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음, 맛있다. 한 디자이너, 손재주만 좋은 줄 알았더니 야생 요리사 자격증도 따야겠어."
"서울에서는 내가 해주는 밥 한 번 먹어본 적 없으면서, 말은 잘해요."
서진의 뼈 있는 농담에 민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게. 우리 3년 동안 집에서 같이 밥 먹은 게 손에 꼽히네. 그것도 다 양가 부모님 모시고 격식 차리는 자리뿐이었고."
"맞아. 매일 차려진 최고급 출장 뷔페나 일식 코스 요리를 먹으면서도,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몰랐지. 언제나 가문 이야기, 주식 이야기뿐이었으니까."
서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조개 껍데기를 매만졌다. 민우는 그런 서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서진아."
"음, 맛있다. 한 디자이너, 손재주만 좋은 줄 알았더니 야생 요리사 자격증도 따야겠어.""서울에서는 내가 해주는 밥 한 번 먹어본 적 없으면서, 말은 잘해요."서진의 뼈 있는 농담에 민우가 머리를 긁적였다."그러게. 우리 3년 동안 집에서 같이 밥 먹은 게 손에 꼽히네. 그것도 다 양가 부모님 모시고 격식 차리는 자리뿐이었고.""맞아. 매일 차려진 최고급 출장 뷔페나 일식 코스 요리를 먹으면서도,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몰랐지. 언제나 가문 이야기, 주식 이야기뿐이었으니까."서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조개 껍데기를 매만졌다. 민우는 그런 서진을 빤히 바라보았다."서진아.""응?""나 사실…… 너랑 이혼하기 싫었어."갑작스러운 민우의 돌직구 고백에 서진이 들고 있던 조개 껍데기를 떨어뜨렸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감돌았다. 민우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처음엔 정략결혼이라 억울했고, 네가 날 무시하는 것 같아서 자존심을 세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네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기다려졌어. 네가 거실에 새로 들여놓은 소파를 볼 때마다, 네 취향을 조금씩 알아가는 게 은근히 재밌었거든.근데 내가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어. 먼저 다가가면 네가 날 밀쳐낼까 봐 겁이 났던 거야."서진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늘 당당하고 오만해 보였던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서진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민우는 타오르는 모닥불 빛을 받으며 속마음을 고백했다."네 주변에 멋진 남자들이 너무 많았잖아. 난 비즈니스밖에 모르는 딱딱한 인간인데, 넌 예술을 하니까 내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어. 그래서 상처받기 싫어서 먼저 까칠하게 군 거야. 미안해…… 널 지켜주고 싶었는데, 늘 아프게만 해서."열에 들뜬 민우의 진심 어린 고백에 서진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오만방자한 줄만 알았던 남자의 가슴속에 그런 유치하고도 애틋한 열등감과 사랑이 숨겨져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서진은 민우의 손을 더 꼭 맞잡으며 그의 이마에 고인 땀을 닦아주었다."바보 같아, 진짜. 난 당신이 항상 내 가구 디자인 무시하는 줄 알고 서운했던 건데…… 우리 진짜 바보 부부였네."서진은 민우의 가슴팍에 고개를 묻고 조용히 흐느꼈다. 무인도의 밤은 깊어갔고, 구사일생으로 치명적인 위기를 넘긴 두 사람의 마음은 비로소 완전한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서로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야생의 포식자 앞에서 목숨을 걸고 확인한 밤이었다.야생 동물의 습격을 받아 사투를 벌인 뒤 찾아온 무인도의 아침은 평소와 달랐다. 동굴 안을 가득 채운 은은한 연기 사이로, 밤새 민우를 간호하느라 지쳐 잠든 서진의 핼쑥한 얼굴이 보였다."음……."민우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셨지만, 어젯밤의 지독했던 열은 고맙게도 내려가 있었다. 팔뚝을 보니 서진이 제 드레스를 찢어
"웃어? 남편이 물에 빠졌는데 그게 웃음이 나와?""남편은 무슨, 동맹 파트너라며. 그리고 당신 꼴을 봐. 안 웃게 생겼나."서진이 다가와 미역 줄거리를 걷어내 주며 킥킥댔다. 민우는 젖은 옷을 짜내며 툴툴거렸다."서울 돌아가기만 해봐. 대한그룹 지분 다 털어서 횟집 하나 통째로 인수할 거니까. 평생 회만 먹고 살 줄 알아.""그 전에 여기서 굶어 죽게 생겼어. 들어가서 옷이나 말려."두 사람은 투덜거리면서도 서로를 챙기며 동굴로 돌아왔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자, 무인도에는 다시 서늘한 어둠이 찾아왔다. 어제처럼 서진이 정교하게 보수해 둔 모닥불 덕분에, 오늘 밤은 제법 따뜻한 온기가 동굴 안을 채웠다.민우는 낮에 사냥에 실패한 게 내심 마음에 걸렸는지, 밤이 깊어지자 동굴 밖을 서성거리며 마른 장작을 조금이라도 더 모아오겠다며 정글 초입으로 향했다."너무 멀리 가지 마. 위험해."서진이 동굴 안에서 소리쳤다."걱정 마. 이 근처야."민우는 달빛에 의지해 발밑의 나뭇가지들을 주워 담았다. 낮의 허당 짓을 만회하고 싶다는 남자로서의 오기가 발동한 탓이었다. 한참 나무를 모으고 있을 때였다.바스락.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민우는 이전의 멧돼지가 떠올라 몸을 굳혔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노란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민우는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서진이 자신에게 다가오려 했던 손길을, 자존심이라는 방패로 매번 쳐내기만 했던 과거의 제 모습이 떠올랐다."미안하다."낮고 진중한 민우의 사과에 서진이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민우는 서진의 흐트러진 앞머리를 다정하게 쓸어 넘겨주며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내가 너무 속이 좁았어. 널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상처만 줬네.""민우 씨……."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빗소리는 어느새 잦아들고, 동굴 안에는 오직 두 사람의 가쁜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민우의 얼굴이 서진의 얼굴을 향해 천천히 기울어졌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서로의 따뜻한 숨결이 뺨에 닿았다.서진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마침내 두 입술이 닿기 직전이었다.스스스스스.동굴 천장에서 무언가 차갑고 축축한 촉감이 민우의 콧등 위로 툭 떨어졌다."어? 이게 뭐지?"민우가 눈을 뜨며 콧등을 만졌다. 손가락에 닿은 것은 다리가 수십 개 달린 커다란 지네였다."으, 으아아악. 괴물이다."민우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순식간에 깨부수며 비명을 질렀다. 그는 서진을 팽개치고 동굴 바닥을 구르며 난리를 피웠다. 지네는 민우의 난동에 놀라 서진의 드레스 자락 쪽으로 기어갔다."꺄악. 저리 치워."서진 역시 비명
좁은 동굴 안, 빗소리만이 요란하게 울리는 공간에서 두 사람의 거리는 어쩔 수 없이 밀착될 수밖에 없었다.우르릉, 쾅.동굴 밖을 집어삼킬 듯한 천둥소리가 대지를 뒤흔들었다. 회색빛 장막처럼 쏟아지는 폭우는 동굴 입구를 완벽히 차단해 버렸다. 조금 전까지 아침 햇살이 비추던 아늑한 아지트는 순식간에 눅눅하고 서늘한 감옥처럼 변했다."추워……."서진이 젖은 드레스 자락을 그러쥐며 몸을 웅크렸다. 비바람이 동굴 내부까지 들이치자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아까 피워둔 모닥불마저 습한 공기를 이기지 못하고 연기만 매캐하게 피워올리며 꺼져가고 있었다.민우는 다급히 마른 나뭇가지를 더해 보았지만, 이미 축축해진 공기 때문에 불씨는 쉽게 살아나지 않았다. 서진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본 민우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무인도에서 감기나 저체온증에 걸리면 약도 없었다.민우는 젖은 수트 재킷을 털어내고 서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좁은 바위 틈새로 서진을 밀어 넣은 뒤, 자신의 넓은 등과 어깨로 동굴 입구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아섰다."이봐, 강민우.""가만히 있어. 지금 기싸움 할 때 아니니까."민우가 무뚝뚝하게 말하며 서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진은 짐짓 밀쳐내려 했지만, 온몸을 덮쳐오는 오한 때문에 이내 그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댔다.두 사람의 거리는 단 1센티미터도 남지 않을 만큼 밀착되었다. 빗소리가 워낙 거세어 세상의
민우가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며 자신만만하게 걸어 나갔다."비켜봐. 이래 봬도 내가 대학 시절에 클라이밍 동아리였어. 저 정도는 껌이지."민우는 나무 기둥을 붙잡고 힘차게 몸을 띄웠다. 처음 두 걸음까지는 제법 폼이 났다. 하지만 거친 야자나무 껍질에 명품 셔츠가 쓸리고 미끄러지면서 그의 몸은 1미터도 올라가지 못하고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왔다.쭉."어우, 야."나무를 껴안은 채 미끄러진 민우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가슴팍의 단추는 세 개나 날아갔고, 얼굴에는 나무 진액이 묻어 엉망이었다."클라이밍 동아리 맞으셔? 나무랑 연애하는 줄 알았네."서진이 배를 잡고 굴러갔다. 민우는 얼굴을 붉히며 긴 나뭇가지를 주워와 휘둘러 보았지만, 코코넛이 매달린 높이에는 턱없이 부족했다.결국 코코넛은 포기하고 해변 바위틈을 뒤지기로 했다. 다행히 썰물 때라 바위 고인 물에 엄지손가락만 한 고둥들과 어른 주먹만 한 게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심봤다. 이거라도 잡자."민우는 눈을 빛내며 바위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그 순간, 바위 밑에 숨어 있던 큼지막한 게 한 마리가 민우의 검지손가락을 집게로 콱 찝어버렸다."아악. 내 손가락."민우가 비명을 지르며 팔을 사방으로 흔들어댔다. 게는 떨어지지 않고 대롱대롱 매달려 민우의 손가락을 사정없이 조여왔다. 대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던 본부장이 해변에서 게 한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