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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작가: 동운
“지도교사 선생님들, 이건 아직 개별 지도를 받지 못한 학생들의 자료예요. 먼저 저를 따라오세요.”

교감의 미소는 겉보기엔 아주 자애로웠다. 하지만 박효섭은 그 자애로움 뒤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색함이 스며있는 걸 느꼈다.

같이 온 네 명 중의 양복 남자가 제일 먼저 발걸음을 뗐다.

게임을 하던 아이는 주위를 한 번 쓱 훑더니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따라갔다.

화장하던 여자가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화장 거울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그런데 손이 살짝 떨렸다. 말처럼 그렇게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후드티 남자는 겁에 질린 채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노려봤다. 눈 한 번 깜빡이는 것조차 두려운 듯했다.

...

걸어가면서 교감이 계속 설명했다.

이 학교는 모든 아이를 교장이 좋아하는 ‘완벽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 학생마다 지도교사를 붙여준다고 했다.

지도교사는 성적, 체력, 식습관 등 아이의 모든 면을 관리해야 했다. 하지만 관리 방법은 전적으로 자유였고 학교는 간섭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결과만 중요했는데 교장이 만족하면 그만이었다.

박효섭은 문득 15년 전에 그도 겨우 여덟 살이었다는 게 떠올랐다.

그때 어른들에게서 애들 공부가 참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교감이 말하는 이런 자유식 교육 방법은 15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

잠시 후 그들은 본관에 도착했다.

“지금은 중학교 1학년 1반의 몇 명 학생만 지도교사가 필요해요.”

교감이 웃으며 앞에 있는 교실을 가리키자 박효섭을 포함한 다섯 명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창문에 햇살이 번쩍 반사됐다. 안을 제대로 본 순간 모두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서류에 붙은 사진 속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눈앞의 아이들은 이목구비가 없었다. 그 대신 꽃봉오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떤 아이의 꽃봉오리는 이미 시들어가고 있었고 또 어떤 건 이제 막 피어나려는 듯했다. 아무튼 생기 넘치는 것도 있었고 떨어지기 시작한 것도 있었다.

더 기괴한 건 그들의 몸에서 색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흑백만 남은 아이들은 오래된 사진 속의 인물처럼 알록달록한 교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경고. 현재 붕괴율 2%.]

클럽의 알림음이 울린 순간 박효섭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이마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가슴속에서 두려움이 솟구쳤다.

‘이게 바로 붕괴율인가?’

갑자기 평정심을 잃은 바람에 방사능 폐병이 또 발작했다. 박효섭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 벽에 기대 격렬하게 기침을 토해냈다.

화장한 여자가 입술을 바들바들 떨면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유리 너머의 학생들을 가리키더니 교감에게 말했다.

“저... 저게... 학생이라고요? 다 괴물이잖아요!”

모두가 웬일로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눈앞의 아이들이 사람인지, 변이로 인한 어떤 산물인지 도저히 판단할 수 없었다.

그 말에 지금껏 다정하게 웃던 교감이 미간을 찌푸렸고 표정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바로 그때 교감이 몸을 이상하게 비틀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향기가 그녀의 몸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러더니 얼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피부가 찢어지고 이목구비가 무너지듯 갈라졌다.

순간 얼굴 전체가 꽃봉오리처럼 활짝 피어났다. 찢어진 살점 사이에 피비린내와 이상한 향기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눈에 들어온 건 텅 빈 꽃술이었다. 꽃술 한가운데서 꿈틀거리는 핏빛 촉수가 있었고 경고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이들은 우리 학교의 소중한 인재들이에요. 또 그런 모욕적인 말을 쓰시면 노동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어요.”

그때 박효섭이 조용히 뒤에 서서 천부적인 재능인 심리 초상화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눈앞의 교감이 대체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 순간 박효섭은 교감이 도화지 위에 그려진 인물이 된 것 같았다. 선이 복잡하게 엉켜있었는데 그 안에 뭔가가 숨겨져 있는 게 분명했다.

‘지우개로 불필요한 선들을 지워야 하나?’

머릿속으로 생각하자 도화지 위에 지우개 하나가 떠올랐다. 박효섭은 본능적으로 필요 없어 보이는 선들을 지워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교감이 나타났다. 눈이 곤충처럼 겹눈으로 변했고 몸 전체에 기괴한 솜털이 돋았다.

밀짚모자와 청바지로 꽃을 다듬는 정원사처럼 가꿨다.

아이들을 쳐다보는 교감의 두 눈에 탐욕과 갈망이 일렁거렸고 곤충 같은 입에서 침까지 흘러내렸다.

바로 그때 초상화가 검은 재로 변해 흩어지더니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박효섭은 애써 숨을 고르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표정을 다잡았다.

만약 그림 속의 모습이 교감의 진짜 모습이라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건 또 다른 위장이라는 뜻일까?

교감의 변화에 화장한 여자는 이미 겁을 먹고 주저앉았다.

게임을 하던 아이는 여전히 교감을 무시한 채 교실 안의 학생들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 후드티 남자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이젠 숨소리마저 거칠어졌다.

유일하게 양복 남자만이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티 나지 않게 화장한 여자의 앞을 가로막으며 미안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제 동료가 실수를 범했네요. 저희는 그냥 이렇게 훌륭한 아이들을 처음 봐서 놀랐을 뿐이에요.”

억지스러운 변명이었는데 뜻밖에도 통했다. 교감의 몸에 나타났던 기이한 변화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시 사람의 얼굴과 몸으로 돌아온 그녀는 조금 전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태연했다.

“그럼 이제 선택하세요. 한 시간 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교감은 바로 자리를 떠났다.

양복 남자는 매너 있게 화장한 여자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는 안경을 고쳐 썼다.

“아무래도 우리끼리 잘 상의해봐야겠는데요? 사실 저는 이미 테스트를 한번 통과한 정식 회원이에요. 아주 책임감 있게 말씀드리자면 리얼 탈출 서바이벌 클럽에서의 모든 선택이 생과 사를 갈라요. 우리 다섯이 뭉쳐서 힘을 합치면 이번 테스트를 꽤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양복 남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눈에 핏발이 서려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불안감을 줬다.

“허... 역겨워.”

게임을 하던 아이가 갑자기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

양복 남자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더니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아이에게 물었다.

“꼬마야, 너한테... 다른 생각이라도 있는 거야?”

남자아이가 양복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런 테스트에 협력 따위는 없어요. 우리 모두 경쟁자거든요. 힘을 합치자고요? 지금 그런 말을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처참하게 죽어요.”

남자아이는 애어른처럼 말하고는 교실 문을 벌컥 열어 학생들 중 한 명을 가리켰다.

그 학생의 얼굴에 핀 꽃봉오리는 이제 막 활짝 피어나려는 듯 부풀어 있었다.

학생이 남자아이에게 천천히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이 악수한 순간 남자아이의 손목에 핏빛처럼 붉은 원형 고리가 생겼다.

남자아이가 학생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넌 이제 수업 안 해도 돼. 나 따라와.”

그러고는 나란히 교실을 나갔다.

화장한 여자도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여우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양복 남자의 팔을 감싸 안았다.

“난 그쪽이랑 협력할게요. 그쪽이 하라는 대로 할게요.”

말하면서 몸을 일부러 양복 남자의 몸에 더 가까이 밀착시켰다. 양복 남자가 박효섭과 후드티 남자를 번갈아 봤다.

“두 분은 어떻게 할 건가요?”

후드티 남자의 태도가 버스 안에서 봤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그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박효섭은 입을 다물었다.

양복 남자가 겉보기엔 확실히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묘하게 불편했다.

방사능 변이가 시작된 지 벌써 15년. 연인, 가족, 친구 사이에서도 이익 때문에 서로의 등에 칼을 꽂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이런 생사가 걸린 테스트에서 먼저 나서서 좋은 사람 노릇을 한다고?

박효섭은 고개를 저으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죄송해요. 제가 대인공포증이 있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요. 전 일단 혼자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래도 서로 알아낸 정보가 있으면 나중에 공유하도록 하죠.”

양복 남자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오늘 저녁 다섯 시에 운동장에서 만나죠.”

박효섭은 반대하지 않고 그대로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의 아이들은 이목구비가 없는 꽃봉오리 머리를 뻣뻣하게 돌려 그를 쳐다봤다. 새카만 꽃술로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는 바로 선택하지 않고 버스 안에서 들었던 요구를 다시 떠올렸다.

일주일 안에 선택한 아이가 교장의 인정을 받아 순조롭게 졸업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 규칙을 지금 눈앞의 꽃 상태와 연결 지어보면 꽃이 활짝 핀 아이일수록 성공 확률이 높을 가능성이 컸다.

어쨌거나 교장이 만족할 만한 아이는 시들어가는 꽃을 가진 아이가 아닐 테니까.

그 점에서 보면 게임을 하던 남자아이의 선택이 아주 현명했다. 다만...

박효섭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손에 든 서류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이름, 나이, 가정환경, 주소, 성적 등급, 취미까지 전부 적혀 있었다.

‘음? 취미?’

그가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교감이 말했듯 아이를 배양하는 방법은 완전히 자유였다. 그렇다면 배양 방법이 아주 중요했다.

단순히 학업만 지도한다면 난이도가 너무 낮아 보였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선택한다면?

규칙 어디에도 성적이 좋은 아이가 반드시 교장의 마음에 든다고 쓰여 있지 않았다.

그때 박효섭의 시선이 서류 중의 한 남자아이에게 머물렀다.

[이름 주빈.]

[취미 그림 그리기.]

[학업 등급 D.]

박효섭은 수업 중인 담임 선생님에게 다가가 서류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주빈이라는 아이를 개별 지도하고 싶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효섭의 시선이 담임 선생님이 가리키는 쪽으로 향했다가 맨 뒤쪽에 앉아 있는 한 아이에게 멈췄다.

‘역시...’

박효섭이 속으로 생각했다.

D등급은 가장 낮은 성적 등급이었다. 이런 아이라면 맨 뒷자리에 앉는 것도 당연했다.

꽃이 시들기 시작한 주빈을 보며 박효섭은 미소를 머금은 채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주빈이 멈칫하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효섭이 웃으며 주빈의 손을 잡았다. 악수를 나눈 순간 손목 위에 핏빛처럼 붉은 원형 고리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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