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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5 09:31:43

도진의 기습적인 프러포즈에 채희의 눈동자가 감격으로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소설 속 대공작의 화려한 구혼보다, 눈앞에 있는 민도진의 이 담백하고 단단한 고백이 그녀의 심장을 몇 배는 더 강하게 울렸다.

"내가... 성격도 괴팍하고, 연애도 처음이라 많이 서툴 텐데... 괜찮겠나?"

"서툰 건 소설 쓰면서 같이 연습하면 됩니다. 다음 작품은 본격적인 진짜 연애 소설로 가시죠. 우리가 직접 겪은 이야기로 말입니다."

도진의 능글맞은 멘트에 채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카페를 나와 노을이 붉게 물드는 한강 공원으로 향했다.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오자 도진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재킷을 벗어 채희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혹한기 훈련 동굴 속에서 체온을 나누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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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브 옴니버스 10   89

    "민지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출판사는 뭐고, 삼백만 원은 또 무슨 소리냐?"민지 역시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있었다. 손에 든 스마트폰은 만지기도 무서울 정도로 뜨끈뜨끈했다. 민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SNS 앱을 켰다.어젯밤 대충 던져두었던 '방구석 피카소' 계정은 그야말로 폭발해 있었다. 알림창은 이미 먹통이 되었고, 동구가 그린 파란 돼지 그림 밑에는 댓글이 무려 수천 개나 달려 있었다.[이 그림 보는데 왜 눈물이 나지? 요즘 진짜 죽고 싶었는데 위로받고 갑니다.][직장 상사한테 까이고 한강 가려다 이거 보고 웃었네요. 돼지야 고맙다, 나도 날아볼게!][작가님 천재 아니신가요?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이게... 말이 돼?"민지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꿈이 아니었다. 메시지 함에는 출판사뿐만 아니라 광고 대행사, 미술 잡지 기자, 심지어 의류 브랜드 디자이너까지 협업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었다.그 순간, 동구가 민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누나, 배고파. 동구 밥 줘. 꿀꿀이 밥!"자신이 세상의 영웅이 된 줄도 모르는 동구는 그저 배가 고프다며 배를 튕겨 댔다. 민지는 그런 동구를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세상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위로를 받는다는데, 정작 작가 본인은 초코파이 가루나 흘리는 열다섯 살 바보 동구였다."엄마... 우리 진짜 살 수 있을지도 몰라."민지의 말에 순자는

  • 러브 옴니버스 10   88

    순자가 덜덜 떠는 손으로 문을 열자, 문신이 가득한 팔뚝을 드러낸 덩치 큰 사내 두 명이 거실로 들이닥쳤다. 대장 격인 배 사장은 이빨 사이에 낀 고춧가루를 혓바닥으로 굴리며 거만하게 소파에 털썩 앉았다."아지매, 오늘까지 이자 오백만 원 입금하기로 한 날인 건 기억하지? 내가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인데, 약속 안 지키는 인간들은 사람 취급을 안 해요.""배 사장님, 제발 일주일만 시간을 주세요. 식당 가불이라도 알아보고..."순자가 무릎을 꿇으려 하자, 방에서 나온 민지가 순자의 앞을 가로막았다."우리 엄마 손대지 마세요! 돈은 어떻게든 갚을 테니까 당장 나가요!"민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배 사장은 코웃음을 치며 민지를 흘겨보았다."고등학생 년이 싸가지가 없네. 야, 돈을 어떻게 갚을 건데? 네 몸뚱이라도 팔아서 갚을래?"험악한 말의 가시가 거실을 난도질했다. 그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오직 동구만이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배 사장의 앞으로 다가갔다. 동구는 배 사장의 거대한 뱃살을 신기하다는 듯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아저씨, 배에 수박 들었다! 뚱뚱해! 돼지 삼형제!""이 바보 새끼가 어디서 감히!"배 사장의 부하가 동구를 밀치려던 그 순간이었다. 거실 구석, 소파 위에 팽개쳐져 있던 민지의 스마트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징- 징- 징- 징- 징-단순한 울림이 아니었다. 진동 소리가 너무 촘촘해서

  • 러브 옴니버스 10   87

    하지만 그 시각, 머나먼 서울의 한 지하철 안. 야근에 찌들어 사표를 품에 안고 한강을 바라보며 눈물짓던 대기업 김 대리가 무심코 스타그램을 넘기다 이 그림을 발견하게 될 줄은, 순자네 가족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동구의 엉뚱한 크레파스 낙서가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방구석 피카소의 탄생인간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절망을 마주한다. 마흔두 살의 대기업 대리 김광식에게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부장의 지독한 가스라이팅과 동기들의 초고속 승진 사이에서 그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 사표를 가슴에 품고 퇴근하는 지하철 안,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스마트폰 화면을 의미 없이 넘기고 있었다.그때 그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파란색 크레파스로 마구 칠해진, 날개 달린 괴상한 돼지 그림이었다.초등학생 낙서보다도 조잡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김광식은 그 그림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돼지의 눈은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주둥이는 기묘하게 위를 향해 비틀려 있었다. 마치 세상이 아무리 자신을 짓밟아도 기어코 웃어 보이겠다는 오기처럼 보였다.그림 밑에 달린 짧은 글이 그의 가슴을 툭 쳤다. 전 재산이 마이너스인 집구석에서 혼자 세상 편하게 날아다닌다는 말.'이 돼지, 꼭 나 같네.'김광식의 입 꼬리가 허탈하게 올라갔다. 치열하게 버텨왔지만 결국 마이너스 인생이 되어버린 자신과, 몸에 맞지도 않는 파리 날개를 달고 뚱뚱한 몸을 허공에 띄운 돼지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게시글을 자신의 개인 계정으로 공유했다.

  • 러브 옴니버스 10   86. <7편: 방구석 피카소의 기적의 좋아요>

    * 마이너스 통장과 날아라 돼지철수 아니, 김동구는 올해 열다섯 살이었다. 몸집은 황소만 한 중학생이었지만, 정신 연령은 여전히 뽀로로에 열광하는 대여섯 살에 멈춰 있었다. 동구의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밥 먹고, 웃고, 크레파스로 온 집안 벽을 도배하는 것. 그것이 동구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하지만 그 소통의 대가는 가혹했다. 어머니 순자는 오늘도 시뻘건 압류 딱지가 붙은 똥색 냉장고 앞에서 영수증 더미를 쥐고 머리를 쥐어뜯었다."이번 달 가스비에 전기세에, 월세는 세 달째 밀렸는데 사채 이자는 또 어떻게 내야 하나?"순자의 입에서 걸쭉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남편이 주식 대박을 꿈꾸다 남기고 간 것은 산더미 같은 빚과 듬직하게 아픈 아들 동구뿐이었다.식당 불판 닦기, 빌딩 새벽 청소,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 쓰리잡을 뛰어가며 버텼지만, 인생이라는 이름의 밑 빠진 독은 메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그때 거실 구석에서 맹렬하게 벽을 긁어대던 동구가 침을 흘리며 해맑게 웃었다. 동구의 이빨은 온통 파란색 크레파스 가루로 물들어 있었다."엄마! 맛있다! 블루베리 맛!"순자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동구야! 너 또 크레파스 씹어 먹었냐? 내가 그걸 먹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순자가 소리를 지르며 동구의 입을 벌려 크레파스 조각을 빼냈다. 동구는 그저 엄마가 자신과 놀아주는 줄 알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순자는 벽에 그려진 정체불명의 낙서를 보

  • 러브 옴니버스 10   85

    계절이 두 번 바뀌어 푸르른 녹음이 짙어지는 이듬해 초여름.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거실 탁자 위에는 여전히 하얀 서류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6개월 전의 그 삭막했던 이혼 서류가 아니었다. 봉투 겉면에는 은채의 흘림체 글씨로 '가족 통장 및 서준·서아 성장 앨범'이라고 예쁘게 적혀 있었다.부엌에서는 싱그러운 도마 소리와 함께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피어올랐다. 앞치마를 두른 진우가 서툰 솜씨로 애호박을 썰며 땀을 훔쳤고, 그 옆에서 은채가 웃으며 양념을 맞추고 있었다."진우 씨, 호박을 그렇게 크게 썰면 애들이 안 먹지. 서준이가 편식 대장인 거 몰라?""아, 맞다. 다시 잘게 썰게. 아직 요리는 초보라 서투네."진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사건 이후 진우는 회사에 강력하게 요구해 야근과 주말 출장이 없는 부서로 자원 이동했다.진급은 조금 늦어질지 몰라도, 퇴근 후 아이들과 함께 목욕을 하고 아내와 오늘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지금의 삶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엄마! 아빠! 이것 봐!"거실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서준이와 서아가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 서준이의 손에는 어린이집에서 직접 그린 가족 그림이 들려 있었다. 커다란 도화지 한가운데, 엄마와 아빠가 쌍둥이의 손을 아주 커다랗고 단단하게 맞잡고 있는 그림이었다.진우는 도마질을 멈추고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어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아이들의 통통한 볼에 번갈아 입을 맞추었다.

  • 러브 옴니버스 10   84

    "지하 3층에 유독가스랑 폭발 위험이 있어요! 당장 대피 방송 하시고 119에 신고해 주세요! 제발요!"경비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단지 내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안내방송이 주민들을 깨우는 사이, 은채는 아이들을 경비실 안전한 곳에 앉혀두고 다시 지하 주차장 출입구를 바라보았다.어두컴컴한 지하 주차장 입구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진우는 아직 나오지 못했다."진우 씨…… 제발……."은채는 가슴을 쥐어짜며 기도했다. 과거에 그토록 미워하고 원망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쳤지만, 이제 머릿속에 남은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가 없는 삶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 이 지옥 같은 밤을 버텨내고 마주할 아침에는 반드시 네 가족이 함께여야 했다.타이머의 숫자가 가리키던 그 순간."쿨럭! 쿨럭!"지하 주차장 차량 출입구의 가파른 경사로 위로,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처절하게 들쳐맨 채 기어 나오다시피 모습을 드러냈다. 진우였다.그가 지상 인도 위로 발을 디디며 배민우와 함께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 지하 3층에서 콰아아앙- 하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둔탁한 진동이 대지를 울렸다.탑차가 폭발한 것이다. 주차장 입구로 검은 연기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지만, 진우는 간발의 차로 지옥의 아가리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진우 씨!"은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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