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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러브 옴니버스 10: Chapter 1 - Chapter 10

83 Chapters

1화

* 고백 D-7, 작전명 초코 소라빵대한민국 고등학생에게 졸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긋지긋한 야간 자율학습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자유의 시작이었다. 동시에 3년 동안 남몰래 키워온 짝사랑의 강제 종료를 의미하기도 했다."일주일 남았다고? 진짜로?"강민우는 책상에 이마를 쾅 부딪쳤다. 칠판 옆에 걸린 달력의 숫자는 잔인하게도 졸업식까지 딱 7일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3년 내내 같은 반이었으면서도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한 소심한 영혼, 그것이 바로 자신이었다.'이대로 졸업하면 끝이다. 소희는 서울로 대학 가고, 나는 여기 남는데 영영 남남이 되는 건가?'창가 자리에서 햇살을 받으며 친구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한소희를 바라보았다.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단발머리가 마치 이온 음료 광고의 한 장면 같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야, 강민우. 너 얼굴 왜 그렇게 빨갛냐? 어디 아프냐?"눈치라곤 밥 말아 먹은 절친 박정구가 민우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쳤다."아니, 안 아파.""그럼 왜 그래? 혹시 소희 보냐?""쉿! 조용히 해!"민우는 정구의 입을 급하게 틀어막았다. 목소리가 워낙 커서 소희가 들었을까 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다행히 소희는 자기 친구들과 급식 메뉴를 고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민우는 정구를 구석으로 끌고 가 낮게 속삭였다."야, 정구야. 나 일주일 안에 고백할 거다."정구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코방귀를 뀌었다."네가? 3년 동안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한 네가 일주일 만에 고백을 한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진짜야. 이번엔 진짜라고. 졸업하면 다신 못 보잖아? 억울해서라도 말은 해봐야지."민우의 눈빛에 전례 없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정구는 민우의 진지한 태도에 조금 놀란 듯 턱을 괴었다."그래, 사나이 삼세번인데 고백 한번 못 해보고 졸업하면 평생 이불킥이지. 근데 방법은 있냐?""방법? 당연히 있지."사실 아무 대책도 없었다. 하지만 민우는 일단 큰소리부터 쳤다. 머릿속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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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찔끔 났지만 아직 달력에는 6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민우는 차가운 주먹을 불끈 쥐며 다음번에는 진짜 제대로 된 작전을 짜야겠다고 다짐했다.* 고백 D-6, 하늘에서 초콜릿이 내려온다면어제의 대실패로 인해 강민우의 멘탈은 완전히 가루가 되어 있었다. 담임 선생님에게 흡연 단속반으로 오해받은 사건은 다행히 조용히 넘어갔지만, 소희의 손에 닿지도 못한 채 끝나버린 초코 소라빵의 비극은 밤새도록 민우의 머릿속을 괴롭혔다.그러나 포기할 시간은 없었다. 달력의 숫자는 무정하게도 D-6을 가리키고 있었다.점심시간, 매점 뒤편 벤치에 앉아 민우는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고 정구와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야, 박정구. 아날로그 방식은 안 되겠다. 소희한테 가기도 전에 중간에 가로채기 당할 확률이 너무 높아."정구는 매점 소시지를 한 입 베어 물며 한심하다는 듯 민우를 보았다."그러니까 왜 그런 고전적인 방법을 쓰냐?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디지털로 가야지, 디지털로.""디지털? 캐톡으로 고백하라고? 그건 너무 성의 없어 보이잖아.""누가 캐톡 하래? 마침 오늘 5교시가 전교생 체육대회 연습이잖아? 운동장에 전교생 다 모인다고."민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그래서?""내가 어제 방송부 애들이 드론 띄워서 촬영 연습하는 거 봤거든? 거기에 선물을 매달아서 소희 머리 위로 정확하게 배달하는 거야. 어때, 지리지?"정구의 제안은 확실히 파격적이었다. 드론을 이용한 고백이라니? 마치 유행하는 웹드라마의 남주인공이 될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드론이 소희에게 다가가 달콤한 사탕 상자를 전달하는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그거 괜찮은데? 근데 방송부 드론을 우리가 어떻게 빌려?""걱정 마라. 방송부 기재부장이 내 사촌 형이다. 점심시간에 잠깐 빌려오기로 합의 봤어."정구가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민우는 이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든든해 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그렇게 시작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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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백 D-5, 도서관의 도미노 여신어제의 가발 비행 사건은 단숨에 학교의 전설이 되었다.다행히 정구의 사촌 형이 방송부 드론의 비행 기록을 빛의 속도로 삭제한 덕분에 민우와 정구는 주동자로 색출되는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 있었다.하지만 학교 분위기는 그야말로 계엄령 수준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가발 대신 번쩍이는 대머리를 당당하게 드러낸 채, 매서운 눈빛으로 교내를 순찰하며 범인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복도에서 교장 선생님과 마주칠 때마다 민우의 심장은 쫄깃해지다 못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야, 박정구. 너 왜 안경을 두 개나 쓰고 있냐?"민우가 등교하자마자 정구의 몰골을 보고 물었다. 정구는 시력 교정용 안경 위에 커다란 선글라스까지 겹쳐 쓰고 있었다. 변장이라는 명목이었지만 누가 봐도 수상한 인물 그 자체였다."교장샘 눈빛 못 봤냐? 눈만 마주쳐도 자백하게 만드는 눈빛이다? 난 당분간 이렇게 살 거다."정구가 이빨을 덜덜 떨며 대답했다. 조력자마저 공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민우는 홀로 결단을 내려야 했다.달력을 보니 남은 시간은 이제 겨우 5일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대담하고 화려한 작전은 교장 선생님의 수사망에 걸릴 위험이 너무 컸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였다. 가장 조용하고, 가장 은밀하며, 가장 안전한 장소를 공략하는 것뿐이었다.'도서관이다.'소희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도서관 창가 자리에서 수능 특강 문제집을 풀곤 했다. 시끄러운 운동장이나 교실과 달리 도서관은 사서 선생님의 엄격한 통제 아래 조용함이 유지되는 성역이었다. 이곳이라면 돌풍이 불 일도 없고, 교장 선생님의 가발이 날아갈 일도 없었다.점심을 대충 입으로 쑤셔 넣은 민우는 곧장 본관 4층에 있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특유의 오래된 종이 냄새와 정적만이 민우를 반겼다. 고개를 돌려 창가 쪽을 바라보니 역시나 소희가 앉아 있었다. 햇살을 받으며 독서에 집중하고 있는 소희의 모습은 어제 드론 소동 속에서도 홀로 빛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민우는 주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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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선생님은 씩씩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편지봉투를 주워 올렸다. 봉투 겉면에는 큼지막하게 ‘한소희에게’ 라고 적혀 있었다."강민우! 너 지금 도서관에서 고백 작전 하느라 책장을 다 부순 거냐?"사서 선생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도서관에 메아리쳤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대피해 있던 소희를 포함한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민우에게로 쏠렸다.소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책더미 속에 파묻혀 있는 민우와 사서 선생님의 손에 들린 편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당황스러움과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 교차했다.민우는 차라리 이대로 책들과 함께 화석이 되어 영원히 묻히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백은커녕 도서관 기물 파손죄로 반성문을 쓰게 생겼다.졸업식까지 남은 시간은 단 5일. 민우의 짝사랑 연대기는 이제 코미디를 넘어 재난 영화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보건실의 시크릿 하트도서관 대참사의 대가는 참혹했다. 사서 선생님의 자비 없는 심판에 따라 민우는 졸업식 직전까지 매일 방과 후 도서관에 남아 쓰러진 책장들을 정비하고 수천 권의 책을 원래대로 분류하는 종신형에 처해졌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손가락 끝은 책장에 긁혀 성한 곳이 없었다."야, 강민우. 넌 진짜 레전드다. 고백하려다 도서관을 통째로 무너뜨린 놈은 대한민국 고등학교 역사상 네가 처음일 거다."정구는 교실 책상에 엎드린 채 낄낄거리며 민우의 등짝을 두드렸다. 민우는 이미 영혼이 유체 이탈한 표정으로 사서 선생님이 준 반성문 양식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유서 칸에는 도서관 비품 훼손 및 심각한 면학 분위기 저해라고 엄숙하게 적혀 있었다.'그래도 소희가 내 편지를 봤을까? 사서 선생님이 소희 이름을 도서관이 떠나가라 대차게 부르는 바람에 전교에 소문이 다 났는데.'민우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편으로는 소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다. 미친놈으로 보지는 않을까, 아니면 접근 금지 처분을 내려야 할 위험인물로 찍힌 걸까. 불안감에 휩싸여 손톱을 깨물고 있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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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러브 옴니버스 10

민우는 커튼이 걷히기도 전에 마음속에 담아둔 고백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고백이 끝나자 숨 막히는 침묵이 보건실 안을 가득 채웠다. 민우는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꼭 감았다. 마침내 챠르륵 소리를 내며 커튼이 거칠게 열렸다.민우는 눈을 활짝 뜨며 세상에서 가장 멋진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단발머리의 여신 소희가 아니었다. 험악한 인상에 매서운 눈빛을 하고, 손에는 언제나 들고 다니는 두꺼운 출석부를 쥐고 있는 학생부장, 일명 지옥의 저승사자 강철 선생님이었다."강민우, 네가 왜 여기 누워서 헛소리를 하고 있냐?"강철 선생님의 걸걸하고 웅장한 목소리가 보건실 전체를 사정없이 울렸다. 민우는 너무 놀라 침대에서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사, 선생님? 선생님이 왜 여기 계십니까?""내가 요즘 혈압이 높아서 보건 선생님 없는 틈을 타 뒷방에서 안마의자 좀 쓰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놈이 들어와서 청승맞게 신음 소리를 내더니, 대뜸 나한테 사귀자고 고백을 하네? 3년 동안 나만 바라봤다고?"강철 선생님의 두꺼운 눈썹이 무섭게 꿈틀거렸다. 민우의 안색은 순식간에 흙빛을 넘어 하얗게 질려갔다."그게 아니라, 저는 소희인 줄 알고 그랬습니다!""소희고 뭐고, 자율학습 시간에 보건실에 무단으로 들어와서 땡땡이를 치고 연애질을 하려고 해? 당장 따라와. 오늘 정신 번쩍 들게 해줄 테니까."민우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바로 그때, 보건실 문이 다시 열리며 진짜 소희가 정구와 함께 허겁지겁 들어왔다. 정구는 민우가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덜미를 잡혀 있는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빛의 속도로 뒷걸음질을 쳤다.소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선생님과 민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어? 선생님, 민우 많이 아픈가요?"강철 선생님은 민우의 교복 뒷덜미를 꽉 움켜쥔 채 껄껄 웃었다."아프긴 무슨. 아주 팔팔하다 못해 사랑이 넘쳐나는구나. 한소희, 너는 얼른 교실로 돌아가라. 이 녀석은 나랑 운동장에서 뜨거운 데이트 좀 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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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실 문은 정구의 말대로 살짝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복잡한 기계 장치들과 거대한 믹서기가 눈에 들어왔다. 민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아나운서 부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책상 위에는 커다란 콘덴서 마이크가 위엄 있게 서 있었다. '좋아, 정구가 알려준 대로 메인 스위치만 올리고 읽으면 되는 거지?' 민우는 믹서기 위에 있는 빨간색 레버를 위로 올렸다. 기계에서 징 하는 미세한 소음이 나기 시작했다. 마이크 앞의 표시등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준비는 끝났다.  민우는 헛기침을 몇 번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편지지를 펼쳐 들었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전교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잠시 안내 방송... 아니, 제 진심을 전하고자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민우의 목소리가 방송실 안의 모니터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민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본격적으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저는 3학년 5반 강민우입니다. 최근 학교에 떠도는 학생부장 선생님과의 소문은 명백한 오해임을 밝힙니다. 제가 좋아하고 고백하려 했던 사람은 오직 한 사람, 3년 동안 제 심장을 뛰게 했던 한소희 너뿐이야." 민우는 감정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목소리에 부드러운 감성을 가득 담아 말을 이어갔다. "소희야, 기억나니? 고등학교 1학년 첫 학기, 네가 내 옆자리에 앉아 지우개를 빌려주었을 때부터 내 세상은 온통 너로 가득 찼었어.네 단발머리가 바람에 날릴 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흔들렸어. 도서관에서 책장을 무너뜨린 것도, 보건실에서 헛소리를 한 것도 모두 너에게 다가가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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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시간에 소희가 떡볶이를 한 입 먹고 고통스러워할 때, 네가 혜성처럼 나타나는 거야. 한 손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대용량 쿨피스를 들고 말이지. 매워 죽으려고 할 때 구원자처럼 음료수를 딱 건네면, 그 청량함과 고마움에 네가 얼마나 멋있어 보이겠냐?"  민우는 잠시 상상에 빠졌다. 불타는 입안을 달래주는 달콤한 복숭아 맛 음료수. 그리고 그것을 건네는 따뜻한 남자의 손길.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완벽한 구도의 로맨스였다. 이번 작전은 기계를 조작할 필요도 없고, 장소를 무너뜨릴 위험도 없는 아주 단순하고 안전한 신사적인 방법이었다.  "좋아. 점심시간 시작하자마자 매점으로 달린다." 4교시 종이 울리자마자 민우는 전교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매점으로 돌진했다. 냉장고 구석에서 가장 차갑고 거대한 복숭아 맛 쿨피스를 찾아내 계산을 마쳤다. 음료수 표면에 맺힌 차가운 물방울이 마치 승리의 여신이 흘리는 눈물 같았다.  민우는 쿨피스를 교복 마이 안쪽에 소중히 숨긴 채 급식실로 향했다. 급식실은 이미 떡볶이를 받으려는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매콤하고 자극적인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저 멀리 창가 쪽 테이블에 소희가 친구들과 자리를 잡고 앉는 모습이 보였다. 소희의 식판 위에는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새빨간 떡볶이가 가득 담겨 있었다. 민우는 기둥 뒤에 숨어 타이밍을 노렸다.  드디어 소희가 떡볶이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소희의 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토마토처럼 붉어지기 시작했다. 손으로 입을 거칠게 부채질하며 안절부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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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물함의 비밀번호를 찾아라   급식실 소화기 대참사 이후, 민우에게 남은 것은 온몸에서 진동하는 시큼한 복숭아 냄새와 전교생의 따가운 눈총뿐이었다. 소희는 어제 사건 이후로 민우를 걸어 다니는 생물학적 유해 물질로 취급하는지, 복도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3미터 전방에서 빛의 속도로 우회하여 도망쳤다. 민우가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은 소화기 안전핀은 빼고 다니냐며 낄낄거렸고, 조리사 아주머니들은 급식실 근처에 민우가 나타나면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달력을 보니 마침내 운명의 디데이 하루 전이었다. 내일이면 대망의 졸업식이었고, 식장은 학부모님들과 축하 꽃다발, 그리고 몰려든 인파로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게 분명했다. 사실상 오늘 방과 후가 맨정신으로 소희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었다. '더 이상 요란한 작전은 무리다. 소화기도, 드론도, 방송실도 다 필요 없어. 가장 클래식하고 조용한 방법을 쓴다.' 민우가 선택한 마지막 보루는 바로 사물함이었다.방과 후에 소희의 사물함에 정성스럽게 고른 선물과 함께, 지난 일주일 동안의 눈물겨운 실수를 진심으로 사과하는 편지를 몰래 넣어두는 작전이었다.민우는 하굣길에 동네 화장품 가게에 들러 소희가 좋아할 만한 은은한 복숭아 향의 핸드크림과 예쁜 향수를 구입했다. 포장지 위에 리본까지 예쁘게 묶어 가방 깊숙한 곳에 보관했다.  문제는 소희의 사물함 번호와 비밀번호를 모른다는 점이었다. 민우는 교실 뒤편에 일렬로 늘어선 회색 사물함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요즘 학교 사물함은 전부 다이얼이나 버튼식 잠금장치가 되어 있어서 번호를 모르면 열 수가 없었다. 그때 구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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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는 향수 상자와 고백 편지를 꼭 쥔 채 절망적인 표정으로 담임 선생님의 뒤를 따랐다. 교무실로 끌려가는 복도에서 마침 가방을 메고 하교하던 소희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소희는 민우가 사물함을 부수다 걸려 범죄자처럼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 기가 막힌다는 듯 입을 벌렸다. 옆에 있던 소희의 친구들이 비아냥거리며 속삭였다.  "소희야, 저 새끼 진짜 양아치 아니야? 너한테 고백한다고 전교에 광고해 놓고 뒤에서는 전교 1등 시험 자료나 훔치고 있었네. 진짜 앞뒤가 다른 무서운 애다." 소희는 차가운 시선으로 민우를 힐끗 보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학교 건물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민우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고백은커녕 이제는 파렴치한 절도범이자 사기꾼으로 완전히 낙인찍힌 상황이었다.  교무실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서 사유서를 쓰며 민우는 창밖의 어두워지는 운동장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내일이 바로 대망의 졸업식이었다. 민우의 짝사랑 연대기는 이제 코미디를 넘어 완벽한 파멸의 문턱에 도달해 있었다.   * 졸업식장의 일촉즉발 고백   대망의 졸업식 당일이 밝았다. 학교 운동장은 이른 아침부터 축하 꽃다발을 든 가족들과 전교생,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화려한 현수막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 활기찬 축제 분위기 속에서 강민우의 얼굴만큼은 먹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어두웠다.  어제 사물함 절도 미수 오해 사건은 밤새 담임 선생님이 엄진수를 필사적으로 설득하고, 민우가 진심을 다해 사과한 덕분에 가까스로 징계 위기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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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러브 옴니버스 10

단상 위에 서 있던 교장 선생님의 얼굴이 붉락푸르락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은 자신의 가발을 슬쩍 만져보더니, 마이크를 잡고 사자후를 토해냈다. "3학년 5반 강민우! 그리고 박정구! 당장 단상 위로 튀어나와!" 교장 선생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강당 전체를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수백 명의 졸업생과 학부모들의 시선이 일제히 3학년 5반 자리에 앉아 있는 민우와 정구에게로 꽂혔다.  "야, 박정구... 우리 진짜 끝났다. 이제 어떡하냐?" 민우가 사시나무 떨듯 떨며 물었지만, 고개를 돌려보니 정구는 이미 의자 밑으로 슬그머니 기어가 군중 속으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국 민우 홀로 전교생의 주목을 받으며 단상 위로 걸어 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민우는 등 뒤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속삭임과 비웃음을 견디며 한 걸음 한 걸음 단상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몇 걸음 가다 보니 앞자리에 앉은 소희와 눈이 마주쳤다. 소희는 황당함과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민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숨길 것도 없다.'  단상 위에 올라서자 매서운 눈빛의 학생부장 선생님과 분노로 대머리가 다시 빛나려고 하는 교장 선생님이 민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우는 온몸이 덜덜 떨렸지만, 품에 안은 꽃다발을 더욱 꽉 쥐었다. 졸업식장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터지기 직전의 시한폭탄 같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 대머리 교장 선생님의 축복   단상 위로 몰아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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