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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게시일: 2026-06-03 10:54:24

나는 1층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돔형 건물, 헌터 협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헌터 협회 1층 로비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튜토리얼을 갓 끝낸 신규 각성자들, 파티원을 구하는 헌터들, 그리고 아이템을 사고파는 상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B급 탱커 구합니다! 수익 배분 3:7! 장비 지원!”

“포션 팝니다! 협회 정가보다 10% 싸게 드려요!”

나는 그 소란을 뚫고 [재심사 접수처]로 향했다.

대기 줄이 뱀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번호표를 뽑으니 대기인 수만 120명.

“하아….”

한숨이 나왔다. 오늘 안에 던전에 들어가긴 글렀나 싶을 때였다.

“비키세요! 비켜!”

로비 입구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거구의 사내들이 사람들을 밀치며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황금색 독수리 문양이 박혀 있었다.

‘황금 독수리 길드.’

국내 10대 길드에는 못 미치지만, 1층에서 20층 사이의 저층 구간에서는 꽤나 악명 높은 길드였다. 주로 초보자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하거나, 사냥터를 통제하며 자릿세를 뜯는 양아치 집단으로 유명했다.

그 선두에 선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선글라스를 끼고 껌을 짝짝 씹어대는 사내.

박철민. 황금 독수리 길드의 행동대장이자 B급 격투가.

‘저 녀석, 예전에 짐꾼들 임금 떼먹었던 그놈이네.’

기억이 났다. 3년 전, 내가 짐꾼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저놈 파티의 짐을 들었다가 약속된 보수의 절반도 못 받았었다. 항의하던 동료 짐꾼을 발로 차서 갈비뼈를 부러뜨린 쓰레기.

박철민은 대기 줄을 무시하고 접수 창구로 직행했다.

“어이, 직원 양반. 우리 신입들 등록해야 하니까 창구 하나 비워.”

“아, 저… 박철민 헌터님. 지금 대기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아앙? 지금 우리 길드장님이 기다리시는 거 안 보여? 융통성 없게 진짜.”

박철민이 접수대 유리를 탕 치며 으름장을 놓았다.

협회 직원은 사색이 되어 어쩔 줄 몰라 했다. 줄을 서 있던 헌터들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했다. 황금 독수리 길드의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빨리빨리 처리해. 뒤에 있는 쩌리들은 어차피 F급, E급 쓰레기들이잖아. 시간 낭비하지 말고.”

박철민의 시선이 대기 줄을 훑었다. 경멸이 가득 찬 눈빛.

그 시선이 우연히 나와 마주쳤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빤히 쳐다보았다.

“……?”

박철민이 미간을 찌푸리며 선글라스를 살짝 내렸다.

“뭐야? 눈깔 안 깔아? 어디서 본 낯짝인데….”

그가 성큼성큼 내 쪽으로 걸어왔다. 주변 사람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졌다. 내 주위엔 이제 나 혼자뿐이었다.

“너, 3년 전에 내 돈 달라고 징징짜던 그 짐꾼 새끼 아니냐? 아직도 안 죽고 살아있었어?”

기억력도 좋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줄 서세요. 새치기하지 말고.”

정적이 흘렀다.

주변 사람들이 숨을 들이켰다. 감히 B급 헌터에게, 그것도 황금 독수리 길드의 간부에게 짐꾼 따위가 훈계라니.

박철민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허, 이 새끼가 돌았나. 튜토리얼에서 머리통이라도 다쳤냐? 감히 누구한테 훈계질이야!”

우우웅-

박철민의 주먹에 푸른 마력이 감돌았다. 강화 계열 스킬 [바위 주먹(C)]이다. 맞으면 일반인의 두개골 따위는 수박처럼 터져 나간다.

“뒤져라,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그가 주먹을 휘둘렀다. 협회 내에서의 폭력은 금지지만, 그가 짐꾼 하나 죽인다고 해서 크게 처벌받을 리 없다는 오만이 깔린 일격이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피할 생각도 없었다.

대신, 머릿속으로 빠르게 [대여점]을 호출했다.

‘검색. 방어 스킬. 10초 대여. 가장 싼 거.’

‘아니, 반사 데미지가 있는 걸로.’

시스템은 내 의도를 즉각 파악했다.

[검색 완료]

[스킬: 가시나무 갑옷 (C급)]

* 효과: 1분간 물리 방어력 200% 상승. 받은 충격의 50%를 상대에게 되돌려줍니다.

* 대여료: 30 카르마 / 1분

‘대여.’

[결제 완료. 잔여 카르마: 220]

[스킬이 적용됩니다.]

투명한 녹색 기운이 내 피부 위를 얇게 덮었다.

그리고 0.1초 뒤.

퍼억-!

둔탁한 타격음이 로비를 울렸다.

사람들은 짐꾼의 머리가 터졌을 거라 예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어진 비명은 내 것이 아니었다.

“끄아아악!!”

박철민이 오른손을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의 손가락뼈가 기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정작 정통으로 주먹을 맞은 내 어깨는 멀쩡했다. 먼지 하나 일지 않았다.

“뭐, 뭐야?!”

“박철민이 나동그라졌어!”

“저 짐꾼 뭐지? 스킬을 쓴 건가?”

로비가 술렁거렸다.

나는 옷에 묻은 보이지 않는 먼지를 털어내며, 바닥에서 뒹구는 박철민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게 줄을 섰어야죠. 뼈가 약하시네. 우유 좀 드셔야겠어요.”

“너… 너 이 개새끼…! 으으윽…!”

박철민이 핏발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지만, 고통 때문에 일어나지도 못했다.

나는 그를 가볍게 무시하고 다시 직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기요, 이 사람 업무 못 볼 것 같은데. 다음 사람 진행하죠?”

직원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네네! 다음 분… 아니, 강진혁 님! 이쪽으로 오세요! VIP 창구로 모시겠습니다!”

소란을 일으킨 대가로 쫓겨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대우가 좋아졌다.

역시 힘이 법인 세상이다.

나는 박철민을 밟고 지나가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다음에 또 시비 걸면, 그땐 손목이 아니라 목이 꺾일 거야. 알았어?”

박철민의 눈동자가 공포로 흔들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방금 내가 보여준 건 빙산의 일각도 아니라는 것을.

---

[새로운 헌터 라이선스가 발급되었습니다.]

[등급: D (잠정)]

[특이사항: 재심사 결과, 측정 불가의 방어 능력이 확인됨.]

측정 수정구에 손을 올리자마자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킨 척 연기했다. 대여 능력을 들키지 않으려면 적당히 숨기는 게 좋다. D급이면 솔로 플레이가 가능한 최저 한계선이니 딱 적당했다.

“감사합니다.”

따끈따끈한 라이선스 카드를 받아 들고 협회를 나섰다.

등 뒤에서 사람들의 경외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숨겨진 고수', '은둔형 헌터'라는 수식어가 벌써 따라붙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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