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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이게 말이 돼?"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돌바닥 위에서, 누군가의 잘린 팔이 내 발치로 굴러왔다.
익숙한 시계였다. 싸구려 가죽 줄에 흠집이 난 다이얼. 방금 전까지 "이번 튜토리얼만 끝나면 빚 다 갚고 고향 내려간다"며 웃던 김 씨 아저씨의 것이었다.
"크으으… 캬아악!"
전방 30미터 앞. 튜토리얼의 '최종 보스'라 불리는 놈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놈의 이름은 [붉은 갈기 라이칸슬로프].
권장 공략 레벨 10.
최소 5인 이상의 각성자로 구성된 파티가 필요한 몬스터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남은 건, 각성자도 헌터도 아닌 나, 짐꾼 강진혁뿐이었다.
"하아, 하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탑(Tower)이 세상에 나타난 지 15년. 인류는 탑을 공략하며 부와 명예, 그리고 초능력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받은 '각성자'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 같은 '비각성자'들은 그들이 흘린 콩고물을 주워 먹기 위해 짐을 들고, 시체를 치우며 하루살이처럼 목숨을 연명한다. 이번 튜토리얼도 마찬가지였다. 안전하다는 말에 속아 들어온 짐꾼 알바였다.
그런데.
[경고! 튜토리얼 난이도가 조정됩니다.]
[오류 발생! 난이도가 'Hell(지옥)'로 격상됩니다.]
시스템의 오류. 그 단 한 줄의 문장이 20명의 공대원과 5명의 짐꾼을 10분 만에 고깃덩어리로 만들었다.
'죽는다.'
눈앞이 아찔해졌다. 라이칸슬로프의 노란 안광이 나를 향해 고정되었다. 놈의 입가에서 뚝뚝 떨어지는 침이 바닥을 적셨다.
도망칠 곳은 없다. 뒤는 막힌 벽이고, 앞은 괴물이다. 손에 쥔 거라고는 짐꾼용으로 지급된 녹슨 단검 한 자루뿐. 이걸로 저 괴물의 가죽이라도 뚫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이렇게 개죽음을 당한다고? 빚만 갚다가? 동생 병원비는 어쩌고?'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이를 악물었다. 살고 싶다. 미치도록 살고 싶다.
내 안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임계점을 넘어서자, 오히려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내렸다.
그 순간이었다.
[조건 충족.]
[플레이어 '강진혁'의 고유 특성이 개화합니다.]
[당신의 절박함이 차원 상점의 문을 두드립니다.]
눈앞에 붉은색 시스템 창이 아닌, 금빛 찬란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특성: '초월적 대여(Transcendental Rental)'가 활성화되었습니다!]
"…뭐?"
대여? 빌린다고?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었다. 라이칸슬로프가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거대한 그림자가 나를 덮쳤다.
[긴급 퀘스트 발생!]
[생존을 위해 아이템을 대여하시겠습니까?]
[현재 신용 등급: F (신규 가입)]
[대여 가능한 목록을 검색합니다….]
시간이 멈춘 듯 세상이 느려졌다. 아니, 내 사고가 가속된 것이다.
눈앞에 수십, 수백 개의 아이템 목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목록]
낡은 철검 (E급) - 대여료: 10포인트/10분
견습 마법사의 지팡이 (D급) - 대여료: 50포인트/10분
…
성기사의 방패 (B급) - 대여료: 500포인트/10분
쓸모없다.
저런 걸 빌려봤자, 비각성자인 내가 휘두르면 놈의 발톱에 막힐 뿐이다.
나에게 필요한 건 단순히 좋은 무기가 아니다. 저 괴물을 일격에 찢어발길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이다.
'더 센 거 없어? 내가 다룰 수 있으면서, 저 새끼를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거!'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스크롤이 미친 듯이 아래로 내려갔다. 목록의 빛깔이 은색에서 금색으로, 그리고 검붉은 색으로 변해갔다.
[검색 조건 수정: '사용자 리스크 무시', '파괴력 최우선']
[히든(Hidden) 카테고리에 접근합니다.]
[주의: 해당 아이템들은 사용자의 육체에 심각한 부하를 줄 수 있습니다.]
경고 문구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목록의 맨 아래, 검붉은 아우라를 뿜어내는 하나의 아이템이 눈에 꽂혔다.
[피를 마시는 마검, 다인슬레프(복제품)]
* 등급: S
* 분류: 대검
* 특수 능력: [피의 갈증] - 사용자의 생명력을 연료로 태워 파괴력을 증폭시킵니다.
* 대여료: 생명력 10% (선불) + 초당 생명력 0.1% 소모.
S급.
국가대표급 헌터들이나 만져볼 법한 등급의 아이템.
그것도 그냥 무기가 아니라, 내 생명을 담보로 힘을 내는 마검이다.
'생명력 10%? 다 가져가라지.'
죽으면 생명력이 무슨 소용인가.
나는 주저 없이 [대여] 버튼을 마음속으로 눌렀다.
[계약 성립.]
[신용 등급 F. 첫 거래 기념으로 '특수 능력 대여'가 무료로 제공됩니다.]
[세트 효과 발동: '광전사의 검술(A)'이 함께 대여됩니다.]
콰아앙-!
공기가 비명을 질렀다. 허공에서 칠흑 같은 균열이 벌어지더니, 붉은 핏빛이 감도는 거대한 대검이 내 손아귀에 쥐어졌다.
동시에, 내 심장이 쥐어짜이는 듯한 고통과 함께 뜨거운 에너지가 전신을 휘감았다.
"크헉…!"
무거웠다. 물리적인 무게가 아니라, 이 검이 품고 있는 살의가 너무나 무거웠다. 하지만 견딜 수 있었다. 함께 대여된 [광전사의 검술]이 내 근육과 신경을 강제로 조종하고 있었으니까.
라이칸슬로프의 발톱이 내 머리통을 날리기 직전.
내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위잉- 척!
녹슨 단검을 쥐고 벌벌 떨던 짐꾼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발을 내디디며 허리를 비틀고, 대검의 회전력을 이용해 아래에서 위로 올려친다.
서걱.
둔탁한 타격음은 없었다. 그저 두부를 자르는 듯한 소름 끼치는 절삭음만이 들렸을 뿐.
"깨갱?!"
공중에서 놈의 비명이 터졌다.
오른팔. 놈의 거대한 앞발이 통째로 잘려나가 허공을 날았다.
쿵!
착지한 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절단면을 바라보았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경고: 생명력이 빠르게 소모되고 있습니다.]
[현재 생명력: 82%]
대가. 이것이 힘의 대가다.
온몸의 혈관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지금 멈추면 죽는다.
"죽어!"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이제 준비는 끝났다.나는 곧장 1층 외곽에 있는 [전송 게이트]로 향했다.“행선지를 말씀해 주세요.”“고블린의 숲.”게이트 관리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고블린의 숲이요? 거긴 초보자 파티 사냥터인데… 혼자 가시게요? D급이라도 혼자는 위험합니다. 홉고블린이라도 나오면….”“괜찮습니다. 일행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서요.”거짓말이다.하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관리자는 찜찜한 표정으로 레버를 당겼다.우우웅-푸른색 포탈이 열렸다.나는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던전 ‘고블린의 숲’에 입장하셨습니다.][권장 레벨: 5 ~ 15]숲의 공기는 습하고 눅눅했다. 어디선가 ‘키킥’거리는 고블린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평범한 헌터들이라면 이곳에서 고블린을 한 마리씩 유인해서 사냥하고, 가죽과 마석을 챙길 것이다. 하루 종일 사냥해봐야 고작 50마리 정도 잡을까 말까 한 효율.하지만 내 목표는 그런 푼돈 벌이가 아니다.나는 숲의 입구에서 지도를 펼쳤다. 아니, 머릿속에 있는 기억의 지도를 끄집어냈다.탑이 생기기 전, 내가 미친 듯이 파고들었던 고전 게임의 공략집과 이 탑의 구조가 묘하게 닮아있었기에, 나는 기억 속 지도를 떠올렸다.‘고블린 숲 북서쪽. 좌표 142, 88. 폐허가 된 제단.’그곳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구석진 곳이다. 지형이 험하고 보상이 짜서 버려진 지역.하지만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그곳은 1층 최고의 ‘꿀단지’가 된다.나는 빠르게 숲을 가로질렀다.중간중간 튀어나오는 고블린들은 [기본 검술(E급)]을 10 카르마에 대여해서 가볍게 베어 넘겼다.“키엑?!”목이 달아난 고블린이 쓰러졌다.아직 레벨이 낮아 몸놀림이 둔했지만, 빌린 스킬의 보정 효과 덕분에 움직임은 날카로웠다.30분을 달린 끝에, 낡고 이끼 낀 돌 제단이 보였다.주변에는 수십, 수백 마리의 고블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일반 파티라면 보자마자 도망쳤을 물량이다.‘좋아, 딱 모여있네.’나는 제단
나는 1층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돔형 건물, 헌터 협회로 발걸음을 옮겼다.헌터 협회 1층 로비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튜토리얼을 갓 끝낸 신규 각성자들, 파티원을 구하는 헌터들, 그리고 아이템을 사고파는 상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B급 탱커 구합니다! 수익 배분 3:7! 장비 지원!”“포션 팝니다! 협회 정가보다 10% 싸게 드려요!”나는 그 소란을 뚫고 [재심사 접수처]로 향했다.대기 줄이 뱀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번호표를 뽑으니 대기인 수만 120명.“하아….”한숨이 나왔다. 오늘 안에 던전에 들어가긴 글렀나 싶을 때였다.“비키세요! 비켜!”로비 입구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거구의 사내들이 사람들을 밀치며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황금색 독수리 문양이 박혀 있었다.‘황금 독수리 길드.’국내 10대 길드에는 못 미치지만, 1층에서 20층 사이의 저층 구간에서는 꽤나 악명 높은 길드였다. 주로 초보자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하거나, 사냥터를 통제하며 자릿세를 뜯는 양아치 집단으로 유명했다.그 선두에 선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선글라스를 끼고 껌을 짝짝 씹어대는 사내.박철민. 황금 독수리 길드의 행동대장이자 B급 격투가.‘저 녀석, 예전에 짐꾼들 임금 떼먹었던 그놈이네.’기억이 났다. 3년 전, 내가 짐꾼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저놈 파티의 짐을 들었다가 약속된 보수의 절반도 못 받았었다. 항의하던 동료 짐꾼을 발로 차서 갈비뼈를 부러뜨린 쓰레기.박철민은 대기 줄을 무시하고 접수 창구로 직행했다.“어이, 직원 양반. 우리 신입들 등록해야 하니까 창구 하나 비워.”“아, 저… 박철민 헌터님. 지금 대기하시는 분들이 많아서….”“아앙? 지금 우리 길드장님이 기다리시는 거 안 보여? 융통성 없게 진짜.”박철민이 접수대 유리를 탕 치며 으름장을 놓았다.협회 직원은 사색이 되어 어쩔 줄 몰라 했다. 줄을 서 있던 헌터들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했다. 황금 독수리 길드의 보복이 두
"미친…."하지만 두 번째 항목, '마석 및 전리품'은 이야기가 달랐다.나는 주머니에 쑤셔 넣었던 라이칸슬로프의 마석을 꺼냈다.주먹만 한 크기에 붉은 기운이 감도는 상급 마석.[감정 중….][보스 몬스터 '변종 라이칸슬로프'의 마석][예상 환전가: 3,000 카르마]"오."탄성이 절로 나왔다.역시 사냥이 답이다. 현금 박치기보다 몬스터 부산물의 가치를 훨씬 높게 쳐주는 시스템이었다.이 마석 하나면 빚을 갚고도 2,500 카르마가 남는다. 그 정도면 B급 아이템을 몇 시간은 빌릴 수 있는 자금이다.[환전하시겠습니까?]"당연하지."[환전 완료. 빚이 청산되었습니다.][잔여 카르마: 2,500][신용 등급이 소폭 상승했습니다. 이제 '일일 특가' 상품을 조회할 수 있습니다.]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마음의 짐이 덜어졌다.자본금이 생겼다. 강력한 무기를 빌릴 수 있는 권한도 있다.이제 남은 건, 이 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그때였다.광장 한복판에 설치된 거대한 전광판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긴급 속보입니다. 국내 3대 길드 중 하나인 '천공 길드'가 10층 공략에 실패했습니다. 길드장 최상현 헌터가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며… 주가는 폭락 중입니다.사람들이 웅성거렸다."천공이 실패했다고? 10층 보스가 그렇게 세?""와, 이제 누가 뚫냐?"10층.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곳.그곳을 뚫는 자가 탑의 새로운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천공 길드뿐만 아니라, 거대 길드들이 앞다투어 공략대를 파견하고 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있었다.나는 전광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10층 보스. 그곳에 있는 놈의 약점을 나는 알고 있다.짐꾼으로 일하며 주워들은 정보가 아니다. 과거 탑이 생기기 전, 내가 미친 듯이 파고들었던 고전 게임의 공략집과 이 탑의 구조가 묘하게 닮아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지금까지는 힘이 없어서 알면서도 못 본 척해야 했다.하지만 이제는 다르다."저기요."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돌아
나는 땅을 박찼다.[광전사의 검술]이 내게 속삭였다. ‘목을 노려라. 심장을 찔러라. 더 잔인하게, 더 확실하게.’놈이 남은 왼팔을 휘둘렀지만, 내 눈에는 너무나 느리게 보였다.고개를 살짝 숙여 피한 뒤, 그대로 대검을 놈의 명치에 꽂아 넣었다.푸욱-!"크르르… 컥."이게 끝이 아니다. 마검 다인슬레프의 진정한 능력은 지금부터였다.[특수 효과 발동: '폭혈(暴血)'][검에 묻은 대상의 피를 폭발시킵니다.]콰직! 펑!놈의 몸속에 박힌 검신에서 붉은 섬광이 터졌다. 놈의 등 뒤로 거대한 구멍이 뚫리며 뼈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거대한 몬스터가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그 눈동자에 담긴 생기가 빠르게 사라져갔다.[튜토리얼 보스 '붉은 갈기 라이칸슬로프'를 처치했습니다.][레벨이 올랐습니다.][레벨이 올랐습니다.]…[최초의 업적! '비각성자의 반란'을 달성했습니다.]시스템 메시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하지만 나는 기뻐할 틈이 없었다.[대여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아이템과 능력을 회수합니다.]팟.손에 쥐고 있던 묵직한 마검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몸을 지탱하던 초인적인 힘도 순식간에 빠져나갔다."허억, 헉…."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극심한 현기증이 밀려왔다.생명력을 연료로 쓴 탓에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하지만 살아있었다.내 심장이 뛰고 있었다.주위를 둘러보았다. 처참한 시체들. 그리고 그 가운데 우뚝 서 있던 거대한 괴물의 사체.내가 한 짓이다.평생 F급 짐꾼으로 살다 죽을 줄 알았던 내가, S급 아이템의 힘을 빌려 이 지옥에서 살아남았다.띠링.눈앞에 다시 금색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영수증 같은 모양새였다.[대여 결제 명세서]* 대여 품목: 마검 다인슬레프(복제품), 광전사의 검술(A)* 이용 시간: 43초* 청구 금액: 생명력 18% + 500 카르마(외상)* 현재 잔여 카르마: -500 (채무 불이행 시 영혼 압류)"…뭐? 영혼 압류?"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생명력
"젠장, 이게 말이 돼?"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돌바닥 위에서, 누군가의 잘린 팔이 내 발치로 굴러왔다.익숙한 시계였다. 싸구려 가죽 줄에 흠집이 난 다이얼. 방금 전까지 "이번 튜토리얼만 끝나면 빚 다 갚고 고향 내려간다"며 웃던 김 씨 아저씨의 것이었다."크으으… 캬아악!"전방 30미터 앞. 튜토리얼의 '최종 보스'라 불리는 놈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놈의 이름은 [붉은 갈기 라이칸슬로프].권장 공략 레벨 10.최소 5인 이상의 각성자로 구성된 파티가 필요한 몬스터다.하지만 지금 이곳에 남은 건, 각성자도 헌터도 아닌 나, 짐꾼 강진혁뿐이었다."하아, 하아…."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탑(Tower)이 세상에 나타난 지 15년. 인류는 탑을 공략하며 부와 명예, 그리고 초능력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받은 '각성자'들의 이야기일 뿐이다.나 같은 '비각성자'들은 그들이 흘린 콩고물을 주워 먹기 위해 짐을 들고, 시체를 치우며 하루살이처럼 목숨을 연명한다. 이번 튜토리얼도 마찬가지였다. 안전하다는 말에 속아 들어온 짐꾼 알바였다.그런데.[경고! 튜토리얼 난이도가 조정됩니다.][오류 발생! 난이도가 'Hell(지옥)'로 격상됩니다.]시스템의 오류. 그 단 한 줄의 문장이 20명의 공대원과 5명의 짐꾼을 10분 만에 고깃덩어리로 만들었다.'죽는다.'눈앞이 아찔해졌다. 라이칸슬로프의 노란 안광이 나를 향해 고정되었다. 놈의 입가에서 뚝뚝 떨어지는 침이 바닥을 적셨다.도망칠 곳은 없다. 뒤는 막힌 벽이고, 앞은 괴물이다. 손에 쥔 거라고는 짐꾼용으로 지급된 녹슨 단검 한 자루뿐. 이걸로 저 괴물의 가죽이라도 뚫을 수 있을까?불가능하다.'이렇게 개죽음을 당한다고? 빚만 갚다가? 동생 병원비는 어쩌고?'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이를 악물었다. 살고 싶다. 미치도록 살고 싶다.내 안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임계점을 넘어서자, 오히려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내렸다.그 순간이었다.[조건 충족.][플레이어 '