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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강윤아, 집에 가자

권재민은 깜짝 놀라하며 은찬을 바라보았다.

은찬을 이렇게 빨리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더군다나 그가 자기 다리를 끌어안고 아빠라고 부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운전석에 있던 기사도 이 호칭을 듣고 크게 놀랐다.

그도 그럴것이 권재민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기로 소문이 나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에게 언제 이렇게 큰 아들이 생긴 것일까?

운전기사가 깜짝 놀라서 의아해 하는 사이, 권재민은 눈살을 찌푸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이 자식. 사람 잘 못 본 거 아니야? 난 네 아버지가 아니야.”

“아니요. 아저씨는 제 아빠가 맞아요.”

은찬은 두 손을 더 꼭 끌어안고 그가 도망갈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권재민은 얼굴이 찡그러졌다.

“놀리지 마. 난 네 아버지가 아니야. 어서 빨리 네 부모님한테 가.”

권재민은 은찬이 자기를 따라나온 줄 알고, 모처럼 화를 내지 않고 상냥하게 말했다.

은찬은 다급히 그의 목을 끌어안고 다가가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게 조용히 속삭였다.

“아저씨, 전 아저씨가 제 아빠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어요. 근데 지금 우리 아빠인 척 좀 해줄 수 있어요? 우리 엄마가 나쁜 사람들한테 당하고 있는데 저를 아빠가 없는 사생아라고 욕해서••••••, 실례지만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

권재민은 저도 모르게 동작을 멈추고 의아한 듯이 은찬을 바라보았다.

은찬은 딱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권재민은 무의식중에 그의 제안을 거절하려고 했다. 그는 이같은 곤난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은찬의 애원하는 눈빛에 그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네 엄마는 어디 있어?”

“저기요.”

은찬이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권재민은 은찬의 손길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강윤아와 두 눈이 마주쳤다.

앙증맞은 이목구비를 가진 강윤아는 하얀 피부에 햇빛을 받아 수정같이 반짝반짝 빛났다. 검고 긴 머리카락을 어깨에 아무렇게나 풀어헤치고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티셔츠와 멜빵 청바지를 입고 있어 전체적으로 너무 눈부셨다.

그가 그녀를 은근히 훑어보는 동안에도 강윤아는 그를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권재민은 한눈에 봐도 의심할 여지 없이 너무 뛰어났다.

그의 외모는 마치 하느님이 정성껏 조각한 예술품 같았다. 정교하고 입체적인 이목구비에, 곧고 높은 코,얇은 입술. 몸에 딱 맞는 검은색 양복은 그의 몸매를 더욱 훤칠하게 드러나게 했다. 게다가 목선까지 채운 셔츠 단추는 금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강윤아는 살면서 이렇게 예쁜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특히 그에게서 풍기는 고귀한 분위기는 오랫동안 높은 지위에 있었던 왕과 같아서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두렵게 한다.

 그녀는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권재민은 이미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품에 안긴 은찬에게 나직이 물었다.

“저 사람이 네 엄마야?”

“네. 강윤아라고 해요. 예쁘죠?”

그러자 권재민은 큰소리로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은찬을 살며시 안은 후 천천히 강윤아에게로 와서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윤아야, 집에 가자.”

‘윤아’라고 부르는 호칭에 강윤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정말 듣기 좋았다.

낮고 묵직하며 자성한 소리는 듣고만 있어도 사람을 유혹하는 것 같았다.

순간, 강윤아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녀는 권재민이 어떻게 은찬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들을 도우러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의 연기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바보나 다름이 없었다.

강윤아는 다급히 미소를 지으며 그의 팔짱을 꼈다.

“여보, 드디어 왔어요? 당신이 계속 나오지 않았으면 저랑 은찬이는 자꾸 이상한 파리가 꼬여서 죽을 뻔 했어요.”

강수아와 고승현은 이 말을 듣고 안색이 굳어졌다.

“누가 파리라는 거야?”

강수아는 화가 나서 말했다. 그녀는 노여움을 금치 못했다.

눈앞의 남자는 옆에 있는 고승현 못지 않게 훌륭했다. 심지어 그보다 더 빛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권재민과 고승현이 같이 서있을 때, 고승현은 아예 권재민에게 묻혀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 이 남자가 어떻게 저 사생아 아빠란 말이야?’

강수아는 곧바로 강윤아를 노려보며 비아냥거렸다.

“거짓말에도 정도가 있어. 길에서 아무 남자나 잡아다가 저 사생아 아빠 행세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강윤아는 그녀의 말에 참지 않고 손을 치켜들어 강수아의 뺨을 때렸다.

“누가 사생아야? 강수아. 네가 아무리 어째도 네 엄마는 불륜녀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아. 사생아는 우리 은찬이가 아니라 바로 너야. 넌 영락없는 사생아라고. 그런 네가 감히 무슨 자격으로 우리 은찬이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야?”

“가••••••, 감히 나를 때렸어?”

강수아는 정말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엄마 아빠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는데, 지금 뜻밖에도 이런 천한 여자에게 뺨을 맞았다.

강수아는 무의식중에 손을 때려 강윤아를 때리려고 했다. 그때, 권재민은 갑자기 손으로 강윤아의 허리를 껴안고 그녀를 뒤에 감췄다.

강윤아는 깜짝 놀랐다.

허리춤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와 크고 두툼한 남자의 손은 왠지 모르게 안정감을 줬다.

그녀의 심장은 저도 모르게 빨라졌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몸부림을 치려고 했다.

하지만 권재민은 꿈쩍도 하지 않고, 차가운 눈동자로 강수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에 다시 이 사람한테 손을 대봐. 이 손을 부러뜨릴 테니까.”

그의 말에 강수아는 깜짝 놀라 온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권재민은 더 이상 강수아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 덤덤히 시선을 거두며 강윤아에게 말을 걸었다.

“가자, 차에 타.”

강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강수아가 그렇게 쪼그러드는 모습을 보니, 그 어느때보다 통쾌했다.

두 사람이 은찬을 데리고 가려고 할 때, 고승현이 두 사람 앞을 가로 막았다.

“강윤아. 저 사람이랑 가지 마. 나랑 같이 가. 아저씨께서 집에서 기다린단 말이야.”

강윤아는 고승현을 쳐다보며 피식 비웃었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그 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꼭 가야 해? 길 막지 말고 저리 비켜.”

말을 마치고, 그녀는 고승현을 밀치고 권재민을 따라 차에 올라탔다.

고승현은 그 가만히 자리에 서서 강윤아와 그 남자가 함께 떠나는 뒷모습을 어두운 눈길로 빤히 바라보았다.

••••••

한편, 검은색 벤틀리 차량.

강윤아와 권재민은 사이에 은찬을 앉힌 후, 나란히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비록 권재민은 더 이상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지 않았지만, 강윤아는 여전히 허리춤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순간,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은찬은 오히려 신이 나서 권재민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아까 너무 잘했어요.”

권재민은 은찬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별 말씀을.”

말을 마친 후, 그는 옆에 있는 강윤아를 힐끔 쳐다보았다.

강윤아도 의혹과 경각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권재민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혹시 우리 은찬이랑은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권재민이 막 대답하려는데, 은찬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엄마, 이분이 바로 방금 카페에서 나랑 얘기했던 아저씨예요. 멋있고 자상하다고 했던 아저씨 말이에요. 거 보세요. 제 말이 맞죠? 아저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강윤아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권재민은 온몸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겼다. 강윤아는 그제야 자신이 권재민을 오해했던 것을 깨닫고 급히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별 거 아닌데요, 뭘.”

권재민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새, 차는 어느새 인적이 드문 도로 위를 달렸다.

“이따 어디서 내려줄까요?”

권재민이 물었다.

“그냥 앞에 내려주시면 돼요.”

강윤아가 말했다.

“혹시 두 분도 시내로 갈 건가요? 괜찮으시다면 가는 길에 모셔다 드릴 수 있습니다.”

그의 말에 운전기사는 깜짝 놀랐다. 권재민은 원래 여자를 1미터 이상 가까이 두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그럼 재민 씨를 너무 귀찮게 하는 거 아니에요?”

강윤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은찬이 다급히 대답했다.

“아니요. 전혀 안 귀찮아요. 아저씨는 좋은 분이잖아요.”

권재민도 은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 괜찮아요.”

“고마워요.”

그 후,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은찬만이 권재민에게 여러 질문을 했을 뿐이다.

강윤아는 그녀의 어머니를 걱정하느라 정신이 팔려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차는 마침내 도착지에 멈추었다.

권재민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윤아 씨, 다 왔습니다.”

“아, 네.”

그녀는 차 문을 열고 내리려 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그녀가 몸에 지니고있던 옥패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옥패는 매우 영롱해 보기만 해도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그건 바로 5년 전, 그 황당한 하룻밤이 지난 후, 그녀가 호텔에서 주운 물건이었다.

권재민도 그 옥패를 발견했지만 자세히 볼 겨를도 없이 강윤아가 재빨리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두 모자는 차에서 내린 후 권재민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했다.

권재민은 아무런 말없이 차 문을 닫고 운전기사에게 출발하라고 지시했다.

이윽고, 차는 시동을 걸고 재빠르게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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