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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세 가지 약속

저녁 무렵, 강윤아는 은찬의 등살에 못이겨 아름답게 화장을 한 뒤 은찬의 손을 잡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가는 내내 강윤아의 마음은 여전히 긴장되어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권재민이 선뜻 저녁 식사를 요청한 목적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추측하고 있었다.

“은찬아, 대표님께서 왜 갑자기 나를 찾아왔을까? 도대체 무슨 일이지?”

강윤아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은찬은 고개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

“엄마, 그렇게 걱정해서 뭘 해요? 아저씨가 엄마를 잡아먹지도 않을 텐데요 뭐.”

두 사람이 식당에 도착했을 때 권재민은 이미 안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윤아는 권재민 앞에서 다소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도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어요.”

권재민은 얼굴에 아무 표정이 없었다. 그는 은찬에게 시선을 돌려 메뉴판을 건넸다.

“뭐 먹고 싶은게 있는지 한 번 봐.”

은찬은 아무 거리낌 없이 권재민으로부터 메뉴판을 받아들고, 말했다.

“전 이거 먹을래요. 아니, 이것도 맛있어 보이는데••••••.”

“은찬아, 그렇게 많이 시켜서 다 먹을 수 있어?”

강윤아는 권재민의 기색을 조심스레 살폈다. 그녀는 은찬이 이렇게 함부로 하면 행여 그를 화나게 할까봐 황급히 나직이 꾸짖었다.

“엄마, 아저씨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권재민은 은찬을 힐끗 쳐다봤다.

“은찬이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많이 시켜도 돼.”

권재민의 말에 강윤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잠시 후, 세 사람은 조용히 밥을 먹고 있었다. 밥을 먹는 도중, 강윤아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재민 씨. 오늘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어요?”

권재민 같은 바쁜 사람이 별일이 아니면 굳이 저녁까지 사면서 시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친구가 저를 찾아왔는데, 어떤 사정으로 인해 제 아내 역할을 할 사람을 찾아야 해요.”

권재민은 강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에 강윤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계속하기를 기다렸다.

“강윤아 씨가 그 적임자라 생각하고 왔습니다. 혹시 저한테 좀 맞춰줄 수 있나요?”

권재민의 느긋한 말을 들으며 강윤아는 입술을 살짝 오므리고 머뭇거렸다.

그녀에게 있어서 결코 나쁠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마음속으로 딱히 내키는 것도 아니었다.

강윤아가 머뭇거리는 모습에 권재민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셨죠? 요즘 경제 상황이 좀 어렵다고 들었어요. 저도 강윤아 씨를 전에 몇 번 도와줬는데, 이번에 윤아 씨가 승낙하면 일이 끝나면 고용비로 2억 원을 줄게요.”

“그건••••••.”

권재민의 말에 강윤아는 잠시 고민했다. 그녀 옆에 앉아 있는 은찬은 그녀를 애타게 바라보았다. 그는 눈빛으로 어서 권재민의 요청을 들어주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네. 알았어요.”

강윤아는 잠시 생각한 끝에 승낙했다.

“하지만, 반드시 세 가지 약속을 지켜줘야 해요.”

“세 가지 약속이요?”

권재민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그래요, 말해봐요. 뭔데요?”

“제가 재민 씨 아내인 척을 하는 동안, 너무 친밀한 접촉은 하면 안 돼요. 어쨌든 연기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선을 넘어서는 절대 안돼요. 한마디로 우리가 이 연극을 함께 할 동안 저희가 지켜야 되는 적정거리는 유지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녀의 말에 권재민은 가볍게 웃으며 무슨 우스갯소리를 들은 것처럼 말했다.

“네, 걱정마세요. 전 그런 방면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말을 마치고, 권재민은 강윤아를 힐끔 쳐다봤다.

강윤아는 그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쨌든 그에게는 여자가 흘러넘칠 테니 여자를 안고 싶으면 그 수많은 여자들 중 한 명과 하룻밤을 보내면 되지, 굳이 강윤아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강윤아는 왠지 모르게 권재민의 말투가 귀에 거슬렸다.

권재민은 강윤아의 반응을 쭉 지켜봤다. 그는 피식 미소를 짓더니 다시 은찬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은찬아, 영어로 대화할 수 있어?”

“영어요? 그게 뭐가 어려워요?”

말을 마치고, 은찬은 유창하게 영어를 늘어놓았다. 아직 앳된 말투였지만 의외로 발음은 정확했다.

권재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미스는 이번 방문에서 아마 자신의 어떤 허점도 찾아내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식사를 마친 강윤아는 은찬과 함께 식당 입구에 서서권재민에게 인사를 건넸다.

“재민 씨, 그럼 전 은찬이랑 먼저 돌아가 볼게요.”

그러자 권재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강윤아를 훑어보더니 그녀를 불러세웠다.

“잠깐만요.”

강윤아는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무슨 일이죠?”

“오늘 이 복장은 불합격이에요.”

권재민은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 옷 사러 같이 가죠.”

강윤아는 사실 별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쨌든 권재민을 돕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그와 함께 백화점으로 갔다.

백화점에 들어서자 강윤아는 깜짝 놀랐다. 이곳은 그녀가 출국 전에 자주 찾던 곳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권재민은 매장에 걸려있는 옷을 한 번 훑어보더니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다.

“최신 모델을 전부 꺼내서 입혀주세요.”

그의 말에 직원은 금세 신이 나서 곧 옷을 한 무더기 가져와 강윤아에게 입혔다.

그 옷들을 보고 있자니 강윤아는 좀 난처했다. 이렇게 많은 옷을 언제 다 입어본 단 말인가?

“어서 입어봐요.”

권재민이 재촉했다.

강윤아는 옷을 한아름 안고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은찬은 권재민 품에 안겨 게임을 했다.

피팅룸에서 막 나왔을 때, 강윤아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은찬은 게임을 할 때 기세가 한껏 등등하여 권재민을 혼나기까지 했다.

“잔소리하지 말고 저만 믿고 따라오세요.”

그렇게 두 사람은 한 판을 치른 뒤에야 고개를 들고 강윤아를 바라봤다. 은백색 치마가 원래도 새하얀 강윤아를 더욱 하얗게 만들고 브이넥을 입어 선명한 쇄골이 눈에 띄어 청순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느낌을 드러냈다.

순간, 살면서 내로라하는 미녀를 많이 봐왔던 권재민조차 그녀의 아름다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옆에 있던 은찬은 더욱 신이 나서 박수를 쳤다.

“엄마, 이렇게 입으니까 정말 예뻐요.”

그렇게 강윤아는 옷을 여러번 갈아입기를 반복했다.

“은찬아, 뭐가 제일 잘어울려?”

은찬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다 예뻐요.”

그때, 권재민은 이미 자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거, 전부 다 포장해주세요.”

권재민이 이미 포장한 옷을 건네는 것을 보고 강윤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옷 사는 데 드는 비용은 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미리 얘기해야죠.”

“이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권재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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