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출중한 외모, 우수한 성적, 훌륭한 인품.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윤채원은 완벽한 인형 같은 여자였다. 그리고 오늘 밤, 완벽한 윤채원의 결혼 생활도 완벽한 마침표를 찍는다. “이혼해요.” “누구 마음대로.” 있는 듯 없는 듯 취급하던 남편이 비협조적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그럴 계획이었다. 모든 게 다 완벽한 계획대로 사는 여자, 윤채원과 그런 그녀를 떠나보내야 하는 남자, 강태건. 두 사람이 그리는 이야기.
View More달리는 차 안은 굉장히 조용했다.
엔진 소리만 일정하게 울리고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조수석에 앉아 태블릿을 확인하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네비게이션을 확인한 그가 백미러로 시선을 올렸다.
“곧 도착합니다.”
남자의 말에 대답은 없었다.
뒷자석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은 서로를 보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볼 필요도 없었다.
이 관계에 개인적인 감정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서로를 알아가고 공통점을 찾아가는 일 따윈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았다.
말없이 두 사람을 바라보던 남자가 작게 숨을 들이키며 말했다.
“지금은 상관없는데, 이따 기자들 앞에서는 표정 관리하셔야 합니다.”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서로 반대쪽만 바라본 채 입은 꾹 다물려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남자는 작게 숨을 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여간에, 재벌들이란. 역시 돈 많은 것들은 상종을 할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 * * 잠시 후 차가 속도를 줄이고 웨딩홀 앞에 멈춰 섰다.“내리시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렸다. 뒷자석에 앉아 있던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차에서 먼저 내렸다.
강태건. 대건 그룹의 장남이자 핵심 부서인 전략기획실의 본부장.
그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터지는 플래시에도 태건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 마치 오늘이 아무것도 아닌 날처럼, 그는 덤덤하게 보타이를 고쳐 잡았다.
“안 내려?”
먼저 내린 그가 뒤를 보며 물었다. 그의 물음에 앉아 있던 여자가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태건이 내렸을 때보다 더 뜨거운 반응이었다.
대건 그룹의 강태건이 파혼 후 곧바로 선택한 여자, 윤채원.
대중 앞에 단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기에, 사실상 이 결혼의 주인공은 태건 보다 그가 선택한 여자, 채원이 더 가까웠다.
“저 여자야? 그 소문의 정인 재단 딸?”
“맞지 않을까? 나도 몰라. 공식 석상에 나온 적은 이번이 처음이잖아.”터지는 플래시 소리 사이에서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기자들 모두 차에서 같이 내린 여자가 강태건의 신부가 될 윤채원이 맞는지에 대해 확인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관심과 의문 속에서 채원은 돌처럼 가만히 굳은 채 서 있었다.
앞으로 걸어가지도, 그렇다고 여유롭게 카메라를 바라볼 수도 없었다. 머릿속이 그야말로 백지가 된 기분이었다.
터지는 플래시 소리에 맞춰 심장 박동이 점점 커지고 주변의 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리던 그때였다.
“윤채원.”
앞서 내렸던 태건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채원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만일 이 모습 그대로 식장에 들어간다면 이건 세기의 결혼식이 아니라 세기말의 결혼식이라고 오해받기 딱 좋았다.
태건은 조용히 그녀를 내려 보며 두 사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차에서 장 비서가 한 말 잊었어? 표정 관리 제대로 해야 한다니까.”
태건의 물음에 채원은 그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기억해요.”
“그럼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네 데뷔일인데. 이러고 있으면 기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다들 네가 윤채원이 맞긴 한 건지 의문인 거 같은데.”태건의 말에 채원은 고개를 돌려 기자들을 바라봤다. 한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수많은 카메라와 눈들이 번쩍거리며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긴장한 듯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태건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이라도 무르고 싶으면 말해. 두 번 파혼하는 것도 어렵진 않으니까.”
태건의 말에 채원이 작게 숨을 들이켰다.
파혼이라니. 그건 그녀의 계획에 없는 것이었다. 무조건 이 결혼식을 성공적으로 끝내는 것. 그것이 그녀의 계획이었다.
결심한 듯 고른 숨을 내뱉은 그녀가 천천히 태건의 팔에 팔짱을 둘렀다.
“그럴 리가요.”
그녀가 태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거울 앞에 홀로 서서 수천 번은 더 연습한 미소도 잊지 않았다.
다정해 보이는 모습에 수십 개의 플래시가 이전보다 더 바쁘게 움직였다.
태건은 자신의 팔에 둘러진 채원의 손을 한 번, 그리고 채원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곤 말없이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의 발이 동시에 식장을 향해 움직였다.
그렇게 수십 명, 수백 명의 관심 속에서 강태건과 윤채원의 결혼식이 시작됐다.
모든 게 다 그녀의 계획 대로였다.
* * * 5년 후.식탁 앞에 홀로 앉아 있던 채원이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봤다.
그녀의 예상이 맞다면 강태건은 곧 집에 도착할 것이다.
습관적으로 손톱 밑 여린 살을 뜯던 그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실수 없도록 잘 마무리해.]
간결하고 단호한 메시지였다.
채원은 잠시동안 메시지를 가만히 바라보다 작게 숨을 들이켰다.
[네.]
무미건조한 답변에 아마 혀를 끌끌 차겠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좋은 답변은 없었다.
작게 숨을 내뱉으며 핸드폰을 덮은 그녀가 다시 시계를 확인했다.
이 넓은 집에서 그를 이렇게 기다린 건 5년 전 결혼식이 있던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홀로 식탁 앞에 앉아 애꿎은 시계만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의 제 모습을 상상하니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아마 명백한 비웃음이겠지.
띠띠띠-.
그때 도어락 소리가 일정한 속도로 울리더니 이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채원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빼내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다 이내 다시 의자에 앉았다.
초조할 필요 없다. 윤채원은 강태건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 계획은 실패할 수가 없다.
때마침 피곤한 발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오던 태건이 채원을 바라봤다.
멈칫, 발걸음을 멈춘 그의 얼굴에 순간 당황한 기색이 물들었다가 사라졌다.
“…… 안 자고 있었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처럼 높낮이는 없었고 덤덤했지만 조금 피곤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채원이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태건은 시선을 돌려 그녀의 건너편에 있는 빈자리를 바라봤다.
“앉아야 하는 건가?”
또 다시 끄덕, 하고 고개가 움직였다.
태건은 잠깐 빈자리를 바라보다 이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의자에 앉으며 피곤한 숨을 내뱉은 그가 고개를 들어 채원을 바라봤다.
“이 시간에 아직 안 자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 보면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정확해요.”마치 칭찬하는 것 같은 착각에 태건은 자신도 모르게 픽 웃을 뻔했다.
“말해봐. 할 말이 뭔지.”
태건이 피곤한 눈으로 채원을 바라봤다.
오늘따라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습에 채원은 아주 잠시 짧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 말고 내일 아침쯤에 다시 얘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짧은 고민은 짧은 고민에 불과했다. 계획에 어긋나는 일은 지금까지 있지도 않았고, 있어서도 안됐다.
“이혼해요.”
담담한 목소리가 침묵을 뚫고 나왔다.
마치 이미 여러 번 연습한 문장처럼, 채원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망설임도 없었고 담백했다.
“필요한 서류는 다 준비 해놨어요.”
건너편에 있던 태건이 시선을 들었다.
“이유는?”
“결혼한 지 벌써 5년이 지났어요.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요.” “…….” “아이도 없으니까, 어른들도 납득하실 거예요.”이 정도면 됐다. 태건도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고, 이제 문제없이 이혼 서류만 제출하면 끝이다.
채원은 속으로 삼켰던 숨을 내뱉으며 물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 머릿속에서 수십 번을 들었던 대답만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겨우 생각한 이유가 그거야?”
순간 물컵을 들던 손이 그대로 멈췄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이건 계획에 없던 변수였다.
“이혼? 누구 마음대로.”
낮은 목소리로 차갑게 말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라……. 그러면 아이부터 있으면 되겠네.”
“그게 무슨…….”너무 당황한 탓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대체 태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윤채원은 강태건을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강태건이 변수로 변해버린 것일까?
“뭐, 어떡해.”
“…….”숨결이 느껴질 만큼 좁혀진 거리에 채원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함부로 입을 열면 심장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 것 같았다.
차가운 눈으로 채원을 내려다보던 태건이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감쌌다. 차가운 말투와 다르게 뺨을 통해 느껴지는 체온은 따뜻했다. 그 대비감에 채원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거렸다.
조용히 그녀를 내려다보던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한번 노력해 볼래?”
채원은 언젠가는 자신도 이 방을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8살이 되어도, 시간이 더 지나도 채원은 방을 나갈 수 없었다.언젠가 채원은 왜 자신은 유연과 달리 학교에 갈 수 없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자신도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했을 때, 백재연은 말 대신 행동으로 답했다. 그날 채원은 하루 종일 방에 갇혀 그 어떤 것도 먹을 수 없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며, 채원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잘못했어요! 죄송해요! 문 좀 열어주세요!”작은 손으로 아무리 두드리고 외쳐도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절대 문 열어주지 말고, 대꾸도 하지 마. 먹을 것도 주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여태 주제 파악도 못 하고……. 쯧.”문 너머로 차가운 백재연과 남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채원은 다시 한번 깨달았다.나는 욕심을 내면 안 되는 아이구나.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채원은 자신이 이 집에서 어떤 자리에 놓여 있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윤유연이라는 빛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기 위한 어둠. 그게 채원의 역할이었다. 그 어둠을 나오려는 건 그녀의 욕심이었고, 주제를 모르는 짓이었다.그렇게 빛도 잘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채원은 어쩌면 이 문을 열고 나갈 일은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녀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건, 12살의 어느 여름이었다.* * *며칠째 집 안은 조용했다.정확히는, 채원의 방만 조용했다.복도에서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전화벨은 밤낮없이 울렸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의사들이 집을 드나들었다.늦은 밤이면 백재연이 누군가에게 고함을 지르는 소리도 들렸다. 어떤 날은 그녀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유리 같은 것이 깨지는 소리도 났다.그럴 때면 채원은 몸을 최대한 웅크리며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왜 요즘 들어 계속 무서운 소리가 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게 무서웠고 외로웠다.하지만 아무도 채원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지
정인 재단 이사장과 정인대병원 병원장 사이에는 완벽한 딸이 하나 있었다.신생아 시절부터 완벽한 외모를 갖췄던 그녀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출중한 외모를 뽐냈다. 길거리에 있는 모두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고, 연예기획사, 모델 에이전시, 방송사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그녀에게 명함을 내밀었다.신이 그녀를 너무 사랑했던 건지 그녀는 두뇌까지 부모를 닮아 명석했다. 단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으며, 예체능까지 교내외를 모두 섭렵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여자였다. 집안, 인맥, 재력, 외모, 성적,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부부는 그런 딸을 자랑스러워했고, 그 딸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자랑스러워했다.모두가 이들을 보며 부러워했고, 모두가 하나같이 ‘완벽한 가족’이라며 입을 모아 말했다.그들은 그야말로 완벽한 가족이었다.윤채원은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로 완벽하다고.그 가족사진에 채원은 없었다.* * *가족사진 촬영이 있던 날. 거실엔 사진작가와 보조 스태프들이 조명과 구도를 세팅하느라 분주했고, 한쪽에서는 메이크업 수정이 진행되고 있었다.촬영 준비를 모두 마친 사진작가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봤다.“준비 다 되셨을까요?”사진작가의 물음에 백재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시작하죠. 가자, 유연아.”백재연이 옆에 있던 딸을 다정한 목소리로 불렀다.그녀의 부름에 메이크업 수정이 끝난 유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얀 피부와 크고 선명한 눈, 작고 오똑한 코. 아직 10살이라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성인이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사랑스러운 아이였다.사진작가의 안내에 맞춰 세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 위치했다. 가장 가운데 자리는 유연의 자리였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착석하고, 그 뒤에 백재연과 윤 원장이 나란히 섰다. 백재연은 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윤 원장은 한 손 백재연의 허리에 두르고, 다른 한 손은 유연이 앉은 의자를 잡았다.고급스러운 저택 안에서 미소 짓는 세 사람은 그야말로 완벽한 가족의 이상적인
“실례합니다.”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가르며 흘러들었다.채원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태건 씨?”채원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홀린 듯 태건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부름에 태건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미소를 지었다.“아, 아니……. 여긴 어떻게…….”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채원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백재연 역시 예상하지 못한 방문객에 미간을 미세하게 좁혔다.“강 본부장.”금방 표정을 바꾼 재연이 온화한 얼굴로 그를 불렀다.태건은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그녀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안녕하세요, 장모님. 또 뵙네요.”“그러게. 또 보네.”백재연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녀의 말투에 채원의 어깨가 움찔거렸지만, 태건은 오히려 여유롭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여유롭게 채원의 등받이에 손을 올린 그가 그녀가 잘라 두었던 스테이크를 포크로 집어 입에 넣었다.초대받지 않은 자리에 불쑥 나타나서, 일어선 상태로, 타인이 쓰던 포크로 음식을 먹는다니.난생처음 보는 모습에 채원은 태건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그러나 그녀와 달리 태건은 마치 음미라도 하듯 천천히 고기를 씹더니, 이내 꿀꺽 삼키며 감탄을 내뱉었다.“와, 이렇게 맛있는 거 사주시는 거면 저도 불러주시지.”“…….”“저한테는 커피 한 잔 안 주시더니. 저 이러면 조금 서운해집니다.”능청스럽게 말하던 태건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던 와인까지 한 모금 들이켰다.도무지 제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채원은 벙찐 얼굴로 태건을 바라봤다. 혹시 드디어 정말로 미친 건가?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백재연이 낮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강 본부장.”“네, 장모님.”“여긴 어떻게 알고 왔습니까?”입꼬리는 부드럽게 올라가 있었지만 그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그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한 태건은 더 능청스럽게
“그럼 내가 돈을 더 준다고 하면 나랑 일할래요?”유건이 씩 입꼬리를 올렸다. 지훈은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그의 질문을 듣는 순간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이건 진심인가, 혹은 실험인가. 회장님도 아시는 건가, 아니면 독단적인 행동인가. 짧은 시간 동안 지훈의 머릿속에는 수만 가지의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지. 상황을 파악하고 계산을 해야 하지만 절대 오래 걸려서는 안 됐다.최대한 빠르게 두뇌를 회전시켜 계산을 마친 그가 마침내 입을 떼었다.“아뇨.”간결하고 단호한 대답에 유건은 못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왜요~ 내가 동생이라서?”투정 부리듯 묻는 유건에 지훈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그만한 돈이 없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지훈의 대답에 유건은 할 말을 잃었다. 그가 넋이 나간 얼굴로 멍하니 지훈을 바라봤다.한참 동안 두 사람 사이엔 말이 없었다. 잠시 이어진 침묵은 이내 유건의 웃음소리에 깨졌다.“푸하하하!”호탕한 웃음소리에, 레스토랑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그들의 자리를 바라봤다. 지훈은 흘깃 시선을 돌려 사람들을 의식했지만, 유건의 웃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한참을 웃고 나서야 그는 여운이 가득 남은 얼굴로 하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아아, 진짜……. 장 비서님 유머 감각은 정말 최고예요.”“칭찬 감사합니다.”별로 감사한 마음은 없지만 지훈은 무심하게 말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그런 지훈을 보며 유건은 여운이 가득 느껴지는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잠시 내려놨던 포크를 집어 들고, 웃으며 지훈에게 식사를 마저 권했다.결국 하는 수 없이 지훈도 멈췄던 식사를 다시 이어갔지만, 불편한 식사 자리에서 먹는 샐러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 *파랗던 하늘이 붉은 노을빛으로 물들었다.채원은 하늘을 올려다보다 고개를 숙여 핸드폰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6시까지 여기로 와.]핸드폰에는 메시지와 함께 레스토랑 위치가 함께 찍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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