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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성에 연구원을 들였습니다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1 11:18:58

“……이분과 밤을 보내신 겁니까?”

카른의 질문이 떨어진 뒤, 방 안에는 숨 막힐 듯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세레나는 눈을 크게 뜬 채 카른을 바라봤고, 라시엘은 눈을 감았다.

딱 봐도 오해였다.

아주 전형적이고, 설명하기 피곤한 종류의.

문제는 상황이 오해를 부르기에 너무 완벽했다는 데 있었다.

세레나는 잠옷 위에 가운을 걸치고 있었고, 라시엘은 어제 그녀에게 빌린 셔츠를 입고 있었다. 침실 문은 열려 있었으며 그 앞에는 검은 털이 묻은 담요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엇보다.

라시엘의 셔츠 단추는 몇 개나 풀려 있었다.

붕대를 다시 확인하느라 세레나가 잠깐 풀어 둔 뒤 미처 잠그라고 말하지 않은 탓이었다.

카른의 시선이 그 부분에서 멈췄다.

세레나도 뒤늦게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건 설명을 안 하면 정말 이상하겠다.

“아닙니다.”

세레나가 먼저 말했다.

카른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밤을 보내긴 했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라시엘이 눈을 떴다.

“세레나.”

“네?”

“그렇게 말하면 더 이상해진다.”

“……아.”

맞다.

세레나는 입을 다물었다.

카른의 표정은 이미 더 묘해져 있었다.

“그런 의미가 아닌 밤을…….”

“그만.”

라시엘의 낮은 목소리가 방 안을 정리했다.

카른이 입을 닫았다.

하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수십 개의 질문이 떠 있었다.

라시엘은 미간을 짚었다.

“변신했다.”

카른의 표정이 곧바로 굳었다.

조금 전까지의 오해가 단숨에 사라졌다.

“……여기서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분 앞에서?”

라시엘이 짧게 대답했다.

“들켰다.”

카른의 시선이 세레나에게 날아왔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경계.

세레나는 그 변화를 느꼈다.

조금 전까지는 대공과 밤을 보낸 수상한 여자 정도로 봤다면, 이제는 에른하르트 가문의 비밀을 알아버린 외부인으로 보고 있었다.

카른의 손이 본능적으로 검 손잡이 쪽으로 내려갔다.

라시엘의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졌다.

“손 치워.”

카른이 멈췄다.

“전하.”

“세레나 브리엘은 손대지 마.”

단호했다.

카른은 잠시 라시엘을 바라보다가 손을 내렸다.

그러나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세레나가 대답했다.

“제 눈앞에서 변하셨습니다.”

카른의 얼굴이 굳었다.

“……직접?”

“네.”

“완전 변이까지?”

“설표 형태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네.”

카른이 아주 천천히 라시엘을 봤다.

“전하.”

목소리가 낮아졌다.

“상태가 그 정도까지 진행된 겁니까?”

세레나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그 정도까지.’

역시 단계가 있다.

단순한 변신이 아니다.

진행성.

어제 자신이 짐작했던 것과 맞아떨어졌다.

세레나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라시엘은 그 변화를 보고 즉시 알아차렸다.

또 분석하고 있다.

“세레나.”

“네?”

“지금 머릿속에서 가설 세우지 마.”

그녀가 멈칫했다.

“티 납니까?”

“많이.”

세레나는 입을 다물었다.

카른이 둘을 번갈아 봤다.

이상했다.

자신이 아는 라시엘은 이렇게 누군가와 길게 대화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구나 자신의 상태를 들킨 외부인이라면 먼저 입단속부터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하.”

카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분을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성으로 데려간다.”

“…….”

세레나도 카른도 동시에 라시엘을 봤다.

카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공성으로요?”

“그래.”

“외부인을?”

“연구 협력자로.”

이번에는 카른의 눈썹이 확실하게 올라갔다.

“연구?”

세레나가 작은 목소리로 정정했다.

“정확히는 전하의 상태에 관한 공동 연구에 가깝습니다.”

카른은 더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 됐다.

라시엘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마차 준비해.”

“전하.”

“카른.”

짧게 이름만 불렀는데도 경고였다.

카른은 한숨을 삼켰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돌아서기 전 세레나를 다시 봤다.

이번에는 단순한 경계보다 궁금증이 섞여 있었다.

이 여자가 도대체 뭘 했기에.

평생 누구도 가까이 두지 않는 대공이 하루 만에 성까지 데려가겠다고 하는지.

그리고 그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라시엘이 소파에서 일어나는 순간 몸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세레나가 바로 손을 뻗었다.

“전하.”

라시엘의 팔을 잡았다.

동시에 그의 굳었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카른은 그걸 봤다.

그리고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세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네?”

“방금 뭘 하신 겁니까?”

“잡았습니다.”

카른은 기가 막힌 듯 말했다.

“그건 저도 봤습니다.”

그의 시선이 라시엘에게 향했다.

“마력이 안정됐습니다.”

라시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으로 카른은 확신했다.

표정이 완전히 변했다.

“전하.”

이번에는 농담이나 오해가 아니었다.

“설마 이분이…….”

“아직 모른다.”

라시엘이 잘라 말했다.

카른은 입을 다물었다.

세레나는 그 둘의 대화 속에서 또 하나의 단어를 잡았다.

‘이분이.’

카른은 뭔가를 알고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을 가능성.

안정화 반응이 완전히 처음은 아닐 수도 있다.

“저기.”

세레나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두 남자의 시선이 동시에 향했다.

“혹시 저 같은 사례가 예전에도 있었습니까?”

카른이 즉시 표정을 정리했다.

라시엘은 세레나를 바라봤다.

“없다.”

“정말로요?”

“내가 아는 한.”

세레나는 카른을 봤다.

“부관님은 뭔가 아시는 것 같은데요.”

카른은 순간 당황했다.

라시엘이 아주 미세하게 한숨을 쉬었다.

이 여자는 정말 놓치는 게 없었다.

“성에 가서 이야기하지.”

세레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라시엘의 팔을 놓았다.

바로 그 순간.

라시엘의 손이 세레나의 손목을 잡았다.

세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전하?”

라시엘도 잠깐 멈췄다.

무의식이었다.

손이 떨어지자마자 마력이 다시 거슬리게 움직였고, 몸이 반사적으로 세레나를 붙잡았다.

카른은 그 장면까지 봤다.

눈빛이 아주 기묘해졌다.

라시엘은 그 시선을 느끼고 손을 놓았다.

“……마차까지.”

세레나가 이해했다.

“접촉이 필요하십니까?”

카른의 눈이 또 커졌다.

라시엘의 표정이 서늘해졌다.

세레나는 그제야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마력 안정화를 위해서요.”

“설명하지 마.”

“왜요?”

“할수록 이상해진다.”

세레나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일단 입을 닫았다.

카른은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조금 떨렸다.

라시엘이 그걸 봤다.

“카른.”

“예, 전하.”

“웃나?”

“아닙니다.”

“고개 들어.”

카른이 얼굴을 들었다.

웃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입술 안쪽을 상당히 세게 깨물고 있었다.

라시엘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마차 준비해.”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카른은 이번에는 정말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세레나가 물었다.

“화나셨습니까?”

“아니다.”

“표정은 화나셨는데요.”

“원래 이렇다.”

“아.”

세레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라시엘은 왠지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별채를 정리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레나는 원래 열흘 정도 머물 생각으로 왔기 때문에 짐 대부분이 연구 장비였다.

문제는 그 연구 장비가 지나치게 많았다는 데 있었다.

카른이 마차 앞에서 상자를 하나씩 실어 나르는 기사들을 바라봤다.

첫 번째.

마력 측정기.

두 번째.

표본 보관함.

세 번째.

필사본 열두 권.

네 번째.

골격 조각.

다섯 번째.

용도를 알 수 없는 유리병 백여 개.

여섯 번째.

돌.

카른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건 뭡니까?”

세레나가 상자를 들여다봤다.

“돌이요.”

“그건 압니다.”

“마물 발자국 화석이 남아 있는 암석 표본입니다.”

카른이 한동안 돌을 봤다.

“꼭 가져가야 합니까?”

“네.”

“대공성에도 돌은 많습니다.”

“이 돌은 다릅니다.”

카른은 더 묻지 않았다.

그 대신 라시엘을 봤다.

대공은 마차 옆에 서 있었다.

“전하.”

“왜.”

“정말 전부 싣습니까?”

“그래.”

“성에 연구실을 새로 만들 생각이십니까?”

라시엘이 잠깐 멈췄다.

세레나도 들었다.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연구실을 만들어 주시는 겁니까?”

카른의 얼굴이 굳었다.

자신이 괜한 말을 했다는 걸 알아차린 표정.

라시엘은 잠시 세레나를 바라봤다.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연구실이라는 단어 하나에.

“필요하나?”

“물론이죠.”

“어느 정도.”

세레나가 즉시 대답했다.

“기본 마력 분석대 두 개, 저온 표본실 하나, 해부대는 큰 걸로 하나, 장기 관찰용 격리 공간, 고대문헌 보관실과 약재실이 있으면 좋습니다.”

카른이 천천히 얼굴을 돌렸다.

라시엘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또.”

세레나가 멈칫했다.

“더 말씀드려도 됩니까?”

“말해.”

“마력 차단실도 하나 있으면 좋고요. 가능하면 천장이 높은 곳으로.”

“왜?”

세레나가 라시엘을 봤다.

“전하가 설표로 변하시면 크시잖아요.”

카른이 기침했다.

라시엘의 관자놀이가 움직였다.

“내가 연구실에 들어간다는 전제로 만들지 마.”

“공동 연구라고 하셨잖아요.”

“그렇다고 내가 표본이 되는 건 아니다.”

세레나는 아주 잠깐 침묵했다.

“……제목은 이미 거의 그렇게 정해졌는데.”

“무슨 제목.”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레나는 시선을 피했다.

라시엘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세레나.”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카른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웃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이해를 포기한 얼굴이었다.

문제가 생긴 건 출발 직전이었다.

세레나가 마차에 올라탔고, 라시엘도 뒤따라 들어갔다.

카른이 문을 닫으려다 멈췄다.

“전하.”

“뭐지.”

“저는 다른 마차로 가겠습니다.”

라시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카른은 아주 진지하게 대답했다.

“두 분의 연구를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세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괜찮습니다. 부관님도 같이 타셔도 돼요.”

카른의 시선이 잠깐 라시엘에게 향했다.

“아닙니다.”

“자리가 충분한데요.”

“저는 말이 편합니다.”

밖에는 눈보라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세레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 날씨에요?”

“북부 사람은 괜찮습니다.”

카른은 문을 닫았다.

라시엘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레나는 맞은편 라시엘을 바라봤다.

“부관님이 전하를 굉장히 어려워하시네요.”

“아니다.”

“아닌가요?”

“나를 놀리는 중이다.”

세레나의 눈이 조금 커졌다.

“감히 대공 전하를요?”

“오래된 사이다.”

“친구입니까?”

라시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레나는 그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좋네요.”

“뭐가.”

“전하께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요.”

라시엘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세레나는 별생각 없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라시엘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에게도.

그 말이 조금 이상하게 남았다.

마차는 산길을 따라 북쪽으로 움직였다.

대공성까지는 약 세 시간.

첫 한 시간은 비교적 평온했다.

세레나는 자신이 가져온 노트를 무릎 위에 펼쳐 놓고 어젯밤의 데이터를 정리했다.

라시엘은 맞은편에 앉아 그녀를 지켜봤다.

세레나는 집중하면 주변을 잊었다.

펜을 들고 수치를 정리하다가 가끔 자기 입술을 건드렸고, 가설이 맞지 않으면 미간을 찌푸렸다.

라시엘은 처음에는 창밖을 보려 했다.

그러나 시선이 자꾸 그녀에게 돌아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마력이 안정되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뿐이었다.

“전하.”

갑자기 세레나가 불렀다.

라시엘이 시선을 들었다.

“왜.”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해.”

“변신은 언제 처음 시작됐습니까?”

라시엘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오래됐다.”

“몇 살 때요?”

“열셋.”

세레나의 펜이 멈췄다.

생각보다 어렸다.

“처음부터 완전 변신이었습니까?”

“아니.”

“그럼 부분 변이부터?”

“눈.”

라시엘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밤이 되면 시야가 달라졌다.”

세레나는 조용히 기록했다.

“그다음은.”

“청각.”

“후각은요?”

“그 뒤.”

“발톱이나 이빨 같은 신체 변화는 언제부터?”

라시엘은 잠깐 생각했다.

“열여덟.”

“완전 변신은요?”

침묵이 조금 길었다.

“스물넷.”

세레나의 표정이 굳었다.

진행 간격이 줄어들고 있다.

감각 변화에서 부분 변이까지 5년.

부분 변이에서 완전 변이까지 6년.

그런데 지금 라시엘은 서른하나.

완전 변이가 시작된 지 7년.

그리고 그는 ‘설표 상태가 길어질수록 기억이 흐려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다음 단계가 있다.

세레나가 펜을 내려놓았다.

“전하.”

“왜.”

“완전 변신 다음 단계가 있습니까?”

라시엘의 시선이 천천히 돌아왔다.

세레나는 그 표정을 보고 답을 알아차렸다.

“있군요.”

라시엘은 말하지 않았다.

“뭡니까?”

“몰라도 된다.”

“치료하려면 알아야 합니다.”

“치료할 수 있다고 확신하나?”

세레나는 잠시 침묵했다.

“아니요.”

솔직한 대답이었다.

라시엘의 눈빛이 아주 조금 변했다.

세레나는 말을 이어 갔다.

“아직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제가 전하에게 왜 영향을 주는지도 모르고, 변신 원인이 저주인지 질병인지 인위적 마법인지도 몰라요.”

“그런데 치료를 말하나?”

“모르는 것과 불가능한 건 다르니까요.”

라시엘은 그녀를 바라봤다.

세레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모르는 건 무서운 게 아니라 알아내야 하는 거예요.”

그 말.

라시엘은 어딘가에서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제였지.

설원에서.

아직 자신이 의식이 흐릿했을 때.

세레나가 비슷한 말을 했다.

‘알면 덜 무서우니까요.’

그녀에게는 그저 연구에 관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라시엘에게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자신이 평생 피해온 것.

결국 짐승이 될 미래.

사람을 해칠 가능성.

그것은 알아내야 할 것이 아니라 최대한 숨겨야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단계.”

라시엘이 말했다.

세레나가 펜을 들었다.

“기억이 사라진다.”

펜 끝이 멈췄다.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해.”

마차 안이 조용해졌다.

이번에는 세레나도 바로 질문하지 못했다.

라시엘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얼마나 오래 이 사실을 알고 살아왔는지 느껴졌다.

“완전히.”

그가 덧붙였다.

“짐승이 된다.”

세레나는 천천히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물었다.

“전하는 지금 몇 단계입니까?”

라시엘은 그녀를 바라봤다.

“마지막 직전.”

세레나의 표정이 굳었다.

어젯밤의 일이 떠올랐다.

설표로 있을 때 처음에는 의식이 흐릿했다.

자신이 꼬리를 잡았을 무렵에야 또렷해졌다고 했다.

변신 주기도 점점 불규칙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생각보다 시간이 없다.

세레나가 다시 입을 열려던 순간.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쿵!

“……!”

세레나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라시엘의 손이 즉시 뻗었다.

허리.

그의 팔이 세레나의 허리를 감싸 당겼다.

세레나는 그대로 맞은편 자리에서 라시엘 쪽으로 끌려갔다.

마차가 한 번 더 크게 흔들렸다.

이번에는 완전히.

세레나의 어깨가 라시엘의 가슴에 부딪혔다.

“괜찮나?”

낮은 목소리가 바로 위에서 들렸다.

세레나는 잠깐 대답하지 못했다.

너무 가까웠다.

한 팔은 자신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고, 다른 손은 좌석을 짚은 채 몸 전체로 흔들림을 막고 있었다.

셔츠 너머로 전해지는 체온.

가까운 숨.

그리고.

쿵.

쿵.

쿵.

심장박동.

세레나는 자신도 모르게 생각했다.

설표였을 때 들었던 것과 정말 같다.

그 생각을 한 순간 스스로가 어이없었다.

지금도 연구 생각인가.

“세레나.”

“네?”

“괜찮냐고 물었다.”

“아.”

세레나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괜찮습니다.”

라시엘이 몸을 조금 풀었다.

그런데.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세레나는 허리에 남은 팔을 내려다봤다.

“전하.”

“왜.”

“손.”

라시엘도 그제야 알아차렸다.

자신이 세레나를 아직 붙잡고 있다는 걸.

그가 천천히 손을 거두려 했다.

그 순간.

마차 바깥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휙—!

그리고.

쾅!

마차 벽에 무언가 박혔다.

라시엘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숙여.”

그는 세레나를 품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전하?”

두 번째 공격.

쾅!

이번에는 창문이 깨졌다.

유리 조각이 안으로 쏟아졌다.

라시엘이 몸을 돌려 세레나를 완전히 가렸다.

그의 어깨에 작은 파편이 박혔다.

세레나의 눈이 커졌다.

“전하!”

밖에서 기사들의 고함이 터졌다.

“습격이다!”

“전하를 보호해!”

마차가 멈췄다.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라시엘은 세레나를 뒤로 밀었다.

“여기 있어.”

“상처가—”

“움직이지 마.”

그가 문을 열려 했다.

세레나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라시엘이 돌아봤다.

“왜.”

세레나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그의 피부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느꼈기 때문이다.

팔을 잡은 손끝 아래.

마력이 요동치고 있었다.

빠르게.

“전하.”

라시엘도 알아차렸다.

동공이 흔들렸다.

공격.

피 냄새.

극도의 긴장.

조건이 겹쳤다.

변신이 시작되고 있었다.

“손 놔.”

라시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싫습니다.”

세레나가 더 강하게 붙잡았다.

“놓으라고.”

그의 손끝이 변하기 시작했다.

손톱이 검게 길어졌다.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세레나는 다른 손으로 그의 손을 감쌌다.

“저 보세요.”

“세레나.”

“전하.”

그녀는 물러나지 않았다.

“저 보세요.”

라시엘의 시선이 세레나에게 고정됐다.

마력은 여전히 거칠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세레나의 손이 닿은 곳부터 진정되기 시작했다.

라시엘의 숨이 무거워졌다.

“……어떻게.”

세레나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원인보다 결과가 중요했다.

“괜찮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아직 전하입니다.”

라시엘의 눈이 흔들렸다.

그 말이 이상하게 깊게 들어왔다.

아직.

전하라고.

짐승이 아니라.

“그러니까.”

세레나가 그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

“저 놓지 마세요.”

바깥에서는 여전히 검이 부딪히고 있었다.

피 냄새는 점점 진해졌고.

라시엘의 마력은 폭주와 안정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그런데도 그는 이번에는 세레나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손을 더 단단히 감쌌다.

그리고 그 순간.

마차 지붕 위에서 검은 그림자가 떨어졌다.

쾅!

천장이 깊게 내려앉았다.

세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라시엘의 얼굴이 완전히 굳었다.

지붕을 뚫고 내려온 검은 칼날에서.

그가 너무도 잘 아는 마력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삼백 년 전 에른하르트 가문에 남겨졌던 것과 같은.

마물의 마력을 강제로 뒤틀어 깨우는 마법.

라시엘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황실.”

세레나는 그 한마디를 분명히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처음으로 깨달았다.

라시엘의 변신은 단순한 가문의 저주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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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이상할 만큼 크게 울렸다.딱.세레나는 그것을 곧바로 줍지 않았다. 시선은 여전히 라그넬에게 고정되어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방금 들은 문장들이 하나씩 분리되고 있었다.팔 년 전.백탑.로웬 브리엘.살아 있었다.그리고 R.B.를 없애려고 했다.가슴부터 반응했다. 당장이라도 라그넬의 멱살을 잡고 로웬이 어디에 있는지, 왜 살아 있으면서 돌아오지 않았는지, 자신을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 두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하지만 세레나는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그리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지금 자신이 들은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그넬의 증언이다.그것도 자신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증거.”라그넬의 눈썹이 올라갔다.세레나는 그제야 몸을 숙여 바닥에 떨어진 펜을 주웠다.“증거를 보여 주세요.”“내 말을 믿지 않는 건가?”“당연하죠.”즉답이었다.라그넬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방금 그렇게 놀라 놓고?”“놀란 것과 믿는 건 별개입니다.”세레나는 기록장을 펼쳤다. 손끝이 조금 떨렸지만 글씨는 흐트러지지 않았다.「라그넬 증언.」「1. 로웬 브리엘을 마지막으로 본 시점—8년 전.」「2. 장소—백탑.」「3. 로웬이 R.B. 제거를 시도했다고 주장.」그리고 마지막 문장에는 밑줄을 두 번 그었다.「검증되지 않음.」라그넬이 그것을 바라보다 낮게 웃었다.“정말 지독하군.”“칭찬으로 듣겠습니다.”“로웬도 그랬어.”세레나의 펜 끝이 아주 잠깐 멈췄다.하지만 이번에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계속 교수님 이야기를 꺼내서 저를 흔드셔도 소용없습니다.”“흔든다?”“네.”그제야 세레나가 라그넬을 바라봤다.“당신은 제가 교수님과 어머니 이야기에 약하다는 걸 알아요. 조금 전에도 그랬죠. 필요한 정보와 감정적인 정보를 일부러 섞어서 제가 질문하게 만들었습니다.”라그넬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제가 질문합니다.”“대답하지 않겠다면?”“괜찮

  • 마물 연구원은 대공을 표본으로 삼았습니다   아홉 마리의 설표가 한 사람을 사냥했습니다

    라그넬이 먼저 움직였다.아니.세레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검은 마력이 폭발한 순간 그의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고, 다음 순간에는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서 십여 미터나 떨어진 곳에 검은 잔상만 남아 있었다. 인간의 근육이나 마력 강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속도였다.“오른쪽!”세레나가 외쳤다.콰앙—!라시엘이 몸을 틀었다.라그넬의 팔과 거대한 앞발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인간의 팔이라고 부르기에는 이미 형태가 너무 많이 무너져 있었다. 검은 털과 비늘이 뒤섞인 피부 아래에서 서로 다른 마력들이 꿈틀거렸고, 손끝에는 아르젠의 것보다 훨씬 길고 뒤틀린 발톱이 자라 있었다.라시엘의 거대한 몸이 옆으로 밀렸다.바닥이 길게 갈라졌다.“라시엘!”크르릉—!대답.세레나는 그 짧은 울음만으로도 알아들었다.괜찮다.정확히는.아직 괜찮다.“역시.”라그넬이 웃었다.“완성도가 다르군.”그가 라시엘에게 다시 달려들려는 순간.카시안이 옆구리를 물었다.콰득!라그넬의 몸이 휘청였다.노아와 마르가 동시에 반대편에서 덮쳤다. 시온은 다리를, 테오와 리안은 등을 노렸다. 엘렌은 정면으로 뛰어들지 않고 라그넬이 피할 방향을 막았다.세레나의 펜이 빠르게 움직였다.「개체별 역할 분담 존재.」「카시안—전면 제압.」「노아·마르—측면 압박.」「시온—하체 움직임 제한.」「테오·리안—후방.」「엘렌—퇴로 차단.」그리고.라시엘.세레나의 시선이 움직였다.그는 처음부터 라그넬의 목을 노리지 않았다.심장.정확히는.마물핵이 몰려 있는 가슴.“알아챘어요.”카른이 검을 든 채 세레나 앞을 지키며 물었다.“뭘 말입니까?”“전하도 보고 있어요.”“뭘요?”“마물핵.”세레나는 라그넬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전하는 마력생리학을 모르는데.”“연구원님 옆에 얼마나 있었는데요.”“그것만으로는—”말하다가.세레나가 멈췄다.그렇다.얼마나 있었지.자신이 밤마다 라시엘의 마력 흐름을 측정하고, 인간 회로와 마물핵의 충돌을 설명하고, 무엇이 변할 때

  • 마물 연구원은 대공을 표본으로 삼았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불렀습니다

    “……세레나.”그 이름이 들리는 순간, 세레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숨을 쉬는 것도, 눈을 깜빡이는 것도, 조금 전까지 라시엘의 손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도 잠시 잊었다. 문밖에 서 있는 거대한 설표만 보였다. 다른 아르젠보다 조금 작은 체구, 검은 털을 따라 흐르는 보랏빛과 은빛의 문양, 그리고 세레나와 닮은 보랏빛 눈.처음 보는 모습이었다.기억 속의 어머니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세레나가 기억하는 에블린 브리엘은 흐릿했다. 얼굴조차 선명하지 않았다. 어릴 적 자신을 안아 주던 가느다란 팔과 머리카락에서 나던 향, 잠들기 전 이마에 입을 맞춰 주던 따뜻한 입술 정도만 파편처럼 남아 있었다.그런데 눈앞에는.네 발로 선 거대한 설표가 있었다.‘제가 어머니를 보고 마물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해요?’불과 어젯밤 라시엘에게 했던 말이 그대로 돌아왔다.무서웠다.정말로.그래서 세레나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세레나.”다시.어머니가 불렀다.첫 번째보다 조금 더 분명했다.설표의 목으로 인간의 말을 만드는 건 여전히 힘겨워 보였지만, 카시안보다 발성이 훨씬 자연스러웠다. 완성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실감났다.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인간의 기억과 사고, 심지어 언어의 일부까지 유지하는 상태.세레나의 머릿속 한쪽에서는 벌써 그렇게 분석하고 있었다.그게 싫었다.지금만큼은.연구자가 아니라 딸이고 싶은데.어떻게 해야 딸이 되는지 모르겠다.그때.손끝에 온기가 닿았다.라시엘이었다.그는 세레나를 자기 뒤로 완전히 숨기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호하듯 반쯤 앞을 막고 있었지만, 지금은 옆으로 물러나 있었다.대신 손만 잡았다.세레나가 선택할 수 있게.앞으로 갈지.도망칠지.그 자리에서 멈출지.“……전하.”“여기 있어.”라시엘이 낮게 말했다.“네가 어디로 가든.”그 한마디에.막혀 있던 숨이 조금 돌아왔다.세레나는 라시엘의 손을 한 번 꽉 잡았다가 놓았다.그리고.한 걸음 앞으로

  • 마물 연구원은 대공을 표본으로 삼았습니다   어머니는 아직 저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사람이…… 아니라고요?”세레나의 목소리가 이상할 만큼 차분하게 흘러나왔다.조금 전까지 거대한 설표가 억지로 인간의 말을 밀어내던 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피가 섞인 숨,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혀와 목으로 간신히 만들어 낸 이름.에블린 브리엘.자신의 어머니.살아 있다.그런데 사람이 아니다.서로 함께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사실이 머릿속에서 계속 충돌했다.세레나는 라시엘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은 채 거대한 설표만 바라봤다. 설표의 목에서는 아직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말을 할 때마다 목 안쪽이 찢어지는 모양이었다.“정확히 무슨 뜻입니까?”설표가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세레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가려다가 멈췄다.04가 여전히 앞을 막고 있었다.“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이번에는 질문하지 않았다.“목이 다쳤어요.”가방을 천천히 내려놓았다.설표들이 동시에 움직였다.라시엘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세레나는 즉시 멈췄다.“치료 도구입니다.”거대한 설표의 눈이 가방으로 향했다.“제가 가까이 가는 게 싫다면 여기 두겠습니다.”세레나는 가방에서 치료용 마력 연고와 붕대, 소독액을 꺼냈다. 공격용 마도구가 아니라는 걸 보여 주듯 하나씩 눈 위에 올려놓았다.“이건 상처에 바르는 약이고.”연고.“이건 소독액.”작은 병.“그리고 이건 붕대입니다.”라시엘이 낮게 물었다.“스스로 쓸 수 있겠나?”“저분들은 앞발이잖아요.”“그럼 왜 꺼내.”“제가 치료해도 된다고 허락해 줄 수도 있으니까요.”라시엘은 입을 다물었다.세레나는 다시 설표를 봤다.“다가가도 됩니까?”이번에는.오래 기다렸다.거대한 설표가 04를 바라봤다.두 개체 사이에 말 없는 무언가가 오갔다.그리고 04가 옆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길이 열렸다.세레나의 눈빛이 달라졌다.“허락한 것 같습니다.”“같이 간다.”라시엘이 말했다.“전하께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그래서 같이 가.”“저분들이 전하를 경계하면요?”“그럼 네가 멈추라

  • 마물 연구원은 대공을 표본으로 삼았습니다   멸종한 설표가 일곱 마리였습니다

    “일곱.”세레나가 천천히 되물었다.카른은 고개를 끄덕였다.“예.”“전부 직접 확인하셨습니까?”“확실합니다.”“착각 가능성은요?”“없습니다.”카른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세레나는 그의 손에 들린 검은 털을 바라봤다. 길고 빽빽한 털 사이로 희미한 은빛이 섞여 있었다. 불빛 아래에서는 그저 검은색처럼 보였지만, 마력등을 가까이 가져가자 털 표면을 따라 가느다란 은빛 문양이 떠올랐다.아르젠 설표.삼백 년 전 멸종했다고 기록된 존재.그러나 이제 세레나는 그 기록 자체가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르젠은 자연적으로 태어난 마물 종이 아니었다. 인간에게 마물핵을 이식한 제3실험실의 결과물이었고, 그중 살아남은 이들이 북부로 도망쳤다. 에른하르트의 선조 역시 그중 하나였다.그런데 일곱 마리라니.세레나는 조금 전까지 뜨거웠던 입술도, 라시엘과 나눴던 두 번째 입맞춤도 순식간에 잊었다. 책상 위에 펼쳐 둔 연구 기록장을 끌어당긴 뒤 새 페이지를 펼쳤다.“발견 위치부터 말씀해 주세요.”라시엘이 옆에서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세레나가 고개를 들었다.“왜 그러십니까?”“아무것도 아니다.”“방금 한숨 쉬셨는데요.”“네가 돌아왔구나 싶어서.”“어디서요?”라시엘은 잠깐 세레나의 입술을 봤다.그 시선을 따라 의미를 알아차린 순간, 세레나의 얼굴이 조금 뜨거워졌다.“……지금은 연구가 먼저입니다.”“알아.”“아르젠이 일곱 마리입니다.”“그것도 알아.”“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그렇겠지.”묘하게 체념한 목소리였다.카른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눈빛에 무언가 알아챈 기색이 지나갔다.세레나가 바로 그를 봤다.“왜 그러십니까?”“아무것도 아닙니다.”“표정이 있는데요.”“전하께 배웠습니다. 원래 이 얼굴입니다.”“카른.”라시엘의 목소리가 서늘해졌다.“죄송합니다.”카른이 즉시 자세를 바로 했다.세레나는 입술을 꾹 눌러 웃음을 참은 뒤 다시 펜을 들었다.“계속하죠. 발견 위치.”“폐광에서 남서

  • 마물 연구원은 대공을 표본으로 삼았습니다   다른 의미가 뭔데

    “다른 의미가 뭔데.”라시엘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세레나는 그대로 굳었다.조금 전까지는 분명 봉인실이었다.루시안 에른하르트의 귀환 기록.라그넬 브리엘.삼백 년을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있는 연구자.폭발을 일으키려던 시종.그리고 이제부터는 우리가 저쪽을 찾겠다고 선언한 직후였다.분명히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었다.그런데 왜.지금은 라시엘의 얼굴밖에 안 보이지.세레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그러자 라시엘도 멈췄다.더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다만.시선은 피하지 않았다.“세레나.”“네.”“대답.”“꼭 지금 해야 합니까?”“네가 먼저 말했는데.”맞다.자기가 말했다.‘자꾸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니까요.’그걸 왜 말했지.세레나는 머릿속으로 아주 빠르게 회피 가능한 답을 찾았다.보호자로서.환자로서.연구 협력자로서.북부 대공으로서.뭐든 붙이면 될 것 같았다.그런데 라시엘은 그런 대답을 들으면 분명히 알아챌 것이다.거짓말이라고.세레나는 결국 입술을 다물었다.라시엘의 눈빛이 아주 조금 깊어졌다.“어렵나.”“조금요.”“연구보다?”“훨씬.”라시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세레나는 그 표정을 보고 괜히 억울해졌다.“웃으시면 안 됩니다.”“왜.”“전하는 이미 답을 아는 사람처럼 여유롭잖아요.”그 말에.이번에는 라시엘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모르는데.”“거짓말.”“진짜로.”라시엘이 낮게 말했다.“네 입으로 듣고 싶어서 묻는 거다.”그 말이 더 곤란했다.세레나는 시선을 잠깐 아래로 내렸다.라시엘의 셔츠 뒤쪽.아까 폭발을 막느라 찢어진 부분.방금 세레나가 붙인 붕대.그게 보이자 오히려 심장이 더 빨라졌다.정말.왜 저렇게까지 했을까.자기가 맞아도 된다고.세레나가 다치는 것보다 낫다고.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사람.“전하.”“그래.”“저는.”입을 열었다가.다시 멈췄다.연구에서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면 된다.가설이면 가설이라고 적고.확정되지 않은 건 보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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