시했지만, 안타깝게도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

* * *

요란하고 짧은 구매가 끝이 났다.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직원들을 뒤로하고, 지훈은 차에 올라탄 태건을 아니꼽게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바로 집으로 가시죠?”

“아뇨.”

익숙하게 목적지를 누르려던 손이 멈췄다.

혹시 자신이 놓친 스케줄이 있었는지 잠시 생각했지만, 태건에게 더 이상 예정 되어있는 스케줄은 없었다.

“어딜 가려고?”

고개를 돌린 지훈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태건은 무심한 얼굴로 새로 구매한 핸드폰이 담긴 봉투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려 지훈을 바라봤다.

“장 비서님 집으로 가죠. 거기서 퇴근하고, 차는 나 줘요.”

지훈을 집에 보내고 혼자 움직이겠다는 말이었다.

이번엔 또 무슨 수상한 짓을 하려고 그러는 건지. 지훈이 의심쩍은 눈으로 그를 째려봤다.

“왜, 뭐. 이상한 짓 안 해.”

그 눈에 찔린 건지 태건은 대뜸 오리발부터 내밀었다.

원래 그럴수록 더 수상한 법.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는 상황에서 지훈은 세모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회장님이 둘째 도련님을 회사에 부른 다음부터 이전보다 보는 눈이 더 많아졌습니다. 제발 움직이기 전에 생각이라는 걸 먼저 하고 움직이십쇼.”

말만 들으면 걱정이지만 그를 노려보는 표정은 경고 혹은 협박에 더 가까웠다. 기분 탓인지 그가 하는 말도 사고 쳐서 내 밥줄 끊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다. 살벌한 얼굴에 태건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차장에 멈춰 있던 차가 움직인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였다.

* * *

그날 저녁 오후.

점점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와중 태건이 집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홀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채원은 몇 시간 만에 듣는 도어락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살다 살다 이 소리가 반갑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태건이 집에 온다고 해서 집 분위기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모든 게 죽은 것 같은 이 정적만은 깰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그런데 막상 자리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뭘 해야 할지 몰랐다. 평소에 태건의 퇴근을 맞이한 적이 없으니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결국 우왕좌왕하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쭈뼛거리며 고개를 빼꼼 내미는 것이었다.

“…… 거기서 뭐 해?”

안으로 들어오다 채원을 발견한 태건이 멈칫하며 물었다.

당황한 듯한 그의 표정에 덩달아 채원도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몇 초 동안 침묵이 이어지다, 이내 채원은 머쓱해하며 슬쩍 옆으로 나왔다.

“…… 이, 일찍 왔네요.”

채원의 대답에 태건은 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는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일찍이라기엔 좀 늦은 시간 같은데.”

“펴, 평소보단 일찍이잖아요!”

무심한 듯 말했지만, 채원을 놀리려는 의도는 다분했다. 그 말에 채원이 발끈하듯 말하자 태건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픽 웃으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안 그런 척하면서 매일 내가 언제 들어오나 신경 쓰고 있었나 봐?”

태건의 말에 채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저도 모르게 말아쥔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이유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는데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다. 예상 못 한 반응에 적잖이 당황한 건 태건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가, 이번엔 태건이 헛기침하며 정적을 깼다.

“큼. 이거.”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어색해하던 그가 들고 있던 쇼핑백을 채원에게 건넸다.

쇼핑백을 건네받은 그녀가 안을 들여다보니 그가 새로 구매한 신형 모델의 핸드폰이 안에 들어 있었다.

“…… 새로 산 거예요?”

“사준다고 했잖아. 잘 모르나 본데, 난 한 말은 꼭 지켜.”

무심하게 말하면서도 태건은 괜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채원은 잠시 말없이 태건과 핸드폰을 번갈아 보다가 그가 준 핸드폰을 손에 꼭 쥐었다. 솔직히 다시 사 온다고 했을 때는 말만 그렇게 하고 장 비서나 김 기사를 시켜서 갖다 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본인이 직접 가져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 고마워요.”

“내가 고장 내서 다시 사 온 건데, 고마울 것까지야.”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조금씩 밀려오던 감동이 무심한 그의 말에 와장창 깨졌다. 순간 이런 사람에게 겨우 이 정도의 일로 감동을 받는 게 맞나 회의감도 들었지만, 채원은 이내 다시 그를 바라봤다.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죠.”

어깨를 으쓱이며 채원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 보면 태건도 미안하다고 말했었다. 물론 전적으로 본인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으니 어찌 보면 사과하는 것이 당연하겠다만, 어쨌거나 그도 사과했으니, 자신도 고마운 일에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게 맞다는 판단이었다.

채원의 인사에 태건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순간 동안 잠시 얼 나간 것처럼 보던 그가 이내 헛기침하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나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좀 있으니까 먼저 자.”

“어…….”

허둥대듯 제 할 말만 남긴 그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붙잡을 틈도 없이 발걸음을 재촉한 그가 이내 방으로 들어가고, 채원은 멍하니 닫힌 방문을 바라보다 손에 들린 핸드폰을 바라봤다.

“밥 먹었냐고…… 물어볼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방문을 다시 두드려볼까 고민이 들었지만, 채원은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괜히 안 하던 짓을 하면 태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냉랭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평소처럼 하라고 할 게 뻔했다.

“됐어. 고맙다는 말 했으면 그만이지 뭐.”

생각을 접으며 고개를 젓던 채원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작은 탄식을 내뱉으며 황급히 몸을 돌렸다. 서둘러 방으로 들어온 그녀는 기존의 유심을 꺼내 새로운 핸드폰에 꽂았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핸드폰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자, 채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서둘러 메시지를 열었다.

[죄송해요. 핸드폰이 갑자기 망가져서 연락을 못 드렸어요.]

급하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채원은 아직 해낸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혼은커녕 가짜 임신까지 하게 됐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조바심에 손톱을 잘근 물어뜯던 그때, 답장이 도착했다.

[만나서 얘기하자.]

생각보다 반응은 덤덤했다. 화 나신 게 아니었나……?

채원은 떨떠름한 얼굴로 핸드폰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마치 상대방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정성스럽게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녀는 알지 못하게, 이 모든 상황을 태건은 방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앞에 놓인 태블릿 PC에는 채원이 현재 핸드폰으로 주고받는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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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내가 돈을 더 준다고 하면 나랑 일할래요?”유건이 씩 입꼬리를 올렸다. 지훈은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그의 질문을 듣는 순간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이건 진심인가, 혹은 실험인가. 회장님도 아시는 건가, 아니면 독단적인 행동인가. 짧은 시간 동안 지훈의 머릿속에는 수만 가지의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지. 상황을 파악하고 계산을 해야 하지만 절대 오래 걸려서는 안 됐다.최대한 빠르게 두뇌를 회전시켜 계산을 마친 그가 마침내 입을 떼었다.“아뇨.”간결하고 단호한 대답에 유건은 못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왜요~ 내가 동생이라서?”투정 부리듯 묻는 유건에 지훈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그만한 돈이 없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지훈의 대답에 유건은 할 말을 잃었다. 그가 넋이 나간 얼굴로 멍하니 지훈을 바라봤다.한참 동안 두 사람 사이엔 말이 없었다. 잠시 이어진 침묵은 이내 유건의 웃음소리에 깨졌다.“푸하하하!”호탕한 웃음소리에, 레스토랑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그들의 자리를 바라봤다. 지훈은 흘깃 시선을 돌려 사람들을 의식했지만, 유건의 웃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한참을 웃고 나서야 그는 여운이 가득 남은 얼굴로 하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아아, 진짜……. 장 비서님 유머 감각은 정말 최고예요.”“칭찬 감사합니다.”별로 감사한 마음은 없지만 지훈은 무심하게 말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그런 지훈을 보며 유건은 여운이 가득 느껴지는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잠시 내려놨던 포크를 집어 들고, 웃으며 지훈에게 식사를 마저 권했다.결국 하는 수 없이 지훈도 멈췄던 식사를 다시 이어갔지만, 불편한 식사 자리에서 먹는 샐러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 *파랗던 하늘이 붉은 노을빛으로 물들었다.채원은 하늘을 올려다보다 고개를 숙여 핸드폰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6시까지 여기로 와.]핸드폰에는 메시지와 함께 레스토랑 위치가 함께 찍혀 있

  • 떠나려는 그대를 위해   14화. 균열(2)

    정신없는 오전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점심을 향해 가고 있었다.“그래서 관련 미팅은 모레 오후 2시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 점심은 어떻게 하실까요?”업무 브리핑을 마무리하고 시간을 확인한 지훈이 태건을 보며 물었다.그제야 시간을 확인한 태건은 잠시 고민하다 그를 바라봤다.“간단하게 먹죠. 별로 입맛이 없네요.”태건의 대답에 지훈은 짧은 시간 동안 머리를 굴려 주변 식당을 생각했다. “그러면 근처에 샌드위치 가게가 새로 생겼는데, 샌드위치로 준비할까요?”“네, 좋네요. 장 비서님은 나가서 식사하고 오세요.”무심하게 말하고 태건의 시선은 다시 서류로 향했다.지훈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이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일이 늘어났다고 해도 굳이 식사까지 대충 챙기면서 몰두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이내 깊게 관여하지는 말자고 생각했다.지훈이 본부장실을 나오자, 앞에 있던 여직원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식사하러 가시나요?”그녀가 아까부터 쳐다보던 거울을 몰래 옆으로 슬쩍 치우며 물었다.“네. 식사 안 하십니까?”“아, 저는 도시락이요. 늘 챙겨 오거든요.”“아아, 네에.”별로 궁금하진 않았는지 대답하는 목소리에 성의는 없었지만, 여직원은 수줍게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본부장님이랑 같이 안 하시나요?”“본부장님은 샌드위치만 드시겠다고 해서요. 그거 챙기고 나서 밥 먹어야죠.”“그럼 제가 갔다 올까요?”여직원의 말에 지훈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말은 없었지만 그녀를 보는 표정에 괜찮겠냐는 말이 묻어 있었다.“뭐, 그래 주면 나야 고마운데…….”굳이? 지훈이 조금 떨떠름한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여직원은 개의치 않은 듯 미소를 지었다.“제가 다녀올게요. 장 비서님 요즘에 밥도 잘 못 챙겨 드셨잖아요.”“……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주문은 제가 해놓을게요.”“네! 맡겨만 주세요!”여직원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지훈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발

  • 떠나려는 그대를 위해   13화. 균열(1)

    “흠흠~ 안녕하세요! 좋은 오후네요~”콧노래와 함께 웃음기 가득한 유건의 목소리가 복도를 타고 울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여직원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수많은 소문을 안고 대건그룹에 들어온 지도 어느덧 2주. 그 2주 동안 유건은 이틀에 한 번은 꼭 전략기획실을 찾았다.그의 목적은 딱 하나였다. 전략기획본부장 강태건을 만나겠다는 것. 하지만 귀신같이 유건이 찾아올 때면 꼭 태건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미팅이 있거나 외근이 있거나, 혹은 중요한 손님을 맞이하고 있거나.그렇게 매번 빈손으로 돌아갔음에도, 유건은 포기할 줄을 몰랐다.“안녕하세요~”오늘도 역시나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오는 유건에 여직원은 사회생활용 미소를 장착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안녕하세요. 오늘도 본부장님 만나러 오셨을까요?”“네! 오늘은 안에 있을까요?”유건이 굳게 닫힌 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오늘은 제발 열리길 바라는 그의 기대와 다르게 여직원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뇨. 안 계십니다.”“에엥? 아니, 이 사람은 맨날 일 안 하고 어딜 그렇게 다녀요?”여직원의 말에 유건이 잔뜩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그러는 너야말로 일은 안 하고 왜 이렇게 돌아다니냐고 묻고 싶었지만, 여직원은 애써 미소만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글쎄요. 보통 저한테는 어디 간다고 말씀을 잘 안 해주셔서요.”“맨날 장 비서님한테만 얘기하죠? 에휴, 장 비서님도 피곤하겠다.”유건의 말에 여직원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는 동감이었다.“아아, 오늘은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뭐 다른 말도 없었어요? 진짜 하나도?”유건의 물음에 여직원이 고개를 저었지만, 그의 눈빛은 끈질겼다. 무슨 대답이라도 꼭 듣고 가겠다는 확고한 고집이 담긴 눈이 그녀를 계속 바라봤다.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다.결국 먼저 백기를 든 것은 여직원이었다. 계속 이렇게 상대하고 있어봤자 더 힘든 건 본인 쪽이었다.“장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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