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바텐더가 얄밉게 웃었다.
나랑 비슷한 연령대로 보이는, 20대 츄리닝 청년, 한지태가 내 호텔 방(라운지에서 나오니 같이 따라나왔다) 소파에 드러누우며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주인 양반, 너무 꼽게 보지 마. 내가 몸 쓰는 건 질색이어도,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거든? 너 10층 깼지? 근데 11층 정보는 하나도 없지?”
“…그래서?”
“나한테 컵라면 하나 끓여주면, 11층부터 20층까지 '프리패스 루트' 알려줄게. 어때? 남는 장사 아냐?”
녀석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단순한 백수가 아니다. 저 눈은… 수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고인물’의 눈이다.
19층에 도착하자, 상쾌한 바람과 꽃향기가 우리를 반겼다.18층의 지옥 같은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천국에 온 듯한 풍경이었다.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섬들. 그 사이를 잇는 구름다리. 그리고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한 공중 정원."와… 여기 진짜 예쁘다. 힐링 되네."한지태가 기지개를 켰다.백광호도 투구를 벗고(얼굴은 흉터투성이였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하지만 나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아름다운 장미에는 가시가 있는 법.이 19층 '바빌론'은 겉보기엔 평화롭지만, 실상은 탑에서 가장 위험한 '환각과 미혹의 층'이다."정신 똑바로 차려. 여기 있는 꽃들, 사람 뇌를 파먹는 식인 식물이야."내 경고에 한지태가 화들짝 놀라며 옆에 있던 꽃에서 떨어졌다.그 꽃이 '쳇'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 건 기분 탓일까?"일단 정비부터 하자. 정태수한테 뜯은 거랑 오리하루콘 정리도 좀 하고."우리는 안전지대(Safe Zone)인 19층 광장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나는 인벤토리에서 [천공 길드 마스터 링]을 꺼냈다.이걸 어떻게 쓸까?그냥 팔기엔 아깝고, 내가 쓰자니 추적당할 위험이 있다.'한지태한테 맡겨볼까.'"지태야. 이거 해킹 가능하냐?"내가
광폭화한 베헤모스는 이성을 잃고 날뛴다. 방어력은 0이 되지만 공격력은 200%가 되는 상태.저 상태의 공격을 맞으면 정태수는 100% 죽는다.하지만 정태수가 죽으면 베헤모스가 회복할 시간을 벌게 된다.내가 원하는 시나리오는 '동귀어진(同歸於盡)'. 둘 다 죽거나, 최소한 둘 다 전투 불능이 되는 것이다."지태야, 서포트해. 놈의 시야를 가려!""오케이! 섬광탄(Flash Bang) 투척!"한지태가 인벤토리에서 [마력 섬광탄]을 꺼내 던졌다.번쩍!동굴 안이 대낮처럼 하얗게 물들었다."크아악! 눈! 내 눈!""그르르?!"정태수와 베헤모스 모두 시력을 잃고 비틀거렸다.이 틈이다.나는 [대여점]을 열었다.이번엔 자비란 없다. 가장 확실하고, 가장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하다.[무기 대여: 저격총 - 바렛 M82A1 (대물 저격용 / 마개조 버전)]등급: A+효과: 드래곤의 비늘도 뚫는 관통력. [헤드샷] 성공 시 치명타 확률 100%탄환: [미스릴 철갑탄] 장전대여료: 300 카르마 / 1발내 손에 묵직하고 차가운 강철의 감촉이 전해졌다.길이 1.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저격총.나는 바위 위에 총신을 거치하고 스코프를 들여다보았다.타겟은 둘.
“이, 이 진동은… 설마 '그 녀석'이 깨어난 건가?”“그 녀석이라니요?”“이 광맥을 지키는 수호자… 고대 지룡(Earth Dragon), '베헤모스'!”쿠아아아앙!!동굴 바닥이 갈라지며, 집채만 한 입이 튀어 나왔다.바위 피부를 가진 거대한 지렁이? 아니, 용(Dragon)이었다.눈이 퇴화한 대신 거대한 입과 거대한 이빨을 가진 괴물.레벨 80. 보스급 몬스터.“크르르르… 내 보물을 훔치는 쥐새끼들이 있구나….”베헤모스가 우리를 향해 포효했다.그 입김만으로도 백광호가 뒤로 밀려날 정도였다.“망했다. 형, 오리하루콘 캐다가 우리가 뒤지게 생겼는데?”“조용히 해. 짐 싸.”나는 화로를 회수하고(시간 다 됐다), 오리하루콘 주괴를 챙겼다.'도망쳐야 하나? 아니. 내 눈은 베헤모스의 이마에 박힌 거대한 보석을 향해 있었다. 저것도… 돈이 될 것 같은데?'“광호 씨, 막을 수 있겠어?”“……(절레절레).”백광호가 고개를 저었다. 레벨 80은 무리다. 스치기만 해도 즉사다.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노인의 눈이 커졌다.'천공 길드가 아무리 파도 잡석밖에 안 나오는 이유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드워프들은 진짜 광맥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가짜 위치를 알려주고 노역을 하고 있었던 것.'“…우릴 이 지옥에서 꺼내준다면. 내 이름 '토린'을 걸고 맹세하지.”“좋아. 딜 성립.”나는 뒤를 돌아보았다.경비병들이 백광호의 방패를 뚫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비켜라! 돼지 녀석!”“마법사! 화염구 날려!”쾅! 쾅!마법이 터졌지만 백광호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저주받기 전, 철벽이라 불리던 시절의 감각이 돌아오는 듯했다.'“자, 이제 슬슬 정리해 볼까.”나는 [대여점]을 열었다.'광산이니까 광산에 어울리는 무기를 써야지.'[무기 대여: 다이너마이트 번들 (무한 투척)]* 등급: B* 효과: 1분간 다이너마이트를 무제한으로 던질 수 있습니다.* 대여료: 150 카르마내 손에 불붙은 다이너마이트 묶음이 생겼다.“폭파 공법 들어갑니다!”나는 다이너마이트를 경비병들 머리 위로 던졌다.
나는 [청량한 바람의 망토(C급)]를 두르고 있어 쾌적했지만, 녀석에게는 빌려주지 않았다. '카르마 아껴야지.' 대신 백광호에게는 [냉각수 팩]을 하나 붙여주었다. '탱커는 소중하니까.'“자, 지도 봐봐. 광산이 어디야?”한지태가 궁시렁대며 단말기를 켰다.“여기서 북동쪽으로 10km. '붉은 바위 협곡' 안쪽에 있어. 근데… 데이터가 좀 이상해.”“왜?”“협곡 입구부터 마력 반응이 촘촘해. 결계(Barrier)가 쳐져 있어. 그것도 아주 비싼 군용 결계로.”'천공 길드다. 놈들이 벌써 작업을 쳐놨군.'일반적인 길드라면 깃발이나 꽂아놓고 영유권을 주장하겠지만, 천공 길드 정도 되는 거대 세력은 아예 요새를 짓고 입구를 막어버린다.'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자기들끼리만 꿀을 빨겠다는 심보다.'“이동하자. 걸어가긴 뭐하니까 차 하나 뽑고.”나는 [대여점]을 열었다.사막 지형에 특화된 이동 수단.[탈것 대여: 매드 맥스 버기카 (B급)]* 효과: 어떤 험한 지형도 주파하는 서스펜션. 부스터 장착.* 대여료: 100 카르마 / 시간쿠앙!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투박하게 생긴 4인승 버기카가 소환됐다.엔진 소리가 짐승의 포효처럼 거칠었다.“타. 드라이브나 가자.”나는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았다.백광호가 조수석에 묵직하게 앉았고, 한지태는 뒷좌석에 구겨져 탔다.“형, 운전면허는 있는 거지?”“탑에서 면허가 무슨 소용이야. 밟으면 가는 거지.”부아앙-!내가 엑셀을 밟자 차체가 붕 뜨며 사막을 질주하기 시작했다.---[현재 위치: 탑 18층 - 붉은 바위 협곡, 천공 길드 제3 채굴기지]협곡 입구는 철통 보안이었다.높이 10미터의 감시탑이 세워져 있었고, 중무장한 경비병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입구 옆에는 푯말이 하나 박혀 있었다.[경고: 천공 길드 사유지. 무단 침입 시 즉시 사살.]우리는 버기카를 멀리 세워두고, 바위 뒤에 숨어서 망원경으로 동태를 살폈다.“와… 규모 봐라. 저게 다 노예들이야?”한지태가 혀를
“지금이다.”나는 망토를 걷어내고 일어났다.“우린 저놈들이 흘린 거나 주우러 가자.”개미 떼가 추격조를 쫓아 숲으로 몰려가자, 개미굴 입구가 텅 비었다.그리고 바닥에는 추격조가 도망치며 떨어뜨린 무기들과, 죽은 개미들이 남긴 마석이 즐비했다.“싹 다 수거해. 하나도 남기지 말고.”“충성!”한지태가 신나서 뛰어 나갔다. 백광호도 묵묵히 마석을 주워 담았다.이것이 바로 창조 경제.적의 손을 빌려 사냥하고, 적의 아이템까지 챙기는 완벽한 설계.하지만 내 목표는 단순히 잡동사니가 아니었다.나는 개미굴 깊숙한 곳을 바라보았다.병력이 빠져나간 지금이야말로, 이 굴의 주인인 ‘여왕개미’를 알현할 절호의 기회다.---[현재 위치: 거대 개미굴 - 여왕의 산란장]개미굴 내부는 미로 같았지만, 한지태의 네비게이션 덕분에 헤매지 않고 최심부에 도달할 수 있었다.병정 개미들이 대부분 밖으로 나간 탓에 방어는 허술했다.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산란장.그곳에는 집채만 한 크기의 [퀸 앤트]가 거대한 배를 꿈틀거리고 있었다.“키릭? 키에엑?”여왕이 우리를 발견하고 경계음을 냈다. 호위병인 [로얄 가드 앤트] 두 마리가 앞을 막아섰다.레벨 45. 중간 보스급 몬스터다.“광호 씨, 로얄 가드 두 마리 탱킹 가능?”“……!”백광호가 방패를 두 번 두드렸다. 가능하단 소리다.그가 고함과 함께 도발 스킬을 시전했다.“크아아아!!”[스킬: 전장의 함성 (C급)]* 효과: 주변 적의 어그로를 강제로 끕니다.로얄 가드들이 백광호에게 달려들었다.백광호는 구석으로 놈들을 유인하며 철벽 방어 모드에 들어갔다.이제 남은 건 여왕 하나.여왕은 이동 능력이 거의 없지만, 강력한 산성 브레스와 정신 지배 마법을 쓴다.“지태야, 넌 뒤에서 분석이나 해. 약점 찾아.”“오케이! 데이터 스캔 중!”나는 여왕 앞으로 걸어갔다.여왕의 입에서 보라색 산성액이 끓어올랐다.치이익!강력한 브레스가 나를 향해 뿜어졌다.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아이템 대여:
“지태야, 맵 띄워.”“아, 진짜 가기 싫다… 여기 데이터 보니까 '자이언트 맨티스(사마귀)'랑 '애시드 앤트(산성 개미)'가 주력 몹이래. 독 저항 포션 없으면 녹는다는데?”“걱정 마. 내가 다 준비했으니까.”나는 인벤토리에서 미리 사둔 [보급형 해독제]를 던져주었다.그때였다.스스
이건 ‘부자들만 쓸 수 있는’ 아이템. 아니, 부자도 1분이면 파산하는 거지 같은 아이템이다.나는 주저 없이 [대여] 버튼을 눌렀다.팟-!내 몸에 찬란한 황금빛 갑옷이 입혀졌다.동시에 시스템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렸다.[경고! 마신의 갑옷이 착용되었습니다!][카르마가 급속도로 소모됩니다! -10,000, -10,000….]
나는 땅을 박찼다.[광전사의 검술]이 내게 속삭였다. ‘목을 노려라. 심장을 찔러라. 더 잔인하게, 더 확실하게.’놈이 남은 왼팔을 휘둘렀지만, 내 눈에는 너무나 느리게 보였다.고개를 살짝 숙여 피한 뒤, 그대로 대검을 놈의 명치에 꽂아 넣었다.푸욱-!"크르르… 컥."이게 끝이 아니다. 마검 다인슬레프의 진정한 능력은 지금부터였다.[특수 효과 발동: '폭혈(暴血)'][검에 묻은 대상의 피를 폭발시킵니다.]콰직! 펑!놈의 몸속에 박힌 검신에서 붉은 섬광이 터졌다. 놈의 등 뒤로 거대한 구멍이 뚫리며 뼈와 살점이 사
"젠장, 이게 말이 돼?"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돌바닥 위에서, 누군가의 잘린 팔이 내 발치로 굴러왔다.익숙한 시계였다. 싸구려 가죽 줄에 흠집이 난 다이얼. 방금 전까지 "이번 튜토리얼만 끝나면 빚 다 갚고 고향 내려간다"며 웃던 김 씨 아저씨의 것이었다."크으으… 캬아악!"전방 30미터 앞. 튜토리얼의 '최종 보스'라 불리는 놈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놈의 이름은 [붉은 갈기 라이칸슬로프].권장 공략 레벨 10.최소 5인 이상의 각성자로 구성된 파티가 필요한 몬스터다.하지만 지금 이곳에 남은 건, 각성자도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