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루시안의 말이 떨어진 뒤에도 세레나는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제2심장이 처음 잘려 나온 원본.’그 표현은 충분히 위험했고, 화면에 떠오른 「FIRST HEART : ACTIVE」라는 문구도 불길했다. 하지만 천이백 년 전 사람의 기억과 고대 시스템의 자동 번역만으로 눈앞의 존재를 모든 제2심장의 기원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세레나는 수정구 너머 연구실부터 확인했다.“황실 기사들은 건물 밖으로 완전히 철수했습니까?”클로드의 부단장이 답했다.“예. 연구소 정문 밖으로 이동했습니다.”“소장님도요?”“함께 있습니다.”“좋습니다. 이제 누구도 연구소에 접근하지 마세요. 마력 차단 결계도 건물에 직접 걸지 말고 외곽에서 설치해 주세요. 안쪽 신호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라시엘이 세레나의 옆으로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검은 공간 속 존재는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움직일 필요가 없어 보였다. 형체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얼굴과 몸의 경계가 흐렸고, 검은 밤하늘 같은 공간과 절반쯤 섞여 있었다.세레나는 렌에게 물었다.“생체 반응 있습니까?”『판정 불가.』“자기 인식은요?”『있다. 하지만 위치를 정할 수 없다.』“무슨 뜻이죠?”『저 사람 모양에만 있는 게 아니야. 방 전체에서 같은 신호가 나와.』세레나의 눈빛이 달라졌다.그렇다면 사람 모양은 본체가 아닐 수도 있다. 의사소통을 위해 만들어 낸 투영일 가능성도 있다.“루시안.”세레나가 그를 돌아봤다.“‘원본’이라는 표현은 직접 확인한 사실입니까?”루시안은 아직 창백했다. 하지만 질문을 들은 뒤에는 천천히 호흡을 정리했다.“아니.”“누군가에게 들었습니까?”“기록에서.”“그 기록은 누가 작성했습니까?”루시안이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아르젠-1이 생기기 전 연구자들.”“그들이 FIRST HEART라고 불렀고요?”“당시에는 다른 말이었다. ‘처음 나뉜 심장’에 가까웠어.”세레나는 즉시 기록했다.「FIRST HEART = 현대 시스템 번역명. 원어 의미는 ‘처음 나뉜
왕립 마물생태연구소.세레나는 화면에 떠오른 좌표를 세 번 확인했다.첫 번째는 위치 오차를 확인하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아르젠-1에서 역추적한 신호가 정말 같은 장소를 가리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세 번째는 자신이 그 좌표를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점검하기 위해서였다.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SOURCE LOCATION : ROYAL MONSTER ECOLOGY RESEARCH INSTITUTE」오차 범위는 반경 11미터.그 정도면 연구소 전체도 아니었다.세레나가 지난 6년 동안 사용했던 고대마물 생태연구실, 정확히는 가장 안쪽에 있는 표본 보관실과 겹쳤다.“제 연구실입니다.”라시엘의 표정이 굳었다.“정확히?”“네.”세레나는 손가락으로 좌표를 확대했다.“연구소 본관 서쪽 3층, 제 연구실 뒤에 붙은 표본 보관실입니다. 아르젠 관련 기록과 북부에서 수집한 토양, 털, 마력석 표본을 보관하던 곳이에요.”카른이 물었다.“그곳에 이런 장치를 두신 적은 없습니까?”“제가 모르게 제 연구실 바닥에 천이백 년 된 경계 장치를 설치했다면 그건 제가 둔 게 아닙니다.”“그건 그렇군요.”“그리고 제가 바닥을 뜯어 본 적도 있습니다.”라시엘이 세레나를 돌아봤다.“왜?”“배관이 이상해서요.”“연구원이 배관 때문에 바닥도 뜯나?”“연구비가 없으면 연구원이 다 합니다.”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슬픈데 설득력 있습니다.”세레나는 웃지 않았다.표본 보관실의 구조는 누구보다 잘 안다. 벽 두께도, 마력 배관 위치도, 바닥 아래 빈 공간이 없다는 것도 확인한 적이 있었다.그렇다면 신호원은 물리적인 방 아래가 아니다.다른 가능성이 있다.“공간 중첩.”루시안이 처음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천이백 년 만에 깨어난 사람의 목소리는 여전히 잠겨 있었지만, 조금 전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세레나는 곧바로 그를 봤다.“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옛 노드는 같은 장소에 있어도 같은 공간에
루시안.화면에 나타난 이름을 본 순간 가장 먼저 굳은 사람은 키퍼였다. 카시안은 기억을 더듬듯 미간을 좁혔고, 카른은 세레나와 라시엘의 표정을 번갈아 살폈다. 아델이 삼백 년 동안 되살리려 했던 남자의 이름과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반응이었다.그러나 세레나는 이름보다 먼저 기록 시점을 확인했다.수면 시작 약 1,196년 전.아델이 알고 있던 루시안이 살았던 시대보다 거의 구백 년이나 앞선다. 현재까지 확보한 기록이 크게 틀리지 않는 이상 동일 인물일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무엇보다 본인이 이미 말했다.아델이 사랑한 루시안은 자신이 아니라고.세레나는 눈 아래 잠들어 있는 존재에게 다시 질문을 보냈다.「루시안은 태어날 때부터 사용한 이름입니까?」답이 돌아오기까지 십여 초가 걸렸다.「아니다.」예상했던 답이었다.「언제부터 사용했습니까?」이번에는 조금 더 긴 문장이 나타났다.「경계를 지키는 사람이 되었을 때 받았다. 그러나 강제로 받은 이름은 아니다. 이전 이름을 버릴 것인지, 함께 사용할 것인지, 새 이름을 고를 것인지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루시안을 골랐다.」세레나의 눈빛이 달라졌다.“역시 개인명만은 아니었어요.”라시엘이 옆에서 물었다.“직책명인가?”“그것도 아직 정확하지 않습니다. 계승명이나 역할명에 가까울 수도 있어요.”키퍼가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루시안.”그 이름을 입 안에서 굴려 본 뒤, 키퍼가 눈을 감았다.“뜻이 기억나.”세레나는 곧바로 그를 바라봤다.“억지로 떠올리지 마세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만 말씀해 주세요.”“문 앞에 남는 사람.”“원어 그대로의 뜻입니까?”“아니. 느낌이 그래.”세레나는 그것도 구분해 기록했다.루시안이라는 이름이 여러 시대에 반복된 이유가 조금 보였다. 특정한 혈통이 같은 이름을 대물림했을 수도 있지만, 경계를 지키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고를 수 있던 계승명이라면 아델이 사랑했던 후대의 루시안 역시 같은 이름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하지
좌표가 나타났다고 해서 바로 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적어도 세레나에게는 그랬다. 검은 산맥 너머의 영구 설원, 지도에도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NODE XII, 살아 있다고 표시된 현재의 보관자, 그리고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마티아스 칼테른. 지금까지 나온 정보만 늘어놓으면 당장 말을 타고 북쪽으로 달려가야 할 것처럼 보였지만, 세레나는 오히려 관찰일지를 덮고 아르젠-0의 묘지부터 다시 돌아봤다.“출발은 내일 해 뜬 뒤로 미룹니다.”카른이 놀라기보다 안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는 세레나가 미지의 장소를 발견했다고 무조건 뛰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반면 키퍼는 NODE XII가 표시된 지도를 보며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열렸는데?”“그래서 더 안 갑니다. 누가 열었는지, 왜 지금 열었는지, 우리가 도착했을 때 무엇이 기다리는지도 모르니까요.”“하지만 M.K.가…….”“오라고 했죠. 오지 않아도 된다고도 했고요.”세레나는 지도 위에 남은 마지막 문장을 손끝으로 가리켰다.「이번에는 아무도 너를 데려오지 않을 것이다.」문장 자체는 강요가 아니다. 오히려 선택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가 세레나의 성향을 알고 있다면, 선택권을 주는 방식 자체가 유도일 수도 있었다.“상대가 저를 강제로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과 상대를 신뢰해도 된다는 결론은 별개입니다. 마티아스 칼테른이 18년 전 제4회로 차단식을 복사했고, XII형 신체의 원래 목적을 알고 있었던 건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아델의 긴급 이전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했는지, 백탑의 실험을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 라그넬과 어떤 관계였는지는 아직 모릅니다.”로웬이 팔짱을 꼈다.“나도 동의한다. 내가 백탑에 있을 때 마티아스는 분명 R.B. 기록에 접근할 수 있었어.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직접 움직이지 않았지.”“어떤 의미로요?”“말 그대로야. 회의에도 거의 나오지 않았고, 실험 승인서에도 이름이 없었어. 대신 기록이 사
아르젠-0의 가장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길은 지도에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지도에 표시할 수 없는 길에 가까웠다. 키퍼가 손을 대기 전까지는 분명 막힌 벽이었고, 벽에 새겨진 두 개의 초승달이 서로를 향해 빛난 뒤에야 돌벽 중앙에 가느다란 틈이 생겼다. 그 틈이 사람 하나 지나갈 만큼 벌어지자 오래 갇혀 있던 냉기가 바닥을 타고 흘러나왔다.세레나는 가장 먼저 측정기를 들었다.“마력 농도 정상 범위보다 2.7배 높습니다. 독성 반응은 없고, 아르젠 핵과 유사한 파동이 있습니다. 다만 살아 있는 개체 반응은…….”말끝이 흐려졌다.없다.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것도 아니었다.생명 반응은 잡히지 않는데 인식 회로만 수백, 아니 수천 개가 겹쳐 있었다. 조금 전 중앙 시스템에서 확인했던 4,815개의 ‘대기 대상’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달랐다.라시엘이 세레나보다 반 걸음 앞에 섰다.“뒤에 있어.”“전하 뒤에서는 측정이 안 됩니다.”“그럼 옆.”“그건 가능합니다.”라시엘이 만족스럽게 자리를 옮겼다.카른이 뒤에서 작게 중얼거렸다.“협상이 빨라지셨군.”“들린다.”“들으시라고 했습니다.”세레나는 두 사람을 무시하고 뒤를 돌아봤다. 이번에 내려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라시엘, 카른, 키퍼, 카시안, 로웬, 엘리엇. 렌은 세레나가 직접 만든 차단 케이스 안에 들어 있었다.에블린은 오지 않았다.그 결정은 세레나가 아니라 에블린이 했다.‘지금은 내 몸부터 확인할게.’인간 손 하나를 되찾은 에블린이 처음으로 자기 치료를 다른 사건보다 먼저 선택했다. 세레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반박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엘리엇이 내려오기 전까지 에블린의 회로 상태를 세 번이나 확인했다.아델도 남았다.자기 기억이 외부에서 닫히려 했던 직후였다. 무엇보다 M.K.의 메시지가 아델을 직접 언급했다.‘아델이 기억을 되찾았다면 백탑으로 오지 마라.’경고인지 유도인지 모른다.그렇다면 더더욱 아델을 상대가 원하는 장소로 데려갈 이유가 없었다.“세레나.”키퍼가 불렀
아델의 기억 회로가 닫히고 있었다.단순한 기억 소실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분명히 존재하던 회로가 바깥에서부터 차례로 접히며 접근 경로 자체를 지우고 있었다. 누군가 책의 내용을 찢는 대신, 그 책이 꽂힌 서가와 방 번호까지 통째로 없애는 것처럼.세레나는 측정기를 든 채 아델에게 다가갔다.“아델, 저 보세요.”“세레……나.”“제 이름을 기억하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저한테 집중하지 마세요.”아델의 흔들리던 눈이 멈췄다.“왜……?”“한 사람만 고정점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본인을 설명하세요. 지금 기억나는 것만.”“나는……아델 브리엘.”“좋습니다.”“루시안을…….”“루시안 말고요.”아델의 입술이 굳었다.세레나는 일부러 단호하게 끊었다. 지금 아델이 가장 강하게 붙잡는 기억은 루시안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미 한 번 실패한 구조였다. 자기 존재 전체를 한 사람에게 걸어 두면 그 기억이 흔들리는 순간 자신도 함께 무너진다.“좋아하는 음식.”“뭐?”“싫어하는 날씨. 잘하는 일. 못하는 일. 연구 말고 좋아했던 것. 아무거나.”“지금……그걸?”“지금이라서 해야 합니다.”라시엘이 세레나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아델의 반대편에 섰다.“대답해.”아델이 그를 노려봤다.“명령하지 마.”라시엘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좋군.”세레나도 고개를 끄덕였다.“그것도 하나 확인됐습니다. 명령받는 걸 싫어합니다.”“세레나…….”“계속.”아델은 헛웃음을 흘리려다 얼굴을 찡그렸다. 검게 변한 초승달 문양이 손바닥에서 손목으로 번지고 있었다.“단것……싫어해.”“좋습니다.”“쓴 차는 좋아하고.”“네.”“눈은……싫어.”라시엘이 물었다.“왜?”“추워.”“그건 눈의 문제가 아니라 옷의 문제 아닌가.”“너는……설표니까 닥쳐.”카른이 고개를 돌렸다.클로드는 입술을 깨물었다.세레나만 진지하게 측정기를 봤다.“자기 인식 61에서 67. 계속하세요.”“……정말 올라?”“네.”아델이 숨을 몰아쉬었다.“바느질 못해.”“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